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영검전-116화 (116/225)

116.

#대법의 날이 다가오다 (2)

이틀이 지났다.

즉, 대법이 치러지기 육 일 전이었다.

사하객잔의 별채를 나선 진우선은 탁운비와 함께 곧장 임시 거점인 양수객잔으로 향했다. 그곳은 멀지 않았다.

“사흘간 머물려고 하오.”

“알겠습니다. 식사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소고기면과 만두로 하겠소. 넉넉히 주시오. 안에서 먹겠소.”

“그럼 객실부터 알려드리겠습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점소이가 능숙하게 진우선과 탁운비를 안내했다.

둘은 점소이를 따라 양수객잔 안쪽으로 몇 번 꺾어 들어갔다.

그러자 옆쪽에 고즈넉한 전각 한 채가 보였다.

진우선은 점소이를 따라가다 말고, 그 전각 입구에 앉아 있는 학사풍의 중년인에게 다가갔다.

“혹시 이런 물건을 보신 적 있소?”

진우선이 품에서 자신의 인장을 꺼내 보여주며, 내공을 슬쩍 불어넣었다.

“이건 나보다는 윗분께서 보셔야겠군. 들어가시게.”

학사풍의 중년인이 출입을 허가했다.

그렇게 두 사람이 거점 안으로 들어섰다.

진우선은 이전에 목단화가 하는 걸 보고 배웠는데, 이제 능숙하게 해내고 있었다.

내부에 있던 무원주 이능운이 두 사람을 보며 삼엄한 표정으로 물었다.

“누구요? 인장은?”

“아! 진우선입니다.”

“저는 탁운비입니다.”

진우선과 탁운비가 얼른 역용을 풀었다. 진우선은 인장도 내밀었다.

그제야 이능운이 편하게 둘을 맞이했다.

“아! 두 사람 다 역용을 한 거였군. 왜 여기까지 역용하고 들어와서 사람 놀라게 해? 점소이도, 홍 학사도 다 우리 사람인데.”

“깜빡했습니다. 신양에서 머무는 동안 계속 역용하고 다녀서요.”

“그랬군. 근데 참 사파 무인답더군, 외모가.”

이능운은 그렇게 말하며 두 사람을 안내했다.

“이쪽으로 와. 각주님이 기다리고 계신다.”

“알겠습니다.”

진우선이 앞장서고, 탁운비가 그 뒤를 따라 큰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서 만상각주 공야청이 둘을 반갑게 맞았다.

“두 사람이 함께 왔군. 서로 좀 친해졌는가?”

“네, 탁 형이 호방하여 잘 대해주었습니다.”

“진 대협이야말로 의지가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허허. 서로 친해졌다는 말이군. 잘 알겠네.”

진우선과 탁운비가 서로를 칭찬하니, 공야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백혜원에서 함께 온 두 사람이 자신을 소개했다.

“진 무사. 처음 뵙겠소. 백혜원의 여의량이라고 하오.”

“나는 백하련이에요. 진 무사님의 뛰어난 활약에 많이 감탄했어요.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백혜원에서는 공식적으로 백무원의 무인들을 무사라 칭하는 모양이었다.

“반갑습니다. 진우선이라고 합니다.”

“저는 탁운비입니다. 백혜원의 귀인 분들을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진우선에 이어 탁운비도 성심껏 첫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장내의 사람들끼리 통성명을 하고 나자, 공야청이 곧장 본론을 꺼냈다.

“자네가 보내준 내용은 잘 받았네. 그래서 우리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신양과 주변에 포진해 있지. 그녀는 어땠나?”

“그녀는 순수하고 맑았습니다. 가능하다면 구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결정을 내렸군. 고맙네. 하지만 사전에 구하기는 어렵겠지?”

“그럴 것 같습니다. 정확한 장소를 알지 못할 뿐더러, 마음도 닫혀 있었습니다. 사도련주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나 컸습니다.”

공야청은 가장 먼저 진우선이 서문영화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물었다.

그때, 백하련이 둘의 대화를 꼼꼼히 확인했다.

“지금 사선녀에 관해 말씀하시는 거죠?”

“맞습니다.”

“그녀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면, 진 무사님이 대법의 현장에 뛰어드셔야 할 수도 있습니다. 매우 위험할 거예요.”

“알고 있습니다. 그럴 상황이라면 마땅히 그래야지요. 어차피 대법 자체를 사전에 막지 못한다면, 현장에서 상대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아! 그건 그렇지요. 진 무사님의 말이 맞습니다.”

백하련이 진우선의 담대함에 놀랐다. 그가 의협심이 강하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으나, 현실로는 처음 느낀 까닭이었다.

그녀는 남을 위해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는 사람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건 똑똑하지 못한 것이고, 수지타산도 전혀 맞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진우선이 너무나 낯설었다.

