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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즉위식 날 균열을 만났다-7화 (7/100)

7

우렁찬 포효와 함께 등장한 첫 몬스터는 그 크기가 10층짜리 건물보다도 더 거대했는데, 곤충의 그것과 같이 생긴 기다란 다리가 많이 달린 기괴한 괴물이었다.

“X같이도 생겼네.”

혐오스럽게 생긴 몬스터가 지상에 발을 내디뎠고, 그 발을 중심으로 강력해 보이는 독기가 퍼져 나갔다.

맹독이군.

놈은 남 비서에게 들은 대로 이성이 없는 듯, 괴성을 지르며 다리를 사방팔방으로 허우적거렸다. 덕에 일대는 순식간에 초토화가 되었고, 이어서 미친 듯이 튀어나와 건물에 파묻혀 버린 놈도 그놈과 같이 이성을 잃고 주변을 파괴했다.

“이보세요! 지원 나오신 겁니까?”

인근에서 바쁘게 뛰어다니던 한 각성자 녀석이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내 얼굴을 가만히 살펴보던 놈은 이내 내가 누군지 알아봤다.

“아니… 혹시, 귀환자님 아니십니까?”

하여간 기똥 차게 알아봐. 그놈의 넌튜브가 뭔지.

두 비서에게 듣기로는, 동영상을 올리는 플랫폼인 넌튜브라는 인터넷 플랫폼을 통해 내 얼굴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고 했다.

“맞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한껏 긴장되었지만, 촐싹거리는 목소리가 영락없는 철부지처럼 보였다.

“영광은 지랄.”

현 세계에서 귀환자라 하면 무시무시한 존재라고 생각한다던데, 이 녀석은 두려움보단 호기심이 앞섰다.

그런 놈은 꼭 호기심 때문에 목숨을 잃지.

녀석은 내 욕지거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혹시, 몬스터풀을 지원 오신 겁니까?”

녀석은 기대를 품은 얼굴로 물었으나, 나는 단칼에 잘랐다.

“아니.”

“아… 그렇군요,”

“따로 지원 올 놈들이 있다.”

“아, 그렇습니까?”

“좀 전에 차원 관문에서 나온 중국 놈들이야.”

“예?”

내 말에 놈은 화들짝 놀랐으나, 내가 더 이상 지체하게 두지 않았다.

“넌 가서 안 막냐?”

“아… 옙!”

마력을 살짝 끌어올리며, 살의를 담아 얘기하자. 녀석은 그제야 부리나케 움직였다.

쯧.

거민지 각다귄지 모를 징그럽게 생긴 몬스터를 필두로 계속해서 쏟아져 나온 크고 작은 몬스터들이 일대를 빠르게 파괴해 나아갔다.

수십에 달하는 각성자 부대가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공격을 퍼부었지만, 구멍에서 쏟아지는 몬스터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뒤이어서 중국 놈들도 합류했는데,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자잘한 놈들은 잡았지만, 가장 문제인 커다란 맹독 몬스터에게 유효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방위청장 정도는 와야 유효타를 입힐 수 있겠구만.

그런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그 커다란 몬스터는 수많은 다리를 움직이며 내 쪽으로 돌진해 왔다.

그에 나는 재빨리 대기를 얼리는 빙결 마법 술식을 머릿속으로 그려 냈다. 심장의 고리가 여섯 개까지 공명하며 마법의 위력이 증폭됐고.

카드드드득-!

온 세상이 얼어붙는 듯 강력한 빙결음과 함께, 놈이 지나갈 길목 상공에 거대한 얼음 칼날이 만들어졌다. 그러곤 놈이 사정거리에 들어오자마자 그대로 낙하했다.

“후-”

수십 개의 기다란 다리를 가진 몬스터가 달려오는 것은, 정말로 불쾌함을 넘어서 무서울 지경이었다. 아무리 작아도 벌레가 달려들면 무섭듯 나도 싫어하는 것이 존재하고, 그것이 달려들면 혐오감과 함께 공포를 느낀다.

뭐, 최강이 됐다고 해서 무서워하는 것이 없고, 그런 것은 아니다. 그저 강력한 힘을 이용하여 극복해 나갈 뿐이지.

지금도 훌륭하게 극복했다.

놈을 관통하여 땅속 깊숙이 박힌 거대한 얼음 칼날이, 한기를 풀풀 날리며 놈의 몸을 얼려 갔다.

그때 커다란 차원 구멍 너머에서 거대한 손이 불쑥 튀어나와 땅을 짚었다. 그 충격이 얼마나 강했던지, 일대에 건물들이 모두 금 가거나 붕괴했다. 내가 서 있는 곳도 붕괴되어 마법으로 허공을 딛고 서 있어야 했다.

