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귀환-41화 (42/83)

(第一章)

흔히들 북해는 일 년 내 쉬지 않고 눈이 내리는 극한(極寒)의 지역이라 말한다. 눈송이와 함께 피부를 스쳐 가는 바람은 살을 엘 듯 시리며, 공기는 뼛속조차 얼어붙게 만든다.

그 탓일까?

팔 년의 시간이 흐른 뒤의 대면(對面)이 주는 충격은 그리 길지 않았다.

‘침착하자, 침착해.’

소수린은 최면을 걸듯, 속으로 몇 번 읊조렸다. 효과는 확실했다. 곧 마음은 북해의 바람과 같이 차갑게 가라앉았으며, 떨리던 몸은 제자리를 찾았다. 두 눈은 평소와 같이, 아니 그보다 더 낮게 가라앉는다.

“괜찮아?”

그런 짧은 변화조차 눈치챈 백산이 조심스레 물어왔다.

“괜찮아.”

소수린은 가볍게 고개를 내저은 후 어머니 아니, 천빙무후라 불리는 여인을 직시했다.

‘위풍당당(威風堂堂)인가…….’

그야말로 이보다 더 어울리는 표현이 없었다.

작은 체구가 별것 아니게 느껴질 정도로 넓게 벌어진 어깨, 오로지 정면만을 본 채 당당히 이어지는 발걸음.

마치 거인(巨人)의 행진과 같다.

“하…….”

마치 폐부에 가득 찬 찬 공기를 내뱉듯, 소수린의 입가로 짧은 조소가 흘러나왔다. 그 작은 소리 탓일까? 정면만을 보던 천빙무후의 시선이 오연(傲然)한 빛을 띤 채 주변을 훑었다.

“오오…….”

“무후께서 날 보셨어!”

주변으로 몰린 빙궁인(氷宮人)들 사이에서 커다란 감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천빙무후의 시선은 한결같았다. 조금도 변함없이, 홀로 굳건히 높은 곳에 서 있다.

시선이 멈춘 것은 와룡서원의 제자들에게 이르러서였다.

직후 오른손이 가볍게 움직여지고, 뒤에 서 있던 수하 일인이 앞으로 나서 그녀의 귓가로 무언가를 속삭였다.

“……외인(外人)…….”

읊조려진 목소리는 그 누구도 듣지 못할 만큼 작았다.

하나 소수린의 귀에만큼은 명확히 들렸다.

‘변한 것 없네.’

잊지 않았다.

잊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어린 시절, 작던 손을 꼬옥 잡아주며 귓가로 애정을 속삭여주던 목소리다.

‘아가야, 내 하나뿐인 아가.’

과거를 떠올린 소수린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생각만 같아서는 두 귀마저 막아버리고 싶었다.

하나 그러지 않기로 했다. 피할 필요가 없다.

맞서면 된다.

‘침착하자.’

다시금 마음을 되새기며 눈을 뜬다.

와룡서원 제자들을 바라보는 천빙무후의 시선은 차가웠다. 표정은 처음의 오만한 모습과 그리 다를 게 없어 보이나, 양미간이 살짝 오므려졌다. 작은 감정 표현이나마 의심할 바는 없었다.

‘그렇게 우리가 마음에 들지 않으신 건가요?’

화를 내고 있다.

매우 불쾌해하고 있다.

마뜩잖아하며, 성을 내고 있다.

미묘한 감정 표현이라 하나, 그 속내에 담긴 감정은 활화산과 같다. 애초부터 그런 여인이었다. 소수린은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제법 잘 안다고 확신했다.

차가운 척, 냉정한 척, 이성적인 듯하지만 그 속내는 빙궁이라는 지역에 어울리지 않는 활화산을 품고 있다.

그리고 아버지라 불리던 인물은 그러한 어머니를 잘도 달래주곤 했다.

궁합(宮合)이 좋더라 했던가?

헛소리다.

