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5.
#남가철방 (2)
“공자의 검은 평범한 철검으로 보이는데, 맞는가?”
“네, 맞습니다.”
“역시! 그렇다면 이 검은 주인을 아주 잘 만났군. 상서로운 기운으로 본래 가진 능력 이상의 것을 펼쳐낸 모양이야. 자네 정말 대단하구먼!”
“아! 감사합니다.”
대답하는 진우선의 얼굴에는 놀람이 가득했다.
갑작스레 상서로운 기운을 언급하는 남회에게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진우선이 그러거나 말거나, 남회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고맙네. 자네 덕분에 좋은 경험을 했어.”
남회는 진우선의 검을 통해 꽤 기분이 좋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공자도 소저와 마찬가지로 검에 관한 이야기는 들어가서 하도록 하겠네.”
남회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들 따라오시게나.”
“예, 어르신.”
남회가 빠르게 걸어 나갔고, 호연강이 즐거운 표정으로 얼른 그 뒤를 따랐다.
정연서와 진우선도 얼른 일어서서 빠르게 뒤따랐다. 남지홍이 두 사람 옆에서 함께 움직였다.
그들이 가는 방향, 즉 남회가 간 방향은 정원으로 들어왔던 쪽과 반대였다.
“아버지께서 두 분을 좋게 보신 모양입니다. 바로 작업하러 가시는군요. 근래 저리 서두르신 적이 없었는데 말입니다.”
“아, 다행이네요.”
정연서가 남지홍의 말을 받았다.
그리고 진우선의 대답을 기다렸다.
“…….”
하지만 아무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정연서가 진우선을 흘깃 보았다.
진우선은 무언가에 몰두해 있었다.
‘죽어가고 있어!’
진우선이 어두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곳에는 생기를 잃은 나무들이 있었다.
나무들은 온통 야위어 있었다. 기운이 거의 없었다.
남회가 들어간 시커먼 나무문 주변으로, 그 근방의 많은 나무가 그러했다.
어쩌면 문으로 만들어진 나무들도 다 죽어서 검게 변한 걸지도 몰랐다.
그런 나무들이 진우선의 눈길을 붙잡고 있었다.
남지홍이 진우선의 시선을 단번에 알아챘다.
“나무를 잘 키우기가 참 어렵네요. 여기 옮겨 심은 나무들이 계속 이렇게 되고 있습니다. 안타깝기만 해요.”
“나무들의 기운이 쇠했습니다. 애초에 왕성해지기가 어려웠던 거 같아요.”
진우선이 저도 모르게 반응했다.
남지홍이 반색하며 물었다.
“아! 진 공자는 나무에 대해서 좀 아십니까?”
“네? 아, 네.”
진우선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목기를 통해 나무를 느낄 수 있으니, 나무를 알긴 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나무의 생장 원리까지 다 아는 건 아니었다. 그게 대답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남지홍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러면 이걸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음…… 제가 지금 바로 답을 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 그렇지요. 제가 마음이 급했습니다.”
남지홍이 바로 수긍하며 말을 이었다.
“아버지께서 열심히 나무를 가꾸시는데도 다들 계속 힘을 잃었고, 왜 그런지도 알지 못하니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방금도 조바심이 난 모양입니다.”
“괜찮습니다. 나무들을 보니,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 갑니다.”
진우선이 남지홍의 말을 받았다.
그렇게 몇 마디 나누다 보니, 세 사람은 이제 남회가 들어간 검은 문 앞에 다다랐다.
그래서 정확히 볼 수 있었다.
맥을 못 추며 병든 것처럼 표면이 쩍쩍 갈라진 나무들을.
정원 한가운데만 하더라도 나뭇잎들이 푸른빛을 내뿜으며 건강해 보였는데, 지금 눈앞에 있는 나무들은 그런 모습이 전혀 없었다.
그런 나무들을 보며 남지홍이 씁쓸한 표정을 지은 채, 정연서와 진우선에게 말했다.
“두 분도 이제 들어가시지요. 아버지께서 안에서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네.”
정연서와 진우선이 대답하며 검은 나무문 안으로 들어섰다.
진우선과 정연서, 호연강과 남지홍 네 사람이 남회의 공간에 들어왔다.
찌를 듯한 열기가 확 덮쳐오고, 그 가운데 쇠 냄새가 역겨울 정도로 심하게 풍겨왔다.
눈이 재빠르게 그 원인을 찾았다.
실내는 대략 커다란 두 개의 방이 이어진 구조였는데, 활짝 열려 있는 문 뒤로 커다란 화로가 보였다.
