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영검전-224화 (224/225)

224.

#황금존자 (2)

쿠쿠쿠쿵-!

모습을 드러낸 황금존자가 노기충천하여 외치자 일대가 심히 요동쳤다.

그가 서릿발처럼 뿜어내는 압도적인 기세에 산봉우리들이 위태롭게 흔들렸고, 사방의 대기는 죽음의 비명을 질러댔다.

“감히 나를 방해하려 들어?”

황금존자의 흰자위 없는 새까만 동공에서 칠흑빛 안광이 섬찟하게 흘러나왔다. 전신에서 활활 피어오른 검은 불길은 더욱 맹렬하게 타올랐다.

그렇게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하는 분노의 살기가 진우선에게로 쏟아졌다.

진우선이 창백해진 얼굴로 인상을 잔뜩 찌푸리더니, 재빨리 정심을 추스르며 눈을 한 차례 감았다가 떴다.

“후우…….”

진우선이 황금존자를 직시했다.

한숨소리는 힘겹게 들렸으나, 안색은 극히 차분했다. 눈동자도 심히 맑고 깊었다.

눈빛이 한 점 흔들림도 없는 것은 끝까지 맞서겠다는 굳건한 의지의 발현이리라.

그때였다.

슈우우-.

사멸의 검은 기운이 지배하는 전장에 한 줄기 빛이 그어지며 정적이 내려앉았다.

새하얀 꼬리를 흘리는 광륜검이 고고하게 허공을 날아오고 있었다.

빛이 흑암을 가른다.

마치 우주 삼라만상 가운데 홀로 존재하는 듯한 광륜검의 고고한 궤적이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를 깨트렸다.

그러자 황금존자가 뿜어내던 초월적인 위압감이 해소되기 시작했다.

곧 허공을 선회한 광륜검이 진우선의 손아귀에 안착했다.

“크크크!”

황금존자가 오싹한 광소를 흘리며 진우선을 싸늘하게 노려보았다.

그러더니 일말의 표정 변화도 없이, 피가 철철 흐르며 광대뼈마저 드러난 상처를 손으로 훑었다.

바로 그때, 갑작스레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뺨을 가로지른 굵은 상처에서 검은 기운이 몽글몽글 피어오르더니, 쩍 벌어진 상처가 급속히 아물어가는 것 아닌가.

너무나 비현실적인 모습에 진우선과 검노야가 눈을 부릅떴다.

‘스승님. 저건……. 도무지 믿을 수 없습니다!’

[허! 전설 속 괴물이나 가졌을 모습인데……. 세상천지에 어찌 이런 일이!]

‘바로 대연만궁(大然滿宮)을 준비해야겠습니다.’

진우선이 광륜검을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대연만궁은 금선무의 여덟 번째 초식으로, 천공에 혼돈의 기운이 사라지지 않은 걸 보며 지대한 위기감을 느껴 만들어낸 절초였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삼문협에서 내려온 후 소림사로 향하는 동안에 궁구할 시간이 너무나 짧았던 까닭이었다.

무(武)의 영역은 한정이 없는데 시간마저 넉넉지 않으니 단초를 잡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곁에 검노야가 있었다. 신선경에 오른 검노야가 지도하고, 진우선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결국 두 사제는 소림에 당도하기 직전에 간신히 금선무의 팔초식을 완성해낸 상황이었다.

[그 판단이 옳다. 그러나 각별히 주의하거라. 네 내력으로는 온전히 한 초식을 펼쳐내는 일도 극도로 어려울 것이니.]

‘알겠습니다.’

진우선이 두 눈으로 황금존자의 작은 호흡마저 주시하며, 조용히 모든 내력을 끌어올렸다.

“발악하지 마라. 어차피 네놈은 여기서 죽는다.”

황금존자의 섬뜩한 시선이 진우선의 심령을 단박에 꿰뚫어 버릴 듯이 쏘아져 왔다.