그때 공야청이 자연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건 진 무사가 이해해주게. 백 책사가 최근 사도련의 행보를 주시해 오다 보니, 매우 조심스러워졌다네.”

“저는 괜찮습니다.”

공야청이 진우선에게 살짝 양해를 구하고 회의를 이어갔다.

“어쨌거나 지금 나온 이야기를 보면, 우리는 정공법을 취할 수밖에 없겠군.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면서, 확실한 정보를 찾는 수밖에 안 남았지. 그러면 현장에서 결전을 치르게 될 거야.”

“힘든 결전일 겁니다.”

여의량이 공야청의 계획에 넌지시 의견을 던졌다.

“그렇겠지. 하지만 악중뇌 사마광후의 흔적을 찾지 못했으니 그 수밖에 없지 않나? 사도련주와 사도련의 무인들은 개봉에서 움직일 준비를 한다고 하더군.”

“저도 각주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다만 쉽지 않겠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래도 칠사와 다른 수뇌부들의 움직임은 철저히 감시하고 있습니다. 사마광후가 아무래도 비밀리에 대법을 펼칠 장소에서 준비하고 있는 듯한데, 혼자서 모든 일을 할 수는 없으니 행적이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백하련이 공야청과 여의량의 의견에 자기 뜻을 더했다.

칠사를 뒤쫓기만 해도 사마광후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들의 의견을 들으며 현재 상황을 충분히 이해한 진우선이 질문을 던졌다.

“그럼 서문 소저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대법의 순간을 생각해봤다네. 우리가 그곳을 찾아갔을 때, 대법이 펼쳐지기 전이라면 그나마 낫고, 펼쳐지는 중이라면 목숨을 걸어야 하고, 펼쳐진 후라면 그녀를 잊어야 할 거라네.”

공야청이 탁운비를 흘깃 보고는 말을 이었다.

“거기에 서문영화를 살리고 서문세가도 구하려면, 칠사 중에 여인들의 흔적은 절대 남기지 않아야 해. 주검조차 없어야 한다는 말이지. 대법이 아마도 동굴에서 펼쳐질 텐데, 동굴을 무너뜨려 시체를 묻어버려도 안 되네. 파헤쳐서 확인할 수 있으니까. 대체할 시체를 구한다 해도 탄로 나기가 십상이고.”

“제약이 너무 많군요.”

“그렇지. 그래서 어려워. 너무나 어려울 거야. 어쨌든 칠사가 모여 있을 텐데 그들 전부를 처리해야 할 테니까.”

“하아-!”

탁운비가 땅거죽이 꺼질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누가 보더라도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인 까닭이었다. 이럴 거면 차라리 포기하자는 말이 이해하기 쉬웠다.

하지만 공야청의 말은 이게 다가 아니었다.

“탁 공자. 아직 이야기가 끝난 게 아니라네. 칠사가 중상을 입어 움직임이 제약된다면, 백무원에서 빼돌릴 계획이지. 악중뇌가 모르 게 말이야. 무원주가 그를 상대하며 시선을 뺏을 것이네.”

“칠성홍옥대법을 저지하는 큰 계획에 이 방안이 포함되어 있지.”

이능운이 공야청의 말을 거들었다.

진우선이 말했다.

“만약 그렇게 상황이 흘렀다면, 제가 탁 형과 함께 서문 소저를 탈출시키는 일이 남은 거군요.”

“그렇다네.”

“이게 그나마 우리가 생각한 가장 가능성 큰 방안이네. 서문영화와 서문세가를 다 구하는 방법이지. 물론 들어서 알겠지만, 성공할 확률은 매우 희박해.”

공야청이 유일한 방안이라는 듯이 이야기했다. 그때 진우선이 물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면 대법 장소로 가는 길을 사도련이 막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대법이 펼쳐지고 있다면, 그건 어떻게 깰 수 있을까요?”

“우리는 어떻게든 대법을 막을 계획이네. 사도련의 여러 무리가 막아서겠지만, 숭의각, 진양각, 현청각 무인들을 당해내지는 못할 걸세. 그리고 대법을 깨는 건 시전자를 공격해서 무너뜨려야겠지. 그건 무원주가 맡을 걸세.”

이능운이 공야청의 말을 들으며 자신의 역할에 고개를 끄덕였다.

진우선이 계획을 이해했다.

“잘 알겠습니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고, 또 모든 상황이 딱딱 들어맞아야만 구출을 할 수 있겠군요.”

“그렇지. 원래 다 죽이는 것보다, 죽이지 않고 구출하는 게 힘든 법이라네. 게다가 우리가 장소를 알지 못하니 상황에 끌려가고 있지. 그래서 이 일의 성공 가능성을 만에 하나라 했던 걸세.”

