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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검전-57화 (57/225)

057.

#검을 얻다.

“아마도 알고 계시겠지만, 나무들의 기운이 쇠하였습니다.”

“그랬군. 역시나 그랬어.”

진우선의 말에 남회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도 대충은 예상했었다.

진우선이 지난번에 다녀가며 남회에게 타고난 쇠의 기운이 있어서 나무와 상극이라고 말해주었으니까.

그 영향이 다시 강해져서 이리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조금은 알겠군. 진 공자가 다녀간 뒤로 시간이 한 달 반 정도 흘렀으니, 그러면 대략 한 달 정도는 괜찮았던 거 같아. 이 아이들 말이야.”

남회가 나무들을 안쓰럽게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진 공자. 철방에 온 김에 나무들을 좀 살펴봐 줄 수 있겠는가?”

“네, 알겠습니다.”

“고맙네. 덕분에 다들 생기를 찾겠어!”

남회가 진우선의 대답을 듣더니 환하게 웃었다.

나무들을 ‘아이들’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아끼는 그에게, 진우선은 아픈 아이들을 치료해줄 의원이나 마찬가지인 까닭이었다.

그때, 시커먼 나무문이 열리고 남지홍이 나왔다.

그는 길쭉한 목함 두 개를 양손으로 떠받치며 가져오고 있었다.

척 봐도 검을 넣어둔 통이었다.

남지홍이 목함을 원탁 위에 올렸다.

남회가 하나씩 진우선과 정연서 앞으로 밀었다.

목함의 겉에 각기 진(秦)과 정(靖) 자가 새겨져 있었다. 성씨로 구분한 모양이었다.

“진 공자와 정 소저가 직접 열어 보게. 두 사람 다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군.”

“네. 알겠습니다. 대인.”

“그럼 바로 열어보겠습니다.”

정연서가 대답과 동시에 자신에게로 주어진 목함을 열었다.

진우선도 곧장 목함을 열었다.

검이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은회색 검신(劍身) 전체에 검푸른 색의 광택이 기품 있게 흐르고 있었다.

검에 문양이나 장식은 없었다.

그래서 검신이 확 돋보였다.

굵직한 선 하나가 올곧게 서 있는 강한 아름다움을 풍겼다.

그게 매우 우아하면서도 더할 나위 없이 고결해 보였다.

“아-!”

진우선이 황홀한 눈빛을 보이며 숨을 흘렸다.

검의 고매한 멋이 심령을 흔든 까닭이었다.

검과 나란히 놓여 있었던 검집 역시 특별한 장식 같은 게 없는데도 비범해 보였다.

진우선이 그렇게 검에 빠져 있을 때.

“……!”

정연서는 다소 경직된 표정으로 검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검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눈 한 번도 깜빡하지 않았다.

검이 가진 수수한 화려함에 매료되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미동조차 못 하고 있었다.

쾌검을 펼치기에 알맞도록 검신의 폭이 다소 얇은데도, 가느다란 검신이 곧게 뻗어 가냘파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매끄러운 맵시에 반할 수밖에.

그런 두 사람을 보는 남회의 입가에 미소가 머금어졌다.

“두 사람 다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 다행이군. 한 번 휘둘러도 보게. 어쨌든 검이라면 사용하기 좋아야 하지 않겠나?”

남회의 말에 진우선이 즉시 검에 손을 뻗었다.

“네. 그럼…….”

칼자루가 손아귀에 딱 맞았다. 감촉이나 온도 등 미처 생각지 않았던 것들도 딱 좋았다.

내공의 흐름은 부드럽고 막힘이 없었다.

형을 이룬 수기와 목기는 그 모습과 움직임이 자유로웠는데, 그 기운들이 술술 흘러가거나 거칠게 내달리고 한꺼번에 몰아쳐도 끄떡없었다.

형을 이루지 못한 금기, 화기도 반발이 없으며, 나가고 들어옴이 수월했다.

이제 막 싹을 틔운 토기도 전혀 제약 없이 뛰어놀 수 있었다.

오행진기는 각각의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지닌 성질이 몹시 다른데, 그런 것들을 한 자루 검이 흐트러짐 없이 고스란히 다 받아 내고 있었다.

강하고 단단하면서 변함없을 듬직함으로 광영무의 기운들을 잘 살려주고 있었다.

“와-!”

들뜬 감정이 저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얼굴에는 어린아이의 해맑은 미소가 가득 어렸다.

이번에는 허공으로 검을 들어 올렸다.

휙- 가볍게 휘두르자, 바람을 얇게 가르는 소리가 났다.

검은 이전보다 더 무거워졌는데, 신기하게도 움직임은 더 가벼우면서 날카로웠다.

