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영검전-59화 (59/225)

059.

#소중한 것 (2)

도검을 비롯한 병장기는 항상 관리가 필요하다. 전투를 치르며 날이 상하고 이가 빠지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혹시나 상태가 심각하다면 지체하지 않고 수리해야 한다.

적과 싸우며 맞닥뜨리는 생사의 중요한 순간에서, 도검이 부실해 사의 길로 접어든다면 이보다 더 슬픈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무인들은 시간이 날 때면 수시로 자신의 무기를 관리하고, 더 잘 관리하기 위해 노력한다.

더 좋은 무기로 바꿀 때도 많았다.

그러다 보면 결국에는 철방을 자주 찾게 되는 게 순리였다.

관리를 하든, 수리를 하든, 새로 사든, 철방에 들러야 했다.

그렇기에 남가철방은 단 하루도 손님이 마를 날이 없었고, 정무맹의 무인들이 전투에서 복귀한 날에는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남 총관님. 오랜만입니다.”

“오! 홍 대협!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구유마라종과 싸워 이기셨다면서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아, 총관님! 그렇게 먼저 말씀하시면, 제가 자랑할 게 없지 않습니까?”

“하핫! 그렇습니까? 하지만 이미 오전에 승전보를 전해 들어서요. 아시다시피 이런 자랑스러운 소식은 바로바로 퍼지지 않습니까?”

남가철방의 총관 남지홍이 슬쩍 웃음을 지으며 편하게 대꾸했다.

그와 대화하는 홍철상은 이미 수 년간 알고 지내온 인물이었다.

“뭐, 괜찮습니다. 어쨌든 총관님이 항상 저희를 생각하고 기억해 주시는 것 아닙니까? 좋기만 하네요.”

“맞습니다. 홍 대협 같은 진양각 고수 분들의 소식이 들려오면 저는 언제든 귀를 쫑긋하지요. 그리고 축하드립니다. 이번에 정말 고생 많으셨다고 들었습니다.”

“하하! 말도 아니었지요. 이번에 구유마라종의 마교도들이 정말이지…….”

전장에서 지금 막 복귀한 듯한 거친 외모의 사내 홍철상이 수다스럽게 말하기 시작했다.

피곤이 온몸에서 묻어나왔지만, 승리하고 돌아온 그의 얼굴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목덜미와 팔뚝의 심상치 않은 자상도 이 순간에는 승리자의 명예로운 흔적으로 보였다.

그런 홍철상을 필두로, 진양각의 고수 십 수 명이 철방 안을 마구 휘저었다.

“총관님. 이거 얼마죠?”

“나는 수리부터 할 생각이야.”

“이 칼 멋진데?”

“너한테 딱인데?”

다들 제각기 가지고 있던 목적들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남가철방은 철에 관한 한 모든 걸 할 수 있기에, 점검, 수리, 구경, 구매, 제작 의뢰 등 일행의 요구는 실로 다양했다.

남지홍이 웃으며 그들 한 명 한 명을 응대했다.

무더운 여름날, 철방이라 더 뜨거운 상황에서도 그의 얼굴에는 한순간도 예외 없이 미소가 머금어져 있었다.

그리고 일행들이 급박하게 쏟아 낸 요구들이 해소되어 갈 때, 과묵해 보이는 무인 하나가 천천히 남지홍에게로 다가왔다.

“총관님.”

“아! 오셨습니까? 소 대협.”

남지홍이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의 이름은 소무강으로, 홍철상과 함께 무리에서 손꼽히는 고수였다.

남지홍은 소무강과 인사를 하자마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단도직입적인 그의 성격을 아는 까닭에 장황한 말은 필요 없었다.

“소 대협, 지난번에 귀품을 맡기시면서 가능할지 물어보셨었지요? 다행스럽게도 며칠 전에 다 완성되었습니다.”

“될지 안 될지가 아니라…… 다 완성되었다는 말씀입니까?”

과연 남지홍의 말을 듣자마자 무표정하던 소무강이 화들짝 놀라며 눈을 치켜떴다.

딱딱해 보이는 표정은 온데간데 없었다. 질문에 대한 대답을 넘어서서 이미 완성까지 해놓은 것에 경악한 듯했다.

“네, 그렇습니다. 아버지께서 귀품을 보시고는 손수 해주셨습니다.”

“정말…… 대인께서 직접 해주셨습니까? 아! 감사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그러니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잠시 후 안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소무강이 평소와는 다르게 다소 들뜬 목소리로 흔쾌히 대답했다.

남지홍은 빠르게 진양각 무인들의 업무를 처리해나갔다.

그때 용건을 먼저 마친 무인 하나가 소무강에게 말을 걸었다.

“부대주. 설마 그게 완성된 거요?”

“그런가 보다.”

“오! 축하할 일이오. 역시! 남 대인과 남가철방이 괜히 명성이 높은 게 아니었어.”

