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귀환-64화 (65/83)

(第十一章)

삼마왕의 침략 사건 이후, 무너졌던 와룡서원이 다시금 완벽히 재건되었다. 겉모습은 이전과 다를 바 없었지만, 그 속은 완전히 달랐다. 목공들의 힘이 아닌, 제자들과 와룡서원의 식구들이 하나가 되어 아낌없이 땀을 쏟아내어 만든 진정한 집이 완성된 것이다.

모두가 기뻐했다.

더 이상 와룡객잔에 머물며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마땅히 학문을 갈고닦을 장소가 없어 불편하게 공부하던 일도 끝이다. 뒤늦게 다시 한 번, 와룡서원의 소중함을 느끼는 제자들이었다.

“우리 손으로 지키고 싶습니다.”

그래서일까?

와룡서원에 가장 애착이 깊을 일기 제자들이 모두 함께 찾아와 마현을 향해 강렬한 의지를 보이며 말한다.

이번 사건으로 가장 많은 것을 잃었고, 느꼈던 아이들이다. 그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마현이 아니었다. 또한 거부할 이유도 없었다.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느냐?”

“예.”

제자들이, 이구동성이 되어 함께 답한다.

서원의 본질은 무를 갈고 닦는 것이 아니다.

학문을 익히고, 그를 통해 자아 성찰을 하여 자신을 수양하는 것이야말로 본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 그 역시도 서원이 제자리에 올바르게 존재할 때나 가능한 일이다. 결국, 제자들의 선택은 잘못되지 않았다. 문제는 마현이 그런 제자들에게 어떠한 방식으로 힘을 전하느냐는 것이었다.

“산이와 수린이는 지금으로 충분하다.”

두 사람의 그릇은 굉장히 크다.

그렇기에 오히려 더, 당장의 빠른 성장보다는 자신에게 맞는 것을 갈고 닦는 것이 중요할 터였다. 어중간한 걸 채워 넣어 그릇의 빈자리를 훔치는 게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것의 크기를 키우는 것이다.

“하나……!”

그에 납득하지 못한다는 듯, 소수린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녀는 삼마왕과의 싸움에서 깊은 절망을 느꼈다. 최선을 다해보았지만, 머릿속 그림 중 승리로 향하는 길은 어디에도 없었다. 때마침 구혜린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제자들, 친구들이 모두 죽었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로, 와룡서원의 상실이다.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었다.

“네 무공은 이미 올바른 길로 향하고 있다. 수린아.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하였으니, 조금 더 자신을 차분히 돌아보는 것이 어떻겠느냐?”

“……알겠습니다.”

소수린이, 아랫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현이 이렇게까지 말한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였다. 조급해하지 말고, 조금 더 자신을 천천히 돌아본다. 그것조차 안 된다면, 밤잠을 줄여가며 더욱 무를 갈고 닦는 데 열중하면 된다.

그 속내를 충분히 짐작한 마현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작금의 그녀에게는 너무 여유가 없어 보였다. 스스로 그 사실을 깨닫는 것이 가장 좋을 터지만…….

‘조만간 한번 이야기를 해야겠구나.’

도저히 깨닫지 못한다면, 올바른 길을 가기 위해 도움을 주는 것도 방법 중 하나일 터였다.

백산의 경우는, 어렵지 않게 마현의 말을 납득했다.

딱히 욕심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이미 자신도 작금의 가진 힘을 갈고 닦기조차 시간이 부족하다 여겼기 때문이었다.

하면 남은 것은 셋.

정순욱과 양명, 화영령이었다.

“음…….”

의지로 불타는 눈동자를 한 세 제자를 바라보는 마현이 짧은 신음을 흘렸다.

실상 두 제자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길이 정해져 있었다. 화영령은 이미 말한 바 있듯, 암재다. 그녀는 직접적인 무공보다는 적의 배후를 노리는 암살기술을 익히면 훨씬 더 무서운 모습으로 성장할 터였다.

‘더 이상 고민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이미 수많은 제자들을 가르치며 느꼈다.

중요한 것은 무공이 아니라, 사람이다.

마계에서도 느껴본 바 있지 않았던가?

