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영검전-24화 (24/225)

024.

#장사 (4)

“어떻게 느껴진 거죠?”

여인이 캐내듯이 물었다.

진우선이 긴장하여 답했다.

“얼음 같았습니다.”

“얼음요?”

여인이 확인하듯 재차 물었다.

진우선이 제대로 알아챘기 때문이리라.

맑고 깨끗하지만, 차갑고 시린 형체의 기운은 한 단어로 표현하 자면, 딱 얼음이었다. 그게 바로 빙공이 가진 성질이었다.

“그게 느껴졌어요?”

“네.”

여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바라보았다. 눈동자에 당혹감이 어려 있었다.

“소저에게서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는데, 마치 얼음 막 같은 게 주위에…….”

“잠깐!”

진우선이 뭔가 자세한 이야기를 꺼낼 듯하자 노파가 말을 끊었다.

동시에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젊은 여인을 비스듬히 가로막아 보호했다.

사나운 눈빛으로 진우선을 경계하면서 살벌한 한마디를 던졌다.

“네놈은 누구지?”

손에 쥔 기다란 지팡이에도 다시 힘이 들어갔다. 언제든지 휘두를 태세였다.

“호심당 애송이가 이 정도일 수는 없어. 누가 보냈느냐?”

“아, 아닙니다! 보낸 사람 없습니다!”

진우선이 황급히 손을 가로저었다.

하지만 노파는 믿지 않는지, 눈빛이 살쾡이처럼 변했다.

“천마교냐? 마문광이냐?”

“둘 다 아닙니다! 천마교 아니고! 마문광도 누구인지 전혀 몰라요! 저는 호심당 맞습니다! 원단에 들어갑니다.”

진우선이 연신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급히 말을 쏟아냈다.

“파파. 진정해요. 아니라고 하잖아요.”

여인이 노파를 슬쩍 젖히며 진정시켰다.

“아가씨, 저건 거짓말입니다. 애송이들이나 모이는 호심당이라니요?”

“그래도 맞다고 하잖아요. 일단 이분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기로 해요. 그 후에 생각해도 늦지 않아요.”

여인이 온화하게 말하자 분위기가 다시 바뀌기 시작했다.

노파도 혈기를 가라앉혔다.

“공자. 우리가 공자와 이야기를 좀 해보고 싶은데, 괜찮지요?”

여인이 진우선을 맑은 눈망울로 바라보았다.

눈이 참 또렷하고 청아했다. 얼음 막이 있어 흐릿함에도, 고결한 눈빛만은 감추지 못하는 듯했다.

거절하기 어려운 눈빛이었다.

그 눈을 마주한 진우선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앗! 네, 괜찮습니다.”

진우선과 여인, 그리고 노파.

세 사람이 품(品)자 모양으로 자리에 앉았다. 여인과 노파가 앉아 있던 이 층 맨 구석 탁자였다.

여인의 자리는 아까와 똑같았다. 바깥을 바라보는 위치이며, 사람들의 시선을 비스듬히 받는 각도였다.

그래서 객잔 내의 사람들은 절대 여인을 정면으로 볼 수 없었다.

진우선은 여인이 왜 그런 방향으로 앉았는지 알 것 같았다.

‘아까의 미모라면 가릴 만하지.’

경국지색이었다.

그 말을 책에서나 봤지, 그런 사람이 실제로 있을까 싶었는데, 있다면 이런 사람일 게 틀림없었다.

아까 얼굴을 본 순간, 심장이 멎는 줄 알았었다.

‘다들 이랬을 테지.’

스치듯 보기만 해도 누구든지 반할 게 분명했다.

차를 한 모금 마시는 모습마저도 어찌나 기품이 있고 우아한지 시선을 떼지 못할 정도니, 반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봐야 했다.

여인으로서는 그게 불편하고 성가신 일일지도 모른다. 지금 얼음 막으로 인해 인상이 다시 흐릿해졌음에도 눈길이 가는데, 그건 두 말할 나위가 없었다.

그렇기에 여인이 앉은 방향이나 얼음 막 등이 모두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미안했다.

“그…… 얼음 막을 깨뜨린 건 정말 죄송합니다.”

“아녜요. 괜찮아요.”

여인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일부러 그러신 것 같지는 않아요. 그렇죠?”

“네. 일부러 그런 건 전혀 아닙니다.”

진우선이 손사래를 쳤다.

“네, 저도 그럴 거 같았어요.”

여인이 싱긋 웃었다.

그러자 노파가 한 마디 치고 들어왔다.

“아가씨.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요. 저는 아직 의심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파파의 말도 맞아요.”

여인이 노파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고는 그녀가 궁금하고, 노파도 궁금해할 것을 바로 진우선에게 물었다.

“공자. 설명해줄 수 있나요? 어떻게 벌어진 일인지 알고 싶어요.”

여인이 맑은 목소리로 물어왔다.

