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귀환-10화 (11/83)

(第十章)

마연과 마운, 공서하는 또 며칠이 지나지 않아 떠나갔다.

각자의 할 일이 바쁜 사람들이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마연은 떠나가던 순간까지 구혜린을 향해 걱정의 눈초리를 보였지만, 끝내 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어쩔 수가 없다. 상황이 그러니, 믿을 것은 정말 언젠가 생각했던 대로 망설이는 구혜린의 마음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더 흘러갔다.

와룡서원의 아이들은 제공권 훈련에 익숙해져 갈수록, 조금씩 더 녹초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단순히 눈치를 볼 때와 조금씩 감각을 일깨워 싸움을 시작한 뒤의 변화다.

아무래도 제한대련으로 인한 심력 소모가 커지면서 일어난 경우인 것이다.

“그러면 나는…….”

마현도 그런 제자들의 모습을 마냥 지켜만 보고 있을 정도로 모난 선생은 아니었다.

“약을 만들어야지.”

봄에 구혜린을 구하기 위해 산에 들어가 땄던 약초들과 이번에 새로 구한 약재들을 합쳐 약을 제조한다. 물론, 일반적인 평범한 약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체력 회복에 도움이 되는 데다, 지속해서 섭취할 경우 내공의 성장률을 올려주는 일종의 영약이라 볼 수 있는 탕약. 봄부터 계획했던 것이, 여름이 다 올 무렵에야 완성된 것이다.

“보자, 재료가…….”

그렇다고는 해도, 오랜만에 탕약을 직접 제조하려니 기억을 떠올려야만 했다. 기본적인 하수오와 상역에 황기, 거기에 더해 도라지에 천궁까지 넣고 한 번에 달인다.

이른 새벽.

아이들보다 두 시진이나 먼저 일어나 부채질을 하고 있던 마현이 어두운 하늘을 보며 웃음을 흘렸다.

“재미있지요?”

아무도 없는, 그 무엇도 보이지 않는 밤하늘에서 대답이 돌아올 리는 만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현은 계속해서 말문을 이어나갔다.

“예전에는 스승님이 저한테 이렇게 약을 달여주셨는데.”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선생으로서의 몫.

가르침의 부담감.

또한 선택에 대한 고민.

자신의 두 스승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학사의 길을 걷던 마현에게 무공을 알려주며, 많은 고심에 빠졌을 게 분명하다.

또한 더 좋은 가르침을 주기 위해 매일 주야로 고민했을 터다.

지금의 마현이, 서원의 제자들을 보며 생각하듯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도저히 재미가 없을 수가 없었다.

“스승님들께 가르침만 받던 제가…….”

이제 와서는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

살아 계신다면.

함께 중원으로 돌아왔더라면.

두 스승 모두 진짜 세월이 무상하다며 배를 잡고 웃으셨을 터다.

‘잊으라고 하셨지만…….’

어찌 잊을까.

마왕을 쓰러트리고 죽어가던 그 순간.

자신들이 존재했음조차 잊고, 행복하게 살아가라 말하던 두 스승은 마현의 뇌리에 평생토록 잊히지 않을 존재들이었다.

‘그때 스승님들도 이러한 마음이셨을까?’

마현을 혹독하게 훈련한 뒤, 먼저 잠에서 깨어 약을 달이며 투덕거리던 두 스승은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 애가 깬다며, 괜한 소란 피우지 말라며 소리치던 그분들은 무슨 마음이었을까.

그때는 몰랐다.

하나 지금은 알 것도 같았다.

‘그저 좋을 뿐이다.’

딱히 커다란 희망이라거나, 목표, 바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냥 이러한 상황이 좋을 뿐이다.

아이들을 위해.

아끼는 제자를 위해.

누군가를 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소박한 행복이다.

‘이런 마음이구나.’

스승이 제자를 바라보는 마음.

그리고 부모가 자식을 향하는 마음.

아낌없이 베풀 수 있는 근원에는 그러한 마음이 있던 것이다.

‘온정(溫情), 온정이로구나…….’

마현의 입가로 점점 더 짙은 미소가 번져나갔다.

* * *

시간은 쏘아진 화살과도 같이 흘러, 가을이 지나, 다시금 추운 겨울로 돌아섰다.

‘벌써 일 년인가……!’

아이들에게 올바른 무공을 전수하기 시작한 지 일 년.

이제 서원의 제자들은 모두 제공권을 얻었으며, 내공도 오 년 치나 쌓았다. 뿐만이랴? 글공부에서도 제자 누구 하나 빠짐없이 소학(小學)을 완전히 끝냈다.