화로에선 시뻘건 불길이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불길에 몸을 담근 여러 쇳덩이는 붉게 달아올라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이곳은 오직 그 두 가지만으로 가득했다. 열기와 냄새가 거기서 오는 듯했다.
여기가 남회의 대장간이었다.
남가철방의 가장 중심 장소는 그 외에 달리 특별한 게 없었다.
오히려 이렇게 단출한 구조를 통해, 남회가 최고의 대장장이가 된 이유를 알아챌 수 있었다.
그때, 앞방에 놓인 탁자 위로 남회가 무언가를 올려놨다.
“정 소저와 진 공자는 이쪽으로 오게나.”
정연서와 진우선이 남회에게로 다가갔다.
탁자 위에 진흙 판 두 개가 놓여 있었다.
“각자 진흙 판에 손바닥을 찍어 주게. 이걸로 각자의 손 크기에 맞춰서 손에 딱 맞게 검을 만들 것이라네.”
두 사람 다 오른손을 판에 찍었다. 검을 드는 손이었다.
“다 되었군.”
남회가 각자 손을 본뜬 판에 무언가 표시하더니, 탁자 아래에 챙겨두었다.
그리고 안쪽 방으로 움직였다.
“그럼 정 소저부터 먼저 따라오겠나?”
“네, 알겠습니다.”
정연서가 남회를 따라 화로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니 남지홍이 문을 닫았다.
일련의 모습을 본 호연강이 입을 열었다.
“어르신께서는 이렇게 사람마다 딱 맞는 무기를 만들어주시는 거였군.”
남지홍이 호연강의 목소리에 살짝 담긴 마음을 눈치챘다.
“당주님이 기회를 주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아쉬우신 모양이십니다.”
“하하. 느끼셨습니까? 사실 저는 지나간 일을 크게 생각하지 않는 성격이라 여기 오기 전까지는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어르신이 직접 주관하시는 모습을 보니, 저도 제게 딱 맞는 도를 한번 휘둘러보고 싶은 욕심이 납니다.”
“그러실 법도 합니다. 하지만 저번에 들르셨을 때 문득 생각이 들긴 했는데, 당주님은 어쩌면 아버지께 거절을 당하셨을지도 모릅니다. 이미 탕마도라는 보도(寶刀)를 쓰고 계시니까요.”
“아!”
호연강이 탄성을 흘렸다.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던 까닭이었다.
“어쩌면 이렇게 호심당의 두 제자 분께 좋은 기회를 주신 것이 정말 훌륭한 선택이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겠군요.”
남지홍의 말에 호연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대화를 몇 마디 했을 때, 정연서가 문을 열고 나왔다.
그러자 남지홍이 진우선을 보며 말했다.
“진 공자, 이제 들어가시면 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진우선이 화로가 있는 방으로 들어서자 남지홍이 문을 닫았다.
그러자 남회가 단 두 사람뿐인 공간에서 입을 열었다.
“진 공자. 아까 그 자리에서는 이야기하지 못했지만, 정말 놀라웠네. 공자의 검은 흔한 철검이라 이가 빠지고 금이 가며, 이미 수명이 다했으니까. 그러나 상서로운 기운의 힘이 쇠하는 걸 막았다네. 그 정도만이 아니라, 죽음에서 건지고 그 능력을 끌어올렸다고 볼 수 있지.”
“정말…… 수명이 다했습니까?”
“그렇다네. 물론 조금 더 쓸 순 있겠지만, 검이 본래 가진 힘은 거의 다 썼다고 봐야겠지.”
진우선이 자신의 검을 내려다보았다.
아직 멀쩡해 보이는데, 수명이 다했다는 말을 들으니 쉽게 믿기지 않았다.
“그래도 너무 속상해 말게. 아마도 공자의 검은 항상 기뻐했을 것이네.”
남회가 검의 마음을 대변하듯이 말했다.
“아마도 공자의 내력 때문이겠지. 내가 감히 생각건대, 강호에서 상서롭기로 손에 꼽힐 정도가 아닌가 싶다네.”
“아-!”
진우선은 남회의 말에 실린 묵직한 무게를 느꼈다.
그는 천하의 수많은 무인을 만나왔을 테고, 그중엔 이름난 무인도 많았을 터였다.
그들의 내력도 느껴봤을 텐데, 그중에서 손에 꼽는다고 말하고 있었다.
진우선이 잠시 얼떨떨한 모습을 보이자, 남회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상황을 편하게 풀어갔다.
“진 공자. 어쨌든 이제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하세나.”