“그건…… 제가 익힌 무공 때문입니다. 별채에서 무공을 수련하던 중, 소저의 빙공을 느끼고 호기심이 생겨 오게 되었습니다.”

“빙공인 줄 이미 아셨었군요.”

“네. 그렇습니다.”

“그럼 그 무공으로 제 빙공을 깨트린 건가요?”

여인이 바로 알아챘다.

진우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새롭게 느낀 빙기를 확인하러 여기 올라왔는데, 직접 와보니 얼음 막이 느껴지고, 그게 시선을 흩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순간, 제 내공이 갑자기 얼음 막을 깨트렸습니다.”

“으음.”

여인이 아미를 찌푸렸다.

결국 이 사태의 원인은 단 하나.

타인이 가진 내력의 성질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무공이었다. 그게 빙공을 알아채고 깨트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설명을 들었다고 해도, 그가 말한 걸 전부 믿기는 어려웠다.

금시초문인 까닭이었다.

“허-!”

노파도 기가 차서 한숨을 터트렸다.

“믿을 수 없지만, 네놈 말대로 되었다고 치자. 그럼 저쪽에 멀찌감치 서 있으면서 어떻게 깨트릴 수 있었지? 난 호심당 제자의 실력이 그 정도라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노파는 의문에 휩싸여 있었다.

빙공을 깨트린 실력이 의심스럽고, 자신의 공격을 피한 것도 쉬이 믿기 힘들었다.

아무리 절초가 아니었다지만, 호심당 제자 수준으로는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걸 해냈다.

그래서 의심이 마구 들었다.

“네놈은 정말 호심당에 가는 게 맞느냐?”

“맞습니다. 일말의 거짓도 없습니다.”

진우선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누가 그것을 증명할 수 있지?”

“그건, 호심당의 유청인 부당주께 여쭤보시면 확인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분이 청운무관에 오셔서 정하셨습니다.”

“흠…… 유청인 부당주가?”

노파가 흘깃 진우선을 노려보았다.

노파는 유청인을 아는 눈치였는데, 진우선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계속 판별하고 있었다.

“잘 알겠어요. 공자.”

여인이 빙긋 웃었다.

“그런데 공자는 누구시죠? 아직 이름도 안 물어봤네요.”

여인이 진우선 쪽으로 상체를 한 뼘쯤 더 다가왔다.

진우선은 그녀의 눈동자를 더욱 또렷이 보게 되었다.

그녀의 눈은 하늘을 담은 호수처럼 깨끗하고 맑고 깊었다.

그런 눈빛 덕분에, 미소가 더욱 돋보이는 듯했다. 얼음 막으로 다시 가려진 모습인데도 그랬다.

‘이분은 어느 순간에도 아름답구나.’

어쩌면 진우선이 여인의 실물을 봤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자꾸 감탄만 나왔다.

“저는 진우선입니다.”

“난 벽소군이에요.”

“아가씨! 왜 이름을…….”

여인의 말에 놀란 노파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빙화곡은 강호에 널리 알려진 곳이 아니며, 벽소군의 존재는 더더욱 비밀이었으니까.

특히 빙화곡이 홍역을 치른 지 얼마 안 되는 지금 시점에선 더더욱 조심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벽소군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파파. 괜찮아요. 진 공자와는 서로 이름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어요?”

벽소군도 다 생각이 있었다.

진우선 같은 실력자와는 최소한 통성명이라도 해두는 게 낫다고 여긴 것이다.

그러면서 벽소군이 여전히 밝은 표정으로 진우선에게 부탁했다.

“진 공자. 다음에는 제 빙공을 느껴도 깨트리지 말아 주세요. 알겠죠?”

“알겠습니다. 벽 소저.”

진우선이 그 말을 명심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미안함을 드러냈다.

“정말 실례했습니다.”

***

진우선은 별채로 돌아왔다.

만총은 아직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객잔의 삼 층에 아직 있는 모양이었다.

악록객잔은 삼 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일 층과 이 층에서는 보지 못했으니까.

진우선은 혼자 생각에 잠겼다.

‘얼음 막이 시선을 흩트린다고 생각한 순간, 수기가 저절로 빙공을 깨트려버렸지.’

의도한 건 아니었다.

그저 방해된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수기는 그것만으로도 진우선의 뜻이 있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수기가 내게서 흘러나가 버리면…… 다루는 게 어렵구나.’

수기는 신비롭고 재미있지만, 아직 익숙한 건 아니었다. 그래서 의지가 다소 잘못 전달되어 아까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더 능숙해지지 않는다면, 또 이런 상황이 오지 않으리란 법이 없었다.

[능숙해지는 건 시간이 걸리겠지만, 꾸준히 하다 보면 될 것이야.]

‘알겠습니다.’

검노야가 진우선의 생각에 확신을 더해주었다.

그리고 물었다.

[우선아. 요 며칠 사이에 너는 마기와 빙기를 느꼈는데, 마공과 빙공의 기운을 접하면서 어떠한 생각이 들었느냐?]

