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귀환-33화 (34/83)

(第六章)

시간은 흐르고, 졸업식 당일이 다가왔다.

그때까지도, 솔직히 실감이 나지는 않았다. 또한 오묘하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서원은 수료(修了)라는 과정을 지나치기는 한다. 일정 이상의 목표를 달성했을 때, 스스로 더 큰 배움을 찾아 떠나는 경우를 말함이다.

하나 와룡서원에는 그러한 수료에 대한 과정이 없었다.

마현이 처음으로 서원을 세워서 엉성한 부분이 많은 탓도 있었지만, 언제까지나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욕심에 너무 손쉽게만 생각했던 마음도 컸다.

하나 이제는 그러한 욕심을 버렸다.

사람의 인연이란 것이 그렇지 않던가?

만남이란 것이 있으면, 이별도 있는 법.

마현은 그러한 이별을 수긍하기로 했다.

‘이별은 또 다른 만남이란 말과 같으니까.’

전날 밤, 구혜린이 해준 말이었다.

그를 떠올리자 마음 한편이 더욱 편해졌다.

“슬슬 나가봐야겠어.”

이른 새벽.

따뜻한 침상 위에서 눈을 뜬 마현이 말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어요?”

품에 안긴 채, 가슴에 파고들 듯 숨어 있던 구혜린이 졸린 듯한 눈을 뜨며 묻는다.

자연스레 마현의 입가로는 웃음이 떠올랐다.

“솔직히 한숨도 못 잤잖아.”

“……들켰어요?”

“모를 리가 있나. 밤새도록 품에 안고 있었는데 말이지.”

“이럴 때는 모른 척도 해주는 거라고요. 아, 이 여자는 긴장되는 날에도 잠을 푹 잘 수 있는 천하 태평한 사람이로구나~ 라면서 말이죠.”

혀를 쏙, 빼 내밀며 작은 웃음을 흘린 구혜린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불자락이 내려가며 드러난 나신은 여전히 흠잡을 바 없는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에 마찬가지로 침상에서 몸을 일으킨 마현이 뒤에서부터 구혜린을 품에 끌어안았다.

“이미 천하 태평한 여자로구나~ 란 건 많이 알려줬잖아? 안 그러면 졸업식 전날 밤에 그렇게 격렬하게 먼저…….”

“이 사람이!”

붉어진 얼굴의 구혜린과 투덕거리기를 잠시, 완전히 이불 바깥으로 벗어난 두 사람은 봄에 어울리는 얇은 옷을 걸친 채 방문을 열어젖혔다. 이제 막 고개를 내비치기 시작한 햇볕이 강렬하게 내리쬐자, 막 앞섶을 추스르던 구혜린의 눈이 진한 웃음을 그렸다.

“다행이네요. 날씨가 아주 좋을 것 같아요.”

“따뜻한 봄날이잖아.”

“그래도 새벽에는 조금 추웠어요.”

“다 벗고 있던 탓이 아닐까?”

마현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는다.

“……마 가가.”

“하하, 농담이야.”

“어서 가요. 아이들 기다리겠어요.”

“그래, 그래.”

졸업식 당일.

평온한 아침의 모습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것만 같았다.

* * *

아이들은 벌써 모두 잠에서 깨어나, 마현을 기다리고 있는 채였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었다. 벌써 세안과 더불어 씻기까지 모두 끝냈는지 아주 정돈된 형태로 대열까지 갖추고 있었다.

“이런 적은 처음인데…….”

마현의 입가로는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와룡서원의 제자들을 받아들이고, 사 년.

그간 아이들 몇몇이 먼저 나와 준비를 하고 있던 적은 많았다.

하지만 이토록 깔끔하게 정리 정돈된 모습으로 알아서 대열을 갖추고 서 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손에는 각자 서신을 담은 봉투를 두 개씩 들고 있는 채다.

말할 것도 없었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그간 감사합니다.”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마현과 구혜린.

두 스승을 위한 것이다

아이들은 무언가 벅찬, 그리고 조금은 슬픈 표정으로 잇달아 말하며 마현과 구혜린을 향해 차례로 서신을 건넸다.