“어라? 그럼 부대주는 더 강해지는 거잖아. 대주가 이제 한 끗발 밀리겠는데?”

둘의 대화에 무인 하나가 더 끼어들었다. 그는 자연스레 대주마저 대화로 불러들였다.

“야! 밀리기는 누가 밀린다고 그래? 나도 지금 이거 산 거 안 보이냐?”

홍철상이 눈을 부라리며 대꾸했다.

사실 남지홍과 너스레를 떨었던 홍철상이 남가철방에 들어온 진양각 무인들의 대주였다.

“크크크.”

“큭!”

하지만 대주인 홍철상이 거칠게 대답해도, 무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킥킥거렸다.

서로를 허물없이 대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간 내가 반 수 밀렸지만, 이번엔 다를 거야. 이 칼날은…… 예사롭지가 않아!”

홍유상이 새로 산 커다란 언월도를 들고서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바짝 날 선 칼날에서 뿜어지는 서슬 퍼런 기운이 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

“대주. 지난번에도 그리 말하지 않았소?”

“맞아, 그랬어! 근데 저번에 깨졌잖아!”

“시끄러워! 그때는 급해서 어쩔 수 없었어. 니들도 다 봤잖아!”

그러나 무인들이 웃으면서 홍유상과 티격태격했다. 장난기 섞인 대화였다.

“대주 나이도 생각 좀 하쇼. 그게 가당키나 하겠소?”

“이놈들이 한마디를 안 져주네. 어휴!”

결국 홍유상이 한숨을 내쉬더니 백기를 들었다.

“그래! 내가 밑이다, 밑! 됐냐?”

“크하하하!”

“푸합!”

“대주님이 이제야 인정하시는구만. 거, 사내답게 인정하니 보기 좋소.”

다들 홍유상과 함께 한바탕 웃어 버렸다.

그때, 홍유상이 심통을 부렸다.

“우리는 부대주가 강해질수록 더 좋지. 부대주, 이제 주변을 도와줄 때 나한테부터 와 주게. 나도 자네의 도움이 필요해. 이런 의리 없는 놈들보다는 내가 더 주요하고!”

“헙!”

“어?”

예상치 못했던 홍유상의 말에 무인들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홍유상이 거기에 쐐기를 박았다.

“그리고 네놈들 대주는 나다! 다들 오늘 밤 각오해! 한 동이씩 못 마시는 놈들을 집에 못 들어갈 줄 알아!”

“아이고, 대주님! 단단히 뿔나셨네.”

“대주님~ 살려주십시오~!”

“키키킥!”

몇몇이 넉살을 피웠고, 나머지는 웃었다.

그렇게 일행들의 대화가 한바탕 장내를 휩쓸었을 때, 홍유상이 소무강에게 물었다.

“무강, 오늘도 함께 안 갈 거지? 아! 오늘은 못 가는 건가?”

“그렇습니다.”

“그래. 그럼 우리는 이만 간다. 사흘 후에 보자. 그간 푹 쉬고.”

“네. 대주님도 푹 쉬십시오.”

소무강의 대답을 끝으로 대화가 끝났고, 홍유상이 무리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한순간에 남가철방이 조용해졌다.

남지홍이 다시 여유를 찾으며, 소무강에게 말했다.

“소 대협,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따라오시지요.”

“네.”

남지홍이 소무강을 남회에게로 안내했다.

소무강이 남지홍을 뒤따르며 눈을 빛냈다. 눈빛에 기대감이 잔뜩 어려 있었다.

‘만년한철을…… 드디어!’

***

대야장 남회.

그는 어렸을 적부터 쇠를 다스리는 데 탁월한 감각과 능력을 보였다.

그래서 쇳덩이와 한평생을 함께 했으니, 쇳덩이는 언제나 친구였다.

남회는 그 친구에게 다양한 모습이 있는 걸 알았다. 그리고 언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도 친구가 되어주었다.

친구는 여러 종류가 있었다.

친화력이 좋은 친구가 있고, 융화되지 않는 친구가 있었다.

힘든 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친구가 있고, 아무리 힘들어도 강직하게 버텨내는 친구가 있었다.

언제든 찾아오는 친구가 있고, 거의 마주치지 못하는 친구가 있었다.

남회는 이런 친구들을 본능적으로 알아채고, 다룰 수 있었다.

친구들은 남회와 함께 어울리며 내면에 잠들어 있던 본모습을 드러내기도 하고, 새로운 모습을 가지기도 했다.

그런데 정말 오랜만에 귀한 친구를 만났다.

이 친구는 대단한 친구였다.

긴긴 삶을 살아오며 오래 참고 참아왔고, 그래서 아무리 힘든 순간이 와도 지치거나 무너지지 않았다.

겉으로도 힘든 내색조차 거의 하지 않았다.