다시 한 번 입가로 실소가 흘러나올 때쯤, 천빙무후의 시선이 아이들 면면을 지나 소수린에게로 닿았다.

북해의 먼 땅, 첫 대면에서 두 모녀(母女)의 시선이 서로를 오간다.

두 사람 모두, 변한 것은 없었다.

한 치의 흔들림도, 변동도 없는 눈빛으로 서로를 직시한다.

눈빛이 오간 시간조차도 짧았다.

“……가자.”

또다시 인근의 수하들과, 소수린에게만 들릴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말한 천빙무후가 시선을 정면에 둔 채 멀어져 갔다.

다를 것은 없었다.

‘그래, 원래부터 없던 사람이야.’

그야말로 변한 것이 없다.

두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며, 멀어져가는 천빙무후 일행에게서 등을 돌린 소수린의 양어깨 위로 두 개의 손이 동시에 올려졌다.

“슬슬 배고프지 않아?”

오른쪽에서는 백산의 목소리가 들린다.

“북해빙궁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음식도 있을 거다. 너 혹시 빙궁 음식은 가리고 뭐 그런 건 아니지?”

왼쪽에서는 정순욱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후로는 소수린이 대답할 시간도 없었다.

“가자, 가자! 밥 먹고 싶었어!”

양명이 활기차게 외치고,

“아까 오던 길에 보니까 빙수(氷水)라는 글자를 단 간판이 몇몇 보이더라고. 빙과(氷菓)랑은 뭐가 다르려나?”

화영령은 단숨에 걸음의 향방을 전한다.

“가자.”

이후, 앞으로 나선 백산이 소수린의 머리 위로 손을 얹으며 웃음을 지어 보인 채 앞으로 당당히 나아간다.

“하, 빙수라고 해봐야 똑같은 얼음과자겠지. 뭐 그런 것으로 기대한다고…….”

언제나 그렇듯, 투덜대는 목소리를 흘린 정순욱은 그런 소수린의 바로 옆으로 선다.

직후, 은근슬쩍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안 갈 거냐?”

“……가야지.”

대답은 짧고…….

가벼웠다.

* * *

흑천맹.

중원 강호를 위협하던 암중(暗中) 세력으로서 그 무서움은 마현조차도 경계를 해야 됐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직접 손을 써 그 수괴(首魁)를 처단했다. 직후 서로 간에 분열하는 모습까지도 분명히 지켜봤다.

‘한데…….’

세외, 북해빙궁의 삼각이라 불리는 빙퇴각의 심처(深處)에서 그러한 흑천맹의 표식이 발견되었다.

쉽게 생각하면 간단한 일이다.

놈들의 세력은 생각보다 훨씬 넓었고, 세외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또한 거리가 있는 만큼, 아직까지 빙궁에는 흑천맹주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큰 영향이 없다. 나름의 계획은 진행 중이라는 말이다.

‘이 정도면 꽤나 희망적인 생각이겠군.’

마현의 입가로 작은 웃음이 떠올랐다.

그랬다면 좋겠지만, 사건이란 것은 희망적인 상황으로만 다가오지는 않는다.

어쩌면 최악.

흑천맹주 백천악이 살아있다, 혹은 부활했다에서부터 수많은 가설(假說)을 세워 볼 수도 있었다. 이랬거나 저랬거나, 좋은 소식은 아니다. 짧게 결론을 내린 마현이 가볍게 턱을 쓰다듬었다.

‘고민되는군.’

어찌 되었든, 빙퇴각주가 흑천맹의 인물이란 것만은 확실하다. 하면 처리 방식을 정해야만 했다. 가볍게 생각하자면, 숨어 있다 당장 손을 쓰는 방식이 있다. 그게 말처럼 쉽겠냐는 것은 마현에게 있어 의미가 없었다.

원한다면 찾아가서라도 목을 베어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우선 흑천맹 측의 동태도 알아볼 겸 지켜볼까?’

