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영검전-18화 (18/225)

018.

#작별

진우선이 집에 돌아온 건 한밤중이었다.

만총과 매영령을 만나고, 또 여러 사람을 만나고 나니 밤이 깊어져 있었다.

오늘 그렇게 많이 만나게 된 이유는 하나였다.

‘드디어 정무맹에 가게 됐어!’

그 기쁨이 온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집에 들어오니 온몸에 힘이 빠지고 긴장이 풀렸다.

한마디로 기분 좋게 나른했다.

잠도 푹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날은 으레 그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날에는 꿈도 자주 꿨었다.

***

“어머니. 저 낚시하러 다녀올게요.”

“오늘도 또? 강 씨 아저씨랑?”

“네. 이제 곧 오실 거예요.”

“우선아. 그냥 집에 있는 게 어떠니? 아저씨 귀찮게 굴지 말고.”

열 살 아이 진우선이 낚시하러 가려니, 어머니가 말렸다.

요즘 들어 하루걸러 하루씩 낚시를 나가니, 집에 붙어 있지를 않았다.

“제가 물어봤는데, 아저씨는 저 안 귀찮다고 하던데요.”

“맞아요, 형수님. 안 귀찮습니다. 오히려 낚시를 본격적으로 알려줘 볼까 싶을 정도입니다. 가르칠 맛이 나요. 우선이가 똑똑해서 낚시를 곧잘 배우더라고요.”

“아휴. 참!”

어느새 집에 찾아온 강 씨 아저씨가 웃는 얼굴로 어머니에게 말했다.

그때, 아버지가 방에서 나오셨다.

“자네 왔는가?”

“네. 형님. 우선이랑 낚시하러 가려고 잠시 들렀습니다.”

“하하. 요즘 우선이가 낚시에 재미가 들린 모양이야. 자네가 잘 좀 봐주게.”

“서방님. 오늘도 허락하시는 거예요?”

“우리 우선이가 저렇게 좋아하는데, 보내줍시다. 그리고 낚시를 통해 인생을 배운다지 않소? 또, 저 나이 때에는 많이 노는 것도 중요하고.”

아버지가 어머니를 설득했다.

강 씨 아저씨가 아버지의 말에 장단을 맞췄다.

“맞습니다, 맞습니다. 그리고 낚시 좋아하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 없지요.”

“흥! 동생은 강 씨가 자꾸 집을 비운다고 싫어하던데요.”

“으헉!”

강 씨 아저씨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낚시하러 가서 밤을 지새우느라 종종 집을 비웠는데, 그래서 아내한테 미움을 사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핫! 오늘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해가 지기 전에 돌아올 겁니다!”

그는 곧 멋쩍은 듯이 웃으며 이번엔 다를 거라고 말했다.

“에효. 어쩔 수 없지.”

어머니가 한숨을 쉬더니 허락하셨다.

“우선아. 조심히 다녀와야 한다. 아저씨 말 잘 듣고. 알지?”

“네, 어머니. 그럴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진우선이 활짝 웃더니, 미리 준비해둔 낚싯대와 도구를 챙겨 들었다.

아버지가 모자지간의 대화를 들으며 미소 짓다가, 강 씨 아저씨에게 물었다.

“대인께서는 별일 없으시지?”

“아버지야 늘 똑같으시죠, 뭐.”

“그렇군. 한 번 찾아뵈어야 하는데…… 허헛.”

강 씨의 아버지인 강 대인은 호칭대로 대인군자였는데, 마음 씀씀이가 크고 언행이 바르며 덕망이 높았다.

진우선 가족의 마을 정착에도 도움을 준 사람이었다.

“아! 이번에 귀한 서책을 하나 구하셨다고, 선생님께서 시간 되실 때 한 번 와주셨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그랬는가? 이거 조만간 들르도록 해야겠군.”

“선생님께서 와주신다면 아버지도 정말 좋아하실 겁니다.”

그때, 나갈 채비를 마친 진우선이 부모님에게 인사를 올렸다.

“어머니, 아버지. 저 이제 다녀올게요.”

“그래. 잘 다녀오너라.”

“네!”

진우선이 대답을 마치고, 강 씨 아저씨와 낚시를 떠났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해가 동쪽에서 중천을 지나 서산으로 넘어갔다. 밤이 깊어져 있었다.

진우선과 강 씨 아저씨는 그제야 마을 어귀로 들어서는 중이었다.

“해가 지기 전에 돌아온다고 했는데, 해가 진 지 한참이나 되었구나.”

“그러게요. 어머니가 기다리실 텐데…….”

“내가 잘 말씀 드리마. 그래도 오늘은 네가 큰놈을 많이 잡지 않았느냐?”

“맞아요! 진짜…… 제가 다섯 마리나 잡았어요! 히히힛! 얼른 가서 보여드리고 싶어요. 엄청나게 좋아하시겠죠?”