오히려 화가 나는 상황일수록 자신을 차갑게 할 줄 알았다. 시릴 정도로 차가웠다.

항상 강인하고 냉정한 모습이 거기서 비롯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다른 모든 친구 가운데서 가장 굳셌다.

돌이켜보니, 이 친구를 본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조부님과 함께 대장간에 드나들던 매우 어렸을 적이었다.

이 친구 덕분에 남회는 옛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고, 감회에 젖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불러보지 않아 입에는 여전히 어색한 그 이름도 떠올릴 수 있었다.

“만년한철이더군. 맞지?”

“맞습니다, 대인.”

소무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남가철방에 부탁했던 귀품은 만년한철 한 덩이였다.

“역시! 맞았군!”

남회가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잡아보게.”

“네.”

소무강이 즉시 손을 뻗었다.

남회의 대장간에 들어선 순간부터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던 그 검을 쥐었다.

찌릿!

손바닥이 마구 따끔거렸다.

너무 차가워서 따가웠다. 뼛속까지 시릴 정도로 차가운 한기였다.

손바닥이 저리고, 손에서부터 피가 굳는 느낌마저 들었다.

한기는 단박에 손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솟구쳐 올랐다.

그런데도 소무강은 씨익- 웃었다.

원하던 대로 된 까닭이었다.

만년의 한기를 품은 만년한철(萬年寒鐵)이 위용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좋다!’

소무강이 기쁨에 젖어 내력을 일으켰다.

우웅-!

그 순간 검이 부르르 떨며 주변을 진동시켰다.

동시에 뜨거운 열기로 가득한 대장간에 북풍한설 같은 차가운 기운이 휘몰아쳤다.

검의 한기가 소무강의 내력과 공명하면서 생긴 현상이었다.

소무강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냉정해 보이는 인상에 웃음이 어색했지만, 표정이 너무도 환해 보였다.

목소리도 들떠 있었다.

“정말…… 좋습니다.”

“마음에 드는 모양이군.”

남회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이었다.

“근데 자네가 준 만년한철로는 검 한 자루를 다 만들 수 없었네. 그래서 본연의 힘을 잘 살려줄 아이들을 섞었다네. 검을 만들어달라고 했을 때 그 정도는 염두에 두었을 거로 생각했거든.”

“대인의 말씀이 맞습니다. 제가 드린 양으로는 한 자루를 온전히 만들 수 없지요. 오히려 부족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만들어주셔서, 저는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소무강이 남회의 말에 수긍했다.

사실 만년한철의 양이 부족할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더 구할 수가 없었다.

만년한철은 그 존재 자체가 너무도 희귀하여 얻기가 하늘의 별 따기와 같았다.

애초에 소무강이 만년한철을 가졌던 것 자체가 그에게 천운이 닿았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어쨌든 그런 상황에서 만들어진 검은 너무도 만족스러웠다.

“대인이 아니셨으면 이 정도도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나야말로 고맙네. 만년한철을 만져본 게 참으로 오랜만이었어.”

“아! 역시!”

소무강이 감탄을 흘렸다.

만년한철을 만져본 경험이 있다는 말 아닌가. 역시 천하에 명성을 떨치는 남가철방의 대야장 남회다웠다.

“그리 놀랄 필요는 없네. 아무리 나라고 해도 이런 귀한 것은 거의 만져본 적이 없으니까. 그래도 어렸을 적에 조부님께 한 번 보고 배웠기에 다행이지.”

남회가 가벼운 미소와 함께 대답하며, 소무강의 추측을 흘려 넘겼다.

“그런데 자네, 철방에 몇 번 머무른 적이 있지 않나?”

“맞습니다. 임무를 마치고 와서 검을 수리하며 며칠 머무른 적이 있습니다.”

“낯익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래서였군.”

“대인과 직접 대화할 기회는 없었지만, 먼발치에서는 몇 번 뵌 적이 있습니다.”

“어쩐지……. 나와 이야기했었다면 내가 모를 리 없지.”

남회는 소무강에게서 원인 모를 익숙함을 느꼈는데, 이제야 그 이유를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그러다 피식 웃어버렸다.

“허허허. 그럼 아이들이 자네의 검을 만졌겠군. 꽤 애를 먹었겠어. 자네가 하루 이틀 머무르게 된 것도 그래서일 테고.”

남회가 앞뒤를 모두 추리해냈다.

소무강이 만년한철로 검을 만들었고, 검과 공명할 내력을 지녔으니, 그의 내력은 음한기공(陰寒氣功)에 뿌리를 두고 있을 터였다.

그런 음한기공으로 사용한 검이니, 수리도 까다로웠으리라.

소무강이 그 질문에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다들 잘 해주셨습니다.”

“그래. 공부가 되었을 거야.”

남회가 여유롭게 대꾸했다.