검을 쓰는 게 편안했다.

“정말…… 좋군요.”

진우선이 감탄성을 흘렸다.

이와 동시에 검노야의 안목에도 경탄을 금치 못했다.

그의 선택이 탁월했다는 걸 지금 몸소 느끼고 있었다.

검노야의 뜻을 따르지 않았다면, 오행진기의 모든 기운과 이만큼 조화가 되지 않았을 터였다.

‘스승님. 감사합니다.’

[좋으냐? 나도 좋구나.]

두 사제가 서로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남회가 그런 진우선을 보았다.

그의 눈에는 검노야와 진우선이 함께 행복해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오직 진우선 혼자서 검을 바라보며 감탄하고 흐뭇해하고 행복해하고 있었다.

홀린 듯한 눈빛이며, 황홀한 듯한 얼굴이었다. 검에 홀딱 빠진 모습이었다.

“진 공자. 그렇게나 좋은가?”

남회가 씨익 웃으며 물었다.

남지홍도, 석자풍도 덩달아 미소 지었다.

그들에게 진우선의 모습은 영락 없이 검과 사랑에 빠진 한 청년의 모습으로 비쳐 보였다.

“네. 좋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진우선이 단박에 대답했다.

‘좋다’는 말을 계속 내뱉고 있었다. 눈빛으로도, 행동으로도 그 말을 드러내고 있었다.

정말 좋은 모양이었다.

“허허허. 진 공자, 자네가 그렇게 기뻐하니 힘써 만든 보람이 있구만. 뿌듯하군.”

진우선의 대답이 남회를 기쁘게 했다.

대장장이로 일가를 이룬 장인 남회에게 검은 하나의 작품이었다. 그 작품이 쓸 사람에게 전해졌고 듬뿍 사랑받고 있었다.

여태껏 대야장으로 살아오며 숱하게 겪은 순간이지만, 여전히 심장이 벅차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진 공자. 자네는…… 뭔가 달라졌어. 전과 다른 느낌이 들어.”

남회가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열었다.

진우선도 덩달아 고개를 갸웃했다.

“제가 달라졌습니까?”

“아! 자네가 이상하다는 뜻은 전혀 아닐세. 내가 나무를 좋아해서 그런가…… 자네가 나무를 닮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었네. 기운이 넘쳐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그런 나무 말이야. 근데 지금은 마치…… 숲을 마주하는 것 같군. 한 그루 나무가 아니라 숲을 이뤄가는 느낌이야. 신기하게도.”

나무가 아닌 숲!

그런 남회의 말에 진우선은 말문이 막혔다.

“…….”

그에 남회가 허허롭게 웃으며 말을 물렸다.

“허허허. 말해놓고 보니 정말 이상하군. 내가 그래도 사람은 잘 본다고 생각했건만, 이건 말이 안 되는 거 같구먼. 진 공자, 많이 당황한 것 같은데 미안하네. 내가 한 말은 잊게나. 괘념치 말고.”

“아, 알겠습니다.”

진우선이 작게 말했다.

남회가 말을 돌렸다.

“정 소저, 마음에 드는가?”

“네, 저도 너무 좋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남회가 화제를 정연서에게로 돌렸다.

“느낌이 어떤가?”

“검이 가볍지만 묵직함이 있고, 여려 보이지만 강합니다. 그래서 섬전처럼 검을 뿌릴 수 있으면서도, 초와 식이 쌓여갈수록 위력이 더해질 것 같아요. 휘두를수록 더 손에서 놓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제가 봐왔던 검 중 최고입니다.”

정연서가 감탄을 마구 터트렸다.

어찌나 기분이 좋은지 지금 그녀의 얼굴이 활짝 피어 있었다.

그 뜨거운 감정은 비단 표정에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도 나타났다.

남회가 말을 걸기 전까지 쉴 새 없이 검을 휘두르며 허공에 수많은 잔상을 새겨 넣었으니까.

“허허허. 과찬이지만, 장인으로서는 참으로 뿌듯한 말이군. 고맙네. 소저라면 왠지 그 검을 마음에 들어 할 것 같았네. 소저가 지난번에 보여준 검이 무수히 다듬어지면, 이렇게 될 거 같았거든.”

“아-!”

정연서가 너무도 놀라서 탄성을 토해냈다.

남회는 과연 대야장이었다.

일전에 사용하던 검을 유심히 보고 모양을 생각했고, 그녀가 고른 원석과 쇳덩이를 무수히 단련하여 밀도 있게 만들어냈다.

남회가 아니면 결코 해내지 못했을 방식이었다. 정연서가 상기된 표정으로 검을 보았다.