‘마기는 수기와 상극이라면, 빙기는 수기의 연장선이 아닐까 싶습니다.’

진우선은 마공과 빙공도 비슷한 관계일 것으로 생각했다.

[잘 보았다. 천지간에 흐르는 기운은 서로 얽히고설키는 관계에 있지.]

“아!”

진우선이 탄성을 흘렸다.

검노야의 한 마디에 무공에 대한 시야가 넓어지는 듯했다.

천지간의 모든 것이 서로 연관되어 있듯, 기운들도 단순하지 않았다.

그런 건 염두에 두지 않았었는데, 인제 보니 허투루 생각할 게 하나도 없었다.

진우선은 문득 수기가 새삼 더 크고 복잡하게 느껴졌다.

더 능숙해지도록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도 했다.

검노야가 그런 진우선을 보며 흐뭇하게 웃더니, 또 질문을 던졌다.

[우선아. 천지간에 흐르는 기운이 충만한데, 그렇다면 과연 수기만 있겠느냐?]

‘아! 아니겠군요!’

검노야가 고개를 끄덕하고는 말을 이었다.

[그렇지. 천지간에 흐르는 기운이 충만한 것은 수기만으로 가능한 게 아니니. 이제는 다른 것들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야. 혹여나 수기에 얽매여 배척하거나 제한하지 말고, 그럴 수 있음을 염두에 두었으면 하구나.]

‘네, 명심하겠습니다.’

진우선은 혹여나 놓칠세라, 검노야의 말을 여러 번 곱씹으며 마음에 새겼다.

수기는 천지간에 흐르는 기운 중 하나이며, 이러한 것들을 느끼고 자신의 것으로 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게 광영무를 익혀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었다.

그러다 문득 진우선도 의문이 생겼다.

‘광영무는 빛과 그림자가 이어지는 무공인데, 이것은 양(陽)과 음(陰)을 말하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수기는 음에 가까울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검노야가 대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뜻을 전했다.

[우선아. 그건 네가 직접 한 번 생각해봤으면 좋겠구나.]

‘직접……. 알겠습니다.’

진우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검노야가 생각해보라고 한 건, 그럴만한 뜻이 있을 거라고 여기면서.

실제로 그러했다.

검노야는 이제 진우선에게 화두를 던져야 할 때라고 여기고 있었다.

[상승의 경지는 스스로 궁구하며 느끼고 깨달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야 할지니.]

***

사흘이 지났다.

진우선과 만총은 별채를 같이 쓰면서도, 낮에는 얼굴을 많이 마주하지 못했다. 만총에게 하루가 멀다고 손님이 찾아오는 까닭이었다.

그럴 때면 진우선은 조용히 혼자서 악록객잔을 찾았다.

그리고 객잔에 앉아 수련을 계속 이어갔다.

더러는 객잔 밖에서 검으로 광영무를 펼쳐보기도 하고, 더러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눈을 감은 채 기운에 집중하기도 했다.

장사는 무한과 마찬가지로 강과 호수가 많아 수기가 충분해, 수기에 익숙해지기 좋은 곳이었다.

‘벽 소저는 오늘도 어딘가 다녀왔구나.’

악록객잔의 이 층.

벽소군과 노파는 지정된 자리처럼 악록객잔 이 층에 앉아 있었다.

빙기가 느껴지니 알 수 있었다.

‘오늘은 밖에까지 나가지네.’

악록객잔 밖으로 수기가 뻗어 나갔다.

오늘은 성과가 보였다.

예감이 좋았다.

어제보다 수기가 더 잘 흘러가고 있었으니까.

그러다가 갑자기!

“어?”

진우선이 눈을 부릅떴다.

모골이 쭈뼛했다.

불쾌하고 역겨운 기운이 폭발하듯 느껴진 까닭이었다.

‘마기다!’

확실했다.

진우선이 재빨리 몸을 일으켜 별채를 나섰다.

객잔을 통과하며 나가는데, 몇몇 사람들이 창밖을 살펴보고 있었다.

“저게 무슨 일인가?”

“저들은 형산파인데…….”

“갑자기 왜 자기들끼리 싸우고 저러지?”

그들의 말을 듣자마자 ‘설마?’ 하는 의문이 들었다.

‘형산파 사람들끼리? 마기 때문인가?’

진우선이 얼른 거리로 나갔다.

퍼퍼퍽!

콰앙!

시뻘건 안광을 뿌리며 매섭게 칼을 쓰는 자들이 있었다.

새하얀 옷에 시뻘건 피를 잔뜩 뒤집어쓰고 있는 그들은 모두 형산파를 나타내는 복장을 하고 있었다.

“너희들! 대체 왜 그러느냐?”

“곽칠!”

“여균!”

“종초관!”

중년인이 분노에 떨리는 목소리로 십수 명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호명에 제대로 대답하는 제자가 없었다.

그러자 중년인이 일갈을 내질렀다.

“이게 -! 무슨 짓이냐?”

사방에 쩌렁쩌렁 울릴 정도의 사자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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