마공을 익힌 마인들이라 하여 모두 사납고 난폭한 성격의 소유자인 것만은 아니었다. 반대로 올바른 정공을 익혔다 하여 선인(仙人)인 것만도 아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그리고 마현이 지켜본바, 화영령은 암살기술을 익혔다 하여 어두운 길에 빠져들 아이가 아니었다. 밝은 아이다. 또한 미래의 현모양처를 꿈꾸며, 자신을 스스로 갈고 닦는 소박한 꿈을 가진 제자이기도 했다.

마음이 정해졌다.

“영령이는…… 내일부터 암살 무공에 대해 알려주도록 하마.”

“네.”

놀랄 법도 하건만, 꽤나 담담한 반응을 보이는 화영령이었다. 조용하고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영리한 아이다. 오래전부터 자신의 재능이 어디에 있는지 눈치채고 있던 게 분명했다.

“그리고 정순욱.”

“예.”

반항적이기만 했던, 반골 소년이 이제는 청년이 되어 두 무릎을 꿇은 채 마현을 향해 열망의 눈빛을 보낸다. 강해지고 싶다. 최고가 되고 싶다. 재능이 있다기보다는, 욕심 하나만으로 스스로 능력을 한없이 끌어올려 와룡서원 수재 삼인방에 끼어든 정순욱이었다.

그에게는, 실상 그 무엇보다도 어울리는 무공이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하나의 힘이다.

‘청결.’

천재라 불리던 천포의 힘.

마현이 가진 네 가지 힘 중 가장 빠르며, 난폭한 특성을 가진 무의 극점(極點). 당연히 작금의 정순욱이 다루기에는 너무나 무리가 많은 힘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발현조차 할 수 없다는 말이 옳을 터였다.

애초부터, 강기의 영역조차 넘어선 이에게 허락되는 절대의 힘 중 하나가 바로 청결이었으니 말이다.

‘하나 청결을 하나의 무공으로 체계화하여 전수한다면…….’

정순욱의 특성에 딱 맞는 무공이 완성된다.

청결은 어떤 의미에 있어, 천포가 가장 익히기 어려워했던 무결(武結)이었다. 재능이 아닌, 그야말로 순수한 노력과 근성을 필요로 하는 탓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갖추고 있어도 청결의 단련에는 큰 의미가 없다. 필요한 것은 그 어떤 괴로움에도 무릎 꿇지 않는 정신력, 포기하지 않을 근성이다.

“그 어떤 고단함도 이겨낼 각오가 되어 있느냐?”

“문제없습니다.”

“괴로울 것이다.”

“상관없습니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을지도 몰라.”

“포기란, 정순욱의 사전에 존재하지 않는 말이죠.”

그 열기 넘치는 모습에, 웃음을 지은 마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재능은 부족하더라도, 반골이 될 정도의 근성을 가진 정순욱이라면, 이러한 청결을 대성(大成)할 수 있을 터다.

“내일부터 네가 배울 무공은 청뇌신공(靑雷神功)이다.”

청결을 무공으로 체계화하여, 이름을 붙인다면 분명 이편이 옳을 터였다. 그 이름에, 눈을 반짝 빛낸 정순욱이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청뇌신공을 익힌다 한들, 와룡강림공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청뇌신공의 기반은 어디까지나 와룡강림공. 하기에 너는 두 가지 무공을 동시에 병행하여, 대성으로 이르러야 한다.”

“저 곰탱이 백산도 하는 일을 제가 못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정순욱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웃으며 답했다.

작금의 백산은 의술과 무공, 학문을 한꺼번에 병행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에서도 뒤처지지 않는 성적을 보이고 있다. 백산의 노력도 그만큼이나 대단하다는 뜻이다.

“믿겠다.”

마현은, 더 이상 말을 길게 늘이지 않았다.

이미 결정된 사항에서, 마현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야말로 믿는 것뿐이었으니 말이다.

‘자 이제 문제는…….’

마지막, 양명이었다.

양명은 마현의 제자 중에서도 굉장히 독특한 아이였다. 성격적인 면만 보자면, 그 이름처럼 한없이 해맑으면서, 또한 순수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어리고, 바보같이 보일 수도 있었다.

하나 그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면, 또 마냥 해맑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바보는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양명은 따지자면 그래, 분명 천재(天才)였다.

‘……수재 삼인방과는 괘(棵)가 다르다.’

무에 한해서라면, 천재라 볼 수 있는 소수린과도 또 무언가 다르다.

완전히 그 세계가 다르다고 해도 무방했다.

