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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검전-55화 (55/225)

055.

#복귀 (2)

진우선은 모두가 말하던 대로, 여전히 독행관의 담벼락 아래에 있었다.

하지만 평소처럼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고 있는 건 아니었다.

바라보는 대상이 있었다.

눈동자에 새겨진 한 그루의 나무.

그 나무는 진우선이 호심당에서 애정을 쏟고 기운을 소통하며 함께했었던 존재였다.

‘무럭무럭 자랐구나!’

달포 정도 못 본 듯한데, 그 기간에 나무의 모습은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처음 봤을 때의 앙상하고 작았던 나무는 이제 없었다. 키가 커졌고, 가지들이 힘 있게 펼쳐져 있었다.

누가 봐도 생기 넘치고 튼실해 보였다. 마치 빛이 나는 듯했다.

근방의 나무 중 제일이었다.

‘기운도 안정적이고.’

나무의 기운이 주변으로 잔잔히 퍼져나갔다. 은연중에 건강한 힘이 번지고 있었다.

그 근본에 수기가 있었다.

나무로 들어오는 수기와 그 후에 뿜어져 나오는 목기의 균형이 잘 맞았다.

땅속의 뿌리도 제 역할을 잘한다는 증거였다.

이제 나무는 홀로 충분했다. 앞으로도 그럴 터였다.

진우선의 도움이 더는 필요 없으리라.

상황은 진우선도 마찬가지였다.

나무만 홀로 충분해진 게 아니다.

진우선도 목기의 형을 이루었다.

형을 이룬 목기는 나무가 가진 기운보다 더 높은 경지에 다다라 있었다.

이제 진우선은 나무 옆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떠나면 되고, 그럴 때가 되었다.

그걸 진우선도 알았다.

다만 떠나기 전에 더 눈에 담아 두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이윽고 진우선이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띤 채로 돌아섰다. 눈빛이 다소 아련해 보이기도 했다.

‘그래도 우리는 좋은 사이였어.’

진우선이 고개를 끄덕이며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 나무에서 차츰 멀어져갔다.

***

그런 진우선을 바라보는 한 존재가 있었다.

그는 최근 며칠간 진우선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시종일관 약간의 미소를 머금은 채 온화한 시선으로 바라보았으니, 애정 어린 관찰이라고 할 수 있었다.

참으로 묘한 관계였다.

진우선이 나무를 따뜻하게 바라봤었다면, 그는 진우선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참으로 유사해 보이는 관계였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었다.

그의 눈동자는 진우선보다 깊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진우선이 나무의 생장을 살펴보며 거기에 쏟은 마음보다, 그가 진우선의 성장을 바라보며 마음을 쏟은 게 훨씬 큰 까닭이었다.

진우선의 마음이 작았던 게 절대 아니었다.

다만 그의 마음이 부모의 마음과도 같아서 아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고 하는 게 옳았다.

그리고 고아인 진우선을 그렇게까지 소중히 여기는 존재는 하나 뿐이었다.

그는 검노야였다.

“스승님.”

[그래. 우선아.]

“항마에 대해서 여쭤볼 것이 있습니다.”

진우선이 진지하게 물었다.

말하는 태도로 봐서는 그간 곰곰이 생각해온 것처럼 보였다.

“스승님께서도 보셨겠지만, 오행진기의 항마는 특별했습니다. 저는 몰랐는데 많은 이들이 의문을 가질 정도였습니다.”

진우선이 보여준 항마.

서영풍을 비롯하여 임무를 함께 했던 사람들 모두가 의문을 가지면서도 그 능력에 놀라워했다.

이결제자인 제갈영은 일면식도 없건만, 소문만 듣고도 직접 물어봤지 않은가.

그리고 조금 전에 만나고 왔던 석자풍도 말한 바 있었다.

그는 마교도들이 항마의 무공에 대해 듣게 되면 위험한 상황이 올 거라고 분명히 말하고 갔다.

그래서 무공에 대해 말하기를 조심하라고 했었다.

진우선은 그 말들을 간과하지 않았다. 그래서 조심스러웠다.

물론 그들과 달랐던 이도 한 명 있었다.

만총은 예전에 진우선이 항마의 능력을 말했을 때, 그대로 믿어준 바 있었다. 물론 그건 만총이기에 그럴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진우선은 심도 있게 고민해왔다.