그러고는 바닥에 놓인 넓은 나무 상자를 가리켰다.
“여기서 하나를 선택해주게. 만져봐도 된다네.”
나무상자에는 돌 조각과 쇳덩이들이 이삼십 개 정도 널려 있었다.
이것도 남회가 검을 만들 때 거치는 하나의 과정인 모양이었다.
그때였다.
여태껏 아무 말 없이 따라오던 검노야가 입을 열었다.
[우선아. 이걸 잡아 보지 않겠느냐?]
검노야가 불쑥 손을 내밀어 작은 쇳덩이 하나를 가리키며, 진우선에게 만져보길 권했다.
‘알겠습니다. 스승님.’
진우선이 그 쇳덩이를 집어 들었다.
거무튀튀한 쇳덩이는 작은 막대기처럼 생겼는데, 그 생긴 모양이 딱 먹 같았다.
진우선이 만지면서 고르기 시작하는 듯 보이자 남회가 설명했다.
“이것들은 모두 무기를 만들 때 함께 녹일 수 있는 것들이네. 여러 개를 만져보면서, 공자가 가장 편하다고 느끼는 걸 골라주게.”
돌 조각과 쇳덩이들은 남회가 무기를 만들 때 쓰는 재료였다. 돌에는 원석 알갱이가 포함되어 있었고, 쇳덩이는 남회가 만든 것이었다.
이것은 각 사람에게 잘 어울리는 재료를 택하는 과정이었다.
사람은 애초에 각자가 가진 기운이 다르고, 익힌 내력도 각기 그 성질이 달랐다.
무기의 재료도 마찬가지였다.
사람과 기운과 도구.
혹은 무인과 내력과 무기.
남회는 이 세 가지 조건에서 조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서로에게 상승효과가 나는 까닭이었다.
이른바 궁합이 맞는 무기였다.
한데 그 이치를 검노야도 꿰뚫고 있었다.
[우선아. 어떻느냐?]
‘마음이 편안하며, 딱히 거북한 것도 없습니다. 제 내공과도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잘 확인했구나. 내가 보기에도 이 중에서 그 쇳덩이가 네게 가장 어울리는 것 같다.]
검노야는 어떤 게 진우선에게 가장 좋을지 단번에 알아본 모양이었다.
그래서 진우선이 틀리지 않고 가장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이끌었다.
‘네, 그럼 이걸로 하겠습니다.’
진우선이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결정을 내렸다.
곧바로 손에 든 쇳덩이를 남회에게 내밀었다.
“어르신, 저는 이걸로 하겠습니다.”
그 순간, 남회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걸로 하겠다고?”
“네.”
“더 안 살펴보고?”
“네, 그렇습니다.”
남회가 진우선을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는 만류했다.
“진 공자, 이렇게 급히 결정하지 않아도 된다네. 물론 그게 괜찮을 수 있지만, 그래도 몇 개 더 만져 보게. 공자에게 더 맞는 게 있을지도 모르네.”
“대인의 배려에 감사드리지만, 이것이 제게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진우선이 거듭 거절했다.
검노야가 골라준 것이 가장 좋을 테니까.
“그게 마음에 들었나 보군.”
남회는 진우선의 마음에 결정이 선 것을 느꼈는지, 이제는 더 만져 보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나무상자 안의 것들을 한 쪽으로 다 밀어서 치웠다.
그리고 돌과 쇳덩이 중 딱 세 개만 선별하여, 진우선의 앞쪽으로 내밀었다.
“그러면 이 세 개만 확인해보게. 아까 공자의 검을 통해 느끼면서 잘 맞겠다고 떠올렸던 것들이라네.”
울퉁불퉁한 황갈색 돌덩이 하나와 어린아이 주먹만 한 쇳덩이 두 개였다.
남회가 진우선이 고르리라고 예상하던 재료들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진우선이 남회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권유를 더 거절하기가 어려운 까닭이었다.
그러고는 바로 앞에 놓인 것들을 한 번씩 손에 들어보았다.
처음에 든 쇳덩이는 불편하진 않으나 딱히 좋지도 않았다.
그러나 두 번째, 세 번째는 달랐다. 이어서 만져보니 미세한 수기가 느껴졌다.
마치 목검을 잡았을 때의 느낌과도 비슷했다.
이 둘은 상당히 편했다.
무언가 통하는 느낌도 있었다.
검노야가 정해준 거무튀튀한 쇳덩이보다 더 손에 붙는 듯했다.
어쩌면 수기와 목기에 어울리는 재료일 것도 같았다.