양명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눈빛으로, 그야말로 상식 밖의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많았다. 가장 놀라운 점은 그 뛰어난 발상들이 그야말로 학문과 무공의 축을 뒤틀만한 영역의 수준일 때가 많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자신도 인지하고 있는 듯하지만…….’

양명은 단 한 번도, 무언가에 최선을 다한 적이 없다.

그야말로 건성건성, 자신이 하고 싶은 만큼만 문무를 갈고 닦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제자들에 비해 그리 부족하지 않은 성적을 이루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아마도 늘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본질적인 성정에 게으름이 포함되어 있다는 말이었다.

‘당황스러운 점은, 알고도 딱히 개의치 않고 있단 사실이겠지.’

스스로가 게으른 사실을 안다.

하나 딱히 고칠 생각도 없다.

적어도 여태껏은 분명 그래 왔었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정말 눈빛이 달랐다.

어떻게든 힘을 길러, 와룡서원을 지켜내고 싶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적어도 그 목표를 이룰 때까지, 양명은 그 누구보다도 빠른 속도로 성장할 것이다. 그의 머릿속 생각은 정말 발상의 차이가 다를 정도였으니 말이다.

“명이 너는…….”

그런 양명에게 어울리는 무공이나, 힘은 무엇일까?

마현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차, 의외로 먼저 입을 연 것은 양명 측이었다.

“저는 부법(斧法)을 배우고 싶습니다. 스승님.”

“……부법?”

말 그대로, 도끼를 다루는 법이다.

“예. 기왕이면 커다란 대부(大斧)를 다루고 싶어요.”

그리 체격이 좋지 않은, 양명에게 어울리지 않을 무기다. 한데도, 양명이 말하고 나니 이상하게 어울린다. 어찌 됐든 잘 사용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부법이라…….’

여전히, 양명의 생각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하나 본인이 원한다면 굳이 말릴 생각이 없는 것 역시 사실이었다.

마현조차도 양명이, 대체 무슨 생각을 품고 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본인이 그렇게 판단을 내렸다면, 분명 그 말이 옳을 터였다.

“내 너에게 어울리는 부법을 고민해 보도록 하마.”

“감사합니다, 스승님.”

양명의 눈이, 다시 한 번 반짝 빛났다.

* * *

일기 제자들이 마현을 통해 성장을 도모했다면, 이기 제자들은 각자만의 방식으로 또다시 서원을 지키는 법에 대해 고민했다.

서원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다시는 침략당하고, 빼앗기지 않겠다.

약탈자에게 고향을 잃은 무력한 이들의 심정을 절실하게 느낀 제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을 갈고닦는 데 주력했다. 다행인 점은, 그러한 와중에도 학문을 게을리하는 제자들은 없다는 것이었다. 와룡서원의 존재 의의에 학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두가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좋은 일이다.’

한 줄기 태풍이 불고 지나간 이후, 모두가 성장했다.

비 온 뒤 땅이 굳는다는 말은 헛소리가 아니었다.

너나 할 것 없이, 분명 진일보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선히 보였으니 말이다.

‘단 한 아이를 뺀다면 말이지.’

소수린.

스스로가 만든 벽에 갇혀, 아직도 허우적대고 있는 한 제자를 떠올린 마현이 부드럽게 턱을 쓰다듬었다.

“고민이 많으신가 보네요.”

그런 마현의 뒤로 다가와, 등을 부드럽게 안은 구혜린이 묻는다. 최근 들어서는 서서히 배가 불러오며 와룡서원의 일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는 그녀였다. 재건축 때도 그랬지만, 배 속의 아이가 걱정되어 안절부절못했던 마현의 닦달 탓이었다.

“수린이 때문에 말이지.”

“아…….”

마현의 짧은 말에, 모든 것을 눈치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구혜린이었다.

“그 아이는…… 특별하니까요.”

“……뭐, 그렇지.”

마현도 알고 있거늘, 여인인 그녀가 모를까.

소수린은 분명 특별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이 없이 마현의 품에서 자랐다. 하여 마현을 동경하였고, 한없이 믿고 따르게 되었다. 그 감정이 단순한 동경에서 연모로 변하는 것도 이상한 일만은 아니었을 터다. 하나 마현은 언제나 늘, 그녀와 자신의 관계가 단순한 사제지간임을 명확하게 하며 거리를 두었었다.