“고맙다.”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떠오르지 않았다.

아이들의 눈빛은 제각기 다른 듯했지만, 닮아 있었다. 모두가 마현에게 진심을 다해 감사를 표현하고 있었다. 또한 와룡서원을 향한 정을 내비쳤다.

“정말, 정말 보고 싶을 거예요. 흑…….”

편지를 건네는 세 여제자 중 하나, 유정하(柳程河)는 끝내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흐느꼈다.

“보고 싶으면, 언제든 찾아오면 되지.”

그런 유정하를 품에 끌어안으며, 구혜린이 말한다.

쉽게 이야기했지만, 어려운 일이다.

유정하의 집은 복건성에 위치해 있다. 말을 타고 달려도 보름이 넘게 걸리는 거리. 서원을 나가 바깥세상을 바쁘게 살다 보면 그러한 틈을 내기도 어렵다.

‘숙수(熟手)가 되고 싶다고 했던가?’

유정하는 분명 그리 말했었다.

와룡서원의 생활에서, 가장 즐거웠던 점은 바로 와룡객잔의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는 상황이었다며. 언젠가 마전이나 마정과 같은 훌륭한 숙수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비록 여인의 몸으로 이루기는 힘든 꿈이지만…… 그 끝은 분명 확고했다. 하다못해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되어, 한 가정에서 가장 훌륭한 숙수가 된다 한들 결코 아쉽지 않을 터였다.

그런 유정하가 눈물을 흘리며 물러난 이후로 다가온 이는, 정순욱이었다.

“……여기 있습니다.”

시선을 은근슬쩍 피하며, 서신을 내미는 그 모습에 마현의 입가로는 웃음이 감돈다.

‘끝까지 솔직하지 못하기는…….’

아마 서신을 전해주고 있는 자신이 부끄러운 탓이리라.

충분히 정순욱의 마음을 짐작했다 여기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후 손을 들어 그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간 고생 많았다.”

속을 썩인 것도 많은 만큼, 마현에게 당한 일도 많은 정순욱이었다. 속상할 때도, 분할 때도 얼마나 많았을까. 한데 꾹 참고 잘 따라와 주었다.

와룡서원 일기 수료생 중에서도 수재 삼인방이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성적과 성장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참 감회가 새로웠다.

‘처음 서원에 왔을 때는…….’

참으로 까탈스럽기도 했다.

또한 어찌나 오만불손하고 건방진지, 마현의 가르침을 하나도 받지 않겠다고 버티지 않았던가? 뿐만이랴. 할아버지에게 모두 일러서 와룡서원 따위 무너트리겠다고 일갈한 기억도 있었다. 당시에는 난감하고, 곤란하기도 했던 일이지만 이제 와 생각하면 즐거운 추억이다.

지나간 시간의 편린 중 아름다운 기억에 속하게 된 것이다.

“…….”

마현의 쓰다듬음에, 머쓱한 표정으로 물러난 뒤를 따른 것은 소수린이었다.

크게 다를 바 없는 표정.

하지만 입꼬리가 살짝 휘어져 미소를 짓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내 생각처럼…….’

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만 같다.

사실 졸업을 다짐할 때, 가장 신경이 쓰였던 아이를 뽑자면 그 첫째로 소수린을 뽑을 터였다. 하고 싶은 일도 없다. 마현의 옆에 있고만 싶다며 의지도 드러냈다. 그녀 정도의 학문과 무공이라면 여인의 몸으로서 누릴 수 있는바 모두 누리고 살 텐데도 그리 말했다.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아이가, 너무 와룡서원에만 의지하는 것이 아닐까.

한 사람의 성인이 되는 데 자신이 오히려 짐이 되지는 않을까.

한데 그 근심이 덜어졌다.

졸업식을 거행하는 날, 웃으며 건네받은 서신에는 분명 그러한 힘이 있었다.

뒤를 이어 몇몇 학생들이 또 오가고…….

“산아.”

마지막으로 백산이 나섰다.

그는 어딘지 모르게 시선을 피하며, 머쓱한 표정으로 서신을 내밀었다.

‘녀석, 앞으로도 자주 볼 수 있는데.’

