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귀환-40화 (41/83)

(第十三章)

빙마벽은 북해에서도 북단에 위치한 커다란 협곡이었다.

커다랗다고 표현은 했지만, 그 길이가 길 뿐. 실제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는 길은 협로(狹路)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좁았다. 또한 그 길이 꽤나 미로처럼 얽혀 있어 한 번 길을 잃으면 다시금 돌아 나오기 힘들 정도로 복잡하기도 했다.

“이거 무지 곤란하네요.”

그러한 빙마벽에 들어선 지 두 시진 후, 눈앞에 나타난 여섯 갈래의 갈림길에 눈살을 찌푸린 황여진이 난감하다는 듯 콧잔등을 긁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으세요?”

직후, 바로 옆에 선 마현을 향해 질문을 던진다.

쉽게 답이 나오지 않으니 도움을 요청하는 것 같은 모습이다.

‘머리도 많이 좋아.’

하나 이미 결론은 내린 뒤다.

질문을 한 것은, 혹시나 선생이라고까지 불리는 마현이 독단적인 결정에 불쾌해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행동한 것뿐.

“답은 어차피 둘 중 하나겠죠.”

마현은 작게 웃으며 대답을 회피했다.

어느 쪽이든 큰 상관이 없는 탓도 있으며, 황여진의 결정이 궁금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렇죠. 함께 가거나, 떨어지거나. 흠…….”

듣기만 하자면, 마냥 함께 가는 것이 좋아 보인다.

아무래도 인원이 많은 쪽이 설인들을 퇴치하는데 여유로울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하나 협곡의 길이 좁은 만큼 대인원이 함께 움직이는 것이 오히려 좋지 않을 수도 있다. 설인들은 살인귀라 불리는 만큼 본능적이고, 짐승과 같으나 인간과 같이 머리를 쓸 줄도 알며 전략을 펼칠 때도 잦다. 한곳으로 몰려 들어갔다가 실수할 경우에는 우왕좌왕하다 한 번에 몰살당할 확률도 높았다.

결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터다.

“많이는 안 되고, 둘로 나누죠. 괜찮으세요?”

하나 황여진은 그러한 결정을 손쉽게 내린다.

이미 답을 내려두고 있었다 하여도 어려운 일이었다.

자신의 말에, 사람의 목숨이 오간다.

그러한 상황에서 책임감을 떠안고 지시를 내리는 일이란 굉장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이제 약관을 벗어난 어린아이가 가지기엔 많이 무겁단 말이지.’

심지어 그 와중에 괜찮으세요, 라며 끝까지 마현의 의견을 존중하려 한다.

여러 가지로 마음에 드는 아이다.

만약 주화화가 노린 것이 이러한 부분이었다면, 정말 정곡이라고밖에 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괜찮습니다.”

“그럼 무명와룡 선생님을 비롯해서 와룡서원 제자분들, 거기에 더해 세가의 무인 스물을 더한 조를 따로 편성할게요. 임시니 만큼 일조(一組)라 부르겠습니다. 나머지는 저를 비롯한 여준이와 다른 세가의 무인들 전부. 이조(二組)입니다.”

갈수록 감탄이라 했던가.

서로 호흡을 맞출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또한 불만이 없을 법한 방향으로 사람을 나누는 능력도 매우 쓸 만하다.

‘이것 참……’

마현이 만약 한 아이의 아버지였다면 그 짝으로 붙여주고 싶을 정도의 인물.

괜히 별호에 용(龍)이란 문자가 붙은 것이 아니란 것을 제대로 보여주는 황여진이었다.

그렇게, 나뉜 두 개의 조가 각자 선택한 협곡의 길로 들어섰다.

시간은 흐르고.

북해의 밤이 찾아왔다.

* * *

북해의 밤은, 낮과 비교해 훨씬 더 춥다.

게다가 달빛조차 제대로 비추지 않아 시야를 확보하는 것도 어렵다.

