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영검전-43화 (43/225)

043.

#남다른 실력의 소유자 (2)

진남객잔 뒤뜰에는 누각이 하나 있었다.

이 층짜리 누각이었다.

이맘때면 누각에서 멀리 늘어선 망산의 수려함을 눈에 담으며, 산자락에 흐드러진 두견화(杜鵑花, 진달래꽃)를 감상하기 좋았다.

의장현에서 가장 큰 진남객잔이 힘써 자랑하는 장소였다.

하지만 비가 오니 그게 다 소용 없었다.

또한 객잔을 통째로 빌린 방가장 역시 딱히 그런 풍류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니 누각은 어제부터 텅 비어 있었고, 빗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누각 어딘가에서 기합 소리가 터져 나왔다.

“흐압!”

“타앗!”

빗소리로 인해 멀리에서는 들리지 않지만, 분명 누각에서 소리가 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차창-.

파파팟-.

날카로운 쇳소리와 거친 발소리도 들려왔다.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누각 일 층의 널따란 장소에서 소리가 나고 있었다.

테두리에 늘어선 기다란 기둥 안쪽 공간에서 두 사람이 비무하는 소리였다.

상관적과 진우선이었다.

그들의 모습을 우문혁이 늠름하게 서서 집중하여 바라보고 있었다.

민연하 역시 날렵하게 생긴 검집을 품에 안은 채 지켜보는 중이었다.

그때.

“하아-!”

상관적이 숨을 작게 몰아쉬었다.

여태까지 쉴 새 없이 도를 펼쳐 내느라 호흡이 가빠진 탓이었다. 얼굴도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수십 초를 쏟아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상관적은 진우선에게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비무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은 힘이 있으니 더 부딪쳐 몸으로 느끼면, 무언가 더 얻어갈 수 있을 터였다.

이미 느낀 것들이 많지만,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올까.

상관적은 여기서 아쉽게 끝내고 싶지 않았다. 모든 걸 쏟아 부을 심산이었다.

상관적이 눈에 더욱 힘을 주며 진우선을 노려보았다.

비무 상대인 진우선.

그는 처음과 똑같아 보였다.

여전히 흐트러짐이 없었다. 땀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고, 호흡도 평온했다.

‘대단하다!’

이것이 실력의 차이이리라.

하지만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오늘의 비무를 통해 더 느끼고 더 성장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열 호흡을 쉬었을까.

숨이 많이 가라앉았다.

이 정도면 되었다.

상관적이 손에 쥔 도를 더욱 움켜쥐었다.

목도가 아닌 철도다.

철도의 묵직한 무게는 항상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준다. 의욕도 마구 불타오른다.

진우선의 철검은 지난번의 목검보다도 더 위협적이고 저릿저릿했지만, 그래서 더 실감이 났다.

맞상대하고 싶었다.

‘가자!’

때가 되었다.

상관적이 움직였다.

그러자 진우선도 눈을 맑게 빛냈다. 그건 기대감일 것이다.

‘그래. 허투루 할 수 없지!’

상관적이 도를 횡으로 빠르게 베었다.

쐐-!

바람이 찢어지며 굵은 비명을 질렀다.

진우선이 검을 뻗어 도를 쳐냈다.

그렇게 비무가 계속 이어졌다.

***

똑똑.

두 사람이 객잔 이 층의 문을 두드렸다.

“총관님, 두겸입니다.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 대주님과 함께 왔습니다.”

두겸은 방약빙 총관을 가까이서 모시는 방가장의 부총관이었다.

그의 옆에는 광명각 칠대의 대주 서영풍이 서 있었다.

“들어오시죠.”

방안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두겸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실내는 고풍스러웠는데, 열린 창문 밖으로 비가 내리니 운치가 있었다.

방가장의 총관 방약빙은 풍치를 즐기며 우아하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러나 방약빙의 표정이 점점 사라져갔다.

두겸의 낯빛에서 드러나는 불안함을 알아챈 까닭이었다.

힐끗 쳐다본 서영풍에게서도 날 선 기세가 느껴졌다.

무언가 벌어지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부총관님, 무슨 일이 있나요?”

“정무맹에서 알려온 소식에 따르면, 여성현 쪽으로 향하는 천마교 무리의 행적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두겸의 말을 들은 방약빙이 서영풍을 바라보며 물었다.

“서 대주님이 직접 오셨으니, 우리가 직접 신경 써야 하는 일이겠죠?”