“그럼! 그렇고말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다가올 때였다.

언덕을 넘어선 순간, 시뻘건 게 보였다.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밤중인데 새까만 연기가 잔뜩 피어오르는 것도 바로 보였다.

“헉! 마을에 불났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채채채챙!

이히잉!

거대한 불과 더불어 무기 부딪치는 소리, 말 울음소리 등이 마구 들려왔다.

저 멀리서 작게 움직이는 수많은 도적 떼들이 보였다. 다들 번쩍이는 무기를 들고 있었다.

무기들이 온통 시뻘겠다.

그들이 마을에 불을 지르고 있었다.

“아…… 아저씨!”

“우선아. 침착해라.”

그는 즉시 진우선의 손을 붙잡고 언덕 옆 수풀 속으로 들어갔다.

“헉! 헉!”

길에서 멀어질수록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두 사람은 쉬지 않았다. 뒤돌아보지 않고 한참을 올라갔다.

둘 다 정신없이 산을 뛰었다.

그렇게 달려 울창한 숲속에 있는 한 커다란 나무 뒤에 도착했다.

마을 사람들만 아는 나무였다.

그 나무는 마을이 내려다보이면서, 주위로부터 몸을 꽤 가릴 수 있었다.

두 사람이 거기서 숨을 돌렸다.

“우선아.”

“……네.”

그들의 목소리가 침울했다.

“마을이 불타고 있어.”

“네. 아저씨 집도, 우리 집도…….”

“그래.”

그리고 잠시, 둘은 마을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불길이 모든 집을 태우고 있었다.

게다가 그 불빛이 너무 밝아서, 거리마다 피 흘리고 죽은 사람이 가득한 게 보였다.

너무나 참혹했다.

그걸 본 진우선의 마음이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

부모님은 어떻게 되셨을까?

죽임을 당하셨을까?

그러면 안 되는데…….

하지만 부모님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저씨. 어쩌죠?”

두렵고, 떨리고, 초조했다.

강 씨 아저씨가 진우선의 손을 꽉 쥐었다.

“기다려 보자. 일단 저들이 다 갈 때까지.”

“네.”

둘은 그곳에 숨어 계속 기다렸다.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번졌고, 도적떼는 무책임하게 하나둘 떠나갔다.

그리고 한참 후, 강 씨 아저씨가 작게 입을 열었다.

“다 간 거 같다.”

목소리가 메말라 있었다.

내려가고 싶은 마음을 수천 번 참아서인지, 쩍쩍 갈라져 버린 음성이었다.

“내가 잠시 상황만 보고 오마.”

“지금요?”

“그래.”

“저도 갈래요!”

“아니야. 혹시 모르니까, 넌 여기 있자. 그게 좋을 것 같아.”

“그게요?”

“응. 아저씨 감 믿지? 아저씨는 오늘 낚시가 풍년이 났잖아.”

“아……. 네. 알았어요.”

강 씨 아저씨는 오늘따라 평소보다 훨씬 낚시가 잘 되었다. 낚싯대를 던지기만 하면 낚아 올린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그 감으로 여기 있으라고 말하고 있었다.

진우선이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잘 보고 있어!”

그 말을 남기고 강 씨 아저씨가 먼저 마을로 내려갔다.

잠시 후, 진우선의 시야에 아저씨가 보였다.

그는 불길을 피해, 한 집, 두 집 들어가 보고 있었다.

혹시 살아있는 사람은 없는지 몇몇을 붙들어 흔들기도 했다.

그리고 곧, 아내 앞에서는 목 놓아 울었다.

바로 그때!

“안 돼…….”

진우선의 놀람과 동시에, 뒤에서 다가온 도적 하나가 아저씨의 목을 베었다.

퉁!

목이 떨어졌다.

그걸 보고 도적이 웃었다.

“크큭!”

도적이 비릿하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귓전에 울렸다.

들리지 않을 거리인데, 웃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소리도 들려 오는 것 같았다.

“아…….”

진우선이 낙망했다.

그와 동시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버렸다.

마을은 저 앞에 내려다보이건만, 갈 수 없었다. 가는 게 너무 무서웠다.

나는 혼자가 된 걸까?

다 죽은 걸까?

무엇 때문에…….

왜…….

모든 게 망연자실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새벽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어딘가에서 남아 있던 도적들이 철수했다.

하지만 지금 내려갈 순 없었다.

진우선은 힘이 없었다.

넋이 나갔는지, 나무에 기댄 채 석상처럼 가만히 있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하지만 마을과 마을 사람의 모습은 한순간도 빼놓지 않은 채 모두 보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관복을 입은 사람들도 도착했다. 그들은 곧바로 마을에 붙은 불을 껐다.

진우선은 그제야 마을로 내려갔다.

“아버지!”

진우선이 부모님을 찾았다.

아버지는 마당에 쓰러져 있었다.