“젠장, 서원에 돌아가면 따뜻한 이불부터 덮겠어.”

“이번만큼은 크게 동감한다.”

언제나 그렇듯 정순욱이 투덜거리자 백산이 말을 받는다.

“전 따뜻한 국물이 그리워요.”

“난 이쪽에 동감해.”

화영령이 얼어붙은 손을 입김으로 녹이며 말하자, 양명이 동의하고 나선다.

“…….”

소수린은 북해에 들어선 이후 유독 더 말이 없어진 상태였다.

그저 둘러본다.

주변을 보며, 되새기듯 눈에 담는다.

‘역시 궁금했던 게로구나.’

자신의 어머니가 살아가던 땅이 어떤 곳인지, 어떤 모습인지, 또 어째서…… 이러한 땅으로 돌아왔는지. 아마 생각이 많을 터였다. 마현도, 직감적으로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느낀 아이들도 그런 소수린을 방해치는 않았다.

“놈들의 습격이 시작되면, 제자 분들은 중앙으로 모아주십시오.”

일조로 따라붙은 황금세가의 무인들은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황여진이 이미 간단히 설명한 바 있지만, 북해의 살인귀 설인들은 따로 무공을 익히지는 않았다.

하나 그 긴 털은 뻣뻣하고 단단하고, 가죽은 두껍고 질기다.

어지간한 검기로도 베이지 않는 생명체가 바로 설인인 것이다.

뿐만이랴?

놈들의 송곳니는 사람의 머리를 통째로 꿰뚫고 남을 정도로 날카로우며, 턱 힘은 그를 씹어 삼키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그런 주제에 사람처럼 머리를 쓰고 도구까지 사용한다 하니, 긴장이 안 될 수가 없을 터다.

언제, 어디서 놈들이 튀어나올지 모르니 말이다.

‘곧 마주치겠군.’

물론, 마현의 입장에서는 전혀 달랐다.

이미 마현은 빙마벽의 초입에 들어선 순간 퍼져 있는 설인들의 위치와 그 수를 정확히 파악했다. 오래전부터 일행들을 지켜보고 있었음에도 밤이 되기까지 기다렸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하나 지켜보았다.

마현의 목적은 단순한 설인 퇴치가 아니다.

‘이번 싸움은…….’

제자들에게도 큰 경험이자, 충격이 될 터였다.

설인은 살인귀라 불릴 정도로 끔찍한 형태를 갖춘 괴수이지만, 어찌 되었든 인간의 형상을 본뜬 외모를 갖추고 있다. 만약 아이들이 손을 쓰고 싸워, 그들을 퇴치하게 된다면 아마 처음으로 겪는 감정에 동요할 것이다.

바로 살인(殺人)이라는 생소하고 끔찍한 경험에 휩싸인 충격 말이다.

‘언제까지고 보호해주고 싶다만은…….’

세상이란 곳은 그런 마현의 과보호를 끝까지 지켜만 봐주고 있지도 않을 터다.

제자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주는 밥을 먹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밥을 떠먹는 법이다.

여태껏 그를 잘 행해 온 제자들이라면 이번에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달빛이…….”

누군가의 읊조림대로 문득, 북해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달빛이 강하게 내리쬐는 순간이었다.

끼에에엑-!

“온다!”

“살인귀다! 다들 진형을 취하고 아이들을 중앙으로 붙여!”

“한 놈도 남기지 않고 섬멸하라!”

괴이한 울음소리와 함께 빙마벽의 앞뒤로 새하얀 털을 검은 어둠으로 장식한 설인들이 뛰쳐나왔다.

한 손에는 북해의 무인들에게서 빼앗은 것으로 보이는 날카로운 검들이 들려있었는데, 그를 휘두르는 속도가 웬만한 강호의 고수 못지않을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첫 대면!

카앙-!

“크읏!”

전면에 서 휘두르는 설인의 공격을 받은 황금세가의 무인이 신음을 토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힘이 무지막지해!”

