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영검전-108화 (108/225)

108.

#사도련의 은밀한 계획 (2)

대법.

목단화는 그 단어를 듣는 순간, 심장이 떨려왔다.

사도련주가 앙천극사대법을 성공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또 대법이란 말인가.

진우선의 느낌이 정확하다면, 사도련주가 하남과 안휘 일대를 휘젓고 간 것은 새로운 대법을 펼칠 때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건 진우선도 생각하던 바였다.

“저도 선배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사도련주의 본래 목적은 대법인 듯합니다. 칠성홍옥은 아마 그 대법을 말하는 걸지도 모르고요. 회하강과 대운하의 주도권을 거머쥐는 것은 이득을 챙기면서, 대법으로부터 세인들의 눈을 가리는 일거양득의 계책이지 않겠습니까?”

진우선이 확신을 단호하게 말했다.

그의 말과 눈빛과 표정은 그게 가려져 있던 진실이 틀림없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꿀꺽.

목단화가 긴장하여 침을 삼켰다.

직접 들은 진우선이 장담하듯 말하니, 그녀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칠사의 두 명이자 오대사파의 중요인물인 혁련패와 막소소가 허투루 대화했을 리도 만무했다.

또한, 그들 두 사람이 직접 나서고 있으니 대법이 준비 중이라고 봐도 무방하리라.

목단화가 숨을 고르면서 다소 마음이 가라앉았을 때 입을 열었다.

“내일이라고 했지?”

“네, 내일 누군가가 올 모양입니다.”

“좋아. 일단 그것까지만 확인하고 맹에 복귀하도록 하자.”

목단화가 결정을 내렸다.

이미 합비와 회남현에서 사도련의 동향 파악은 어느 정도 이루어졌으며, 덩달아 사도련의 암중공작도 상당히 알아낸 상태였다.

시간이 흐르더라도 또 다른 특별 한 정보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이 정보를 만상각으로 가져가는 게 중요했다.

진우선도 그 점을 알아채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다음 날 정오 무렵.

포구로 배 한 척이 들어왔다.

혁련패와 막소소를 비롯한 사도련 일행이 포구에 마중 나와 있었다.

체격이 장대한 자가 배에서 내렸다.

“오셨습니까?”

“혁련 공자가 나와 있었군. 반갑소.”

“저도 있어요.”

“소궁주도 봤다네.”

숨어서 포구를 주시하고 있던 목단화가 급히 숨을 들이마셨다.

“헉!”

포구가 넓기에 멀리 떨어진 어느 담장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는데도 상당히 놀란 모양이었다.

진우선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사중효(邪中宗) 등자경이야.”

“대단한 사람인가 보군요.”

“사도련주의 삼대호법 중 한 명이지.”

사중효 등자경. 과연 삼대호법 중 한 명이라 할 수 있을 만큼 그는 강한 사기(邪氣)를 자랑하듯이 뿜어내고 있었다.

애초에 체격이 크고 용맹해 보이는 게, 힘을 감추지 않는 성격인 듯했다.

등자경이 품에서 비단 주머니를 하나 꺼냈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군청색의 주머니였다.

“내가 직접 챙겨왔다네. 남해에서 바로 가져왔지. 둘 중 누가 챙기기로 했는가?”

“저입니다.”

“그렇군. 받게.”

혁련패가 건네받은 주머니를 조심스럽게 품에 넣었다.

“잘 받았습니다.”

“자네들의 건투를 비네. 련주님처럼 나도 기대가 많다네. 두 사람 모두 대법을 잘 이루고 오게.”

“감사합니다.”

“그럴게요.”

두 사람이 읍을 했다.

등자경이 사도련의 호법이라서인지, 어제까지 목이 꼿꼿하던 두 사람이 너무나 예의 있게 인사하고 있었다.

“그럼 이제 가 봐도 돼. 두 사람도 먼 길 가려면 바쁠 텐데 말이야.”