아마 함께 공부해온 친구들이 사라진단 사실이 조금 마음에 걸릴 터였다. 또한 더 이상 자신이 와룡서원의 제자가 아니게 된단 점도 어색할 터다.

그러니 백산의 반응도 이해가 간다.

마현은 작게 웃으며 그런 백산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그간 고마웠다.”

“저, 저도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백산이, 크게 고개를 숙이며 말한 후 물러났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는 아직도 성류의문의 의술을 모두 배우지 못했으니, 앞으로도 마현에게 이것저것 교육을 받을 터였다.

‘백산이 만큼은 정말 대협으로 키우기로 했으니…….’

그 외로도, 마현은 정말 백산을 제대로 키워볼 생각이었다.

강호에 우뚝 선 거대한 산.

불의에 굴하지 않는 진짜배기 대협심(大俠心)이 그에게 있으니, 불가능하지만도 않을 터였다.

그렇게 모든 아이와 서신이 오고 가는 시간이 지나고.

마현은 조심스레 입술을 달싹였다.

“다들, 고맙구나. 그리고, 모두 모두 고생 많았다.”

생각해보면 잘 가르치기만 한 선생은 아니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던가?

마계에서 마왕까지 쓰러트리고 돌아온 귀환자라고는 하나, 서원의 스승으로서는 초심자였다.

무엇하나 배운 적 없는 길에 들어서, 방향의 갈피를 못 잡고 헤맨 적도 많았다.

“처음이라 실수도…… 했던 것 같구나. 너희들을 향한 배려도 부족했었고…….”

작금의 졸업식만 하여도 그랬다.

애초에 서원을 열 때 정확하게 규정을 정해 놓았더라면.

끝끝내 함께하고 싶다는 욕심을 빨리 떨치고 중간에라도 무슨 말을 했었다면.

이리 갑작스럽게 아이들을 떠나보낼 필요는 없었을 터였다.

결심을 하고, 행동을 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으나, 그놈의 마음을 먹는다는 일이 너무나 어려웠다.

그래서 미안했다.

아이들은 늘 감사한 스승이라 부르지만, 마현이 생각하는 자신은 부족한 스승이었다.

잘한 바가 없지는 않겠지만, 무조건 옳지만은 않았다.

때로는 아이들을 방치한 채 제 할 일에 바빠 정신없이 돌아다니기도 했다.

이것저것 가르치겠다며 괜히 방향성만 많이 잡아 놓아 아이들의 미래를 망친 것이 아닐까 겁도 났다.

사실 그랬다.

“스승이란 직함의 무게가, 이토록 무겁고 귀중한 줄 뒤늦게야 알아버려서, 부족하기만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따라와 줘서…….”

말을 할수록, 마음이 무거워진다.

머릿속에 맴도는 말은 많은데 쉽게 내뱉어지지 않는다.

시선을 내려 손에 쥔, 아이들 하나하나가 건넨 서신을 본 순간에는 알 수 없는 감정이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들끓어 올랐다.

감격이고, 감동이었다.

또한 자신에게 많은 것을 알려 준 아이들에 대한 감사였다.

“그저, 고맙고, 또 고맙구나.”

끝내 할 수 있는 말은 그게 전부였다.

“나도…… 고마워.”

구혜린 역시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몇 번을 입을 벙긋거리다 마현과 같은 말을 했다. 함께 와룡서원의 또 다른 스승으로 지내며, 그녀 역시 배운 게 없을까. 아이들을 통해 얻은 것이 없을까? 너무나 많다. 무수히 많고, 셀 수가 없어 가슴과 머릿속을 가득 채울 정도의 다양한 추억이 있었다.

“이제는…… 집으로 가야 할 때로구나.”

집으로.

마현의 그 말에, 아이들 몇의 눈시울이 붉게 달아올랐다.

한동안 그들에게 있어 집은 와룡서원이었다.

소룡원이 방이었으며, 함께 지내온 또 다른 제자들은 형제였다.

한데 이제 그러한 집을 벗어나 본래 있을 곳으로 돌아간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기에 부정은 할 수 없지만, 가슴 한편이 먹먹해지고 코끝이 찡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마현은 그런 아이들을 보며 조용히, 마지막 말을 읊조렸다.