그와 함께 주변에 가득 찬 암흑신령광류가 일제히 진우선에게로 적의를 드러내며 휘몰아쳤다.

쏴쏴쏴쏵-!

사방에서 광풍이 일었다.

수천수만의 발톱이 마구 할퀴듯 거친 바람이 진우선을 연신 때리고 긁었다.

“크헉!”

무지막지한 풍압과 예기에 진우선이 신음을 토해내며, 얼른 광륜검을 들었다.

차츰 검 끝에서 현묘한 초식들이 쏟아지며, 진우선은 광풍들을 아슬아슬하게 빗겨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안색은 어느새 잔뜩 굳어져 있었다. 폭풍 그 자체인 암흑신령광류의 위력이 심상치 않은 까닭이었다.

진우선이 황금존자의 공세를 막아내는 중에 한두 걸음씩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안 돼! 더는 물러설 수 없어!’

이렇게 계속 떠밀리다간 한없이 밀려나며 전신이 천 갈래 만 갈래로 갈려 나갈 것이리라.

푹-!

온몸을 감싼 금빛 기운이 몸집을 한 차례 부풀린 순간, 진우선이 이를 악물고서 즉각 땅에 검을 꽂았다.

‘오래 버틸 순 없다!’

진우선이 모든 정신을 집중했다.

바짝 곤두선 감각들이 황금존자에게로 파고들 빈틈을 살폈다.

눈 깜빡할 새도 없었다. 찰나의 순간에도 암흑신령광류의 힘이 엎치고 덮쳐 더욱 심하게 옥죄어오는 까닭이었다.

촌각을 지체할 때마다 내공의 소모가 점점 많이 늘어나고 있었다.

입이 바짝바짝 말라 들어갔다.

그러던 중.

‘저건?’

광풍과 광풍이 덮쳐오는 사이에 미세한 간격이 있었다.

찰나마저 끊어서 살필 수 있어야만 볼 수 있는 차이였다.

[우선아! 그건 좋지 않다. 거길 비집고 들어가는 건 목숨을 걸어도 너무나 어려운 일이야!]

‘스승님. 하지만 이 간극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주문강의 기운이……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습니다! 곧 버티는 것조차 힘들어질 겁니다.’

[아!]

황금존자가 뿜어내는 기운에서 전해지는 중압감이 어마어마하여, 진우선은 지금도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이는 진마기와 사령기를 녹여낸 혼원기로 펼치는 암흑신령광류 최강의 초식, 파천흑풍(破天黑風)이 중첩되며 일어나는 극악한 효과였다.

[세상천지에 이런 무공이 존재할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구나. 외부로 분출한 힘이 어찌 하나도 사라 지지 않고 층층이 쌓일 수 있단 말이냐?]

‘그래서 내력과 무공을 흡수했던 모양입니다.’

[그래. 그거였어.]

그러면서 진우선의 눈빛 속에 담긴 의지가 굳건함을 알아챈 검노야가 당부의 말을 전했다.

[조심하거라.]

진우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눈에서 신광을 뿜으며, 발끝을 내밀었다. 그렇게 겹겹이 쌓인 파천흑풍의 공세 속으로 파고들었다.

‘간극을 가른다!’

진우선이 오직 일념으로 눈을 밝히며, 겹겹이 쌓여서 연거푸 덮쳐오는 파천흑풍의 흐름 속을 빠르게 나아갔다.

좌로 향했다가 우로 나아가기를 몇 차례 거듭했다. 멀리서 보면 헤매는 것으로나 보이리라.

하지만 황금존자는 단박에 진우선이 순간과 순간의 교차점을 밟으며, 갈지자(之)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걸 알아챘다.

“그게 보였다고? 한 수가 있었구나. 쥐새끼 같은 놈!”

황금존자가 노성을 터트리며 눈을 부릅떴다.

‘늦어져선 안 돼!’

