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영검전-85화 (85/225)

085.

#위험한 임무 (3)

“대, 대주님. 오지 마…… 크아악!”

운철산의 눈에 시뻘건 안광이 들락날락했다. 그는 자신의 목을 움켜쥐며 고통에 마구 몸부림쳤다.

“철산아, 정신 차려라! 철산아!”

운철산은 숨을 헐떡이며 오장육부로 깊숙이 침투한 마기독과 힘겹게 싸우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일말의 정신을 놓지 않고 다가오는 엄소백을 온몸으로 거절했다.

엄소백이 급히 운철산의 손목을 잡고 설산호심공의 공력을 밀어 넣었다.

그 순간!

“그르르르!”

운철산에게서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그의 검은 동공에서 핏빛 안광이 뿜어졌다.

그리고 엄소백에게 주먹을 내질렀다.

“철산아! 안 된다!”

광기에 빠진 운철산이 권장(拳掌)을 날리기 시작하자, 엄소백이 피하며 소리쳤다.

하지만 운철산은 이미 마기독에 중독된 상태였다. 아무리 공력을 실어서 외쳐도 그의 심령에 들리지 않았다.

‘역부족이다!’

엄소백의 얼굴에 당황하는 기색이 어렸다.

설산호심공의 기운은 이미 운철산을 잠식한 마기독에 역부족이었다.

비록 설산호심공이 대단한 무공이 아니라지만, 이리 힘을 내지 못할 줄 어찌 알았겠는가.

이 정도면 미리 팔호결을 읊조리며 대비했어야 했다. 뒤늦게 구결을 외우니 마기독을 더 자극한 꼴밖에 되지 않았다.

난폭해진 마기독이 대원들을 더 빠르게 중독시키고 있었다.

그때, 엄소백의 귓전에 청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주님, 잠시만요! 제게 맡겨주십시오!”

“진 소협!”

진우선이 엄소백의 말을 뒤로하고, 운철산에게 곧바로 달려들었다.

퍼펑!

운철산이 진우선을 주먹으로 격하게 맞이했다. 마구 펼쳐지는 권법에서 강맹한 힘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진우선에게 닿는 건 없었다. 진우선은 신묘한 움직임으로 공격을 모두 피할 뿐만 아니라, 멈추지 않고 그대로 운철산의 품에 파고들었다.

투웅-!

진우선이 운철산에게 일장을 쳤다.

그 순간, 운철산의 움직임이 잠시 멎었다. 핏빛 안광도 위태롭게 점멸했다.

형을 이룬 수기가 잔뜩 담긴 일격이기에, 마기독이 맥을 못 추는 것이다.

“이럴 수가!”

뒤에서 엄소백의 경악성이 들려왔다.

“아직입니다.”

운철산을 중독 시킨 마기독이 완전히 소멸한 게 아니기에, 진우선이 얼른 운철산의 단전에 손을 얹고 내기를 끌어올렸다.

후웅-!

오행진기가 거센 풍랑처럼 일어나 운철산에게로 쏟아졌다. 그로 인해 진우선의 옷자락도 펄럭거렸다.

운철산의 내부로 침투한 수기가 마기독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그 안에 깃든 항마의 힘은 능히 마기 독을 억누르고 있었다.

한데, 그뿐만이 아니었다.

‘화기가 태워버리고 있어!’

정확하게는 화기 속에 스며든 이화의 힘이었다.

이화는 척사항마의 능력뿐만 아니라, 정화(淨化)의 힘까지 있었다.

그렇게 이화가 수기를 도왔다.

불과 물이 어찌 함께할 수 있을까 싶지만, 오행진기 속에서 상생하여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치이익-!

얼마 지나지 않아, 운철산의 정수리 부근에서 검은 연기가 쾨쾨한 냄새를 풍기며 피어올랐다.

그와 동시에 운철산의 눈동자와 혈색이 맑게 돌아왔다.

“하아.”