[우선아. 네 생각이 맞다. 이 두 개는 수기와 목기를 더 잘 담아내고 끌어낼 수 있지.]
검노야가 진우선의 생각에 동의했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뿐이구나. 광영무 전체를 포용하지 못하는 것들이야.]
‘아! 그렇군요!’
진우선이 바로 이해했다.
그리고 검노야가 왜 거무튀튀한 쇳덩이가 더 좋다고 했는지도 깨달았다.
수기와 목기만 쓴다면 남회의 선택이 나을 수 있지만, 계속 광영무를 펼치며 노력해 나갈 진우선에게는 검노야의 선택이 옳을 터였다.
“저는 역시 이걸로 하고 싶습니다.”
진우선이 처음에 집었던 거무튀튀한 쇳덩이를 다시 남회에게 내 밀었다.
“그런가? 알겠네. 그걸로 하지.”
남회가 고개를 끄덕이고 진우선에게서 쇳덩이를 건네받았다.
이제는 재료에 대해 더 묻지 않았다. 자신이 생각했던 걸 알리며 추천하는 건 한 번 더 묻는 것으로 충분했으니까.
“혹시 만들어질 검에 특별히 원하는 게 있는가? 크기나 모양 등에서 말이네. 물론 그동안 딱히 불편한 게 없었다면, 쓰던 검처럼 만들어도 되네.”
“그럼 이 검처럼 만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계속 써왔더니 이게 익숙합니다.”
진우선이 자신의 검을 검집 채로 들어 올려보며 말했다.
대단할 것 없는 평범한 철검이지만, 그래도 불편하지 않게 잘 써온 검이었다. 크기를 바꾸고 싶지도 않았다.
“알겠네. 그렇게 하지. 그 검이 일반적이니 어렵지 않겠군. 아! 무게는 지금보다는 조금 더 무거워질 거야.”
남회는 이미 머릿속으로 어느 정도 결과물이 그려지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는 상관없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다 되었네. 이제 내가 만들 일만 남았군. 여기는 더우니 나가 보기로 하세.”
남회와 진우선이 문을 열고 나왔다.
“어르신, 잘 부탁드립니다.”
호연강이 넉살 좋게 웃으며 남회에게 다가갔다.
“허허. 알겠네. 그러지.”
“감사합니다. 그럼 제자들이 언제쯤 다시 찾아뵈면 되겠습니까?”
“음…… 정 소저는 열흘이면 될 걸세. 그쯤이면 충분하겠어.”
남회가 정연서에게 열흘을 말했다.
하지만 진우선에게는 달랐다.
“그런데 진 공자는 그보다 더 오래 걸릴 거 같네. 오철도 더 구해야 하고. 넉넉히 한 달 정도는 필요해.”
남회가 오철을 언급하며 한 달을 말했다.
오철(烏鐵)은 잘 다루기만 하면 무기의 질을 훨씬 높일 수 있는 특별한 쇠인데, 다루는 이가 별로 없었다.
흔하지도 않거니와, 강도가 약하고 탄성이 적어 어지간한 대장장이들은 차마 엄두를 내지 못하는 까닭이었다.
중요한 건 그런 오철이 거무튀튀한 쇳덩이의 핵심이라는 사실이었다.
남회는 오철을 구하고, 또 제련해야 하기에 한 달을 말하고 있었다.
“우선아, 괜찮겠느냐?”
“네, 괜찮습니다.”
호연강이 묻자 진우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남회의 목소리가 두 사람에게 들려왔다.
“아! 진 공자는 검을 수리하고, 날을 좀 더 벼리고 가는 게 어떻겠는가? 한두 시진 정도면 된다네. 호심당 제자들은 이제 임무를 나갈 텐데, 그 전에 내가 검을 잠시 봐주겠네.”
호연강과 진우선이 남회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남회가 진우선을 보며 웃고 있었다. 눈빛으로 무언가 말하는 듯했다.
호연강이 남회에게 물었다.
“오! 어르신께서 직접 만져주시는 건 흔치 않은 일 아닙니까?”
“진 공자의 검은 평범한 철검이지 않은가. 새 검이 완성되려면 한 달은 걸릴 텐데, 이 검이라도 좀 다듬고 가면 좋을 테지.”
“당연히 그렇지요. 저는 그저 어르신께서 봐주신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호연강이 활짝 웃으며 대답하더니 진우선에게 물었다.
“우선아. 오늘 다른 계획이 있느냐? 없다면 어르신의 말씀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구나.”