“그럼 오늘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원래는 오늘도 신세를 질 생각이었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게.”

남회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물었다.

“근데 여태까지 자네에 대해서는 안 물어봤군. 자네는 이름이 뭔가?”

“저는 소무강입니다. 진양각의 십양에 속해 있습니다.”

“십양이었나? 허허. 십양의 부대주가 귀신처럼 섬뜩하게 검을 부린다던데, 자네가 바로 그 귀검이었나 보군.”

십양의 귀검(鬼劍)은 따로 진양각의 검이라고도 불렸다.

진양각이 승전보를 전해올 때마다 가장 먼저 언급되기 때문이었다.

독보적인 실력을 갖춘 검의 고수였다. 남회가 익히 소문을 들었을 만한 인물이었다.

그 말에 소무강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슬쩍 웃었다.

“과찬이십니다.”

“그랬군. 영광이네.”

“저야말로 대인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남회가 반가워하며 두 번째 질문을 던졌다.

“그럼 자네는 검의 이름을 뭐로 지을 생각인가?”

“상담(嘗膽)이라 할 생각입니다.”

“흔치 않은 이름이군.”

끄덕.

소무강이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만 움직이며 대답했다.

남회는 그런 소무강의 모습에서 결심이 단단하고 의지가 확고한 걸 느꼈다. 그래서 가타부타 없이 용건을 말했다.

“그럼 내일 다시 오게. 그 이름을 검에 새겨주겠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남회의 말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중에 철방에 올 일이 있으면 나한테 오게나. 이 검은 내가 직접 봐주지.”

“저는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만, 번거롭진 않으실지요?”

“그냥 와. 뭘 이런 걸 가지고.”

남회가 싱거운 웃음을 지었다.

“아무튼, 이번에도 편히 머무르다 가게.”

“네, 알겠습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소무강이 대답을 마치고는, 남회에게 몇 번이나 감사를 표하더니 물러갔다.

소무강이 떠난 직후.

“허허-.”

남회가 짙은 안타까움을 흘렸다.

소무강이 떠나고 남은 뒷모습이 그의 눈동자에 잔상처럼 남은 듯했다.

“한빙검과 똑같이 만들어 달라더니…….”

남회가 연신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온갖 감정이 목소리에 담겨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소무강이 만들어달라고 요구한 검의 크기나 모양이 한빙검(寒氷劍)과 똑같았으니까.

한빙검은 실제로 검 전체가 귀하디귀한 만년한철로 만들어져 그 자체만으로도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이었다.

그래서 한빙검은 예리하며 부서지지 않는다고 했다.

또한, 검에서 뿜어지는 한기는 그 자체로도 대단했다.

그래서 그 기운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에게는 무한한 힘이 되고, 마주한 적은 싸늘한 시신으로 만든다고 알려져 있었다.

즉, 음한기공을 쓰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갖고 싶은 보검 중의 보검이었다.

소무강이 만들어달라고 한 검의 모양이 바로 그 한빙검이었다.

다만 만년한철의 양이 그 정도가 되지 않았을 뿐.

“그냥 온 건가…… 알고 온 건가…….”

남회의 목소리가 무척이나 씁쓸하게 들렸다.

사실 남회는 한빙검을 알고 있었다. 그의 조부가 만든 검이기 때문이었다.

열 살 무렵의 어린 남회는 조부가 한빙검을 만들 때 유심히 살펴봤었다.

스스로 한기를 뿜어내는 쇳덩이가 너무도 신기해, 옆에 서서 한참을 구경했었다.

그런 남회를 흐뭇하게 바라본 조부의 얼굴은 아직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 기억이 슬프게 채색되고 있었다.

“사연이 참 많았구나!”

귀검 소무강이 정한 검의 이름, 상담(嘗膽)은 척 봐도 와신상담(臥薪嘗膽)의 두 자였다.

이 검을 보며 날마다 원한이나 복수를 되새기려는 모양이었다.

이토록 한빙검의 크기와 모양을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이, 그와 똑같이 생긴 검을 만들어달라고 한다면 이유는 하나였다.

그 검을 쓸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

“소무강…… 자네는 어쩌면 검의 한기보다 마음의 한기가 더 깊을지도 모르겠구나…….”

눈은 마음을 드러낸다.

소무강은 굳센 의지로 마음속에 뜻을 세우고 있었고, 그 마음이 눈을 통해 보였다.

그 속에 깃든 것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내원에 손님이 있는데…….”

그 손님은 맑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대자연의 기운을 품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자신보다 훨씬 어린데도 큰 존재라고 느껴질 때가 많은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라면, 어쩌면 귀검의 한기도 품어내고 풀어줄 수 있지 않을까?

“혹시 만난다면…….”

남회에게 작은 소망이 생겼다.

잠시 하늘을 바라보며, 그 소망을 하늘에 흘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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