하여 결혼식 이후라면, 분명 알아서 마음을 다잡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어지간히도 마음이 복잡한 듯했다.

마현에 대한 그녀의 마음이 생각보다 훨씬 컸던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도…….’

마현은 여전히 소수린의 마음을 받아줄 수 없었다.

그녀는 정말 마현에게 있어 한 명의 제자, 아니 딸 같은 자식일 뿐이었다. 그 이상의 마음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너무 걱정 말아요. 수린이는 알아서 잘 이겨낼 거예요.”

“그렇다면야 좋겠지만 말이지…….”

그녀의 방황이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는 만큼, 마현도 신경을 전혀 쓰지 않을 도리는 없었다.

하나, 또 손을 뻗어 어찌할 수도 없다.

여유가 없어 보이는 상황에 대해서라면 충분히 조언할 수 있겠지만, 그 마음에 대해서만큼은…… 역시나 어렵다.

“믿고 기다려봐요.”

마현 본인이, 구혜린에게 했던 말이 되돌아왔다.

그 말에, 작은 미소를 지은 마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구혜린의 말이 옳다.

믿고 기다린다.

소수린이라면, 마현이 아는 자신의 제자라면 저러한 성장통쯤 가볍게 이겨내고 일어날 것이다. 분명 그럴 터였다.

그 후로 며칠 뒤, 믿음에 답하겠다는 듯 평안한 얼굴을 한 소수린이 마현을 찾아왔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 * *

길을 걷는다.

마현과 소수린이 함께, 몇 번이고 함께 걸었던 익숙한 길이었다. 언젠가 함께 이 길을 걷고 있노라면, 소수린의 발걸음은 신비할 정도로 가벼워 보이고는 했다.

당시에는 몰랐다.

어리기만 한 제자가 자신에게 그런 감정을 품고 있을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지.’

성장을 하고, 어느 정도 눈치챘을 때는 먼저 말을 꺼내기조차 난감한 상황이 되었었다. 제자의 마음조차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다니, 스승으로서 자격 미달이라 하기에는…….

‘무리가 많지.’

사람의 감정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세상의 이치와 무의 극의에 대해, 학문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꿰뚫는다고 자부하는 몸이지만 사람 마음만큼은 정말 어렵다. 단순히 학문에서 논하는 것만으로, 모든 인간을 표현할 수는 없다. 해서 마현은 여전히 자신이, 무언가를 익혀 나가고 있는 학사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사람에 대해 배운다.

익힌다.

그런 의미에 있어 몇 번을 생각해도, 서원을 열기로 결심한 일은 너무나 옳은 결정이었다.

수많은 사람과 부딪치고, 제자들을 만나며 자신을 스스로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귀한 경험을 나눠주었으니 말이다.

“스승님.”

그런 생각을 하던 차, 소수린의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들려온다. 마현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은 채 여전히 걸음을 옮기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현을 부른 이후로도 한참이나, 소수린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계속해서 걸음을 옮기며, 몇 번이고 입술을 뗐다 붙였다를 반복할 뿐이다.

손을 쥐락펴락 반복하는 것은 물론이요, 눈 끝이 쉴새 없이 파르르 떨린다.

그 끝에, 힘들게, 너무나 힘겹게 그녀의 입술이 크게 떨어졌다.

“저…… 있잖아요. 스승님을, 좋아했었어요. 아니, 좋아해요. 먼 예전부터…… 지금까지.”

힘겹다.

아주 힘겨운 목소리다.

가녀린 양어깨는 쉴 새 없이 떨린다. 앞으로 나아가던 걸음은 몇 번이나 멈추려는 듯 주춤거린다. 하나, 끝내 소수린은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나아간다. 앞을 직시하며, 입을 열어 이야기를 이어간다.

“알고…… 계셨어요?”

“…….”

마현은 이번에도 묵묵히, 고개만을 끄덕여 보였다.

“소사부님도 알고 계시겠네요?”

“…….”

“……화 안 내셨어요?”

“그럴 리가 없지 않으냐.”

구혜린은 그렇게 마음이 좁은 여인이 아니다.

오히려, 소수린의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했다.

마현이 원한다면 첩의 자리까지 양해하려 한 것이다.

하나 마현의 마음이 그를 원치 않았다.

일생의 배필은, 단 한 명으로 충분하다.