“오늘은 별다른 약속이 없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진우선은 호연강에게 답을 한 후, 남회에게도 감사를 표했다.
“어르신, 정말 감사드립니다.”
대야장이 직접 검의 수명이 다했다고 했으니 언제 부서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니 수리라도 해야 했다.
진우선은 아마도 남회가 눈빛으로 말하려 했던 게 이것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르신, 그러면 저희는 먼저 가도 되겠습니까?”
“그러시게나. 엄한 사람까지 여기 있을 필요는 없지.”
호연강이 떠날 뜻을 밝히고는 진우선에게 말했다.
“우선아, 그럼 우리는 먼저 돌아가 보도록 하마. 혼자 돌아올 수 있겠지?”
“예, 걱정 안 하셔도 괜찮습니다.”
“그래, 그럼 다음에 또 보자꾸나.”
호연강이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렸다. 정연서가 그 뒤를 따랐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남지홍이 호연강과 정연서 두 사람을 남가철방 바깥으로 안내했다.
***
땅땅땅땅-!
망치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렸다.
묵직한 소리임에도 경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를 일 각(약 15분).
남회는 여전히 아무 말도 없이 망치질을 이어갔다.
조금 늦거나 조금 빨라지는 오차도 없었다.
진우선이 그런 남회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남회를 집어삼키려는 거센 불길도 보였다. 화로 밖으로 마구 일렁이는 게, 당장이라도 뛰쳐나올 것만 같았다.
‘불길이 너무 센데?’
너무 세차서, 남회가 불에 타버릴까 봐 조마조마할 정도였다. 위태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다른 화로들에서는 이러지 않았는데?’
아까 봤던 다른 대장장이들의 화로를 떠올려 봤지만, 저 거센 불길은 확실히 이례적이었다.
마치 불이 성났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화마(火魔)로 번져도 이상하지 않으리라.
그러나 남회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쉴 새 없이 검을 달구고 두드리고 수리했다.
땅땅땅땅-!
그는 일렁이는 불길 앞에서 뜨거운 열기를 모두 받아내며, 오직 검 하나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얼굴에는 구슬땀이 한가득 흐르고, 옷은 이미 흠뻑 젖어 있는데, 이것마저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대단하시다!’
어찌 저럴 수 있을까.
절로 존경심이 들었다.
이 하나만으로도 그가 대야장이라 불리는 데 이견은 없을 터였다.
진우선이 남회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때 남지홍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연강과 정연서를 배웅하고 돌아온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망치를 드시면 주변을 줄곧 잊으십니다. 그렇게 지켜보셔도 모르실 겁니다.”
“이곳 분들이 저런 불길 속에서 항상 해오셨을 거로 생각하니 존경스럽습니다.”
“대장장이로서 당연한 일이죠. 그래도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고맙습니다.”
남지홍이 남가철방의 모든 대장장이를 대신해 감사를 받았다.
“근데 모든 불길이 저런 게 아닙니다. 보통은 화로 안에서만 타오르니까요. 근데 아버지께만 불길이 저렇게 일어납니다. 미쳐 날뛰지요. 정말 이상합니다. 다들 의아하게 여길 정도로요.”
“아! 어르신께만 그렇습니까? 저 역시 조금 과하다는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네. 보신 게 맞습니다. 그런데 저 불이 아버지께만 저렇게 타오릅니다. 사실 저 불을 보고 있노라면, 불길이 아버지를 삼킬까 두렵습니다.”
남지홍이 불길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전에 한 번 여쭤보니, 괜찮다고 하시더군요. 오히려 평생을 서로 경쟁하며 살아온 친구라고 하셨습니다. 그 덕분에 남들보다 쇠를 더 강하게 두드릴 수 있다고도 하시구요.”
남지홍의 말과 음성에서 남회에 대한 걱정과 믿음이 동시에 느껴졌다.
평생을 불과 함께 살아온 남회 같은 대야장이 불길에 타 죽는 일은 흔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거센 불길을 눈으로 보고 있노라면 두렵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진 공자, 아버지께서는 아직 한 시진은 더 하실 것 같습니다. 여기보다 정원에 나가서 기다리는 게 어떻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진우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화로 곁은 애초에 손님을 위한 곳이 아니니, 정원에 있는 게 더 나으리라.
진우선이 정원으로 나왔다.
문을 나서니 아까 봤었던 나무들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그중에서도 비쩍 마르고 갈라져 생기를 잃은 채 죽어가는 나무들이 먼저 보였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남 대인께만 불길이 치솟던데…… 혹시 나무도 남 대인께만 힘을 잃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