“정면으로 부딪치지 마라!”

그것만으로 단숨에 상황을 파악한 무인들이 진형을 유지하며 설인들을 압박해나간다.

‘정말 제법인데?’

마현은 깜짝 놀랐다.

하나, 하나로만 보자면 이제 기껏해야 이류에서 일류 사이에 발을 걸친 무인들이다. 한데 힘을 합치니 그 배 이상의 효율을 낸다. 서로에 대한 호흡과 신뢰관계가 완벽히 형성된 덕도 있지만, 잦은 훈련으로 인한 습관 덕이다.

거기다 한 번의 대치만으로 적의 약점을 파악해 제압해 나가는 것도 훌륭했다.

“힘이 세고 날래지만 그것뿐이다! 놈들의 검술에는 초식이 없어!”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검 따위에 기죽지 마라!”

서로 간에 목소리를 높이고, 응원을 하며 싸워나가는 방식도 나쁘지 않았다.

지금 이 상태대로면 얼마 지나지 않아 설인들을 모두 퇴치할 것만 같은 기세였다.

‘문제는 기세만…… 이란 거지.’

이들은 모르고 있었지만 빙벽의 위쪽에서도 새로운 설인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처음부터 전면과 후면에서 뛰어든 설인들은 먹잇감이었다는 뜻이다.

마현의 시선이 자연스레 협곡의 빙벽으로 향했다.

‘제법 높기는 하지만 문제는 없겠군.’

설인들의 근력과 체력, 그리고 육체의 탄탄함이면 무리 없이 뛰어내려 위에서부터 습격을 가할 수 있다. 그러한 공격까지 당하게 된다면 단숨에 진법은 와해. 황금세가의 무인들은 공황상태에 빠져있다 모두 전멸당할 터였다.

“받아라.”

슬슬 때가 된 것 같다.

그리 생각한 마현이 짐 속에 감추어 두었던 물건을 꺼내 제자들에게 내밀었다.

“철봉(鐵棒)……이네요?”

백산이 놀란 얼굴로 묻는다.

감추어 두었었다지만, 그리 대단한 물건은 아니었다.

단지 여태껏 수련용으로 쓰던 묵봉도, 전투용으로 쓰던 목봉도 아닌 진짜 철봉일 뿐이다. 손에 쥐는 것만으로, 묵직함이 느껴지는 무거운 철봉. 그렇기에 의미가 더 깊었다. 철봉은 묵봉이나 목봉과 완전히 다르다. 마음만 먹는다면 사람을 죽이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러한 무게를 손에 새긴다.

이후 휘두른다.

어쩔 수 없이 살인을 가르치지만, 언제나 손을 쓸 때는 끝까지 고민하기를 바라는 마현의 마음이 담긴 것이다.

“……알겠습니다.”

마현의 묵직한 표정과, 손에 느껴지는 차갑고 무거운 감촉에 그 의미를 읽은 백산이 가장 먼저 고개를 끄덕인다. 이후로 철봉을 건네받은 아이들의 반응도 크게 다를 바는 없었다. 모두, 이 빙마벽에서의 싸움이 무엇을 말하는지 확실하게 느낀 것이다.

시간이 흐른다.

앞뒤로는 여전히 설인들과, 황금세가의 무인들이 치열하게 싸운다.

그 속에서 마현과 와룡서원의 제자들은 침묵을 지켰다.

짧은 침묵의 시간 뒤에는…….

“위다.”

마현의 작은 음성이 와룡서원의 제자들을 가로지른다.

아이들의 시선이 먼저 공중으로 향했다.

키에에엑-!

이어서 공중에서 뛰어내리기 시작한 설인들의 괴성이 터져 나오고, 그를 발견한 황금세가 무인들의 얼굴에 절망이 서린다. 죽음을 느낀 것이다.

하나 그 느낌은 그야말로 기우(杞憂)에 불과하다.

