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2.
#무의대 (3)
무의대가 머무는 장원에는 삼 층짜리 전각이 있었다.
전각 삼 층은 벽이 없이 기둥만 올리고 지붕을 덮었기에 시야가 탁 트여 사방이 훤히 보였다.
장원 내부는 물론이거니와, 장원 외부의 전경도 한눈에 다 들어왔다.
커다란 전각이지만 망루라 해도 상관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무의대주 엄소백은 전각에 자주 들락거렸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엄소백은 삼 층에서 장원의 경계를 맡은 무의대 이 조의 조장 마일권과 함께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고요하군. 너무 고요해.”
“이상하리만치 그렇습니다.”
엄소백이 작게 말하자, 마일권이 동조했다. 그런 두 사람의 얼굴은 자못 심각해 보였다.
넓게 펼쳐진 계림의 아름다운 풍광에 감탄이 나올 법도 하건만, 두 사람의 표정은 웃음기 하나 없이 무겁기만 했다.
“흑괴를 맞닥뜨렸던 게 달포쯤 되었지 않나?”
“그쯤 된 거 같습니다. 진짜 희한하네요. 구유마라종 놈들이 이리 안 보일 리가 없는데.”
구유마라종이 한 달이나 나타나지 않았으니 다행일 수도 있으나, 그들은 결코 잠잠한 족속이 아니었다.
이럴 때일수록 오히려 흉악한 일을 꾸미고 있을 놈들이었다. 구유마라종과 계속 격전을 치룬 엄소백과 마일권이기에 그들의 습성을 꿰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의 평온이 두 사람은 불편했다.
“마치 폭풍전야 같군. 그때 흑괴를 잡았어야 했어…….”
“대주님, 자책하지 마십시오. 저희들이 부족했습니다. 흑괴의 손속을 아무도 감당하지 못해서 대주님이 오실 시간조차 벌지 못했습니다. 아주 속수무책으로 당해 버렸으니…… 저희들이 역부족했던 탓입니다.”
“그게 어찌 자네들만의 탓이겠나? 우리가 그의 얕은꾀에 당한 거였지.”
엄소백이 흑괴를 두고두고 생각하는 건, 그가 수하를 먼저 보내며 성동격서하는 작전에 당한 탓이었다.
바로 직전의 패배를 계속 곱씹으니, 엄소백은 지금도 여러모로 마음이 편치 않았다.
“기분이 좋지 않아. 활시위가 팽팽하게 당겨진 느낌이야. 우리를 겨눴겠지.”
조만간 무의대를 겨냥한 화살이 쏘아질 거다.
그래서 엄소백은 꺼림칙했다. 무언가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엄소백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그때, 저 멀리서 세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나무가 잔뜩 우거진 길에서 사방을 경계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쉼 없이 살피고 또 살핀다.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미약한 낌새까지 놓치지 않을 태세였다.
셋이지만 하나인 것처럼 행동에 흐트러짐이 없었다.
단박에 시선이 끌렸다.
그들 주위로만 시간이 더디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척 봐도 내력을 뿜어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건만, 주변 일대가 그들의 지배 아래에 놓인 것처럼 숨죽이고 있었다.
세 사람의 걸음걸음이 고요함을 짓밟았다. 그들에게서 주위를 짓누르는 기세가 흘러나오기라도 하는 모양이었다. 빈틈이라곤 없었다.
“좋군.”
엄소백이 짧게 감탄했다.
마일권도 그들의 모습에 호평했다.
“옥당이군요. 오늘 처음으로 염 소협, 진 소협과 순찰 나갔는데, 꽤 괜찮아 보입니다. 그간 옥당을 막내라고만 생각했는데, 인제 보니 통솔력도 좀 있는 거 같군요.”
“아쉽게도 옥당의 실력은 아니야. 진 소협이군.”
“아…… 진 소협입니까?”
“마 조장, 잘 보게. 진 소협의 걸음에 맞춰 다른 두 사람이 호흡하고 있어.”