“그래서 여러모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검노야가 기대에 찬 얼굴로 진우선의 입에서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진우선은 이제 가르치고 배우는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였다.

무학의 이치는 깊고도 오묘해서 직접 궁구하며 나아가야만 했다.

상승무공일수록 더욱 그러해서 말로 다 전할 수 없고, 그나마도 전하기 어려웠다.

흔히들 무공의 시작은 배우고 익히는 데 있지만, 그 완성은 스스로 깨우치는 데 있다고 말하는 게 그래서였다.

“스승님. 뭇 사람들은 항마의 능력이 마공을 상대하는 데 특화된 힘 정도로 알고 있었습니다. 느껴서 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스승님께서는 천지간에 흐르는 기운을 느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수기를 받아들였을 때 그와 반대되는 마기도 느꼈었는데, 그걸 보자면 오행진기에 특별한 능력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수기는 상선약수의 성질을 가지고 있어, 마기와 상극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천지간에 흐르는 기운을 느끼는 건 오행진기의 이치였다.

즉, 진우선이 오행진기 중 수기를 근본으로 항마를 펼치니, 항마의 능력이 특별해진 것이었다.

그런 진우선의 추론은 옳았다.

검노야가 화답했다.

[잘 보았구나. 우선아.]

진우선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어렸다. 눈이 빛나고 있었다.

그때, 검노야가 질문을 던졌다.

[근데 천지간의 기운을 느낄 때 어떻게 오행진기를 먼저 익힐 수 있었는지 생각해보았느냐? 분명 그 시점이 비슷했는데, 왜 마기가 아니라 수기가 먼저였을지 말이지. 또한, 오행진기는 어디서 왔겠느냐?]

“……!”

검노야의 질문에 진우선이 눈을 부릅떴다.

분명 검노야의 가르침을 따라가 다 보면 천지간에 흐르는 기운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마기를 먼저 받아들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실제로 진우선은 수기를 깨우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기를 느꼈지만, 반대의 경우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었다.

그 의문을 검노야가 진우선에게 던진 것이다.

잠시 진우선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답을 찾아냈는지 눈을 반짝였다.

“광영무가 있었습니다! 광영무가 오행진기를 이끌었습니다.”

[그렇지.]

검노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광영무는 오행진기를 이끈다.

그 이치가 서로 맞물려 있으며, 함께한다면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관계였다.

진우선이 그것을 깨우쳤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 그래서 스승님께서 광영무를 가르쳐 주셨을 때, 동공이라고 하셨었군요! 광영무를 수련하다 보면 오행진기가 저절로 따라올 테니까요.”

[맞다.]

검노야가 흐뭇하게 웃었다.

진우선도 만족스러운지 환하게 웃었다.

그러다 바로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벽사도 그렇습니까? 어쩌면 항마와 비슷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허허. 의욕이 좋구나.]

검노야가 진우선의 마음을 이해했다.

그러나 서두르지 않았다.

[직접 경험하며 차차 알아갈 수 있을 것이니라. 우선이 너라면 충분히 깨우칠 수 있을 테고.]

“네, 알겠습니다.”

***

이튿날.

진우선은 독행관이 아니라 춘추관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이제 나무 옆에서 수련할 필요가 없는 데다가, 의문이 생겨서 춘추관의 책을 통해 살펴볼 참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

찌르르- 울리는 기운이 뒷골을 찔러왔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섬뜩함에 잘게 몸서리쳤다.

그와 동시에 벽사의 힘이 확 치솟았다. 부지불식간에 목기가 성을 내듯이 폭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그게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였다.

‘사기(邪氣)다!’

처음 접한다 한들 어찌 그 정체를 모를 수 있을까.

진우선이 즉각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상대와 눈이 마주쳤다.

학사풍의 사내가 불안한 기색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안색도 좋지 않고, 다소 지쳐 보이기도 했다.

‘저 사람일까요?’

[맞다. 사기가 저자에게서 느껴지는구나.]

검노야가 침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기를 느꼈을 때만큼이나 진지한 태도였다.

진우선이 학사풍의 사내를 잠시 바라보았다.

찰나의 순간, 그와 시선이 엉켰다.

둘 사이의 거리는 대략 십 장(丈, 약 30m) 정도였으나, 지금은 그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귀티 흐르고 또렷한 이목구비마저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내기가 상당히 불안정해 보입니다.’