등자경이 고개를 끄덕여 두 사람의 인사를 받고는 황일사에게 물었다.

“황 장로. 이 근처에 술과 음식이 맛있는 곳은 어디 있나? 개봉으로 가기 전에 하루 쉬었다 갈 생각이야. 배를 오래 탔더니 잘 만든 요리를 먹고 싶구만.”

“그렇다면 등 호법님을 저희 회남지부에서 모시겠습니다.”

“아냐. 됐어. 내가 가면 다들 일도 제대로 못 하겠지. 그건 원치 않아. 그리고 나는 혼자 먹는 게 편하고 좋다.”

“그렇다면…….”

황일사가 등자경에게 이것저것 알려주기 시작했다.

그때, 진우선은 무언가 결심하고 있었다.

“선배님. 비단 주머니에 든 걸 가져오는 게 좋겠습니다. 대법을 못 하게 하려면 그래야 할 것 같아요.”

대법은 위험했다.

앙천극사대법이 성공한 이후로 사도련의 행보가 광포하게 바뀌었는데, 큰 피해를 본 정무맹은 그걸 수습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숨 가빴지 않은가.

그것만으로도 대법은 막아야 할 당위성이 충분했다.

한데 진우선이 결심한 데에는 더 큰 이유가 있었다.

‘사도련주가 앙천극사대법을 이루어서 혼천이 됐어!’

이전에 검노야가 천기를 본 뒤, 극사의 힘이 하늘을 혼란에 빠트렸다고 했었다.

시기도 그렇고, 그 외에도 여러모로 사도련주의 대법이 큰 연관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사도련은 또 대법을 펼치려 하고 있었다.

‘무조건 막아야 해!’

막을 거면 진우선은 차라리 지금 수를 쓰는 게 좋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혁련패가 챙긴 거?”

“네. 맞습니다.”

목단화가 잠시 말없이 전방을 바라보았다.

혁련패와 막소소가 포구 앞에 서 있고, 사도련의 무인들이 배에 짐을 옮겨 싣는 중이었다.

그들은 등자경이 내렸던 배를 타고 갈 모양이었다.

반면 등자경과 황일사는 뭍으로 나오고 있었다. 이들은 회남현으로 들어갈 듯했다.

그들이 향하는 길목은 다행히도 진우선과 목단화가 숨은 쪽과는 정반대였다.

아무튼, 지금 사방에 사도련 무인들이 쫙 깔려 있었다.

그런데도 진우선이 의사를 밝혔다.

그는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면 어떻게든 할 사람이었다.

이제 그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이기로 한 목단화가 어찌할 것인지를 물었다.

“저 둘을 죽이지 않고도 가능하겠어? 배를 타고 갈 모양인데, 그럼 떠나기 전까지 시간이 얼마 안 남았을 거야. 그리고 우리는 저들의 추격을 받지 않고서 돌아가야 해.”

목단화는 진우선의 실력을 보았기에, 그가 혁련패와 막소소를 어떻게 상대할지는 걱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걱정되는 건 자신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추격 받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둘만이 아니야. 혁련패를 따라다니는 황 장로도 상대해야 할 거고, 가장 큰 문제는 등자경마저도 저기 있다는 거야. 만약 할 거라면 저 넷을 상대할 때도 염두에 둬야 할 거야.”

진우선은 목단화의 말에 담긴 의미를 바로 알아챘다.

“저들 중 누군가 죽으면 사도련에서 사생결단으로 쫓아올 테고, 그렇다고 멀쩡히 있다면 사도련의 무인들을 이끌고 맹렬히 쫓아오겠군요. 그 말씀이신 거죠?”

“그렇지. 근데 가능하겠어?”

“적당히 상처만 입히면 어떨까요? 직접 쫓아오지 못하면서, 죽지도 않을 정도로요”

“그래야만 해. 아마 너 혼자여도 언제까지나 다 죽이고 갈 순 없을 거야. 쫓기는 게 생각보다 지치고 숨 막히거든. 밥 먹을 때도 적이 언제 닥칠까 노심초사하는데, 심신이 다 힘들더라.”