“그렇소, 총관. 혈련수라종으로 추측되는 이삼십 명의 무리가 여성현으로 가고 있다고 하오. 대략 삼백 리 정도 떨어져 있는 셈인데, 남쪽으로 향하고 있으니 마주치게 될 확률이 매우 높소.”

“마주친다면 소관이겠군요.”

소관(韶關)은 의장현에서 광동성에 접어들 때 도착하는 곳이었다. 여성현에서 남쪽으로 향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그 길목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싶소.”

서영풍이 의견을 말했다.

이렇게 방약빙을 찾아온 이유가 그 위험 때문이었다.

“혈련수라종이면, 천마교의 힘이라 불리는 이들인가요?”

“네, 맞습니다.”

도겸이 대답했다.

혈련수라종(血蓮修羅宗)은 천마교 내에서도 강력한 힘을 숭상하는 이들이 모인 곳이었다.

그들은 패도적인 무공을 추구했는데, 무공에 대한 자신감이 넘쳐서 아예 행적을 드러내놓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했다.

“서 대주님, 그들과 싸우면 어떻겠습니까?”

“그들이 이삼십 명이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오. 광명칠대가 본인을 포함해 총 스물다섯 명이고, 방가장의 고수 분들도 계실 테니 말이오. 전체적으로는 우리에게 우세가 있을 것 같소.”

서영풍은 광명칠대만으로는 호각세이며, 방가장의 고수가 더해지면 우세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방약빙이 그 말을 곱씹었다.

그리고 침착하게 도겸에게 물었다.

“그럼 돌아가는 길은 어떤가요? 가능할까요?”

돌아가는 길이 있었다.

의장의 남동쪽인 소관으로 가지 않고, 남서쪽인 련주(連州)를 통해 가는 길이었다.

“이틀 정도 일정이 더 소요될 수 있는데, 내일 출발한다면 그게 더 안전할 것입니다. 물론 비가 더 온다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애초에 험한 산세를 돌아가는 경로여서 일정이 더 늦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 산이 있으니 비가 많이 올수록 길이 더 험해질 거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었다.

“음…….”

방약빙이 생각에 잠기며 몸을 돌렸다.

거세게 쏟아지는 빗줄기가 아까까지는 시원해 보여 좋았는데, 이제는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길을 방해할 뿐이니까.

방약빙은 속으로 비가 야속하다고 탓하며 결정을 내렸다.

“비가 그쳐서 내일이나 모레 출발할 수 있다면련주로 가지요. 출발이 더 늦어진다면 혈련수라종의 행적을 살피며 다시 고려해보는 게 좋겠어요. 서 대주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본인도 그게 좋을 것 같소. 싸워서 이길 수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 굳이 부딪칠 필요는 없으니 말이오.”

“네, 그럼 이렇게 하지요.”

방약빙이 결정을 내렸다.

사실 호위 임무는 피해가 없는 게 최고의 덕목이다.

그걸 모두가 알고 있었다.

혹시나 싸우게 되면, 크게 이기더라도 피해가 없을 수 없었다.

그러니 선택할 수 있다면 아예 싸우지 않는 게 최고였다.

“그럼 그렇게 가서 전하겠소.”

“네.”

서영풍이 말을 마치고 방을 빠져나왔다.

두겸이 서영풍을 내보낸 뒤, 방 문을 닫고 돌아왔다.

“비가 퍼붓듯이 쏟아지는군요. 하늘에 구멍이라도 났나 봅니다.”

“그러게요.”

방약빙과 두겸이 그리 말하며 창 밖을 내다보았다.

그러다가 무언가를 발견한 두겸이 입을 열었다.

“저기 누각 아래에 광명칠대의 대원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벌써 소식을 전한 것도 아닌데, 수련을 참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아까부터 보여서 봤는데, 다들 실력이 있어 보였어요. 특히 청색 경장을 입은 사내는 실력이 남다른지, 혼자서 나머지 셋을 다 상대해내더군요. 예전에 알던 광명각 대원들의 실력이 아니에요. 제가 모르는 사이 무슨 일이 있었나 봐요.”

소리는 잘 들리지 않지만, 움직임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확인하게 된 청색 경장 사내의 실력은 군계일학이었다.

“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확실히 서 대주님이 자부심을 부릴 만하군요.”

도겸이 작게 감탄하더니, 그들에게로 시선을 더 집중했다.

도겸이 자세히 보니, 전부 다 약관이 채 안 되어 보였다.

