〈38〉
문 안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제릭이 방 안으로 들어섰다.
날이 갈수록 근심 걱정이 늘어나는 백작의 상태가 오늘은 더 심각했다.
피곤한 듯 완전히 그늘진 시선에 낮게 갈라지는 목소리가 제릭을 향했다.
“……베리안은 어떻게 되었지.”
“그때 말한 방으로 옮겼습니다. 문 앞 기사들도 믿을 만한 아이들이니 더 이상 빠져나갈 걱정은 안 하셔도 좋습니다.”
“그래…….”
동의를 하면서도 그의 고개는 점점 숙여졌다.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정말 맞는 일인지 모르겠군.”
그 말에 제릭은 능글맞게 웃으며 백작에게 말했다.
“당연하죠. 전부 아가씨를 위한 일이 아닙니까. 오늘 아가씨께서도 백작님의 뜻을 이해하셨다며 서류에 사인을 해 주셨습니다.”
“정말이냐.”
백작의 표정이 조금 나아졌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가 말을 이었다.
“현재 인력 상황이 좋지 않아 지금 당장 사람을 찾기는 힘들 듯해, 우선 제게 맡겨 두시는 게 어떻습니까?”
“그래…….”
백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귀 위쪽 머리를 꾹 눌렀다.
그 모습을 보던 제릭은 제 주머니 안의 약병을 손안에서 굴렸다.
‘약 효과가 떨어질 때가 되었나.’
설득이 쉽지 않기로 알려진 백작을 맨입으로 꼬드기는 건 시간상 효율이 너무 떨어졌기에 비싸게 들여온 약인데, 점점 지속 시간이 떨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쯧, 속으로 혀를 차며 제릭은 가볍게 약병을 쥐었다.
“그럼 전 이번 일에 대한 처리를 하러 가 볼테니, 차라도 한잔하시며 머리라도 식히시지요. 올려다 드리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하지.”
백작의 끄덕임과 함께 제릭은 바로 방을 빠져나왔다.
제가 심어 둔 하녀에겐 차에 넣을 약병을 건네주고 이전 등기 서류를 안주머니에 넣은 뒤 복도를 활보하는 그는 모든 게 제 뜻대로 움직이는 이 상황이 너무도 짜릿했다.
이제 곧 제 손에 들어올 돈과 명예가 벌써부터 그려지는 듯했다.
그는 곧장 제 개인 방으로 들어서 한 양피지를 꺼냈다.
“약속한 대로 준비되었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뵙지요.”
곱게 휘날린 양피지를 방 안에 자리한 새의 다리에 묶고는 하늘 높이 그것을 날려 보냈다.
허공을 가로지르며 나아가던 새는 한 저택의 창에 발을 들였다.
“드디어 왔구나.”
그날 이후 사회의 숨은 상인과 큰손들에게 편지가 돌기 시작했다.
‘수도의 아주 귀한 물건을 들여왔습니다. 귀하신 분들의 참석을 기다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