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귀환-16화 (17/83)

(第三章)

장삼(張三)은 굉장히 평범한 인상의 청년이었다. 못생긴 건 아닌데, 특징이 없어 기억하기 힘들달까? 하다못해 말투라거나 몸짓이 독특하면 좀 나을 텐데 그런 것도 없다. 이름만큼이나 특출날 게 없는 장삼은 그야말로 범인(凡人)이었다.

그러한 장삼이 광주에 머물기 시작한 지가 벌써 오 년이다. 비록 객잔의 점소이지만 성실하고 밝게 일하는 장삼을 싫어하는 이는 그 누구도 없었다. 매일 얼굴을 마주치는 객잔 주인도 장삼이가 있어 일이 편하다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기를 마다치 않는다.

‘그 지긋지긋한 일도 곧 끝이지.’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 늦은 시각.

광주 이곳저곳에 위치한 좁은 골목길을 타고 올라가던 장삼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유난히도 으슥한 곳에 도란도란 앉아 있는 세 명의 청년을 본 순간이었다. 청년들은 장삼과는 달랐다. 척 봐도 눈에 띄는 외모랄까? 왼쪽 볼에 난 흉터에, 거친 인상, 오만한 눈빛까지. 척 보아도 이 구역의 미친놈들이라 할 만한 인상들이었다.

“흑령(黑令)을 뵙습니다.”

그런 그들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장삼에게 고개를 숙인다.

힘 하나 없는 순박한 청년으로 소문난 장삼이 가볍게 손을 들어 그들의 인사를 받아들였다.

“준비는?”

순박하던 장삼의 목소리가, 무미건조하게 골목 내부를 감돈다. 주변인들에게 밝은 것 하나로 자자한 칭찬을 받는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였다.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일차적으로 시험에 합격할만한 인원들을 추려 투입했으며, 이차적으로는 눈에 띌 법한 예비 우수 성적자들에 대해 알아보고 있습니다.”

왼쪽 눈에 기다란 자상이 남은 청년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장삼이 진중한 어조로 말했다.

“알다시피 이번 일에 대해 흑주(黑主)께서 거는 기대가 크시다. 되도록 맹의 세작들을 자연스럽게 심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만약 일이 틀어진다면…….”

장삼의 두 눈이 가늘게 늘어진다.

검은 눈동자는 살쾡이의 누런 안광을 떠올리게 할 만큼 매섭게 빛났다. 그 모습에 침을 꿀꺽, 하고 삼킨 청년들이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시험이 끝나는 대로 수석에서부터 십 위까지 상위 입상자들의 명단을 다시 한 번 추리겠습니다.”

“그 외로도, 황궁이 관심을 가질 법한 특이 신상의 인물까지 모두 정리하도록.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중요 임무다. 부디 검은 하늘의 세상이 오는 날까지 더욱 힘내주기를…….”

장삼의 말에,

“흑천(黑天)을 위하여……!”

세 청년이 굳은 표정으로 답했다.

* * *

정순욱까지 함께 어울리기로 마음먹었지만, 사정이란 것은 아직 아이들에게 여유를 주지 않았다.

“시험이 삼일 앞이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뜬 마현은 세 아이를 불러 모아놓고 특별 강습을 시작했다. 수석이니 차석이니 까지는 아니어도 기왕이면 세 아이 모두를 합격시키고 싶다. 욕심이라 손가락질한다 해도 부정할 자신은 없었다.

‘나 역시 이 아이들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는 뜻이겠지.’

마현은 새벽같이 일어나, 직접 성도를 돌아다니며 조사한 최근 오 년간의 원시 문제를 종합하여 예상 시험지를 만들어냈다. 또한 엄중한 분위기를 조성하여 그 안에서 문제를 풀도록 했다.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시험 당일 날, 아이들의 긴장도를 조금 낮춰주기 위한 예비 훈련이었다.

“시험은 대다수 기술(記述)문제가 나온다. 생각을 하여 적어야 하는데, 긴장감 탓에 머리가 굳는다면 그보다 심한 불운(不運)은 없을 터. 지금부터 이러한 감각에 적응해야만 한다.”