“모두 마음속에 품고 있는 꿈을 이루었으면 좋겠구나. 오늘, 오전 수련을 마지막으로 와룡서원의 첫 번째 제자들은 모두 졸업이다. 웃자, 웃으며 떠나고, 보내 주자꾸나.”

그 말에, 아이들 모두가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눈물을 흘리며, 콧물을 쥐어짜면서도 웃었다.

“…….”

뒤에 선 구혜린 역시 붉어진 눈빛으로 환한 웃음을 그렸다.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봄날에, 환한 웃음으로 가득한 와룡서원의 첫 졸업식은 그렇게 끝이 났다.

* * *

오후.

오전 수련을 마치고 각자의 짐을 챙긴 제자들이 하나둘씩 떠나갔다. 마지막까지도 따로 인사를 하러 찾아온 후, 나중에 꼭 다시 찾아뵙겠다며 떠나는 아이들의 뒷모습에 마현의 마음 한편으로는 뿌듯함이 들이찼다.

‘이제는 정말…….’

보내기까지는 슬펐으나, 보낸 직후는 편안하고 뿌듯하다.

그야말로 이제는 정말 아이들이 모두 성장해 제 발로 나아간다는 느낌 덕일 터다.

“또 봬요.”

마지막으로 얼마 있지도 않은 간소한 짐을 싸 떠나는 소수린을 보았을 때도 비슷한 기분이었다. 제 발로 서원의 바깥을 향한다.

‘언젠가 또 볼 날이 오겠지.’

그 전까지.

소수린은 자신만의 인생을 향해 당당히도 걸어갈 터였다.

그렇게 아이들이 떠난 와룡서원.

제자들이 머물던 소룡원에서부터, 함께 공부하던 서원 내부, 무공 수련 겸 체력 훈련을 했던 작은 마당까지 전체를 둘러보니 또 감회가 새롭다. 왠지 모르게 허전한 감정이 차오르는 것도 사실이었다.

“모두 갔네요.”

구혜린의 말대로였다.

이렇게 서원 한 바퀴를 크게 돌아보고 나니, 확실히 더 실감이 난다. 모두 떠났다.

이제 와룡서원에 남은 것은 마현과 구혜린 둘뿐.

“허전함을 감출 도리는 없구려.”

어서 빨리 새 제자들을 맞아 이 빈자리를 채워야 할 것 같았다.

아무래도 지금 마현의 인생에 있어 서원의 제자들이란 더 이상 빼놓을 수 없는 필수요소가 된 것 같았으니 말이다.

“마음도, 몸도 모두요. 그러고 보니 한동안 주머니 사정도 넉넉지 않겠네요.”

제자들이 모두 졸업했으니, 매달 정기적으로 들어오던 서원 수입도 없어졌다. 물론 따지자면 문제는 없다. 그동안 서원을 운영하며 모아둔 돈도 적지만은 않고, 마음만 먹는다면 봉인한 마신을 열어 보물들을 팔아넘기면 된다.

“공수래공수거 시인생(空手來 空手去 是人生)이라고 하였으니…… 그도 나쁘지만은 않겠지.”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

물론 맞는 말이다. 하나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 동안은 빈손일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 반쯤 농담 삼아 던진 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구혜린은 고개를 끄덕인다.

“뭐, 그럼 빈손으로 한번 살아보죠. 저나 가가나 무공을 익혔으니 한 보름쯤은 참을 수 있겠죠. 그 이상 굶어보면 마음이 바뀔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생각해요?”

하나 그 대답은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끄응…….”

마현의 입장에서야 놀리려다가 되레 돌려받은 셈.

“당장 아버님보고 내일 점심부터 줄이자고 해야겠어요. 우리 가가 의외로 먹성이 좋은데…….”

“린 매…….”

“빈손이라고 하셨으니까 애초에 끼니 수도 줄여야 하려나요? 당장 없앤다는 건 너무 가혹한 것 같고. 어차피 돈이 다 떨어질 때쯤이면 아주 먹지도 못할 테니까…….”