운철산이 기진맥진하여 간신히 한숨을 내쉬더니, 비틀거리다 주저앉았다. 온몸에 힘이 빠져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게, 탈력감이 상당한 모양이었다.

엄소백이 정상으로 돌아온 운철산의 모습을 보며, 곧장 진우선에게 말했다.

“진 소협, 정말 고맙소. 그리고 쉽지 않겠지만, 다른 대원들도 부탁하오.”

“제가 도울 수 있으니 다행입니다. 당연히 힘을 합쳐야지요. 부대주님을 살펴주십시오. 일단 마기독은 모조리 태워냈습니다.”

“그러지.”

진우선이 당부의 말을 빠르게 전하더니, 다른 대원들에게로 달려갔다.

“철산아, 괜찮냐?”

“후우. 몸에 힘이 쑥 빠졌소. 이거, 진 소협에게 못 볼꼴을 보였군.”

“진 소협은 이해할 거다. 그는 형산파 사태도 직접 겪었고 해결했으니까.”

“아까 나누던 대화를 들을 땐 그저 남의 업적에 얹혀가는 줄 알았는데…… 정말 미안하게 되었소.”

운철산이 진우선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편치 않은 표정을 지었다.

호심당 제자 중 심소룡이 아닌 일결제자에 불과해 처음부터 탐탁지 않게 여겼고, 체격도 크지 않아 은연중에 무시했었다.

하지만 드러난 진우선의 실력은 진짜였다.

자신의 생각은 모든 게 편견이었으며, 일방적인 불만이었고, 불공평한 언행이었다.

인제 와 보니 너무나 터무니없는 생각들이었다.

운철산은 낯부끄러운 마음으로 진우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치이익-!

치이익-!

진우선은 동시에 무의대원 두 사람의 단전 부위에 손바닥을 얹어 마기독을 태워버리고 있었다.

광기에 젖어 달려들었던 대원 몇몇은 이미 강한 일격으로 때려눕힌 뒤였다.

“진 소협은 정말로 대단하군.”

“그런 거 같소.”

엄소백의 감상에 운철산이 고개를 까딱였다. 마음속으로는 진우선을 인정하지만, 아직 겉으로 표현하는 건 어색한 느낌이었다.

운철산이 몸을 일으켰다.

“대주님. 아까 말씀하셨던 대로 우리가 등잔 밑이 어두웠습니다. 이는 모두 제 불찰입니다.”

그새 내공을 일주천하여 기력을 다소 회복한 모양이었다.

탈력감이 심한 상태에서 단전을 짜냈으니 고통스러울 게 분명하건만, 운철산은 하나도 내색하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말투를 부대주의 격식에 맞게 바뀌었다.

잠시 엄소백의 전우이자 아우인 운철산이었으나, 다시 무의대 부대주 운철산으로 움직이겠다는 뜻이었다.

깔보고 무시했던 진우선이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부대주나 되어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어찌 다 네 탓이겠냐? 마기독이 이렇게 번져 있을 줄은 나 역시 모르고 있었다. 실로 내 책임이 가장 크지.”

“그런데 대주님은 괜찮으십니까?”

“나는 괜찮다.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아마도 청죽령 때문인 듯싶다.”

엄소백은 말을 하면서도 운철산의 안색을 통해 상태를 확인했다.

어느새 운철산은 평소처럼 야수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운 부대주. 이제 나는 진 소협을 도와 대원들을 상대할 생각이다. 네가 마기독에서 벗어난 대원들을 챙겨라.”

“알겠습니다.”

엄소백이 솔선수범하여 움직이자 운철산이 그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진우선 덕분에 일행들은 마기독에 휩쓸려 버릴 뻔한 상황에서 큰 사고 없이 벗어날 수 있었다.

물론 몸에 힘이 쑥 빠져 정비할 시간이 필요했지만, 이 정도는 별 일도 아니었다.

아무튼, 일행이 회복에 전념하고 있을 때, 염지광과 심옥당이 진우선에게로 다가왔다.