그렇다고 하여 평소에 하던 무공 훈련이나 체력 단련을 그만둔 것은 또 아니었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시험 당일에 열이라도 나면 그 역시 큰일 아니겠느냐.”

물론, 이미 마현의 와룡서원에서 쉴 새 없이 체력을 단련한 데다 칠 년 치의 내공까지 가지게 된 아이들이 갑작스럽게 시험 당일 중병(重病)에 걸릴 확률은 지극히 낮았다. 하지만 세상일이란 모르는 법. 잠깐의 방심이 예상외의 사태를 불러오기도 한다.

아이들의 합격을 바라는 만큼, 마현 역시 최선을 다해서 시험을 준비하는 셈이었다.

그렇게 삼 일이란 시간이 눈 깜짝할 새에 흘러갔다.

아이들은 전날 밤 일찍 잠들어, 원시를 치를 준비를 끝마쳤다.

다행히 아침 몸 상태는 누구 하나 나쁘지 않았다.

시험장 입구에 섰을 때도 평소와 크게 다를 바는 없었다.

“첫 시험…… 인가.”

백산이 약간 긴장된 기색을 비치기는 했지만, 그도 잠시였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긴장 때문에 시험을 망쳤다느니 하는 헛소리는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고작 그딴 감정의 방해 탓에 내가 네놈한테 이겼다는 기분은 들기 싫으니까.”

“걱정 마, 설령 그렇다 해도 그 탓은 안 할 테니까.”

정순욱이 언제나와 같이 시비를 걸어주고, 백산은 이를 받아준다. 그로 인해 완전히 평소의 모습을 되찾은 백산 역시 안정된 눈빛으로 시험장을 바라보게 되었다.

소수린?

말할 것도 없었다.

조금의 긴장감도, 어색함도 없는 모습으로 시험장 입구로 다가간 그녀는, 마지막으로 마현을 향해 돌아보며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시험, 잘 보고 오겠습니다.”

멀리서, 속삭이듯 말한 이야기는 정확하게 마현의 귀로 전달된다. 마현은 그렇게 시험장 내부로 당당히 사라지는 아이들을 향해 부드러운 웃음을 지어주었다.

‘힘내거라.’

여태껏 공부한 대로만 해도 세 아이가 떨어질 일은 없으니.

“그럼, 우리도 구경하러 가볼까요.”

옆에 선 구혜린이 마현의 손을 이끌었다.

마현이 품은 첫 제자들이 첫 시험을 치르는 아주 특별한 날이었다.

* * *

“후아, 후아. 진짜 긴장되네요.”

“……왜 네가?”

“그야, 우리 제자들이잖아요.”

시험 시작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려 퍼지고, 시험장에 앉아 문제를 풀기 시작한 아이들은 기대 이상으로 담담한 모습이었다. 마현은 멀리서나마 한눈에 꿰뚫어 볼 수 있었다. 흔들림 없이 움직이는 붓, 막힘없는 몸짓, 완고한 눈동자. 그 듬직한 모습에 내심 웃음 짓고 있던 것도 사실이었다.

오히려 옆에 선 구혜린이 문제였다.

그녀는 붓을 놀리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주먹을 쥐었다 폈다, 쥐었다 폈다를 무한히 반복했다. 이마로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히지는 않지만 동공이 무한히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한다. 속삭이는 작은 목소리에도 긴장감이 여실히 느껴졌다.

“걱정 마. 다들 잘하고 있으니까.”

마현은 손을 들어 구혜린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후, 담담히 말했다. 그 차분한 목소리와 손길에는 이상하리만치 사람의 마음을 가라앉게 하는 힘이 있어, 구혜린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직후로 그녀는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았다.

혹시나 놀라거나, 호들갑을 떨 것 같으면 옆에 선 마현의 듬직한 손을 꽉 움켜잡았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점점, 아이들의 모습이 구혜린의 두 눈에도 선명히 들어왔다.

흔들림 없는 자세들은 정말 ‘역시나 마현의 제자들’이라는 이야기 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대단해.’