마일권이 엄소백의 말을 따라 그들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세 사람은 모두 똑같이 한 호흡에 한 발씩 내디뎠다.
하지만 미세하게 무게중심이 진우선에게 있는 게 느껴졌다.
심옥당과 염지광이 저도 모르게 진우선의 움직임에 보조를 맞추고 있었다.
엄소백은 단박에 그걸 파악한 것이다.
“그런데 저 세 사람이 함께 순찰 임무를 나간 게 오늘 처음이라고?”
“네. 그렇습니다.”
“호심당에서 온 게 사흘 전이었지 않나?”
“맞습니다.”
마일권의 대답을 들은 엄소백이 잠시 시선을 고정한 채 집중했다.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거리가 상당히 멀어 대화는 들리지 않지만,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는 충분히 보였다.
심옥당이 물으면, 진우선이 답하고, 염지광은 듣는다.
진우선이 좌우를 가리키면서 무언가 열심히 설명하면 심옥당과 염지광은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고 있었다.
진우선이 대화를 주도하고 있는데, 그들 사이에 상당한 신뢰가 형성되어 있는 게 틀림없었다.
“능력 있군.”
고작 사흘이었다. 심옥당이 진우선을 신뢰하게 된 시간은 길지 않았다.
염지광이야 애초에 호심당에서 같이 왔으니 그럴 수 있다고 쳐도, 무의대에서 그를 맞이한 심옥당이 보여주는 모습은 놀라울 정도였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걸까?’
그때, 진우선을 비롯한 세 사람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가까이 오고 있었다. 곧 인근을 돌아보는 임무를 마치고서 장원 안으로 들어설 터였다.
‘직접 보고 싶군!’
엄소백은 마음이 동하자, 지체하지 않고 전각을 내려갔다. 마일권이 그 뒤를 따랐다.
잠시 후, 순찰을 마치고 들어오던 심옥당과 진우선, 염지광을 마주했다.
“심옥당 외 두 명, 순찰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수고했네. 별일 없었나?”
엄소백이 묻자, 심옥당이 다녀온 결과를 보고했다.
“특이점이 있어 보고 드리려고 합니다. 녹마봉 일대가 죽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녹마봉 일대가 죽어간다고?”
“네. 진 소협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심옥당이 진우선에게로 대화를 넘겼다. 그는 알아채지 못했고, 오직 진우선만이 확인한 까닭이었다.
일순간, 모두의 시선이 진우선에게로 쏠렸다.
“순찰 중에 유달리 생기를 잃어가는 곳을 발견했습니다. 땅의 힘과 나무의 기운이 모두 쇠했고, 죽음의 냄새가 짙었습니다.”
“그곳이 녹마봉이라는 건가?”
“네.”
진우선이 단정 짓듯이 말하자, 마일권이 의문을 던졌다.
“진 소협은 확신에 차 있군. 한데 그걸 어떻게 알았는가? 우리는 수십 명이 날마다 살폈지만 본 적이 없는데.”
“제가 그 기운을 느꼈습니다.”
“기감이 매우 발달했나 보군. 특별한 내공을 익힌 건가?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녹마봉은 좀 먼 거 같은데…….”
마일권이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계속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엄소백이 진우선에게 물었다.
“진 소협, 자네의 말에 무의대 십수 명이 내일 바로 움직일 수도 있다네. 정말 사실인가?”
“네, 사실입니다.”
진우선이 일말의 흔들림도 없이 당당하게 말했다. 오히려 당연한 걸 말했다는 태도였다.
“알겠네. 그럼 내일 살펴보는 걸로 하겠네.”
“알겠습니다.”
마일권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대주님?”
“마 조장, 그간 구유마라종이 찜찜할 정도로 너무 조용했어. 그런데 녹마봉이라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지 않겠나?”
가볍게 되묻고 있지만, 엄소백의 생각은 이미 결정 나 있었다.
“그 말씀이 맞습니다.”
“아무래도 흑괴가 계림을 한바탕 휘젓고 갔을 때, 무언가 변했어. 내 느낌이 그렇다네.”
“아!”