찰나의 간극을 밟아나가는 진우선이 속도를 더 냈다.

황금존자도 한없이 기세를 끌어 올렸다.

그의 전신을 뒤덮은 검은 불길이 무섭게 치솟는 걸로 모자라, 순흑빛 염화마저 마구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타타탁- 소리가 섬찟하기 그지없었다.

그에 숨통을 조여오던 어마어마한 압박이 더 심해졌다. 금방이라도 온몸이 짓이겨져 터질 것만 같았다.

“흡!”

진우선이 아예 숨을 멈추었다.

몇 호흡만 참으면 될 터였다.

그렇게 촌각을 아끼며 앞으로 몸을 던졌다.

이윽고 황금존자의 삼 장 앞에 도달했을 때, 광륜검에서 섬광이 터져 나왔다.

화아악-!

일대를 물들인 순백의 빛 속에서 검이 유유히 노닐었다.

검초는 빠름이 없으면서 빠르지 않음도 없었다. 강함이 없으면서 강하지 않음도 없었다.

검을 휘두르는 진우선의 모습도 자유로워 보였다.

극을 지나왔으나 지나온 극이 없으니, 그저 있는 그대로 홀로 거닐 뿐이었다.

진우선은 비로소 비움의 도에 다가가고 있었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쾅-!

콰쾅-!

콰콰콰쾅-!

천지간에 순백의 빛이 가득 찬다고 느껴질 무렵, 심혼을 송두리째 뚜들기는 어마어마한 충격이 가해졌다.

“큭…….”

진우선이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그와 동시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멈추면 끝이다!’

충격이 전신을 울릴 때마다 내력의 흐름이 끊어졌고, 자연히 초식도 뚝뚝 끊겼다.

하지만 멈추는 순간, 대연만궁의 힘은 소멸될 것이다. 그래선 안 되었다.

진우선이 입술을 질끈 깨물고서 뼈가 아스러지는 고통을 견뎌내며 검초를 이어나갔다.

손끝이 어지러워질수록, 빛의 세계가 마구 흔들렸다.

쩍-!

빛의 세계에 균열이 갔다.

그 틈으로 흑암의 기운이 스며들었다.

‘안 돼……!’

진우선이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혼신의 힘을 다해 버텨냈다.

그러나 혼돈의 기운은 먹물이 종이에 마구 스며들 듯 걷잡을 수 없이 빛을 잠식해갔다.

결국 진우선의 상체가 털썩 무너져버렸다.

세상에는 다시 어둠만이 가득해졌다.

울컥-.

진우선이 얼굴 바로 앞에 선혈을 한 움큼 토해냈다.

시커먼 피 웅덩이 속에 커다란 내장 파편들이 여실히 보였다.

[우선아-!]

검노야가 애통하여 울부짖었으나, 진우선의 대답은 이어지지 않았다.

백척간두의 상황에서 광륜의 오행진기와 패왕금룡신공의 선천지기를 모두 끌어 써서 대연만궁을 펼친 탓에, 숨이 끊어지기 직전이었으니까.

[아! 주문강은 삼문협에서 필시 소멸했어야 마땅하거늘, 대체 어떻게 살아나고 어떻게 이리 강해졌단 말인가!]

그때, 방각선사가 얼른 진우선에게로 다가왔다.

“신, 신인!”

곧장 진우선의 호흡과 맥을 확인한 방각선사가 곧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이럴 수가…….”

“숨이 꺼져가는 모양이지? 곧 바스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몸으로 천룡층층만겁공(天龍層層萬劫功)을 버티려 하다니, 너무나 무모했어.”

천룡층층만겁공은 황금존자의 삼대신공 중 하나로, 암흑신령광류의 절초 파천흑풍을 겹겹이 포갤 때마다 위력을 곱절로 배가시킬 수 있는 절세의 신공이었다.

황금존자가 십 장 앞으로 다가왔다.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한 얼굴의 방각 선사가 그를 보며 무언가 체념한 듯이 대꾸했다.