제자들도 저리 듬직한데, 스승인 자신이 떨고 있을 수는 없다.

구혜린은 어깨를 펴고, 조금 더 침착하게 정면을 바라보았다.

마현은 그 모습을 보며 작은 웃음을 흘렸다.

‘아직 세상 경험이 적은 탓이지.’

머리로 이해하는 것도 빠르고, 재주도 좋은 편인데 경험이 미숙하여 가끔 귀여운 모습을 보인다. 그를 구경하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였다.

아이들?

더 이상 세 제자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마현은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모두 합격이다.’

정답을 써내려가는 글자까지 마음먹고 보려면 볼 수야 있었지만, 그럴 생각은 없었다.

어느덧 열다섯.

몇 년 사이에 몰라보게 자라난 아이들은 듬직한 모습으로 막힘없이 붓을 휘두른다. 마현이 할 일은 아이들의 시험지를 훔쳐보고, 정답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믿어주는 것.

머리가 크고, 덩치가 자라났으며, 생각하는 바도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다르지 않은 사실 하나. 그들 모두가 자신의 제자란 이유 하나만으로 그럴 수 있었다.

믿는다.

세 아이가 저리 자신감 있게 썼다면 오답을 낼 리가 없다.

‘뿌듯하군.’

성장하는 자신을 보며, 두 스승도 이러한 감정을 느꼈을까?

마음 한편에 소소히 피어나는 감회에 마현의 입가로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진다. 정말이지, 이 감정 하나만으로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사실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멋진 현실이었다.

‘음……?’

그런 마현의 감상을 깬 것은 시험장 한편에서 느껴진 익숙한 마기(魔氣)였다.

‘저놈들……?’

마치 거미줄과 같이 끈적하게 늘어지는 마기.

중원에 돌아온 이후로 마현의 심기를 계속해서 거스르는 이들, 흑천맹의 것이다.

‘저놈들은 없는 데가 없네.’

여러 가지 의미로, 대단하다면 대단한 일이었다.

무명현 시절에도 보이더니, 지나가던 마을에서 나타나고, 이제는 성도의 시험장에까지 모습을 드러낸다. 이러다가 조만간 황궁 어딘가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나도 놀랍지 않을 판이었다. 번거롭긴 하지만, 대단한 녀석들이라는 사실만은 인정해야 할 듯했다.

‘전음을 하는 중인가?’

태연한 척, 그저 자리에 서 있을 뿐이지만 마현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놈들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볍게 입술을 달싹이며 빠르게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은밀하게 굴린다고 노력하는 눈동자의 움직임은, 마현의 두 눈에는 너무나 선명하게 보일 뿐이었다.

‘뭔갈 꾸미고 있다는 건데…….’

전음 하나 도청하는 것쯤이야 일이겠는가?

마현은 시험장에 눈을 둔 채, 가볍게 귀를 기울여 오가는 전음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십칠, 이십오, 삼십팔, 육십구, 백오, 백삼십칠, 백사십.]

시험을 보고 있는 아이들의 번호다.

떨어진 번호들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면, 개중에서도 유독 자신감 있게 붓을 놀리는 수험생들이란 점일 터다. 당연하지만, 마현의 세 제자 역시 그에 포함되어 있었다.

[개중에 시험 감독관들이 눈독을 유독 들이는 이들은?]

[삼십팔과 백사십입니다.]

[알아낸 정보가 있나?]

[삼십팔은 전대 성도에서 유명한 문가(文家)의 자제입니다. 듣자 하니 황도에까지 이름이 드높아 권문세가(權門勢家) 측과도 꽤나 인연이 깊다더군요.]

[곤란하군. 백사십은?]

[전대 한림원 학사의 제자라고 합니다. 그 외로는 특이사항이 없습니다.]

일순간, 전음을 받던 사내의 입가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대처할 녀석을 준비해. 백사십을 바꿔치기한다.]

[예.]

이 정도로 충분하다.

그리 여기며 전음 사이에 끼어들었던 기운을 끊어 귀를 닫은 마현의 인상이 가볍게 찌푸려졌다.