엄소백의 날카로운 예감에 마일권도 동감했다.
“마 조장, 자네는 운 부대주와 다른 조장들에게 반 시진 후에 회의가 있다고 전하게.”
“알겠습니다, 대주님!”
마일권이 명령을 받은 즉시 움직였다.
그 후, 엄소백은 심옥당 일행 쪽으로 한 걸음 가까이 다가왔다.
“근데 세 사람은 벌써 친해진 것 같군. 적응에 힘든 점은 없나?”
“네, 심 대원님이 잘 알려주셔서 어려운 점은 없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염지광과 진우선이 웃으며 대답했다.
심옥당도 너스레를 떨었다.
“제가 잘 설명해드리기도 했지만, 두 분이 워낙 뛰어나셔서 금방 적응하시더군요.”
“오호! 그런가? 좋군.”
엄소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렇게 인사치레 같은 대화를 몇 마디 나눈 뒤 격려의 말을 건넸다.
“아무튼, 순찰하느라 수고 많았네. 이만 들어가서 쉬도록 하게.”
“네, 알겠습니다.”
***
그날 밤.
장원의 어느 작은 연무장에 검을 들고 한바탕 대결을 펼치는 두 사람이 있었다.
진우선과 염지광이었다.
그들은 쉴 시간이 주어졌음에도 쉬지 않은 채 수련하고 있었다.
“……염 형의 검은 확실히 황 사부님의 검과 많이 비슷합니다. 황 사부님께 배우셨으니 그렇기도 하겠지만, 애초에 두 분의 성격이나 성향이 여러모로 닮은 거 같아요.”
차분한 기색의 진우선이 편하게 말했다.
반면, 마주 선 염지광은 어찌나 격하게 움직였는지 얼굴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고 온몸이 흠뻑 젖어 있었다.
그러나 진우선의 말을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숨을 헐떡이면서도 눈을 빛내며 경청하고 있었다.
“하지만 저는 염 형이 엄연히 황 사부님과 다르다고 생각해요. 살아온 삶이 다르고, 펼치는 무공도 다르죠. 그러니 황 사부님과 똑같아지려고 하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을까요?”
“그 말은 내가 너무 배운 대로만 하려 했다는 말이오?”
“그렇습니다.”
염지광이 제대로 이해하자, 진우선이 좀 더 자세히 설명했다.
“염 형이 조금 전에 펼치셨던 비응천공(飛鷹穿孔) 초식은 원형이 이럴 거 같은데…….”
설명하는 와중에 진우선이 비응천공 초식을 한 호흡 안에 완벽하게 펼쳐냈다.
집중하여 보던 염지광의 눈에 감탄하는 빛이 어렸다.
“이 검초는 염 형에게 다소 맞지 않습니다. 염 형이 저나 황 사부님보다 팔다리가 더 길어서 초식의 범위가 넓고 미묘하게 속도 차이가 생기거든요. 그 때문에 초식에 실리는 힘이 흩어집니다. 내력이 검의 궤적을 따라 한 점으로 모여서 찌를 때 터져야 하는데, 소실되는 거죠.”
염지광이 익힌 비응삼십이검(飛鷹三十二劍) 중 비응천공 초식은 검을 펼치며 흐르는 힘을 한 점에 모아 강하게 찌르는 걸로 끝나야 한다.
하지만 염지광은 그게 잘 되지 않았다.
“염 형은 보폭을 조금 더 넓게 잡아 보법의 묘리를 살리면 될 것 같습니다. 황 사부님도 바쁘지 않으셨다면 그렇게 말씀하셨을 거예요.”
진우선이 검 손잡이의 끝부분만 잡으며 재차 시범을 보였다.
초식이 조금 달라진 모양으로 전개되었다.
염지광은 그게 자신의 신체를 고려한 것임을 바로 깨달았다.
퍼억-!
진우선의 검이 공기를 꿰뚫자 염지광이 저도 모르게 탄성을 흘렸다.
“아-!”
