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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등급 몬스터 풀. 역대 최대 규모의 몬스터 풀에, 전 세계의 이목이 다시 한번 대한민국으로 집중됐다. 최악의 차원 현상인 차원 균열이 일어난 지 하루 만에, 최대 규모의 몬스터 풀이 대한민국을 덮쳤다는 소식은, 치열한 전쟁 중인 유럽마저도 한국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전례 없는 연속적인 대재앙. 그러나 귀환자의 등장으로 차원 균열이 비교적 무사히 지나갔기에, 역대 최대의 몬스터 풀도 한국이 비교적 쉽게 막아 내는 것이 아니냐는 말들이 많았다. 왜냐하면, 이제 한국은 귀환자 보유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변덕스러운 귀환자의 특성상 귀환자가 나서서 막아 줄 리 없다고 예상했다.
그런 그들의 예상은, 귀환자가 거대한 얼음 칼날로 푸른 거인을 두 쪽 내 버리는, 너무도 비현실적인 영상으로 인해 뒤통수를 맞게 된다.
“이야…….”
“이거, 다른 귀환자들도 긴장해야 하는 거 아냐?”
“야, 다른 귀환자들도 저 정도는 하지.”
“아무리 그래도 저걸 저렇게 쉽게 잡는다고?”
“쉬운지 네가 어떻게 앎? 저게 풀 파워일 수도 있지.”
그 영상 하나로 온라인, 오프라인을 불문하고 전 세계가 불타올랐다. 그러나 귀환자를 직접 만난 각성자 협회장 박창식만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협회장님. 괜찮으십니까?”
“어… 그래.”
그는, 생전 처음 겪어 본 무시무시한 존재의 존재감에, 뭔가에 홀린 듯 멍하면서도 계속 축 처져 있는 상태였다. 왜냐하면 실제 귀환자라는 존재가 주는 존재감이, 자신의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었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그랬다. 귀환자라는 신비한 존재에 대해 수많은 추측과 상상들이 난무했고, 그저 추측과 상상에 불과한 사실들을 정말 사실인 양 믿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박창식도 마찬가지였다. 그 또한 만나 보지 못했고, 대한민국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각성자로서, 자신의 위치에서 오는 오만함을 품은 상태였다. 그래서 귀환자라고 할지라도 자신이 상상하는 범위 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직접 만나 본 귀환자라는 존재는, 그 존재감이 마치 헤아릴 수 없는 우주와 같았다. 게다가 그에게서 느껴지는 특유의 사나운 느낌은, 도저히 마법사의 것이라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무자비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의기소침하게 된 것은 단지 그 존재의 존재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귀환자의 기세에 눌려 마치 호랑이 앞의 고양이 마냥 조심스러워진 자신의 모습에 자괴감이 들어 이렇게 침체되어 있는 것이다.
“정신 치료가 필요하시면…….”
“아니, 됐다. 일단 가서 상계동 근방 복구 지원이나 도와줘.”
“아… 예.”
협회 간부 함중훈은 그 콧대 높은 협회장이 이렇게 멍해져 있는 것이 영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가 봐 온 협회장은 언제나 호탕하며, 시원시원한 성격이었다. 단점이라면 자기주장이 너무 강하고, 조금 오만함이 있다는 정도.
그런데 지금은 마치 맹수 앞의 쥐새끼처럼 주눅 들어 있다. 그래서 그는 더욱 호기심이 일었다. 대체 귀환자가 어떤 존재이길래, 단지 몇 마디 나눈 정도로 협회장을 이렇게 만든 것인지.
간부 함중훈이 나간 지 얼마나 지났을까? 멍해져 있는 협회장을 요란한 휴대폰 벨소리가 깨웠다.
“예.”
[좋은 소식이 있네.]
벨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대통령이었다.
“뭡니까?”
[귀환자가 내 제안을 승낙했네.]
“예?”
그는 잘못 들은 것만 같아 다시 물었다.
[이제 이 나라는, 귀환자의 비호 아래에 있다는 말이야.]
“그게 정말입니까?”
그는 그 무시무시한 존재가 아무 힘도 없는 대통령의 설득에 넘어갔다는 것이 의아했다.
[그렇네. 본인의 입으로 얘기했으니 일단 그렇게 알고 있게. 내, 귀환자의 속내를 다 알진 못하지만, 내 부탁이 그의 마음을 흔든 모양이야.]
‘정말 진심으로 승낙을 한 것일까?’
협회장의 머릿속엔 계속 그의 사나운 눈빛이 떠올랐다. 사람 수천 정도는 가볍게 찢어 죽일 듯한 무자비함이 느껴지는 눈빛이.
“아무튼, 좋은 소식이군요.”
[자네. 무슨 일 있나? 왜 그렇게 의기소침한 목소리야?]
“아… 오늘 컨디션이 좀 안 좋아서 그렇습니다. 신경 쓰지 마십쇼. 아무튼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흠. 알겠네. 그리고… 앞으로는 귀환자의 행보에 맞춰서 정책을 펴고, 각종 계획을 수립할 것이니, 자네도 그의 행보에 맞췄으면 좋겠네.]