유독 진도가 빠른 백산과 정순욱, 소수린 등은 벌써 사서삼경의 대학(大學)을 익히는 중이었다. 빠르다, 너무나 빨라 정말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한 마음은 비단 마현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 역시, 자신들의 성장에 놀라워하고 있었다.

또한 조금씩 더 정신이 성숙해지며, 마현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지고 있었다. 와룡서원에 들어온 지 일 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마현은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모든 제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돌보았다.

비록 표현이 서투르거나, 올바르지 않은 적은 있었어도 제자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마현은 그들에게 있어 최고의 스승이다.

만약 와룡서원이 아닌 다른 곳에서 글을 배웠다면 크게 후회했을 것이다. 이는 반골인 정순욱마저도 인정하고 있는, 솔직한 사실이었다.

그러한 감정에 편류되고 있는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구혜린.

봄의 막바지에 마현의 도움을 받아, 겨울에 이르기까지.

근 일 년 동안 함께 와룡서원의 제자들과 부대껴 산 것은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제 나는 어찌해야 하나…….’

내상은 진즉에 다 나았다.

그러한 사실은, 굳이 밝히지 않아도 예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일 터다. 마현뿐만이 아니라, 마 씨 일가 모두가 같다. 그녀가 언제든 떠나갈 준비가 되었음을 알고 있지만, 굳이 보내려 하지 않았다. 짐처럼 눌러앉아 있다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 누구도 불편해하지 않았다.

그래서 너무나 고마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역시,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떠나야 하나.’

마 씨 일가의 가족들.

와룡서원의 제자들.

조금씩, 모두와의 정이 깊어지고 있었다.

떨어지기 싫다.

사실, 요즘은 가끔 그런 생각도 들었다.

복수도, 무엇도 잊고, 그냥 이대로 유유자적하게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마현을 보고 있으면 그러한 생각이 유독 강해졌다. 고금제일(古今第一)이라 불릴 수 있을 법한 무공을 가졌으면서도, 굳이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감추려 들지도 않지만, 드러내지도 않는다.

그냥 존재한다.

마현은 제 자리에 서, 세상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천하제일을 넘어선, 절대의 고수가 그리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뭐랄까…… 마음속 한편에 세운 검이 우스워지려 했다. 어쩌면, 그냥 이 사람들과 어울려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

아주 어쩌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도 그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마음이 약해져 간다.

‘떠나야 돼.’

구혜린은 억지로, 무뎌져 가는 마음을 다잡으며 다짐했다.

떠나야 한다.

이제는 진짜로 때가 되었다.

더 이상 미루고, 기다렸다가는 결국 안착하고 말 것이다.

사실, 이미 오래전부터 생각하던 일이었다.

단지 계속해서 외면했을 뿐.

마현에게 배울 것이 있다.

그의 무공이 복수에 도움이 될 터다.

그런 거짓말로 자신을 속여 가며, 험한 세상과 마주 보는 것을 회피했다. 하지만 이제 그도 끝이다. 제 발로 나서야만 한다. 만약 누군가 붙잡으면……?

‘붙잡으면…….’

어찌해야 하지?

마 씨 일가의 사람들 혹은 귀여운 제자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땐 어떻게 해야 할까? 마현,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기대고 싶어지는 그 사람이 가지 말라 하면…….

‘못 갈 거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그녀의 마음은 무명현, 와룡객잔과 와룡서원에 완전히 사로잡힌 뒤였다. 문득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난, 난 왜 이리도…….’

약한 거지?

초절정의 무공을 가지고, 영특하다는 머리가 있으면 뭘 하나?

세상에 혼자 나서서 복수를 하는 것이 두렵다.

누구 하나 등 맡길 사람 없는 곳에서, 오로지 혈로(血路)만을 걸으려 하니, 온몸이 떨린다.

해야만 하는 일인데…….

사문, 스승님, 아버지…… 의 복수를 위해서라면 더 이상 망설일 수가 없는데. 끝내 또 이렇게 약한 마음에 져버리고 만다. 떠날 수가 없다. 처음에 세웠던 검은, 이제 와 돌아보니 날을 잃은 무딘 검이었다.

‘이래선…… 안 돼.’

굳은 결심이 필요하다.

하다못해 계기가 있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끝내 복수를 포기할 것 같다.

그조차도 두려워 고민하는 그녀에게, 마치 하늘의 계시와도 같은 사람이 나타난 것은 며칠이 흐른 뒤였다.

* * *

이른 오전, 와룡객잔에 나타나 소면을 부탁하는 젊은 남자 손님을 보게 된 구혜린은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믿기지 않았다. 새하얀 무복을 입고, 허리춤에 검을 찬 사내는 분명 이곳에 있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사…… 형?”

계단을 내려오던 구혜린의 음성에, 의자 위에 앉아 상념에 빠진 듯했던 청년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그 역시 구혜린을 발견한 후에 꽤나 놀랐는지, 눈썹 끝을 파르르 떨었다.