“린 매…….”

“그러니까 쓸데없는 장난 걸 생각 말고 빨리 빈 공간 채울 준비 해요. 먹고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허전하게 빈 마음도…….”

구혜린의 손가락이 살짝, 마현의 가슴 부위를 찌른다.

“뭐라도 먹여줘야 하잖아요.”

이야말로 정말 옳은 말이었다.

공수래공수거니, 농담인 척 이야기했지만 마현의 속내 실상은 조금 달랐을지도 몰랐다. 아직은 제자들을 보낸 여운을 마음에 남겨 두고 싶다. 새 제자를 받는 것은 조금 천천히. 모아둔 돈도 있으니 어렵지 않다.

감춰 둔 마음의 약한 부분이다.

이를 정확히 짚은 구혜린의 말장난에, 끝내 또 웃음 짓게 된 마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힘내서 준비해 보자고.”

“늘 하는 말이지만, 저도 도울게요. 같이 힘내 봐요.”

서로를 마주 본 두 사람의 고개가 끄덕여질 때였다.

“저, 저도 돕고 싶습니다.”

와룡서원의 입구로부터,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린 마현의 표정이 절로 의아해졌다.

“백산?”

그가 이 자리에 나타난 것은 이상할 바는 없었다.

졸업을 했다고는 하지만, 집이 무명현이다.

원한다면 언제든지 들를 수 있다.

하나 떠날 때 메고 있던 등 뒤의 봇짐은 내려놓고 오는 게 맞았다. 이제 더 이상 백산은 와룡서원의 학생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더 황당한 것은 따로 있었다. 숨어 있지만, 느껴지는 기척이 백산뿐만이 아니다.

“이거 설마…….”

구혜린도 느꼈는지, 당황한 음색을 흘렸다.

뒤로는 더 반응을 보일 것도 없었다.

서원의 문을 열며, 조금 전 떠났던 익숙한 얼굴의 제자들이 속속 드러난다.

그 수가 백산을 포함하여 총 다섯.

반절 이상이 집으로 가지 않고, 다시금 와룡서원으로 돌아왔다.

“또 뵙네요.”

그들 사이, 정면으로 나선 소수린이 당당하게 걸어 나와 말한다.

“너희들…….”

어렵게 보냈는데, 다시 돌아오다니.

화를 내야 하는 것이 옳을까?

아니면 그들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그리움과 아쉬움에 함께 동조해야만 되는 것일까. 사람, 제자들을 기른다는 것은 정말 알 수 없는 일의 연속이었다. 무엇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다. 차라리 마계의 마족과 싸우는 것이 편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그들이라면 그저 싸워서, 이긴다. 라는 간단한 대전제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데…….

‘이 아이들은…….’

제자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만 할지 모르겠다.

“……재입원 신청입니다. 졸업을 멋대로 시켰으니, 이조차도 편하신 대로 내치시지는 않겠죠.”

소수린의 옆으로 나선 정순욱이 고개를 추켜들며 당당하게 말한다.

그에 쌍심지를 켠 소수린이 살짝 뒤꿈치를 들어 올려 정순욱의 발을 강하게 밟는다. 제 딴에는 보이지 않게 몰래 한 일이라 여기겠지만, 마현의 눈은 피해갈 수 없었다.

무엇보다…….

“아파.”

작게 읊조리며 인상을 찌푸리는 정순욱의 얼굴은 모든 것을 솔직히 밝히고 있었다.

“하, 하하…….”

가장 먼저 정면에 나섰던 백산은 헛웃음만을 지었다.

하나 그 눈빛에만은 쉽게 물러나지 않겠다는 의지가 분명히 느껴졌다. 하긴, 백산의 성격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누군가 시켰다고 한들, 스스로 옳지 않다 여겼거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 서 있지 않았을 터였다.

“아직 졸업하고 싶지 않아요!”

“배우고 싶은 게 남았다고요.”

백산과 소수린, 정순욱을 따라나선 또 다른 두 명의 제자, 양명과 화영령이 당당히 외쳤다.

이는 진짜 예상치도 못한 일이었다.