“광명칠대에 어린 대원도 있군요. 네 명 모두 약관이 채 안 되어 보입니다. 광명칠대는 다들 완숙한 줄 알았는데요.”

“그러게요.”

그때, 도겸의 머리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아! 그러고 보니 호심당에서 온 일결제자가 넷이라 들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이번에 비무에서 최고의 실력을 보였다고 했고요. 그들이 아닐까요?”

방약빙의 또래로 보이니, 그들은 분명 약관이 안 되었을 것이다.

그런 이들이 총 네 명.

특히 뛰어난 실력을 갖춘 청색 경장의 사내.

조건이 딱 맞아 들었다.

정확한 추리였다.

확신이 든 도겸이 그때 들은 이야기를 더 꺼냈다.

“출발하기 전에 제가 정 대협이나 심 대협이 없다고 아쉬워했더니, 이결제자들은 이번에 천마교와 사도련의 도발이 강해서 어쩔 수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방가장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했습니다. 넷 중 한 명이 이번에 비무에서 최고의 실력자로 뽑힌 사람이라 실력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하더군요. 아무래도 청색 경장을 입은 대원이 그 일결제자인 것 같습니다.”

정 대협은 정연서이며, 심 대협은 심소룡이었다. 그들은 작년에 나선 임무마다 뛰어난 실력을 보인 까닭에 이름이 꽤 알려져 있었다.

호심당의 지원이 있다는 이야기에 도겸이 그들의 이름을 꺼낸 것도 그래서였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방약빙이 도겸의 말을 듣더니, 누각 아래에 있는 청색 경장의 사내를 조금 더 눈여겨보았다.

확실히 그는 움직임에 여유가 있었고, 수준이 남달라 보였다.

“이름이 뭐라고 하던가요?”

“진우선이라고 들었습니다.”

“진우선…….”

방약빙이 이름을 한 번 되뇌며 청색 경장의 사내를 보았다.

***

다음 날이 되었다.

해가 반짝이는 아침이었다.

하늘은 청명하고 공기는 산뜻했다. 한밤중에 비가 그치고 상쾌함이 찾아와 있었다.

“경로가 바뀌겠군요.”

우문혁이 맑은 하늘을 보면서 말했다.

어제저녁에 양지명에게 건네 들은 내용이었다.

“그것도 그렇지만, 나는 천마교가 근처에서 모습을 보인 게 걱정되는군. 긴장해야겠어.”

상관적이 자신의 도를 갈무리하며 말했다.

천마교의 무리가 근방에 있으니, 이제 어느 순간에 마주쳐도 이상할 게 없었다.

진우선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혈련수라종이라…….’

양지명에게서 들은 이름이었다. 과연, 듣는 것만으로도 어디선가 마기가 느껴질 것만 같았다.

또한, 천마교가 정무맹과 대립 관계라는 것도 여실히 느꼈다.

정무맹이 연관된 일이라면 천마교는 사사건건 훼방을 놓고 있다는 말이 크게 와 닿고 있었다.

“그래도 움츠러들 필요까진 없습니다. 우리는 어제 진 소협에게 배운 게 많은데, 사실 진 소협은 원단 직전에 있었던 천마교의 잔악무도한 계획을 뛰어난 실력으로 막아냈습니다. 어제 다들 칭찬을 받은 게 있으니, 마교의 졸개들과는 우리도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문혁이 자부심 있게 말했다.

그는 자만하지도 않고, 위축되지도 않았다. 오직 진우선의 한 마디를 단단히 믿으며, 자신감을 보였다.

“아! 그 소문이 사실이었어?”

“네. 제가 직접 봤습니다.”

우문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아.”

상관적이 고개를 돌려 진우선을 바라보았다. 당사자가 옆에 있으니 바로 확인하려는 의도였다.

진우선이 겸연쩍은 얼굴로 말했다.

“천마교의 음험한 계략으로 형산파 고수 분들이 위기에 처하셨기에 도와드렸던 일입니다.”

“진짜였구나!”

상관적이 감탄했다.

그는 최근에 접한 소식들에서 천마교의 행보가 거칠어 꽤 두려운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진우선이 있으니 다행이었다.

그때였다. 양지명이 다가오면서 입을 열었다.

“다 모여 계셨군요. 이제 곧 출발할 예정입니다.”

“알겠습니다.”

진우선 일행이 마차 행렬 가운데 제 위치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마차 행렬이련주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 상관적이 잠시 진우선을 바라보았다.

그의 두 눈에서 신망하는 빛이 엿보이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