마현의 목소리에, 가장 먼저 설인들의 등장을 알았던 제자들이 벌써 허공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봉 끝에는 은은하게지만 기가 어려 있다.

무거운 철봉이, 기운을 실어 휘둘러진다.

후우웅-!

대기를 가르는 소리부터가 다르다.

퍼억-!

“캬악-!”

타격음은 몇 배는 더 묵직하다.

굳은 얼굴로, 가장 먼저 뛰어내리던 설인을 쓰러트린 백산이 자신의 철봉을 허공에서 크게 회전시켰다. 직후 또 다른 설인을 향해 길게 봉을 내뻗는다.

퍼억-!

다른 아이들도 다를 것은 없었다.

각자 봉을 휘두르며, 무게감을 느끼며 설인들을 쓰러트린다.

그렇게 새하얀 털을 물들인 붉은 피는 이내, 얼어붙은 대지를 수놓는다.

마현은 묵묵히 그 모습을 지켜보며 응원했다.

‘다들…….’

이겨내기를.

믿음과 바람이 담긴 싸움이 펼쳐진다.

결과는, 희생자 하나 없는 대승(大勝)이었다.

* * *

싸움에서 승리했다.

그리고, 빙마벽을 무사히 벗어났다.

일조와 이조, 모두 같은 결과를 맞이해 서로를 마주 보았다.

“하하…… 이것 참, 민망하네요.”

전혀 피해가 없던 일조에 비해, 이조의 경우에는 사망자가 몇 있었다. 두루 보이는 부상자는 싸움이 쉽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일러주고 있었다.

“모두 와룡서원의 소협과 소저분들 덕분입니다.”

일조, 황금세가 무인들의 인솔자였던 인물이 황여진을 향해 다가가 간략한 보고를 했다. 전과 후로 설인들이 덤벼든 직후, 머리 위로 설인들이 비 쏟아지듯 뛰어내렸다. 하나 그 모든 습격을 중앙에서 보호받고 있던 와룡서원의 제자들이 막아주었다. 덕분에 싸움은 대승. 누가 누구에게 보호를 받았는지 모를 결과가 되고 말았다.

“와룡서원의 제자분들이 무공도 엄청나다고는 들었습니다만, 정말 엄청났군요!”

그렇게 감탄을 표하던 황여진은, 와룡서원 오인방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는 빠르게 입을 다물었다.

싸움은 대승이었지만, 내용이 그렇게 가볍지만도 않았다는 사실을 짐작한 것이다.

“다들 수고했다.”

마현은, 벌써 몇 번째 같은 말로 아이들을 다독이고 있었다.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제자들은 잘했다.

정말 온 힘을 다한 싸움이었다.

무서움을 떨치고, 두려움을 떨치고 봉을 휘둘렀다.

실제 인간 취급을 하지는 않지만, 인간을 닮은 설인들을 그렇게 죽이는 행위는 정말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게 빙마벽 설인 퇴치 이후, 황금세가를 비롯한 마현의 제자들은 빙궁에 입궁할 수 있는 권한을 얻었다.

빙궁에서 나왔다는 안내자의 뒤를 따라, 얼음으로 지어진 거대한 성에 도착한 것이다.

“엄청나군.”

“이게 말로만 듣던 빙궁…….”

충격에 빠져 성의 아름다움에도 별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과 다르게, 황금세가의 무인들은 각자 감탄을 표하며 얼음의 성을 감상했다.

“여러분들이 머물 곳은 빙궁의 빙왕각 내부에 위치한 객실입니다. 손님의 활동에는 딱히 제약하는 바는 없으나, 몇몇 금지(禁地)에는 접근이 불허되오니 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과연 약육강식의 빙궁이라는 것일까?

그들이 낸 시련을 이겨낸 이후로는, 손님이 되며 대접이 달라졌다. 높임말을 쓰는 시녀와 시비들이 여럿 따라붙고, 생활에 편의를 주었다. 듣자 하니 정의맹의 임무를 받고 온 황여진은 얼마 뒤에 각주라 불리는 높은 인물과 만난다고 하였다.