그 뒤에 어머니의 시신도 있었고.

“어머니!”

부모님에게서 흘러나온 피가 주변에 흥건했다.

“아버지이-! 어머니이-!”

진우선이 목 놓아 불렀다.

그러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반겨주시던 부모님이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때였다.

“우…… 우선아.”

“아버지!”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진우선이 아버지를 들어 올렸다.

아버지가 입에서 왈칵 피를 토하며 간신히 눈을 떴다.

“아버지!”

“우선아…… 늦어서…… 다행이구나.”

아버지가 힘겹게 말했다.

늦어서 다행이라고, 낚시하러 가서 늦게 돌아온 게 다행이라고.

“아버지. 말하지 마세요. 지금 사람들 왔으니까…… 치료할 수 있을 거예요!”

진우선이 아버지의 몸을 붙든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아버지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행이야…… 너라도…… 살아 있어서…….”

아버지가 가까스로 한 음절씩 내뱉었다.

그리고 마지막 힘을 다해 진우선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힘없는 눈동자 안에 아들의 모습이 가득 담겨 있었다.

진우선이 울상을 지으며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본능적으로, 지금 아버지의 눈을 외면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버지…….”

목이 메어 겨우 부를 수 있었다.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희미하게 웃어주었다.

“우선아…… 사랑한……다…… 내 아들…… 잘…… 살아다오.”

그렇게 말을 마치고, 몸이 축 늘어졌다.

“아버지-!”

***

“아버지!”

진우선이 중얼거리며 벌떡 일어났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은 방 안에 있고, 침상에 누워 있었다.

방안의 어둠이 걷히면서 새벽 해가 어슴푸레 밝아오고 있었다.

“후우! 후우!”

진우선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심장이 마구 뛰고 있었다.

온몸이 땀에 젖어 있었다.

진우선이 얼른 침상을 내려왔다.

그리고 탁자 위에 둔 물을 주전자 채로 벌컥벌컥 마셨다.

찬물이 몸 안을 채우자 달아오른 심장이 식는 듯했다.

“아! 또 이 꿈인가…….”

그날의 꿈.

열 살 때 마주했던 순간은 악몽으로 남아, 이렇게 종종 떠오르고 있었다.

“휴우-!”

잔뜩 힘 빠진 한숨이 흘러나왔다.

살아있다는 안도감에 나온 한숨이기도 했다.

입가에 슬픈 미소가 걸렸다.

악몽을 꾸지 않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

황호는 아침에 고서점에 도착하자마자 얼굴이 잔뜩 굳어 있는 진우선을 보았다.

“표정이 왜 그래? 어디 아프냐?”

“아니요. 저는 괜찮아요.”

진우선이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우선아, 너는 종종 그런 표정 짓더라. 아픈 게 아니면, 악몽이라도 꿨어?”

황호가 슬쩍 던진 말이 참으로 예리했다.

하지만 진우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하핫! 그럼 나랑 헤어지는 게 아쉬워서 그렇구나? 맞지?”

“네.”

“그럴 줄 알았어. 넌 날 좋아하니까.”

황호가 씨익 웃었다.

“아무튼, 축하한다. 어제 다 들었어. 그토록 바라던 정무맹에 가게 됐네? 후후훗.”

“감사합니다.”

청운무관의 소식이 다 퍼진 모양이었다. 황호는 진심으로 기쁘고 즐거운 듯했다.

“가만있어봐. 정무맹이면 장사에 있잖아. 언제까지 가야 해?”

“부당주님이 해가 바뀌기 전에 정무맹으로 오라고 하시더라고요.”

“해가 바뀌기 전에? 그렇게 빨리?”

“한 달 정도나 남았는데요.”

“그러니까 아쉽지. 한 달밖에 안 남았으니까. 너랑 나랑 안 지가 얼만데.”

황호가 많이 아쉬워했다.

떠나보내는 게 섭섭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네가 원하던 곳으로 간다고 하니까 좋긴 하네.”

원하던 곳, 정무맹.

진우선은 이제 그곳에 뽑혀 당당히 가게 되었다.

황호는 문득 진우선이 예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중에 정무맹에 가서 세상에 해악을 끼치는 사람들과 맞서 싸울 겁니다!”

이건 진우선이 청운무관에 등록했을 때, 황호가 무공을 왜 배우냐고 물으니 대답한 말이었다.

그리고 진우선은 이루어냈다.

청운무관에서 정무맹으로 뽑혀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도 말이다.

“근데 나는 어쩌나? 유능한 점원 한 명을 잃게 생겼네.”

황호가 울상을 지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기쁘고 좋은데, 그렇다고 보내자니 서운한 까닭이었다.

“저보다 더 유능한 점원을 금방 구하실 수 있을 거예요.”

“허어-! 쯧쯧. 넌 내 마음 모른다. 아직 어려.”

그리고.

황호의 말대로 한 달의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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