“천룡층층만겁공이라니, 흉악하기 그지없는 이름이구려.”

“천하에 둘도 없는 절세신공인데, 인정하기 싫은 모양이군.”

“그대를 온전히 지켜주진 못했으니, 절세신공은 아니지 않소?”

“대신 그놈은 목숨이 경각에 달렸지.”

황금존자가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으스대며 말하는 꼴이 우습기만 했다.

그가 입은 옷은 갈기갈기 찢긴 데다 머리는 봉두난발이었고, 입가에선 한 줄기 선혈이 흘러내리고 있는 까닭이었다.

방각 선사가 그런 황금존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물었다.

“그런데 방연 사제는 어디 있소? 어떻게 한 거요?”

“탁탑천왕은 제 역할을 마치고 천명을 다했지.”

“천명을? 그대는 설마 내 사제를 토사구팽한 거요?”

“토사구팽이라니 가당치도 않군. 짐의 대업을 그깟 사냥에 치부하지 마라. 탁탑천왕은 천하대업을 위해 살신성인의 자세를 몸소 보여준 것이다.”

“허어-!”

방각 선사가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황금존자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물었다.

“어디까지 채우시려는 거요? 그런다고 거대한 탐심이 다 채워지겠소?”

“그래도 소림의 방장이라 내 뜻을 알고 있었구나.”

“그런다고 끝이 있겠소? 그리고 이렇게 채워서 금방 생사경에 오르면, 그다음엔 무엇이 있어야 마음이 헛헛하지 않겠소?”

“네놈이 걱정할 게 아니다.”

황금존자가 매서운 눈으로 방각 선사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하늘을 떠도는 암흑신령광류에서 검은 기류, 혼운이 흘러 왔다.

혼운에서 흑혈이 열리고, 그 시커먼 아가리가 덮쳐왔다.

하지만 방각 선사는 이 끔찍한 상황에도 두려워하지 않은 채 조용히 염불을 외웠다.

“불조시여. 이 인면수심의 악마를 인세에서 구해주시옵소서!”

후우웁-!

흑혈이 방각 선사를 단박에 삼켜 버렸다.

황금존자가 잠시 우두커니 선 채 눈을 감았다.

눈을 뜬 건 반 각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번쩍-!

끔찍하게 날카로운 칠흑빛 안광이 섬뜩한 광채를 흘렸다.

입가에 흐르던 피는 어느새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배부르게 먹고 자란 것처럼 온몸에 윤기가 흘렀다.

“일원진군! 이리 오너라. 너를 내 전령으로 삼아야겠구나.”

“예, 하명하시옵소서.”

황금존자가 모습을 드러낸 후 계속 일대를 지키며 대기하던 일원진군이 재빨리 다가왔다.

“너도 보았다시피 천하의 가장 강대한 적을 쓰러뜨렸다. 이제 짐은 숭산에서의 볼일이 끝났느니라. 대공을 이룰 일만 남았다. 그러니 네가 잠시 호법을 서거라.”

“분부를 받드옵니다. 그리고 청풍자에게 제혼기를 펼치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럴 필요는 없다.”

“알겠사옵니다.”

일원진군이 고개를 조아리며 더는 묻지 않았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삼 장여 뒤로 물러나 뒤돌아서서 사방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때, 혼운이 소리 없이 일대를 휘돌았다.

후우웁-!

“헉! 조, 존자……!”

일원진군이 흑혈에 빨려 들어갔다.

한데 황금존자의 탐욕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흑혈이 곧 널브러져 있는 청풍자도 집어삼켰다.

“크하하하하-!”

일대를 전율시키는 광소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이 역시 끝이 아니었다.

진우선을 바라보는 황금존자의 눈에서 짙은 욕심의 광기가 끓어 올랐다.

“후후후! 일대진미를 맛보게 되었구나. 네놈은 영광인 줄 알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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