기껏 빙퇴각주를 잡는다 하여도, 알아낼 수 있는 게 없다면 큰 의미가 없다. 만약 백천악이 살아있고, 마현의 눈을 속인 것이라면 더욱 그럴 터였다. 한번 죽음을 경험한 이상 놈은 몇 배는 더 신중하게 움직일 테니 말이다.

“하여간에 곤란하게 만드는군…….”

작은 목소리를 읊조리는 순간이었다.

마현의 목 언저리로 서늘한 감촉이 오갔다.

“죽어.”

짧은 목소리가 낮게 들린 순간에는, 마현의 몸과 목이 이분할 되듯 분리된다.

‘놓쳤어.’

하나 손끝에 감촉은 없다.

암습자, 빙충이 얼굴을 굳힐 때였다.

“그냥 가려 했는데 말이지. 경고 정도는 남겨 두는 게 좋을 것 같아.”

사신(死神)의 목소리가 들리며 목 언저리가 화끈해지는 감촉이 느껴졌다.

뒤이어서는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없었다.

털썩.

시체가 되어 쓰러진 빙충을 바라보며, 마현의 눈이 서늘한 빛을 흘렸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댄다는 말이 있다.

달리 말하면, 가만히 놓아두면 꿈틀대지조차 않는 말이다. 흑천맹에서 움직이는 것을 보고 싶으면, 조금쯤 경각심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직접 기척을 드러내고 손을 썼다.

‘또…….’

이런 깊은 심처에 혼자 남아 있을 정도의 수하라면 혹시나 흑천맹에 대해 무엇을 알지도 모를 노릇 아닌가?

손끝에서부터 흘러나온 흑색 아지랑이는, 영혼이 된 상태에서도 얼굴에 사색을 보이는 빙충을 옭아맨 체 발을 묶고 있었다.

“본인을 직접 잡아 놓기에는 애매한 상황이니, 대신 고생 좀 해야겠구나.”

점잖게 들리는 마현의 목소리에, 빙충의 영혼은 공포에 잠식돼 온몸을 부르르 떤다.

그야말로 상상도 못 할 일이 벌어진 셈이었다.

* * *

결과만 따지고 말하자면 빙수는 엄청나게 맛있었다.

“빙과 따위와는 비교도 안 돼! 그렇지 않아, 수린아?”

화색을 가득 띤 화영령이 소수린의 양손을 부여잡은 채 제자리에서 펄쩍 뛰며 물었다.

“끝내줬어. 달콤하면서도, 시원하고…….”

양명이 가장 먼저 답하자,

“빙과와는 색다른 맛이긴 해.”

“……나쁘지 않다는 건 인정해주지.”

백산과 정순욱이 입가로 작은 미소를 그린 채 고개를 끄덕인다.

소수린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조금 입안이 얼얼하긴 하지만…….’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는 말이 있듯 이냉치냉(以冷治冷)이었던가? 찬바람이 쌩쌩 몰아치는 북해에서 먹는 빙수의 맛은 또 각별했다. 워낙 차가운 탓에 두 개는 먹지 못하더라도, 북해에 왔으면 하나쯤은 꼭 먹어봐야 할 간식으로 생각될 정도였으니 말이다.

“한데 북해인들은 이런 것을 매일 먹고 살면, 고뿔이 들어야 되는 것 아닌가?”

“푸엣취!”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정순욱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코끝이 새빨갛게 물든 백산이 커다란 재채기를 했다. 얼굴은 새하얗게 질린 모습이었다.

“너…….”

정순욱의 입가로는 작은 조소가 떠오른다.

“아, 아니. 이건 뭐…… 몸이 좀 으슬으슬한 것 같긴 한데…… 푸엣취!”

“의원을 하겠다는 놈이 고뿔에나 걸리고, 꼴이 참 보기 좋구나. 미련 곰탱이. 푸하핫.”

“으으…… 의원이라고 해서 만병(萬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 푸엣취!”