두 아이 모두 와룡서원을 많이 사랑하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수재 삼인방과 같은 난감한 짓을 벌일 정도의 과감성까지 가지고 있는 줄은 몰랐다.

“……어떻게 하실 거예요?”

바로 옆에 선, 구혜린이 난감한 목소리로 조용히 물어왔다.

‘어떻게 하긴…….’

예정대로 모두 돌려보낸다.

와룡서원은 언제까지나 아이들을 길러주는 보육원이 아니었다.

이제 스스로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된 제자들의 발목을 잡기 위한 공간이 아니다.

그러니까…….

모두 보내려 한다.

결심을 하고 입을 열려 했다.

하나 아이들의 말은 그보다 훨씬 더 빨랐다.

“저, 향시에 합격해서 거인이 되고 싶어요.”

먼저 소수린이 마현의 두 눈을 당당히 마주 보며 말한다.

“백산을 이기기 전까지는 졸업한 게 아닙니다.”

어쩐지 말을 곱게 듣는 것만 같던 정순욱 역시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저야 뭐…… 아버지의 뜻에 따라 기왕이면 이름 높은 대학사가 되어 보는 것도…….”

백산은 딴청을 피우며 이들의 말에 동조했다.

“집에서 굳이 돌아올 필요 없다고 했어요! 배우고 싶으면 언제까지든 남아 있으라고.”

언제 가족들과 연락을 주고받은 것인지, 양명이 확언하며 목소리를 높인다.

“전 스승님한테 강한 무공과 학문을 동시에 배워 문무겸비의 현모양처가 될 거라고요.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거예요.”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화영령 역시 다를 바 없었다.

‘이길 수 없다.’

중원에 돌아온 이후, 처음으로 마현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천하제일의 무인을 자부함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이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화살 하나는 부러트리기 쉽지만, 뭉친 화살은 꺾이지 않는다 했던가? 그야말로 옳은 말이었다.

소수린 혼자 돌아와 고집을 부렸다면 어떻게든 내쫓았을 터다.

정순욱이나 백산이라 하여도 다를 것은 없다.

하나. 둘, 셋에 이어 넷, 다섯이 뭉치니 마현 역시 함부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을 이겨내고, 쫓아낼 힘이 솟지 않았다.

“본래 서원이란 곳은 자신이 배움에 만족할 때까지 남는 곳이라고 들었어요. 저희가 짐이 된다면, 새로 들일 후배들을 가르치는 역할도 맡을게요. 스승님이 불편하시면 숙소도 따로 구해볼게요. 그러니까…… 어떻게 안 될까요?”

난감해만 하던 백산이, 청산유수처럼 말을 쏟아내며 마현을 직시한다.

“저 고집불통이라 한 번 우기기 시작하면 쉽게 안 꺾이는 건 아시리라 믿습니다.”

정순욱은 그 말과 함께 자리에 철퍽, 주저앉아 굳은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물러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다.

“저도요!”

“나도!”

그 뒤를 따라 양명과 화영령 역시 자리에 주저앉아 팔짱을 낀다.

“이곳이 와룡서원, 맞죠?”

마지막으로, 그런 아이들을 보며 눈을 빛낸 소수린이 마현을 향해 묻는다.

문득 마현의 머릿속으로 사 년 전 첫 만남이 떠올랐다.

당시에도 소수린은 마현을 향해 비슷한 질문을 했었다.

직후 마현은 맞다고 대답했다.

“무명와룡 선생님 맞으시고요?”

이 역시 부정하지 않았던 듯했다.

“제 이름은 소수린이에요. 부탁합니다. 저를, 우리를, 다시 한 번…… 제자로 받아주세요.”

직후, 소수린은 곧바로 절을 올렸다.

“부탁드립니다.”

백산이 그 뒤를 따르고…….

“부탁드리겠습니다!”

“부탁드려요!”

“스승님!”

팔짱을 낀 채 굳은 표정을 하고 있던 세 아이도 함께 절을 올린다.

그야말로 극공(極恭)의 예(禮)를 담은 아이들의 그 모습에.

마현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우선 들어 오거라.”

무거운 고개가, 힘겹게 끄덕여졌다.

제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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