“사실 저는 가능성이 만에 하나도 안 될 거로 생각해요. 그저 칠성홍옥대법을 파훼하는 목적은 변함이 없으니 크게 반박하지 않는 겁니다.”

백하련이 북풍처럼 싸늘하게 한 마디 덧붙이면서, 냉담한 눈빛으로 탁운비를 쏘아보았다.

마치 너 때문에 공연한 피해가 막심할 게 예상된다는 눈초리였다.

“혹시 그때 아버지는 어디에 계실까요? 도움을 청할 수 없겠습니까?”

“탁 각주는 그때 사도련주를 상대하고 있을 거라네. 만약 사도련주가 오지 않는다면, 그가 대법을 막아줄 수도 있을 거네.”

“알겠습니다.”

탁운비가 낙심하여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부탁 하나에 만상각의 계획이 얼마나 복잡해지고 꼬였는지 여실히 느끼는 까닭이었다.

그래서 혹시나 아버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했지만, 그것도 어려워 보였다.

이능운은 그런 탁운비를 뒤로한 채 진우선에게 당부의 말을 건넸다.

“우선아.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긴다면, 이 전각 앞에 달린 종을 세게 쳐주고 가. 그 앞에 홍 학사 아니면 왕 학사가 있을 테니 간략히 말해주고.”

“알겠습니다.”

***

그 시각.

대별산맥의 어느 동굴 속에서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야명주가 여러 개 박혀 있어 그들의 얼굴이 확인되었다.

사도련의 삼대호법 중 두 명인 악중뇌 사마광후와 사영화(邪影花) 해금파였다.

“막내야, 다녀왔구나. 수고했다. 련주님께서는 뭐라고 하시더냐?”

“련주님께선 대법을 사흘 일찍 시작한다는 말씀을 반기시면서, 곧 출발한다고 하셨습니다.”

“다행이군.”

“정무맹이 무너지는 걸 누구보다 많이 반기시니까요. 아주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실 줄 알았지.”

사마광후는 해금파가 전해주는 말에 기분 좋게 웃었다.

상황이 계획대로 착착 흘러가고 있었다.

“대형의 결정이 누가 봐도 타당합니다. 정무맹 잡것들이 냄새를 맡고 너무나 몰려들었지 않습니까?”

“철없는 아이들과 말단 놈들이 조금씩 입을 열었겠지. 예상했던 바다. 그래서 날짜를 정해뒀던 거야. 그걸 저들이 알아야 이렇게 계획을 변경함으로써 혼란도 줄 수 있으니까. 그들이 아는 날은 이미 다 깨어난 칠대악인을 만나는 날이지.”

“역시 대형은 이 상황도 다 염두에 두셨었군요. 실은 련주님도 그리 보셨습니다.”

“련주님이야말로 사도 무학과 방술(方術)의 끝에 계신다. 그분을 허투루 봐선 안 돼.”

“호호. 제가 그럴 리 있겠습니까? 이래봬도 제가 련주님의 호위입니다.”

“하긴, 련주님의 진면목을 가장 잘 알 사람이 너겠구나.”

“맞습니다. 사실 련주님의 능력은 이미 하늘을 넘어섰기에 호위도 필요 없으신 분이죠.”

사영화 해금파는 사도련주를 그림자처럼 호위하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정말 그림자 같아서 스스로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한, 알아챌 수 없었다.

“그리고 련주님은 대형이 칠성홍옥대법을 꼭 이루길 바라시더군요.”

“한이 많은 분이시다. 고금(古今) 천하에 큰 뜻을 품은 분이시지.”

“그렇죠. 저도 잘 알고 있어요.”

“그래. 그렇겠지.”

사마광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해금파가 주변을 한 차례 둘러보았다.

팔괘가 그려진 커다란 돌판 위에, 사마광후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나머지 일곱 방위에 놓인 일곱 개의 홍옥도 보였다. 칠대악인의 내단이었다.

그 앞쪽으로는 사람이 누울 수 있는 일곱 개의 커다란 제단이 있었다. 칠사가 누울 자리였다.

그리고 팔괘의 중심에 놓인 수미금강령도 눈에 들어왔다.

이는 대법으로 백 년 전의 시간에 멈춰 있는 홍옥을 깨울 법구이리라.

모든 게 갖춰져 있었다.

“대형, 그럼 준비는 다 되신 거죠?”

“그래. 다 되었다.”

“그럼 이형에게 바뀐 날짜를 전달하겠습니다.”

이형(二兄)은 해금파가 등자경을 부르는 말이었다.

“그리하자꾸나. 나는 이제부터 사흘 동안 상태를 최대로 끌어올릴 생각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제 무엇을 하면 될까요? 련주님께서 대법이 끝날 때까지 대형을 도우라고 하셨어요.”

“련주님께서 배려를 베푸셨군. 그렇다면 네게 맡길 게 있다. 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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