‘이놈들, 또 곤란한 일을 꾸미네.’

도대체 세상사가 어찌 되려는지.

이곳저곳에서 난리란 말로도 부족했다.

그야말로 혼세(混世)다.

무슨 음모가 이리 많고, 그를 꾸미는 놈들은 하나같이 흑천맹이란 놈들이니. 아직까지 이를 모른 채 당하고만 있는 현(現) 강호와 황궁도 눈뜬장님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제법 꼬리 감추는 재주가 뛰어난 건 사실이니…….’

아직 마현조차 꼬리 몇 가닥 잘라 낸 게 전부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일지도 모르긴 했다. 물론 마음먹고 나선다면야 훨씬 일이 쉽게는 풀리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까지가 있나?’

눈앞에 나타난 사태만 처리해도 정신이 없을 판이다.

현 강호를 살아가는 무인들이 듣는다면 뒷목을 잡을 이야기지만, 어쩔 수 없었다. 누가 뭐라 해도 마현은 강호인이 아니었다. 그는 한 가족에 속한 아들이자, 형, 오빠, 시형, 삼촌일 뿐이며, 서원을 운영하는 스승일 뿐이다.

이 작은 틀.

마현이 가지고 있는 울타리만 건드리지 않는다면 굳이 나설 이유가 없다. 강호의 일은 강호를 살아가는 무인들이 해결해야 할 일. 그나마 이 정도라도 신경 쓰며, 눈에 띄면 하나씩 제거해가는 것도 마운과 마연이 그 강호에 속한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조차도 아니었다면, 마현은 흑천맹이고 뭐고 완전히 관심을 끊었을 터였다.

그런 의미에 있어서.

‘이번 일도 말이지…….’

어찌 됐든 눈앞에 나타났으니 해결은 할 예정이었다.

아직까지는 마현의 제자들을 노리는 기색이 없기는 했지만, 언제 목표가 될지 모르는 탓도 있었고 말이다.

‘이따가 밤에 처리해야겠군.’

결심을 굳힌 마현의 의지가 발현되는 순간, 빠르게 형성된 흑결의 기운이 자신들끼리 전음을 주고받는 세 사내의 몸속으로 빠르게 파고들었다.

‘추적의 술(追跡之術).’

이제 세 사내는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마현의 감시망을 벗어날 수 없다. 설령 지하 밑바닥, 천하의 가장 깊숙한 곳에 숨는다 한들 의미가 없었다. 그가 만든 추적의 술은 그 어떤 추종향보다도 집요하고 끈질기다.

만리(萬里)가 아닌 십만리(十萬里)를 벗어나도 끊어지지 않는 질긴 각인.

그를 세 사내의 몸에 남긴 마현은 밤까지 흑천맹의 일을 생각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시험에 집중하는 세 제자를 위한 시간.

마현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문제를 기술하는 아이들을 보며 내심 응원을 해나갔다.

퉁!

곧, 시험의 끝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 * *

첫 시험이 무사히 끝났다.

아이들을 데리고, 정가상단의 분점으로 복귀한 마현은 기분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모두 수고했다.”

그 한마디에는, 시험이 끝난 후로 입술조차 열지 않던 아이들의 표정이 밝게 풀어진다. 정작 시험장에서는 일필휘지로 정답을 써내려갔는데, 막상 시험을 끝내고 나니 갑작스러운 피로와 긴장감이 극심히 몰려든 탓이었다.

그조차도 마현의 한마디에 부드럽게 풀어진다. 마치 격렬한 운동 후 뭉친 근육 자리를, 편안한 안마로 풀어주는 듯한 느낌. 마현의 목소리에는 그러한 힘이 있었다.

“시험이란 게 이런 기분이로군요. 뭐랄까, 묘합니다. 허탈하기도 하고, 기대가 되기도 하고, 긴장도 되고…….”

백산이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자신의 소감을 풀었다.

“곰탱이, 이번만은 특별히 네 말에 동감하마. 태어나서 이런 감정은 처음이다.”

정순욱조차도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시험이란 것이 본래 그렇지 않던가?