“그래, 그래. 알았다. 고뿔이 더 심하게 들기 전에 어서 들어가서 쉬어야겠다. 참, 생각해보니 말이다. 곰은 동면(冬眠)을 취한다고 하던데…… 북해까지 와서 어울리지 않게 돌아다니다 보니 네가 그렇게 된 것 같기도 한데…….”

“자자…… 그만하고, 산이를 따뜻한 곳으로 데려가자.”

나선 것은 화영령이었다.

소수린의 오른손을 꼭 잡은 채, 두 사람 사이를 막아선 그녀의 표정에는 제법 힘이 들어가 있었다. 마치 친구들끼리 싸우면 안 돼! 라는 느낌이랄까?

“……알겠어.”

“어설프게 혼자서 어른인 척하지 마.”

그에 두 사람의 대답이 엇갈리며 동시에 들려왔다.

하나 표정만은 분명 같은 감정을 담고 있었다.

놀랐다.

마냥 유약하게만 생각했는데, 이런 데 있어서는 꽤나 강단 있게 말할 줄도 알지 않은가?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물듯, 의외로 화가 나면 꽤 사나울지도 모를 성격이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오가며 의견을 주고받았다.

“푸엣취……!”

이후로는 백산의 재채기가 크게 울려 퍼진다.

“훗…… 어서 가서 쉬어야겠구나. 곰탱이.”

비웃음을 가득 담은 정순욱이 앞장서 숙소를 향해 걸음을 옮기고, 그 뒤를 백산과 양명, 화영령이 따랐다. 아니, 화영령의 경우로 말하자면 따르려 했다는 것이 맞는 표현이었다.

“어라?”

손을 맞잡은 소수린이 제 자리에 서 있다.

“안 갈 거야?”

화영령의 물음에 조심스레 손을 놓은 소수린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응.”

“……흐음.”

입술 바로 아래에, 검지를 올린 화영령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였다.

“먼저 가자.”

어느새 다시금 돌아온 백산이 화영령을 부추겼다.

잠시 소수린을 향한 시선은, 곧 밝은 미소로 뒤바뀐다.

“이따 보자.”

말은 짧고, 목소리는 작았다.

“푸엣취!”

대신해서 재채기는 컸다.

덕분에, 입가로 작은 미소를 그리게 된 소수린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별말씀을.”

그렇게 아이들이 떠나간 자리.

혼자 남은 소수린의 입가에 옅게나마 머물러 있던 미소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나 걸음이 무거운 것만은 아니었다.

“휴우…….”

입가로 한숨을 쏟아낸다 한들, 그야말로 감정을 털어내는 것뿐이다.

‘어찌 됐든…….’

나쁘지 않은 팔 년 만의 대면이었다.

조금 기분이 우울해질 뻔도 했지만, 아이들이 있었기에 어렵지 않게 떨쳐낼 수 있었다. 따로 남겠다고 말한 것은 그저 잠시 혼자 걷고 싶어서일 뿐이었다.

그렇게, 다시 한번 직시한다.

‘이제는 정말로…….’

혼자가 아닌 걸 알고 있으니까.

옆과 뒤에 늘 누군가 있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으니까.

아무런 부담감 없이 어머니, 천빙무후가 살고 있는 북해빙궁이란 곳을 둘러보고 싶었다. 용서는 하지 못한다 한들 이해라도 해보려고 한다.

그런 가벼운 마음이었다.

걸음을 계속해서 옮기다 보니 느낀 첫 감정은 의외로 간단했다.

‘생각보다 더 넓구나.’

계속해서 걷고, 또 걸어도 비슷한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사람이 사는 집과 상점, 대장간, 흔치는 않지만 포목점까지도 듬성듬성 보인다.

건물의 형태가 조금 다르고, 돌아다니는 이들의 차림이 다르다 한들 중원과 다를 바 없다.

‘사람도 많네.’