목단화가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을 건넸다.

진우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적들을 유심히 살폈다.

“가능할 것 같습니다.”

“허!”

목단화가 탄성을 흘렸다.

유심히 살펴보고도 가능하다고 말하는 진우선에게 소름이 돋았다. 이건 감탄을 넘어 경외심이 들 정도였다.

“어떻게 할 생각이야? 내 실력으로는 아마 혁련패와 막소소 중 한 사람도 감당하기 어려울 텐데. 미안한 말이지만 네가 네 명을 다 맡아야 해.”

“괜찮습니다. 선배님은 적당한 때에 제 말과 함께 나타나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적당한 때?”

“일단 혁련패와 막소소를 기습해서 주머니를 뺏은 뒤, 등자경과 황 장로를 공격해 쓰러뜨릴 생각입니다. 그때, 이쪽 입구에 나와 주시면 됩니다.”

“잘 알겠어.”

목단화가 진우선의 설명을 이해했다.

그의 말은 어려운 게 없었다.

그들이 숨어 있는 근처의 입구도 사도련의 무인들이 향하는 곳과는 방향이 달랐다.

그러나 심장은 더욱 거세게 떨려왔다. 말이야 쉽지 ‘정말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미치겠네.”

“잘 될 겁니다. 저는 충분할 거라고 생각해요.”

진우선이 목단화를 안심시키려는 듯, 눈을 빛내며 자신 있게 말했다.

하지만 목단화는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오히려 진우선의 모습이 막무가내식으로 보였다.

그런데도 힘써 말리지 못하는 건, 진짜로 해낼 것만 같은 기대감 때문이었다.

“하! 진짜.”

“잘 부탁드립니다.”

진우선이 싱긋 웃으며 말하자, 목단화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 같은 건 하지 말고, 무리다 싶으면 이쪽으로 와. 말 준비해둘 테니까.”

“알겠습니다.”

진우선이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사도련의 무인들이 배에 짐을 거의 다 실었다.

계속 지켜보던 혁련패와 막소소는 이제 슬슬 배를 타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들은 배를 타고 회하강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중간에서 육로로 길을 바꿀 심산이었다.

바로 그때. 막소소가 섬찟함을 느꼈다.

‘……!’

퍽!

갑자기 옆에서 흐릿한 인영 하나가 나타나 혁련패의 가슴을 쳤다.

“컥!”

혁련패가 단말마의 비명을 질렀다. 입에서 피를 뿜으며 뒤로 날아 가고 있었다.

‘언제?’

찰나 간에 막소소는 의문이 들었다.

암습자가 나타나는 걸 보지도 못했는데, 혁련패가 일격을 당해 날아가다니.

갑자기 무슨 봉변이란 말인가.

하지만 이 순간, 그녀는 다른 생각을 해야 했다. 의문을 가질 게 아니라 적을 상대할 생각을 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녀가 혼절하기 전 마지막 생각인 까닭이었다.

퍼억!

흐릿한 인영이 자신의 배를 쳤다. 오장육부에 커다란 충격이 가해졌고, 단전의 내기가 타격을 입었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와중에 상대의 모습이 보였다.

얼굴은 흐릿하여 보이지 않았으나 느낄 수 있었다.

‘젊은 협객?’

눈동자에 그의 모습이 잠시 어린 순간, 막소소가 튕겨 나가며 정신을 잃었다.

그렇게 혁련패와 막소소가 쓰러졌다.

흐릿한 인영, 진우선이 얼른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혁련패에게로 다가갔다.

“저놈 잡아!”

뒤에서 황일사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 말보다 먼저 폭풍처럼 달려오는 사중효 등보경이 있었다.

‘찾았다!’