치기 전에는 긴장되고, 치고 나면 알 수 없는 허탈감이 몰려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를 기대하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수린이는?”

“저 역시…….”

말과는 달리, 시험장에 들어갈 때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 소수린이다.

“하면 한번 답을 들어볼까? 모든 문제를 다 하기에는 그렇고…… 어떤 문제가 가장 어려웠느냐?”

마현의 질문에, 아이들의 시선이 빠르게 오간다.

“중용(中庸)이었습니다.”

“중용이었죠.”

“중용…….”

이윽고 세 아이가 미리 맞추기라도 한 듯 동시에 말을 내뱉는다. 마현의 얼굴에는 조금 놀라움이 어렸다.

“중용이라…….”

대학, 논어, 맹자와 함께 사서(四書)의 하나에 속한 중용은 원시의 시험 문제로 나오기에는 꽤나 난도가 높은 축에 속했다. 마현의 경우만 하더라도 시험 문제에서 중용을 보게 된 것은 향시에 이르러서였으니, 이번 원시는 제법 어렵게 출제된 것이 분명했다.

‘어쩐지 손이 막히는 아이들이 많더라니…….’

그 와중에도 마현의 세 제자는 일필휘지로 글을 써내려갔다. 시험장에서의 모습을 떠올린 마현은, 다시 한 번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찌 됐든 다른 아이들에 비해, 자신의 제자들이 나았다는 사실이 기분 좋은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한번 들어보자꾸나. 우선 우리 백산이부터 해볼까?”

처음으로 불리자 잠시 당황한 듯했던 백산은, 곧 조심스레 입술을 열기 시작했다.

“저는 중용의 어려움을 논했습니다.”

“호오……?”

“자왈(子曰), 사람들이 모두 본인을 지혜롭다 말하나, 그 역시 중용을 택하여 한 달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중용의 제 칠장에 적힌 자사와 공자 간의 대화다. 마현은 묵묵히, 아무런 답도 하지 않은 채 말을 풀어가는 백산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또한 공자께서는 중용이란 참 지극한 것이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어느 쪽에도 치우침 없이 올바르게, 변함없는 상태로 있는 일은 천하에 있어 그 누구라도 지치는 일일 텁니다. 하여 저는 중용이란 도의 극치에 이른 신선(神仙)일지라도 그를 수행키 힘들다 생각하니, 이야말로 가장 어렵다 하여 중용난제(中庸難題)를 주제로 답을 적었습니다.”

“아주 잘했다.”

마현은 저도 모르게 손뼉을 치며 백산을 칭찬했다. 중용이란 듣기만 하여도 어려운 일이었다. 인간이란 감정을 가지고 있는 동물이다. 또한 그로 인해 관계란 것을 형성해 살아간다.

밑에서 나고 자란 부모님, 형제자매, 인생을 살며 친해지는 인연. 그러한 것들을 모두 배제한 채 중용을 지키기란 그야말로 득도한 신선이라 하여도 어려운 일. 그를 깨달은 공자 역시 중용의 어려움을 몇 번이고 논한다.

중용의 저자인 자사(子思) 역시 몇 번이고 강조하는 부문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 있어 백산의 답은 정석에 의거한 훌륭한 답이라 볼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부끄러워하며, 뒷머리를 긁적인 백산에게 미소를 지어 보인 마현의 시선이 이번엔 정순욱을 향했다.

“순욱이는 어찌 적었느냐?”

“강(强)에 대하여 적었습니다.”

“강……?”

언제나 그렇듯 도(道)라 불리는 사서의 경전에서는 유와 강에 대해 논한다. 또한 그로 군자의 올바른 길을 일러주기도 한다. 실로 정순욱에게 어울리는 주제에, 눈을 빛낸 마현이 귀를 기울였다.

“중용 십 장에서 자로가 강에 관해 묻자, 공자께서는 도리어 질문을 하셨다 하였습니다.”

중용 내에서도 유명하다면 유명한 문구다.

“남방의 강함을 묻는가? 북방의 강함을 묻는가? 아니면…… 너 자신의 강함을 묻는가?”