“진 소협, 정말 고맙소.”

“진 소협, 저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친분을 나누고 있던 두 사람을 시작으로 무의대원들도 진우선에게로 다가왔다.

“진 소협, 나도 정말 고맙소. 덕분에 목숨을 건지고, 오명을 쓰는 일을 피할 수 있었소. 진심으로 고맙소.”

“나도 마찬가지라오. 마기독의 악명을 대주님께 들었고 맹에서도 많이 접했었는데, 실제로 겪어보니 정말 참담하구려. 진 소협 아니었으면 나는 영락없이 살인귀가 되었을 거요. 고맙소.”

“아닙니다. 마교의 수법이 너무도 악랄하여 무의대의 협객들께서 경황이 없으셨을 겁니다. 저는 한 번 겪어봐서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을 뿐입니다.”

“하하하. 진 소협이 그리 말해주니 내 마음이 편하오. 고맙소.”

조장 마일권을 비롯해 무의대 이 조 대원들이 살갑게 다가와 감사를 표했다.

급박한 위기의 순간을 함께 겪어서인지, 전에 없던 친근감이 생긴 모양이었다.

거구의 무인 운철산도 진우선에게 다가왔다.

“진 소협. 그간 나 때문에 불편했을 텐데…… 미안하다.”

“괜찮습니다, 부대주님.”

진우선이 슬며시 웃으며 운철산의 무뚝뚝한 사과를 받아주었다.

“아까는 정말 고맙더군.”

“부대주님께 제 방법이 잘 통해서 다행입니다.”

진우선이 청명한 눈빛을 보이며 대답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듯했다.

운철산이 그런 진우선을 묘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이제야 좀 진 소협을 알겠군. 처음에는 소협의 이런 언행이 이해되지 않아서 마두를 만나면 십 초나 싸울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지. 하지만 인제 보니 소협은 품이 넓은 사람이었어. 이런 느낌은 대주님 이후로 처음이야.”

운철산에게 대주 엄소백은 그 누구보다 신뢰하는 무인이며, 인품으로도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엄소백에 빗대며 진우선에 대한 감탄을 털어놓았다.

“저는 아직 배우는 중입니다. 호심당에서도 많이 배웠고, 임무에 와서도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대주님의 모습에서도 여러모로 배우고 있습니다.”

“하하하! 진 소협은 정말 대단하군.”

진우선의 겸양 섞인 말에 탄복한 운철산이 고개를 내저으며 웃었다.

그리고 직설적으로 자기 생각을 말했다.

“조금 전 상황으로 진 소협의 무위가 부족함이 없다는 걸 알았네. 지금 실력만으로도 맹에서 한 자리는 꿰차고 남을 거야.”

“과찬이십니다.”

운철산은 진우선과 대화를 거듭하며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

진우선은 실력이 있으면서도 겸손했다. 운철산은 정무맹에 이토록 뛰어난 인재가 있다는 것이 기뻤다.

엄소백도 미소 지으며 다가왔다.

“운 부대주와 진 소협이 서로 가까워진 게 보기 좋군. 진 소협, 나도 고맙네.”

“별말씀을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허허. 그런가? 어쨌든 지금 자네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네.”

“말씀하십시오.”

엄소백의 표정과 음성이 진지했다. 그걸 느낀 진우선과 운철산은 곧장 웃음기를 지웠다.

“진 소협. 우리는 아직 녹마봉에 온 목적을 해결하지 못했네. 지금 상황이 어떤가?”

“저도 그것에 관해 말씀을 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녹마봉을 잠식한 죽음의 기운은 여전한데, 또 다른 강력한 마기가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습니다.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진우선은 조금 전부터 거슬리던 기운이 있었다.

엄소백은 그걸 알지 못했으나,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끼고 물어본 듯했다. 그래서 당연한 일이라는 듯이 말을 이었다.

“마교도들이 우리를 알아채고 오는 것이겠군. 어느 정도 걸리겠는가?”