‘기왕 이리된 것, 잘 됐으면 좋겠군.’

어찌 됐든 여태껏 여정을 함께 했으며, 빙마벽의 시련까지 같이 넘어섰다.

게다가 빙궁에 들어온 이후 마현 일행의 소속을 황금세가로 하였기에 움직임에 더욱 크게 제약이 없어졌다.

모두 황여진이 신경 써준 덕이다.

그런 만큼 마현도 그가 일을 잘 풀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다들 정말 잘했다.”

직후로는, 아직 충격에 빠져 있는 제자들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꽤나 고민이 크고, 생각이 많은 듯하지만 조금씩 이겨내고 있다. 며칠이 지난 뒤에는, 닫혀 있던 입도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마현의 바람대로, 아이들은 이겨내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 손에 남은 감각은 잊지 못했는지, 누구 하나 다를 바 없이 때때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마현은 그를 굳이 제약하지 않았다.

오히려 좋다고도 말하였다.

“그 손에 남은 감각을 잊지 말거라. 살인을 할 줄 알게 되었다 하여 마음껏 힘을 휘두르려 하지 말고, 꼭 힘을 써야 될 때면 지금의 감정을 되새기며 마지막까지 신중해야 한다.”

아이들은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새로운 가르침을 가슴 속에 새겨넣는다.

그렇게 시간이 더 흐른 뒤에는, 황여진이 빙왕각의 각주와 만나 담화를 나누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마현의 방을 찾아온 그의 말로는 아무래도 일이 생각보다 잘 풀릴 것 같다고 했다. 굉장히 기분이 좋아 보이는 모습이었다.

이후로는 마현의 문제가 남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소수린의 일이었지만 말이다.

‘며칠간 밖에 나가 알아보았지만…….’

그녀의 어머니가 누군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소수린에게 물어도, 정확하게 무슨 일을 하는 무인인지는 모른다고 하였다. 단지 유모, 시녀를 대동했던 것을 보아 낮은 직위는 아니지 않을까 예상할 뿐이었다.

‘깊은 곳까지 잠입해봐야 하나?’

마현은 여태껏, 그래도 빙궁에서 금역이라 부르는 장소에는 들어서지 않았다. 딱히 양심의 가책에 걸렸다거나, 법을 지키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바깥에서부터 천천히 둘러보자는 이유에서였다. 한데 그 바깥부위를 돌아보는 것도 이제 모두 끝났다.

‘내일부터는…….’

결심이 선다.

우선은 소수린의 어머니를 찾는 것부터다.

직후로는 제자의 의견에 따라 또 행동방침을 정할 생각이었다.

* * *

마현이 있을 때는, 어렵게나마 입을 열고는 했다.

하나 아이들끼리만 남으면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설인을 죽이고 얻은 살인의 감각.

첫 살인이라는 것을 떨쳐낸다는 것은 생각보다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나마 믿고, 의지하는 마현이 지속적으로 옆에 있어 주며 말을 건네준 덕에 큰 충격에 빠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시간이 더 흐르고,

“……나가자.”

결심이 선 듯한 정순욱의 목소리가 들렸다.

“좋은 생각이야.”

백산이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실의와 충격에 빠진 것이야 어쩔 수 없다.

하나 언제까지고 멍하니 있을 수만 없는 것도 마찬가지다.

마현이 힘내주고 있는 만큼, 그들도 힘을 낼 필요가 있었다.

“여자애들도 부르자. 잘 보지는 못했지만, 빙궁의 모습은 분명 엄청났던 것 같아.”

양명의 말에 정순욱이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그게 기억나냐?”

“넌 기억 안 나?”

“대충이야 뭐.”

“나도 그런 건데.”

“……넌 백산과 다른 의미로 짜증 나.”