마치 고대 중국, 먼 과거로 돌아간 듯 마현이 공자가 되어 묻는다. 그에 고민하는 표정을 짓던 정순욱은, 곧바로 입술을 달싹여 대답을 이어나갔다.

“남방의 강함이란 너그럽고 부드럽습니다. 또한 무도한 짓에도 보복하지 않으니 이야말로 군자의 삶입니다.”

“하면 북방은 어떠한가?”

“창과 검과 갑옷을 깔고 누워 잠을 청해도 한탄하지 않는 그들은 그야말로 북방의 굳셈. 기세를 품은 강인함입니다.”

여기까지는 공자가 자로에게 답해준 이야기 그대로였다.

“하면…… 너의 강함은 어찌 말할 수 있겠느냐?”

정순욱의 입이 처음으로 막혔다.

아마 붓으로 글을 써내려갈 때도 잠시나마 손이 멈췄을 터다.

하나 그는 짧은 시간일 뿐.

눈을 강하게 빛낸 정순욱이 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중(中)에 서서 기울지 않는 그 꿋꿋한 강인함. 마치 낚시꾼이 낚싯대를 기울이고 한나절이 지나도록 미동치 않는 모습과 같은 것. 어느 한 편으로도 기울지 않는 중도(中道)의 절조(節操). 그 꿋꿋함이야말로 중용에서 말하는 제가 가져야 할 강함일 터입니다.”

“아주 좋구나!”

마현은 이번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무릎을 탁하니 쳤다. 백산의 대답이 정석에 의거한 명답이라면, 정순욱의 이야기는 정석에 더해 자신의 의견을 듬뿍 묻혀낸 그야말로 팔방미인의 요리와 같은 것이었다. 중심을 말하는, 중용에서 강(强)에 대해 논하였다 하여 걱정이 많았는데, 그야말로 명답을 내놓은 셈이다.

“……이 정도는 기본으로 해줘야죠.”

그 모습에, 굳건한 표정으로 답을 말하던 정순욱이 고개를 돌리며 투덜대듯 말한다. 처음으로 듣는 마현의 큰 칭찬에 쑥스러워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인가.’

마현은 알고 있었다. 매일 밤잠을 줄여가며 글을 읽고, 침상에 누워 잠이 들기 직전까지, 심지어 꿈속에서마저도 학문을 읊던 아이가 바로 정순욱이었다. 집안의 보배라며, 천재 취급을 받아오던 오만불손한 아이는 어느 순간 습관적으로 노력을 하는 기특한 모습을 비치고 있었다.

마현의 교육 덕분이 아니었다.

‘이 역시 관계의 힘이란 것이겠지.’

백산.

정순욱의 변화는 분명히, 백산이라는 친우를 의식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스승으로서, 제자들 간의 얽혀가는 인연을 보는 것 역시 하나의 즐거움이다.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는 듯 다투면서도 의식한다. 또한 보이지 않는 깊은 곳에서부터 소중하게 다루기 시작한다.

언젠가, 먼 시간이 흐른 뒤에 와룡서원이라는 네 글자가 아이들에게 가장 큰 의미로 남게 되는 것은 마현이 일러준 글공부가 아니다. 무공 따위도 아니었다. 바로 이러한 인연들. 어린 시절, 모두가 한데 뭉쳐 함께 자신을 갈고닦던 그 시절 순간들이다.

술 한 잔에 추억을 안주 삼아 함께 웃고 떠들 수 있는 인연의 이야기 말이다.

‘그야말로 꿈꾸던 모습이구나.’

마현이 처음 서원을 차리며, 아이들을 선별할 때 가장 첫 번째 조건으로 뽑았던 것은 마음이 가는 방향이었다. 인연이란 것이 있다면 분명 시선을 잡아끌 것이라 믿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마현이 인연이라 믿은 열 명의 아이가 모였다.

모두가 서로 간의 관계를 만들어가며 추억의 조각을 만들어나간다.

‘그런 의미에 있어…….’

아직 답을 말하지 않은 제자.

소수린의 경우는 걱정이 되기는 했다.