“아마도 일 각 정도일 것입니다.”

진우선이 그렇게 답하자, 운철산이 곧바로 뒤돌아서서 무의대원들에게 외쳤다.

“일 각 후에 마교도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니 다들 팔호결을 얼른 외워라. 설산호심공이 아까는 아쉬웠지만, 미리 운기하고 있다면 마기독에 충분히 대항할 수 있다.”

“알겠습니다.”

무의대원들이 운철산의 명령에 복명했다. 이런 순간을 많이 겪었었는지 다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상대할 생각이시군요.”

“우리는 물러서지 않는다네. 그리고 두 번 당할 수는 없지. 자네가 준비해야 한다는 것도 이런 뜻 아니었나?”

엄소백이 기개를 떨치며 단호한 의지를 밝혔다.

진우선이 그 모습에 답했다.

“맞습니다.”

***

“철혈객, 네 힘을 바로 살펴볼 수 있겠군. 공교롭게도 우리가 가려는 길목에 딱 놓여 있다. 너도 알 수 있겠지?”

“정무맹의 개 같은 자식들이 제법 모여 있는 게 느껴집니다.”

“좋군. 지존께서 오실 세상이니 저런 놈들은 단숨에 쓸어버리도록 하자.”

“알겠습니다.”

백발노인과 철혈객이 의지를 불태우며 빠르게 달려 나갔다.

그런 둘을 뒤따라 마교도 열댓 명도 속도를 냈다.

정확히 일 각 후.

진우선 일행의 앞에 마기를 풀풀 풍기는 한 무리의 마교도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앞장서서 달려오던 백발노인이 엄소백과 무의대원들을 보며 여유롭게 웃었다.

“기다리고 있었나?”

“달포 만에 보는구려.”

엄소백이 바짝 긴장한 채로 백발 노인을 노려보았다.

백발노인은 마주 선 것만으로도 모골이 송연해지는 고수였다.

“담이 크군. 숨어있을 줄 알았는데.”

“우리가 왜 숨어야 하지? 이렇게 맞상대할 좋은 기회를 두고 말이야. 그날 이후로 이날만을 기다려 왔는데.”

“그래? 재미있군. 날 눈앞에 두 고도 그리 말하는 놈은 별로 없었는데.”

백발노인이 썩은 미소를 지었다. 동시에 전신에서 싸늘한 암흑의 기운을 피어나니 흉신악살의 모습과 다름없었다.

엄소백이 백발노인에 팽팽히 맞서며 서슬 퍼런 기세를 뿜어냈다.

도에 손을 얹어 곧장 참혼십팔도(斬魂十八刀)를 출수할 태세도 갖췄다.

진우선이 그런 둘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감탄했다.

‘대단하다!’

그러면서 주변을 살폈다.

신경에 매우 거슬리는 존재가 있는 까닭이었다.

‘저자가 아마도 마기독의 원흉일 것이다.’

진우선은 마기도 여럿으로 구별할 수 있었다. 그래서 마교도들 가운데 차별되는 존재가 있다는 걸 알아챈 상태였다.

그는 마치 마기독의 정수 같았다.

그때, 백발노인이 외쳤다.

“철혈객. 잔챙이들은 네게 맡기 마.”

“그러죠.”

그 순간, 진우선이 바라보던 흑안의 마교도가 차갑게 말하며 앞으로 나섰다.

마기독의 정수 같은 이가 바로 철혈객이었다.

이 순간을 놓칠세라 엄소백도 운철산을 불렀다.

“운 부대주. 흑괴는 내가 맡을 테니, 마교도의 잔당은 네가 맡아라.”

“네. 알겠습니다.”

운철산이 백발노인, 흑괴를 주시하다가 앞으로 나서며 철혈객을 마주 보았다.

그 순간.

“너, 너는?”

철혈객을 마주한 운철산의 음성과 동공이 지진 난 것처럼 마구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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