진우선이 재빨리 비단 주머니를 자신의 품에 챙겨 넣었다. 안에 무언가 들어 있는 게 느껴졌다.

목적 하나는 이뤘다.

진우선이 고개를 들었다.

등보경이 흉흉한 기세를 뿌리며 오 장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네놈이 감히!”

등보경이 흉신악살 같은 얼굴로 소리쳤다.

진우선이 그를 바라보며 검을 뽑았다.

등보경의 기세가 굉장했다. 제대로 상대하려면 검을 드는 게 나았다.

곧 등보경의 주먹에서 어마어마 한 경력이 쏟아져 나왔다.

진우선이 검을 힘껏 휘둘렀다.

콰앙-!

힘과 힘이 충돌했다.

반동이 커서 주변으로 힘의 잔류가 흘렀다.

“흡!”

등보경이 급히 숨을 들이마시며 눈을 부릅떴다. 눈동자에 붉은 핏대가 바짝 섰다. 단 일격 만에 내공이 진탕됐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진우선의 내력은 특별했으니까.

광륜을 이룬 오행진기는 그 자체로도 강력한데, 벽사의 힘까지 더해졌다.

그래서 등보경과 진우선의 내공이 마주칠 때, 벽사의 능력이 등보경의 내력으로 파고들어 깨부순 것이다.

“흐아아!”

하지만 등보경은 이에 굴하지 않고, 괴성을 지르며 더욱 공격해 들어왔다.

검이 바로 닿지 못하도록 세 걸음의 간격을 유지한 채, 주먹에 내력이 어린다고 느껴질 때마다 힘껏 쏘아냈다.

그의 모습이 사나운 맹수 같았다.

시뻘건 사기가 성난 불길처럼 전신에서 피어오르기까지 하니, 보는 이로 하여금 전율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 순간. 진우선의 검에서 빛이 일었다.

화아아-!

진우선은 침착한 눈으로 등보경을 바라보면서, 검을 마구 베어가며 강렬한 빛을 쏘아냈다.

광영무의 초식이 등보경에게 뿌려졌다.

검에 어린 빛이 시뻘건 사기를 덮었다.

그리고 소멸시켰다.

“컥-!”

등보경이 고통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입을 벌렸다. 숨을 쉬지 못한 채, 검게 죽은 피를 마구 게워냈다.

서로 부딪친 건 한 초식밖에 되지 않는데, 등보경이 곧바로 내상을 입은 것이다.

어느새 십 장 앞까지 달려오고 있던 황일사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눈동자도 파르르 떨렸다.

순식간에 무슨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아무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말도 안 돼!”

목단화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도련주의 삼호법 중 한 명인 사중효 등보경은 광검 좌무경보다도 강한 자였다.

그런 자를 단숨에 꺾어버리다니.

비록 기습이고 패퇴시킬 목적이었다지만, 그렇다고 바로 이해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감탄은 여기까지였다.

“지금이야!”

말을 타고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던 목단화가 재빨리 진우선에게 외치며, 그와 동시에 그가 탈 말을 끌고 길 위로 달려 나왔다.

진우선은 그녀의 외침을 들은 순간, 힘껏 땅을 박찼다.

타앗!

방금 등보경까지 눕혔으니 목적을 얼추 달성한 셈이었다.

진우선이 섬전 같이 달려와 말에 올라탔다. 아무도 뒤쫓지 못할 속도였다.

휙-!

박차를 가하며 진우선이 비수를 던졌다.

“컥!”

뒤에서 비명이 터졌다.

황일사의 목소리 같았다.

하지만 진우선은 뒤돌아보지 않은 채, 옆에서 말을 달리는 목단화에게 말했다.

“딱 좋았어요!”

“너! 진짜!”

삽시간에 벌어지는 일들을 모두 지켜본 목단화는 애간장이 다 타들어 간 상태였다.

진우선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다행이라는 듯이 대꾸했다.

“두 사람이 방심하고 있어서 기습이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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