비응천공 초식을 제대로 펼쳐내기 위해 수없이 고민했는데, 한 방에 풀라고 있었다.
진우선이 연이어 몇 가지 동작을 더 보여주었다.
“……!”
염지광이 하나라도 놓칠세라 눈을 부릅뜨고서 살폈다.
그러다 진우선이 검을 내리자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바로 심상에 검을 아로새기는 모양이었다.
‘염 형!’
그런 염지광을 바라보는 진우선의 눈빛에 뿌듯함이 감돌았다.
염지광의 간곡한 부탁으로 무의대에 도착한 날부터 사흘째 검을 섞고 있었다.
지금도 머릿속에선 염지광이 어렵사리 용기를 내어 부탁하던 순간이 계속 맴돌았다.
“진 소협, 사부님께서는 진 공자의 검을 견식하는 것만으로도 내게 공부가 될 거라 하셨소. 비록 예가 아닌 줄은 알지만, 혹시 진 소협의 검을 볼 영광스러운 기회를 줄 수 있겠소?”
염지광은 평소의 모습과 똑같이 우직하면서도 너무나 조심스럽게 청했다. 그래서 더욱 진심인 걸 알 수 있었다.
그건 십오행을 치를 때 ‘진심으로 상대해 달라’던 황백의 모습과 흡사했다.
‘사제가 참 닮았어.’
염지광은 확실히 황백과 비슷했다. 두 사람 모두 성정이 차분하고 담백하나, 검 속에는 뜨거운 열정과 강한 집념이 담겨 있었다.
사제가 어찌 이리 닮았을까.
그 모습이 참 보기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진우선이 고개를 돌렸다.
심옥당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아까부터 연무장 뒤편에서 숨을 죽인 채 바라보고 있었는데, 진우선은 그의 존재를 눈치채고 있었다.
진우선이 조용히 다가갔다.
“심 대원님, 무슨 일이신지요?”
“내일 아침에 대주님께서 녹마봉에 직접 가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탐색조에 저희도 포함되었습니다. 특히, 진 소협께 안내를 부탁드린다고 하시더군요.”
회의 결과가 나온 모양이었다.
“그 말을 전하러 온 것이었습니다. 두 분의 수련을 엿보려는 뜻은 없었습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아, 아셨군요.”
심옥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로 용건은 끝이 났다.
이제 심옥당은 돌아가면 된다. 하지만 그는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눈은 아까부터 연무장과 염지광을 계속 흘깃거렸으며, 눈동자에는 선망하는 빛이 가득했다.
그걸 진우선은 이미 알아채고 있었다.
눈치 빠른 심옥당도 자신이 멈칫한 순간 마음이 들킨 걸 깨달았다. 그래서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사실 두 분의 모습이 부럽습니다.”
“어제도 그렇게 저희를 보고 계셨군요.”
“……진 소협은 다 알고 있었군요. 하하.”
심옥당이 멋쩍은지 어색한 웃음만 슬쩍 흘렸다.
“사실 이곳에서 검법에 관해 물어보기 어려웠습니다. 어쩌다가 좋은 검법을 얻긴 했는데, 다들 시간에 쫓기거든요.”
“저라도 괜찮다면 한 번 보여주시겠습니까?”
진우선이 심옥당의 열망을 보며 말한 순간, 심옥당이 얼른 말을 받았다.
“아! 당연히 됩니다. 당연히 괜찮지요. 사흘간 제가 진 소협과 대화하고 느낀 게 있는데, 저보다 고수이신 걸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하하.”
심옥당은 이미 자신의 검 손잡이를 붙잡고 있었다.
“저희는 저쪽에서 하는 게 좋겠습니다.”
진우선이 나아가며 연무장의 한쪽을 가리켰다. 염지광을 방해하지 않을 장소였다.
심옥당이 그 뜻을 이해하고 곧바로 뒤따랐다.
“그럼 한 번 보여주시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심옥당이 검을 뽑아 들었다.
그의 검 끝에서 비홍검법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한편.
전각 삼 층에서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이가 한 명 있었다.
엄소백이었다.