“뭐야 저건 또.”

* * *

“깡현철이 어딨어!”

“그, 지금 온다고 합니다. 잠시 시외에 볼일이…….”

“이 새끼. 하여튼 간에 필요하면 없어!”

각성자 협회장 박창식은 인근에서 일어난 몬스터 풀에, 협회 각성자 인원 전부를 비상 소집했다. 그가 평소와 다르게 이렇게 유난을 떠는 이유는, 차원 에너지 규모가 전례가 없이 거대했기 때문이다.

차원 에너지 연구센터에서 감지한 바에 따르면 지금 상계1동에 나타난 몬스터 풀은 역대 최고 등급인 12등급으로, 수백만의 사상자를 낸 역대 최악의 몬스터 풀이었던 항저우 몬스터 풀보다 더 높았다.

그렇기에 그가 이렇게 신경이 곤두서 있는 것이다.

‘전국의 각성자들을 싸그리 모아도 막을 수 있을지 장담을 못 하겠군.’

그만큼 한국의 각성자 전력은 열악했다. 그러다 문득 귀환자가 떠올랐다.

‘참……! 생각해 보니 귀환자가 수락산 차원 관문에 갔다고 했지.’

상황이 너무나 암담해서였을까? 수락산 차원 관문과 가까운 몬스터 풀의 위치를 떠올린 그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귀환자에 기대를 품어 버렸다.

‘쓸데없는 생각을.’

귀환자란 속에 뭐가 들어앉아 있는지 알 수 없는 존재. 적게는 수십 년에서 길게는 백 년 단위 동안 나이를 먹지 않고 존재해 왔기에, 그들의 깊고도 뒤틀린 속내를 도저히 알 수가 없다.

본래 불확실한 것에 의존하지 않는 그는, 속으로 자신을 꾸짖었다. 그리고 다시 현실에 집중하며, 조그만 막대 모양의 전자키를 꺼내 들고 사무실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시커먼 금속 장으로 걸어갔다.

전자키를 갖다 대자 커다란 장이 미끄러지듯 좌우로 열렸는데, 그 안에는 그의 몸집만 한 거부(巨斧)가 걸려 있었다.

올해로 쉰넷의 각성자 협회장은,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다섯 명의 2급 각성자 중 하나로, 부법(斧法)을 익혀 거대한 도끼를 다루는 부사(斧士)다.

투박하지만, 한 방 한 방이 혼신의 힘이 담긴 일격으로, 대인전보단 몬스터를 사냥하는 데에 더 특화된 각성자.

그가 손을 뻗어 도끼의 손잡이를 잡자 잠금장치가 자동으로 해제됐고, 그는 그것을 가볍게 꺼내 들어 등에 멨다.

“나머지 인원들 모이는 즉시 팀 꾸려서 보내.”

“예.”

그가 옥상으로 올라가자 스물이 넘는 인원의 각성자들이 대기하고 있었고, 협회장이 합류하자마자 마법사 둘이서 대규모 공간이동 마법을 시전했다.

그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몬스터 풀 현장에서 멀찍이 떨어진 높은 건물 옥상. 그런 그들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건물 사이로 솟은 커다란 얼음 기둥이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허공을 딛고 서 있는 백발의 남자가 있었다.

“저건…….”

어제에 이어 오늘까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것이 바로 ‘백발의 귀환자’. 그런 상황 속에서 눈앞의 장면은, 협회 각성자들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귀환자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렇게 그들의 이목이 귀환자에 집중된 그때. 거인형 몬스터의 강렬한 포효가 일대를 울렸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은 귀환자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거대한 존재에게로 향했다.

전례 없이 커다란 차원 구멍을 비집듯이 나오고 있는 거대한 푸른 빛 상체. 마치 거신(巨神)이 강림하는 듯한 모습에, 협회 각성자들은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소름을 느껴야 했다.

“협회 각성자 전원은 흩어져서 전투 중인 각성자들을 돕고, 그들과 함께 방어 진형을 구축한다. 곧, 한바탕 놈이 날뛸 거야. 대비해야 돼.”

이어셋 너머로 협회장 박창식의 명령이 떨어졌고,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스물일곱의 각성자들이 네 팀으로 나뉘어 빠르게 흩어졌다.

협회장도 힘을 끌어올리며 푸른 안광을 피워 냈고, 옥상 위에 순식간에 방어진이 펼쳐졌다. 그런 그는, 아까부터 허공에 가만히 서서 앞만 바라보는 귀환자를 주시했다.

‘귀환자…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냐.’

* * *

대기가 요동쳤다. 그저 놈이 이 세계로 넘어온 것만으로도 대기의 흐름이 바뀌고,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예삿 놈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줬다.