그 이상은 그야말로 과욕(科慾).

마현은 자신이 수많은 여인을 함께 사랑할 수 있을 정도로 배포가 넓은 사내라 생각하지 않았다.

“……언제쯤부터…… 는 물어도 의미가 없겠네요.”

소수린은, 옅은 웃음을 흘렸다.

분명, 그녀는 마현을 좋아했다.

한 명의 사부로서가 아닌, 아버지도 아닌, 사내로서 좋아했다. 하나 이제는 내려놓아야 한다. 이렇게까지 말해도, 마현의 눈빛에는 변화가 없다. 그의 마음속에는 정말 구혜린, 단 한 사람의 자리밖에 없는 것이었다.

알고 있었다.

각오하고 있던 일이다.

하기에, 마음을 어렵게나마 정리하고 마현을 찾아왔던 것이다.

‘이 벽을 넘지 않으면…….’

나아가지 못한다.

마현과 일기 제자, 다섯의 대담이 있고 난 뒤 소수린은 정말 엄청나게 많은 고민을 했다. 마현은 그녀에게 조금쯤 자신을 돌아보라 말하였다. 처음에는 그 말에 따를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그저 몰아붙이고, 몰아붙여 한계로 나아가면 된다고 믿었다.

하나, 아니었다.

그야말로 둘러볼 시간이 필요했다.

자신을 가다듬을 때다.

그렇게 생각하며, 문무에 정진하다 보니 머릿속에 계속해서 떠오르는 것은 마현의 얼굴이었다.

마현이 벽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고, 그를 넘기 위해 노력했다.

하나 이는 단순히 생각만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직접 부딪혀야 한다. 그리 생각하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오늘의 일에 나섰다.

눈물이 쏟아질 것 같지만 참아 낸다.

걸음이 무겁지만 계속해서 옮겨 나아간다.

“스승님은…… 소사부님 뿐인 거죠?”

“물론이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

덕분에, 다음 말을 이어나가기까지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그럴 줄 알았어요. 그럼 저도 이제……, 정말로, 마음…… 버리려고요. 어려운 일이지만, 언제까지 스승님에게 발목을 붙잡혀 있고 싶지는 않아요.”

소수린이 웃었다.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마 본인은 몰랐지만, 그 미소는 분명 누군가의 가장 환한 모습과 닮아 있었다. 그에 마현은 깜짝 놀랐다. 또한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었다.

“좋은 생각이란다.”

소수린이 나아간다.

눈물 대신, 웃음으로 답하며 앞으로 걸음을 옮겨간다.

더 이상은 마현을 돌아보지도 않고 있었다.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수린아, 나에게 있어 너란 아이는…….”

여인이 아니라 한들, 단순히 제자는 아니다.

언젠가 그녀가 말했던 대로였다.

마현은 소수린의 아버지였다.

또한 소수린은…….

“딸과 같단다.”

북해빙궁에서 어머니를 찾았다 한들, 아직 무릎을 조금 넘던 체격을 가진 어린 시절의 소수린을 키운 것은 분명 마현이다. 부정할 수 없었다. 그녀는 마현에게 있어, 분명 한 명의 자식이었다. 자신의 피가 흐르지 않는다 하여 어찌 밀어낼 수 있을까? 이것이 마현의 솔직한 마음.

그에, 소수린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섭섭해요. 하지만, 또 이해해요.”

하기에 이제 벽을 넘어선다.

정말로, 진심을 다하여, 마현의 귀여운 딸이 되는 것이다.

그를 아버지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간…… 너무나 고마웠어요. 아버지…….”

또.

“앞으로도, 계속 잘 부탁드립니다.”

마지막 말을 끝으로, 환한 미소처럼 환한 빛을 토한 소수린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주변으로는 뿌연 운무가 뿌려지며 그녀의 온몸을 감싸 안는다. 막혀 있던, 스스로가 세웠던 벽을 넘어서 다음의 경지로 나아가는 모습이다.

절정!

고작 열아홉도 안 되는 어린 나이에 수많은 무인들이 동경하는 진정한 고수의 영역에 들어선 어린 제자를 보며, 뿌듯한 미소를 지은 마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축하한다.”

이제부터야 말로 정말, 모두가 앞으로 나아갈 때.

기나긴 폭풍이, 완전히 끝을 맺은 날이었다.

제십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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