진우선은 오직 학사풍 사내의 기운 자체만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정기신(精氣神)이 불화하여 따로 노는 듯했다.

심상치 않은 상태였다.

그때, 갑자기 그가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정자를 내려와 다가오기 시작했다.

“소협.”

그의 나직한 음성이 또렷하게 들려왔다.

그러더니 서둘러 몇 걸음 옮기다가 다리를 휘청거리며 털썩 넘어졌다.

“소협. 미안하오.”

학사풍의 사내가 힘겹게 일어서며 말했다.

진우선이 그 모습을 보며 사내에게로 얼른 다가갔다.

“무리하지 마십시오. 제가 가겠습니다.”

“그래주면 고맙소.”

그가 엷게 미소 지었다.

잠시 후.

진우선과 학사풍의 사내가 정자에서 마주 보고 앉았다.

정무맹 내에 꾸며진 연못이 내려다보이는 장소였다.

“소협. 먼저 미안하다는 말씀을 드리오. 나는 천룡상단의 외당주 적문강이라 하며, 상행 중에 사도련의 고수에게 공격받아 사기가 내력에 침투했소. 어렵사리 정무맹에 와서 그걸 다스리기 시작했는데, 방금처럼 발작이 일어날 줄은 몰랐소. 정말 미안하오.”

학사풍 사내 적문강이 진심을 다해 사과했다.

부리부리한 눈으로 그리 말하니, 그의 진심이 곱절로 느껴지는 듯했다.

“그러셨군요. 괜찮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는 천룡상단이라면 화북지방의 대상단뿐인데, 맞습니까?”

“알고 계셨구려. 그렇소!”

천룡상단은 천하십대상단에 손꼽히는 거대상단으로, 화북지방이 근거지였다.

이곳 장사에서는 삼천 리 길이 넘는 지역이었다. 이동하는 데만 족히 한 달은 걸릴 터였다.

천룡상단 소속이라면 적문강의 귀태 나는 모습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하지만 의문도 들었다.

“천룡상단이면 천하에서 손꼽히는 곳인데, 그리 유명한 곳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그런데 꽤 멀리서 오셨군요.”

“내가 당한 사공(邪功)이 워낙 사특한지라, 정무맹이 가장 먼저 생각났소. 사도련과 맞서 싸우는 곳이 정무맹이기도 하고 말이오. 거기에 정종 무공의 고수들이 즐비하고 활인성자(活人聖子)께서도 계시니, 연이 닿아 있는 게 감사할 따름이었소.”

“그렇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침투된 사기의 발작임에도 지나가던 제가 깜짝 놀랐을 정도이니, 확실히 정심하고 웅혼한 내력의 고수를 찾아오신 게 이해됩니다.”

“이해해줘서 고맙소. 그리고 사실 나는 소협의 수련이 깊음에 탄복했다오. 그간 몇 차례 발작했는데, 소협처럼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가 없었소.”

“맹의 고수 분들은 이미 알고 계셨겠지요. 저는 아직 호심당 일결제자일 뿐이고, 임무를 다녀온 지 얼마 안 된 까닭에 모르고 있었습니다.”

“하하하. 겸손하시구려. 과연 정무맹의 협객이시오.”

적문강이 진우선을 추켜세웠다.

낯빛이 창백하여 아파 보였으나, 그의 화술에는 막힘이 없었다.

“아무튼, 장차 정무맹을 이끌어 나갈 주역을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오. 소협의 이름은 어떻게 되시오?”

“아! 저는 호심당 일결제자인 진우선이라고 합니다.”

“진 소협이시군. 고맙소. 덕분에 며칠 만에 이렇게 사람다운 대화를 하고 있는지 모르오. 헤아려보니 바깥바람을 쐬고 사람을 만나는 게 꼬박 나흘만이오.”

적문강이 환하게 미소 지었다. 정말 신이 나는지 핏기 없는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눈동자에도 생기가 어렸다.

“그동안 답답하셨군요. 다행입니다.”

진우선이 적문강의 눈을 보며 가볍게 대꾸했다.

바로 그때.

적문강의 눈에 사특한 빛이 어리는 순간!

파앙-!

‘……!’

사기가 폭발했다.

흉악한 기운이 거세게 쏟아져 나왔다.

그게 마주 앉아 있는 진우선에게로 덮쳐왔다.

압도적인 힘이 전신을 짓눌렀다.

대비할 수 없고, 막을 수도 없었다.

쩌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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