그는 회의가 끝난 후 홀로 주변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는데, 뜻하지 않게 목격한 광경에 시선이 붙잡혔다.
‘호심당주께서 진 소협의 검이 괜히 뛰어나다고 하신 게 아니었군!’
검법의 요체를 정확히 파악하고 곧장 지도하는 진우선의 모습에 끊임없이 감탄만 나왔다.
또한, 종종 보여주는 시범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면서도 빈틈이 없었다. 곳곳에 상승의 무리가 녹아 있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본 실력을 다 드러낸 게 아니리라.
가르치는 중에 온 힘을 다하지도 않거니와, 본인의 무공은 아예 펼치지도 않은 까닭이었다.
‘정말 좋다. 지금 당장 데려와도 대원들 중 손에 꼽히겠어!’
무의대주로서,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 엄소백은 뛰어난 인재 진우선에게 욕심이 마구 났다.
일결제자라는 건 겉으로 드러난 신분일 뿐, 이미 검에 통달한 게 틀림없으니까.
하지만 호심당 소속이니 데려오는 건 불가능하고, 그저 지금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옥당아. 네게 귀한 기회가 왔구나. 이런 순간은 흔치 않으니 제대로 배우거라.’
엄소백이 기대감에 가득 찬 눈으로 둘을 계속 바라보았다.
심옥당의 비홍검법(飛鴻劍法)은 두 해 전쯤, 무의대가 숭의각에서 포상을 받았을 때 운철산이 쥐여 준 무공이었다.
이 검법은 본래 복건성에서 명성을 떨치던 비홍검객의 진신절기로 상승의 무리가 담겨 있는데, 사후에 계승자가 없어 정무맹에 흘러 들어와 있었다.
그렇기에 심옥당 혼자서는 제대로 익혀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주위에 검을 깊게 가르쳐줄 사람도 없었고, 무의대에서도 도움을 받기 어려웠다.
대주인 엄소백은 한평생 도법만을 수련해왔고, 부대주인 운철산은 거대한 육체를 이용해 펼치는 권법과 장법, 체술 등에 능숙한 까닭이었다.
다른 이들은 비홍검법을 이해하기도 어렵거니와, 시간에 쫓겨 자신의 무공을 돌보기조차 벅찬 게 현실이었다.
결국 심옥당은 비홍검법을 혼자서 수련했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가며 습득하느라 잔뜩 욕먹었지만, 특유의 넉살로 버텨내며 이 년을 정진했다.
그래서인지 익숙해 보이면서도 엉성하고 거칠었다.
그걸 진우선이 다듬어주고 있었다.
‘오!’
비홍검법의 초식들이 즉각즉각 매끄럽게 변하며 힘이 제대로 실리기 시작했다.
심옥당 본인도 그걸 느끼는 모양이다.
초식의 의미를 새롭게 세우고, 계속 지적받으며 흐름과 궤적 등을 바꾸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심옥당은 힘들어하면서도 웃고 있었다.
엄소백이 그가 대견하여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끊임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 소협, 잘 부탁하오!’
엄소백이 은연중에 진우선에게 심옥당을 맡기며 둘의 모습을 계속 지켜보았다.
그러던 중, 갑자기 뇌리를 스치는 생각에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진 소협은 어쩌면 항마의 무공을 익혔을지도 모른다!’
그가 녹마봉에서 느꼈다는 죽음의 기운은 아마도 구유마라종의 기운일 터였다.
그때 진우선은 지극히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단순히 기감으로 느낀 정도라면 그런 확신을 보여 주지 못했으리라.
‘만약 그렇다면 천군만마가 따로 없겠군.’
엄소백은 진우선에 대해 알면 알수록 더 감탄하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읏?’
엄소백이 진우선의 강렬한 시선을 느꼈다.
‘저기서 내가 보였다고?’
전각이 통째로 어둠에 휩싸여 있어서, 지금 바라보고 있는 걸 전혀 알 수 없을 텐데!
진우선은 마치 이곳에 무의대주가 있는 걸 아는 듯이 직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