말수도 적고 감정 표현도 냉담하다.

꽤나 미녀인 탓에, 이제 다리 사이로 털이 숭숭 나기 시작한 사내 제자들이 몇몇 따라붙어도 그 행동에는 다를 바가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 그 마음의 문조차 언젠가 열리며, 소수린 역시 추억의 조각 한편에 서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다리고는 있지만…….

‘아직은 멀어 보이는군.’

백산과 정순욱의 훌륭한 답에도,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 소수린이다. 그래도 최근 들어 언뜻언뜻 미소를 내비치곤 하여 기대감이 부풀고 있었는데, 이래서야 여전히 끝을 알 수 없는 먼 기로에 선 느낌일 뿐이었다.

‘조급하지 말자.’

마현은 다시 한 번 마음을 가다듬었다.

아직 창창하다 말할 수 있는 시절을, 밝게 나아가는 아이들을 보다 보니 욕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소수린을 억지로 그사이에 집어넣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함께 빛을 내뿜으며 달린다 하여도 그 역시 소수린이 선택해야 할 몫. 마현은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어두운 길로 향하지 않는 등대 역할을 해주는 것이 옳았다.

“수린이는 어찌 답하였느냐?”

수린은 입술을 열었다, 닫았다.

몇 번을 반복하다, 끝내 눈을 감은 채 긴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옛날 한 고을에 활을 지독히도 못 쓰는 사냥꾼이 있었습니다. 그는 매일 밤낮을 산에 올라도 토끼 한 마리 잡지 못하니, 혹시 자신의 활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고민을 했었지요. 그래서 밤에 몰래, 다른 사냥꾼의 집에 들어가 활과 화살을 바꿔치기했습니다. 그 고을에서 가장 사냥을 잘한다고 소문난 사냥꾼의 활이었지요.”

“그래서 어찌 되었느냐?”

마현의 질문에, 눈을 뜬 소수린이 가볍게 고개를 내저었다.

“바뀔 것은 없었습니다. 원인은 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본인에게 있으니, 돌이켜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해답이었지요. 결국 활을 못 쏘는 사냥꾼은 주변의 탓만 하나둘씩 찾아가다 배를 곯아 죽었다고 합니다.”

“슬픈 이야기로군.”

또한 군자의 중용에 관하여 말하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군자는 그 자리에 따라 행하고 그 밖의 것은 원치 않는다. 윗자리에 있어 아랫사람을 업신여기지 않으며, 아랫자리에 있어서는 윗사람을 붙잡지 않는다. 자기를 바로 하고 남에게 구하지 않으면 곧 원망함이 없다. 그리하여 위로는 하늘을 원망치 않고 아래로는 사람들을 탓하지 않으니, 이야말로 중용 이십사 장에서 말하는 군자의 중용을 풀이한 이야기였다.

‘정순욱과는 또 다른 답이로군.’

마치 경험 많은 노학사(老學士)가 경험 속에 담긴 이야기를 풀어가듯 답을 제출해냈다.

솔직히 따지자면…….

‘세 아이 중 가장 훌륭하다.’

자기 생각을 기술하는 것은 쉽지는 않으나, 올바른 가치관이 서 있다면 어렵지도 않다. 또한 그 속에 마음을 담아 본인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하나 남의 이야기를 풀어 중용에 대해 논하는 것은 어렵다. 본인이 겪지 않았기에 공감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나 소수린은 어디선가 들은 듯한 이야기에 공감해, 군자의 중용에 관하여 답을 적었다.

언제나 생각하지만 열다섯의 아이라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총명하다. 겉으로 티를 많이 내지는 않지만, 실제 천재(天才)가 있다면 바로 그녀일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와 어울리려 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관계를 맺지 않으려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슴 속에 품은 사연 역시 문제겠지만…….

‘조금 더 힘을 내주었으면.’

자랑스러움과 걱정되는 마음을 담아 소수린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에 여태껏 감정변화 하나 없던 그녀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인다.

“잘했다.”

마현의 목소리는, 언제나와 같이 부드러울 뿐이었다.

제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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