사시사철 어느 때를 따지지 않고 한풍(寒風)이 몰아치는 이 땅에도 사람들이 살아 숨 쉬고 움직인다. 추위를 이겨내려는 듯 더욱 바쁘고, 격렬한 느낌의 걸음들.

소수린은 그 사람들 속에 서 있는 천빙무후를 떠올렸다.

차갑기만 한 표정과, 오만한 눈빛으로 당당히 어깨를 편 채 사람들 사이로 서 있다. 그 모습이 묘하게 어울리지 않을 듯하면서도, 너무나 잘 맞물린다. 단 한 번 보았을 뿐이지만 소수린이 기억하고 있는 어머니라는 인물의 모습보다 더 어울리는 느낌이다.

그 사실에 또다시 웃음이 나왔다.

‘스승님께 어떻게 말해야 할까?’

이제는 더 이상 마현에게 숨길 것도 없었다.

오히려 얼굴을 보게 된다면 속내를 시원하게 털어내고 싶었다. 어머니를 만났다. 자신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오만한 시선으로 사람들을 지나쳐갔다.

그녀가 기억하던 어머니와는 분명 같으면서도, 달랐다.

‘아버지…….’

그리 말하던 인물과 함께 있을 때는 분명 조금 더, 표정이 활기차고, 밝았던 것 같았다. 오만한 기색은 느끼기 어려웠다. 조금 고집이 세기는 해도, 꽤나 가정적인 면도 있었다.

사건이 있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분명 그러했다.

‘지나간 일일 뿐이지.’

잊어가자.

어머니 아니, 이제는 천빙무후라 불러주는 것이 옳을 듯한 여인과의 팔 년 만의 대면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멀리서나마 얼굴 한 번 보았으면 되었다. 이제는 닿기에는 너무나 먼 존재처럼 느껴지기에.

마현에게도 그리 말하려는 생각이었다.

지우겠노라고.

안타까워할 테지만, 더 이상 막지는 못할 터다.

그리 생각하며 두 눈을 떴다.

시선의 정면에는 낯선, 하나 처음 보지만은 않은 중년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

아리송한 표정을 지은 채, 눈을 뜬 소수린을 지켜보던 사내는 잠시 후 무겁게 입을 열었다.

“무후께서 찾으신다.”

잊자고 결심하자마자 이런 꼴인가…….

입가로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막으며, 비틀린 미소를 지은 채 묻는다.

“……거절한다면?”

“……강제로라도 끌고 가야겠지.”

망설이는 것 같은 사내의 대답은 꽤나 단호했다.

오른손은 이미 왼쪽 허리춤의 검에 맞닿은 상태였다.

‘강해.’

척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적어도 소수린, 그녀보다 두 수는 위의 고수다.

하나 마음먹고 생사결을 내고자 한다면…….

‘질 이유도 없겠지.’

그녀에게는 명확히 보였다.

허용된 공간과 사내의 동선, 그리고…… 이어지는 선과 점. 한 폭의 그림이 빠른 속도로 배열된다. 알고 있었다. 일반적인 무재(武才)도 이러한 능력을 갖추지는 못한다. 당장 와룡서원의 제자들만 봐도 그녀와 같은 능력을 갖춘 이는 없다.

‘이 힘을 잘만 이용한다면…….’

한두 수 위의 고수를 죽이는 것은 그리 어렵지만도 않다.

하나 제압은 불가능하다. 이 선과 점은 분명한 죽음으로 이르는 길. 조금 더 장악력이 강해진다면 다른 형태로 모습을 보일지 모르나 아직은 멀었다.

그러한 변명이 떠오른다.

‘그래. 변명, 변명일 뿐이지.’

사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어디 한 번 봐보자고.’

시선이 마주쳤음에도,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어머니.

그녀가 자신을 부르고 있다.

잊자고 결심한 순간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시기를 맞춰 찾아온 천빙무후의 수하가 눈앞에 있다.

‘어디 한 번…….’

두 주먹을 꽉 쥐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가보죠.”

제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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