“사, 사매? 사매 맞는 게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청년이 구혜린을 보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묻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서로가 죽었다 생각하고 살아가던 두 사람이었다. 한데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서로 마주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기적과도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맞는구나, 맞아! 구 사매!”

청년이 벌떡 일어나, 구혜린을 향해 달려가 품에 안고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구혜린 역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울먹거렸다.

“살아있어서, 살아있어서 다행이야. 살아줘서 고마워.”

그런 그녀에게 사형이라 불린 청년은 몇 번이고 감사를 표했다.

“저도, 저도 고마워요.”

구혜린 역시, 그에 답하며 눈물을 떨구었다.

잃어버렸던 가족을 되찾은 것 같은 기분.

그녀는, 세상에 혼자가 아니었다.

* * *

청년의 이름은 영호충(英浩忠)이었다.

구혜린과 같은 은하검결류의 칠대 전승자로서, 사문의 하나밖에 없는 사형이라고 했다. 잃어버렸던 가족과도 같은 존재란 말에, 마 씨 일가는 구혜린을 보며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십 년 만에 돌아온 마현 덕에, 해후(邂逅)의 기쁨이 얼마나 큰지, 또한 얼마나 감격적인지.

마현 역시 다르지 않았다.

박수를 쳐주며, 두 사람의 만남을 기뻐했다.

‘한데…….’

무언가 이상했다.

영호충을 보고 있노라면 이상할 정도로 기묘한 감각이 느껴진다. 무언가 어둡고, 찝찝한 듯도 한데, 또 직접 그 내부를 관조하면 아무런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그냥 착각인가?’

그럴 수도 있다.

본질적으로 어둠을 깊게 간직한 사람도 세상에는 존재하는 법이니 말이다. 특히, 멸문지화를 당한 상태인 만큼 영호충의 상태도 충분히 납득은 할 수 있었다.

‘그 역시 마음에 검을 세운 건가?’

구혜린은 잘 숨겼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마현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바다. 영호충 역시 그와 같은 경우이며, 훨씬 더 지독하게 검 날을 세웠다면 보이는 어둠이 납득이 간다.

본래 복수란 것은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붉고, 검은 편이었으니 말이다.

‘신경 쓰지 말자.’

잘된 일이다.

구혜린의 입장에서야,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일 터다.

그러한 일에 괜히 찬물을 끼얹을 필요는 없다.

마현은 영호충의 어둠을 되도록 무시한 채, 그들의 만남을 반겼다.

“저 이만, 가보려고 해요.”

구혜린이 직접, 떠난다고 말하는 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사매가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함께 포권하며, 등을 돌리는 사형제를 보며 마현은 묵묵히 손을 흔들어 주었다. 제자들 중 안타까워하며 눈물을 보이는 이도 있었지만, 막을 수 없었다.

‘무뎌졌다 하여도 검이 사라진 것이 아니거늘…….’

끝내 구혜린이 선택한 길이다.

사형을 만나, 다시금 검 날을 세우는 그녀를 마현이 막을 자격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니 보내 준다.

억지로 발목을 잡으면 뒤돌아볼 테니, 오히려 더욱 편히 보내 주려 했다.

‘잘한 일이다.’

분명 그리 생각하는데, 묘하게 술이 당기는 날이다.

중원으로 돌아온 이후, 단 한 번도 술을 입에 댄 적이 없거늘, 지독할 정도로 술이 마시고 싶었다. 그래서 아무 말 없이, 객잔에 있는 화주 중 한 병을 꺼내 들어 혼자 잔에 따라 마셨다. 생각이 묘하게 깊어진다. 알 수 없는 감정이 심장 한편에서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진다.

‘뭘까…….’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가는 얼굴은, 구혜린의 것이 아닌 영호충이다. 그녀와 같은 은하검결류의 제자라던, 구혜린의 가족 같은 존재. 어째서 지금까지 그의 얼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것일까?

‘역시…… 이상해.’

끝내 그의 몸에서 느껴지던 어둠을 무시하지 못하는 것일까?

마현은 한참을 고민하던 끝에, 결심을 하여 몸을 일으켰다.

확인해 봐야 할 것 같다.

만약 아니라면, 멀리서 지켜보다 돌아오면 그만이다.

하나 직감대로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진다면…….

‘그때는 나서야겠지.’

운명을 따르는 수밖에 없을 터다.

그리 생각한 마현이 눈을 감자, 순식간에 그 신형이 사라졌다.

객잔 내부에 남은 것은 아직 한 잔밖에 따르지 않은 가득 찬 술병과 빈 술잔 하나뿐이었다.

제십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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