투덜거리듯 말을 내뱉은 정순욱이 먼저 방을 나서고, 뒤를 이어 백산과 양명이 따랐다.

소수린과 화영령을 불러온 것은 양명이었다.

그렇게 다섯이 모두 모여, 매일 갇혀 있는 것만 같던 빙왕각의 객실을 벗어났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엄청난 추위가 몰려들어 온몸을 떨기도 했지만 그보다 먼저 아이들을 감싼 것은 감탄이라는 감정이었다.

“이야…….”

“진짜 빙궁이네…….”

“나 저런 것 처음 봐.”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감탄을 터트리며, 멀리 보이는 거대한 얼음의 성을 바라보았다.

북해빙궁이라 부르는 성은, 좁게는 아이들이 보고 있는 얼음 궁. 넓게 보자면 빙궁을 포함한 세 개의 전각과 그를 둘러싼 성벽 내에 들어선 마을을 뜻함이었다.

눈과 얼음으로 덮인 지역에 전각과 마을, 성벽이 섰다는 것도 대단하지만 그보다 엄청난 것은 역시 빙궁의 상징인 얼음 성.

아이들은 그 아름다움과 신묘함에 푹 빠져 한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다.

“한번 마을로 구경도 나가보자.”

어린 만큼 감정 변화의 폭도 크다는 걸까?

아니면 어두운 감정을 떨치기 위한 의도적인 밝음이었을까?

백산의 말에 모든 아이가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힘찬 발걸음으로 빙궁의 마을로 향했다.

마을은 빙궁의 삼각 주변으로 형성된 공간이었는데, 집뿐만이 아니라 따로 길이 나 있었으며, 상점이나 대장간을 찾아볼 수도 있었다.

“진짜 이렇게도 사람이 살아가는구나.”

춥기만 하고, 무엇하나 없어 보이는 북해의 대지는 사람이 살 곳이 못 된다. 백산은 몇 번이고 그런 생각을 했다. 차라리 조금 힘들더라도 중원 땅에서 고생을 하는 것이 낫다 여겼으니 말이다. 하나 잘못된 생각이었다. 이런 고된 땅에도 삶은 있다. 사람이 있고, 힘이 있다.

그저 지나다니는 것만으로도 보고 배우는 것이 많게 되는 것이다.

“아까 빙과(氷菓)라는 것 봤어? 입에 넣기만 해도 시릴 것 같은데 어린아이들이 달다며 잘 먹더라.”

“한 번 먹어보든지. 미리 말하지만 난 안 먹는다.”

양명의 호들갑은 정순욱이 받아준다.

함께 와룡서원에 남았다는 동지애 덕일까?

어느덧 둘은 꽤나 친해진 모습을 자주 보이고 있었다.

“수린아, 저거 어때. 되게 예쁘지 않아?”

여자아이 두 명도 나름대로 서로 잘 어울려 놀고 있었다.

빙궁에서만 볼 수 있는 얼음 조각, 예쁜 눈꽃, 그 외로도 많이. 밝고 아름다운 것이라면 여자들의 눈에 더 잘 들어오나 보다. 사내인 백산으로서는 이해하지 못할 것을 보면서도 예쁘다고 호들갑을 떠는 화영령을 보고 있자니 더욱 그런 생각이 깊어졌다.

“진짜 예쁘다…….”

물론, 그런 화영령을 보고 얼굴을 붉히는 경우도 있기는 했다.

양명.

그는 예쁘다고 말하며 소리를 지르는 화영령을 보며 비슷한 호들갑을 떨었다.

‘이해하기 어려워…….’

그렇게 서로 간에 잡담을 나누며 걷다 보니, 어느덧 걸음은 삼각의 중심이자, 빙궁으로 향하는 길목으로 들어서 있었다. 세 개의 마을이 맞닿는 곳이라 그럴까? 여태껏 빙궁에 들어와서 보았던 사람들 중, 가장 많은 수가 모여 있어 또 다른 놀라움을 선사해주는 풍경이기도 했다.