내 앞에 얼어붙어 있는 이 다리 많은 몬스터는 그에 비하면 피라미 수준이다.

떡대도 좋고, 우리 황성 수문장하면 딱일 놈인데, 아깝구나.

그런데 대체 왜 저기서 나온 놈들은 저렇게 눈을 하얗게 까뒤집고 난리를 치는 걸까? 갑자기 의문이 솟구쳤다. 대체 저 너머에 뭐가 있길래 저놈들이 저렇게 미쳐 있는 것일까?

지금 당장 구멍 너머로 넘어가 보고 싶을 만큼 탐구욕이 솟구쳤으나 의외로 나는 급한 성격과는 다르게 무턱대고 덤비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해서 지금은 처음 목격하는 현상이기에, 일단은 관찰하고, 자료를 수집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심호흡을 한번 하며 다시금 마음을 다스린 나는, 놈에게 집중했다.

다 나왔군.

그 크기가 처음에 나왔던, 다리 많이 달린 놈은 귀엽게 보일 만큼 거대한 놈이었다. 일어서니 주변 건물들이 녀석의 다리를 넘지 못했다. 게다가 배가 불룩한 것도 아니고, 몸에 군살이 별로 없이 탄탄했다.

으어어어-!

녀석의 강력한 포효가 일대를 뒤흔들었다. 포효와 함께 대기의 상태가 변하기 시작했다. 하늘은 검게 물들었으며, 대기에는 전류가 흘렀다. 그리고 이곳저곳에서 뇌전이 치기 시작했다.

“오…….”

뇌전을 다루는 놈이군.

일정한 법칙으로 마나를 전격으로 변환시키는, 그런 ‘마법’과는 다른 능력이었다. 이것은 순수 전류 그 자체를 지배하는 힘. 마계에선 ‘자연의 선택을 받은 자’라고 불리는 특수한 능력자들이다.

자, 그럼 간을 한번 봐 볼까.

순식간에 머릿속에서 그려진 마법 술식에 금세 대기가 얼어붙으며 수십 미터는 될 법한 거대한 얼음 창이 만들어졌다. 그러곤 한기가 풀풀 날리는 거대한 얼음 창을 빠르게 놈에게 쏘아 냈다.

굉음을 내며 날아간 얼음 창은, 그대로 놈의 가슴을 꿰뚫고 지나가서는 산 중턱에 박혔다.

확실히 이성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군.

놈에게 내재된 힘이 상당한데, 내가 공격을 준비함에 있어서 놈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정말로 자아를 잃어버리고, 그저 울부짖고 날뛰는 들짐승에 불과한 것이다.

치명상을 당했음에도 놈은 힘을 더욱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마치 고통을 느끼면 느낄수록 더욱 강해지는 존재처럼 녀석에게서 느껴지는 투기는 더 짙어졌다. 세상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릴 것만 같은 투기.

그리고 강력한 뇌전을 사방팔방 흩뿌리기 시작했다. 일대가 수없이 뿌려지는 뇌전으로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괴성을 지르며, 사방팔방 피아식별 없이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뇌전을 뿌려 대는 놈을 잠재우기 위해, 두 손을 따로따로 놀려 수인(手印)을 맺었다. 입으로도 약식 영창을 외워 복잡한 마법을 완성해 갔다.

순식간에 놈의 주변으로 강력한 마나의 흐름이 만들어졌고, 강력한 마법들이 깃든 열 개의 푸른 마법 판이 놈의 사방팔방을 둘러쌌다.

십옥관(十獄棺).

각 판에는, 마력 흐름 봉인, 전신 속박, 감각 봉인, 마법 물리 공격 상쇄 등 열 가지 마법이 걸려 있는 속박, 봉인류 마법 중에서도 최상급에 속하는 마법이다.

강력한 결속 마법으로 엮인 열 개의 속박 봉인 마법판에 둘러싸인 놈은, 꼼짝없이 모든 행동을 멈추고, 무언가에 묶인 듯이 두 팔을 몸에 붙이고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일대를 휘몰아치던 뇌전도 수그러들더니 이내 사라졌다.

다시 작게 읊조린 약식 영창에, 전보다도 훨씬 더 거대한 얼음 칼날이 놈의 머리 위에 나타났다. 그러곤 그대로 낙하했다.

무방비 상태의 녀석을 정확히 반으로 갈라 버린 거대한 얼음 칼날은, 이전에 다리 많이 달린 놈 때와 같이, 엄청난 냉기를 뿜어내며 반쪽 난 시신을 그대로 얼려 버렸다.

등장과는 대조되는 싱거운 결말이었다.

“자, 그럼 재료를 수집해 볼까.”

넓게 펼친 마나 감각망에 아직도 전투를 하지 않고 뛰어다니는 몬스터가 하나 포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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