순백에 가까운, 맑은 빛을 뿌리는 검.

그 검이 그녀의 눈으로 빨려들 것만 같았다.

“이제 와 보니 검이 소저를 닮았군. 잘 다뤄주게나.”

“네! 그럴게요. 감사합니다.”

남회가 정연서의 열정 어린 대답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진우선과 정연서가 검을 받아 신이 난 사이, 남회는 흐뭇한 표정으로 천천히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때, 어느새 검을 소중히 갈무리한 진우선이 남회에게 다가오며 말문을 열었다.

“어르신.”

“음?”

남회가 슬쩍 고개를 돌려 진우선을 바라보았다.

“지난번에 여기서 머무르며 수련에 진척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나무를 살펴보면서 잠시 머물 수 있기를 부탁드립니다.”

진우선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여쭈었다.

남가철방은 금기와 화기를 얻은 곳이며, 그것들을 수련하기에 더 좋은 곳이 없었다.

그래서 검을 받을 때 꼭 물어보겠다고 생각했었다.

“오! 나야 당연히 괜찮지. 지난번에도 말했던 것처럼 나는 오히려 진 공자를 환영하네. 그렇게 하게.”

“감사합니다.”

남회가 흔쾌히 수락했다.

이전에 나무를 같이 가꾸자며 부담 없이 찾아오라고 하지 않았던가.

아마 그 말이 있었기에 진우선이 남회에게 부탁하기를 어려워하지 않았으리라.

“그런데 호심당의 제자가 여기에서 머물기 위해 자리를 비워도 되는가?”

남회가 의문을 던졌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석자풍이 입을 열었다.

“호심당은 제자들이 열심히 수련하려 한다면 언제나 지지하지요. 어쨌든 이런 경우는 특별한 사유라 정식으로 보고만 하면 됩니다.”

석자풍이 남회에게 대답하더니, 진우선을 보며 말을 이었다.

“내가 직접 들었으니 오늘부터 남가철방에서 수련해도 좋네.”

그리고 남회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대인, 감사드립니다.”

“석 부당주도 들었다시피 나는 진 공자가 나무를 돌봐주면 고마울 따름이네. 진 공자가 그 방면에서 상당하더군. 따지고 보면 내가 먼저 청했었고 말이야.”

그렇게 진우선이 남가철방에서 머무르는 게 결정되었다.

***

남가철방의 문 앞.

남회가 석자풍과 정연서를 배웅하고 있었다.

올 때는 셋이었는데, 갈 때는 둘뿐이었다.

“오늘 반가웠네. 여기 정 소저도 그렇고, 진 공자도 그렇고, 둘 다 대단하더군. 두 사람을 보면서 호심당의 현재가 밝고, 맹의 미래에 빛이 비치는 것 같아서 참 좋았네.”

“말씀 감사합니다.”

그때, 정연서가 남회에게 물었다.

“대인께 궁금한 게 있습니다. 진 공자가 정말로 숲처럼 느껴지셨나요?”

남회가 그 물음에 담긴 속뜻을 알아챘다.

“소저도 느꼈었나 보군.”

“…….”

정연서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직접 말하지 않아도 그녀의 뜻은 전달되었다.

“진 공자에게서 숲 내음이 났네. 전에는 나무의 향기를 옅게 품고 있었는데 말일세.”

“……!”

정연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는 진우선에게서 나무의 향기를 느꼈는데, 남회는 숲을 마주했었다.

나무와 숲은 차이가 컸다.

“그러고 보면 물 같은 편안함도 그에게서 느껴졌지. 그것도 이슬처럼 촉촉한 정도가 아니라, 호수처럼 넓은 평온함이었고.”

끄덕.

이번에는 정연서도 동의했다.

그녀도 순수한 다른 기운들을 느꼈으니까.

“게다가…….”

남회가 더 말하려다가 말끝을 흐렸다.

정연서의 눈빛을 보니 이번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알고 있는 듯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석자풍이 의문을 표했다.

“혹시 또 무언가가 있습니까?”

짧은 말이었지만, 그 어감은 명확했다. 그는 진우선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재밌군.’

남회가 속으로 미소 지었다.

석자풍 부당주보다 정연서가 진우선을 더 잘 보고 있지 않은가.

무공 실력이나 강호에서의 경험, 연륜 등은 석자풍이 앞설 텐데, 실상 진우선에 대해서는 정연서가 더욱 자세히 알고 있었다.

“글쎄…… 잘 모르겠군.”

남회가 여유로운 미소를 짓더니, 정연서를 바라보았다.

석자풍은 다소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정연서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그렇게 쏠렸을 때, 정연서가 말 한마디로 상황을 끝맺었다.

“대인,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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