그 속을 노닐며 잠시 또 떠들고 있자니.

처음 아이들과 일행들이 들어섰던 북해빙궁의 거대한 성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촤르르륵.

성문을 감싼 철이 빠르게 감기며, 거대한 문이 하나의 다리로 변해 지면에 눕는 것 역시 또 하나의 절경(絶境)이다.

그 모습에 넋을 잃듯 모두의 시선이 고정된 이후.

문이 모두 열렸을 때에는 사람들 사이에서 웅성임이 일었다.

웅성임이 터져 나오는 환호성이 되기까지는 얼마 지나지 않았다.

“천빙무후(天氷武后)께서 들어오신다!”

“천빙검단(天氷劍團)도 함께야!”

“와아……!”

천빙무후와 천빙검단이 바깥에 나갔다 들어올 때는 빙궁의 주민들을 위한 식량을 구해올 때가 많다.

사냥이 크게 성공했을 경우에는 그를 이용해 연회까지 벌이니, 빙궁의 주민들 입장에서야 반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천빙각의 각주라는 높은 신분에서도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주저하지 않으니. 그녀의 인기는 다음 대 빙궁주라는 대공녀와 맞닿아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천빙무후께서 곰을 잡아오셨다!”

“곰이다!”

“와아-!”

성문에서부터 들려오는 외침에, 사람들의 환호성은 더욱 높아진다.

이어서 개선장군이 행차하듯, 성문으로 거대한 곰을 짊어진 천빙검단과 함께 한 여인이 들어섰다.

무후라 불리는 별호에 어울리지 않는 왜소한 체구.

마치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닮은 듯한 새하얀 피부.

대조되는 정열적인 붉은 입술과, 감정 하나 없는 차가운 표정.

“왠지…… 누구랑 닮은 것 같은데?”

그 모습을 본 백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한다.

“그러게.”

“어디선가……”

천빙검후라 불리는 여인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제자들의 반응은 하나로 통일되었다.

그 속에서, 홀로 입술을 꼭 깨문 채 꽉 쥔 양 주먹을 떨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주변의 소리조차 듣지 못한 채.

정면을 응시해 천빙검후의 차가운 두 눈을 응시한 소수린의 마음이 작게 읊조린다.

‘어머니…….’

장장 팔 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대면(對面)이었다.

* * *

북해빙궁의 금지는 우선적으로, 가장 중심에 위치한 빙주궁(氷主宮)을 우선으로 한다. 그 바깥으로는 삼각의 중요시설, 이후로는 삼각에 속한 무인단 수련장 순으로 이어지는데, 마현이 가장 먼저 둘러본 것은 빙궁을 이룬다는 삼각의 중요시설들이었다.

‘우선 각주실부터 들려볼까?’

마현이 처음으로 택한 곳은, 궁주와 각주 외에는 누구도 들어서지 못한다는 각주실이었다.

그중에서도 빙술각.

굳이 다른 곳이 아닌, 빙술각을 먼저 택한 이유는 순수하게 직감이었다. 무언가 묘하게 꺼림칙하다. 또한 꼭 보아야만 할 무언가가 있을 것 같다.

그 예감에 따라 몸을 움직였다.

육감을 크게 믿는 편은 아니지만, 굳이 무시할 필요도 없다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들른 빙술각주, 상구청의 집무실.

잠시 상구청이 자리를 비운 동안 내부를 조사한 마현은 주술까지 이용해 꽁꽁 싸맨 금고를 열어보고는 이내 얼굴을 굳혔다.

“이건……”

금고 내에는 돈이 될 법한 물건도, 엄청난 식량이 숨겨져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단 하나의 패만이 있었다.

검은 바탕에, 천(天)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는 육각 모형의 패.

마현은 이러한 패를 이미 본 적이 있었다.

‘검은 하늘…….’

흑천(黑天)의 재림이었다.

<5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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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귀환 5권

제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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