“예.”
통화가 끝난 뒤, 협회장은 담배를 하나 꺼내 물고는 창 앞에 섰다. 이제야 좀 자괴감에서 벗어난 그는 착잡한 눈빛으로 바깥 풍경을 바라봤다.
‘이 나라가 대체 어디로 흘러갈런지…….’
“후우-”
그의 마음을 대변하듯, 방 안이 뿌연 연기로 가득 차올랐다.
* * *
강력한 마법의 힘이 전신을 감싸더니 이내 눈앞 풍경이 집 앞으로 바뀌었다.
두근두근.
전리품을 연구할 생각에 가슴이 부풀어 오른 나는, 걸음을 옮기려다 슥 눈길을 옆으로 돌렸다. 그러자 작은 파라솔 밑에 선 경찰이 눈에 들어왔는데,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잔뜩 긴장한 경례를 올려붙였다. 거의 경기에 가까운 몸놀림.
그처럼 긴장한 채 멀뚱멀뚱 서 있는 경찰들이 내 뒤로 둘이 더 있는데, 이들은 모두 집에 아무나 손대지 못하게 하라는 나의 당부 때문에 파견된 이들이었다.
“수고.”
그런 그들에게 손을 들어 보이며 집으로 들어갔고, 내 전리품은 둥실 떠올라서는 자연스럽게 결계를 통과해 마당으로 들어왔다. 그런 전리품을 보며 말했다.
“자아- 그럼 은밀한 시간을 가져 보실까.”
차원 구멍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렇게 정신 마법을 시작하려던 그 순간. 집 뒤쪽에서 난 기척에 기대감이 싹 가셨다.
뭐지? 어떻게 이 결계 안으로 들어온 거지?
익숙하지 않은 기척. 집 뒤편에서 갑자기 느껴졌다는 것은, 내가 들어오기 전부터 이 집에 들어와 있었다는 얘기였다. 결계를 통과하는 순간 내게 걸리니까.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들어와 있었을까? 이 마법 결계는 나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결계가 파괴되거나 해제되면 바로 느낌이 온다. 누군가가 결계의 술식을 풀고 들어오는 것도 마찬가지.
순식간에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 ‘존재’가 집 측면에 난 산책로를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허허허허. 가까이서 보니 더 훤칠하구만 그래.”
그 존재의 정체는 허리가 구부정한, 나이가 아주 많아 보이는 노인이었다. 그리고 그에게선 아주 좋지 않은 느낌이 났다. 뭐랄까? 미이라를 만나면 그런 느낌일까? 너무나 오래된 냄새가 났다. 그러나 그의 속에 어떤 힘이 들었는지는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캄캄한 암흑과 같았다.
“남의 집에 허락도 없이 들어오는 게 당신의 예법인가?”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적을 탐색할 겸 먼저 강력한 살의를 담아 말을 내뱉었다. 그러나 노인은 그저 구부정히 뒷짐을 지고 있을 뿐. 꿈쩍도 하지 않았다.
“허허. 미안하게 됐구만 그래.”
“……!”
한 걸음?
노인은 눈으로 좇기 힘든 보법을 펼쳐, 어느새 지척으로 다가왔다. 소리도, 기척도 없는 보법. 마치 유령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에 오랜만에 호승심이 일었다.
“허허. 내 자네에게 충고를 하나 해야 할 것 같아서 왔네.”
샤아아아-
노인의 보법에 반사적으로 떠오른 공격 마법들이 허공에 펼쳐졌다. 그에 긴장감이 가득한 기류가 마당을 휘감았다.
“그리 경계하지 말게나. 딱히 싸우러 온 것이 아니니까.”
노인은 어느새 내 뒤로 이동해 왔다.
“자네에게 제안을 하나 하지.”
“싫다면?”
제안을 듣기도 전에 반사적으로 물었다.
“그렇다면 이 땅의 일에서 손을 떼게.”
“무슨 일을 말하는 건지 모르겠군.”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영향을 끼치지 말라는 얘기일세.”
뒤를 돌아 내 눈을 마주 보는 노인의 깊은 눈동자가 매섭게 빛났다. 도저히 노인의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싫다면?”
“아마, 후회할 일이 벌어질걸세.”
“내가?”
“그렇네. 귀환자라는 족속들이 세상을 주무르는 듯이 보이지만, 실상은 ‘우리’가 그들의 모가지를 틀어쥐고 있다네.”
“당신네들은 뭐하는 족속들인데?”
묘한 기류가 흘렀다. 뭐랄까? 톡 치면 터질 것 같은 기류. 마치 내가 움직이기만 하면 폭발할 것만 같았다.
“우린 ‘관조자’들이라네. 오랫동안 세상을 관조해 온 존재들이지.”
“뭐야, 그건 또.”
그가 내 눈을 살폈다. 뭔가 내 안을 들여다보려고 하는 듯했지만, 나는 보여 주지 않았다. 그 또한 시커먼 것밖에 보여 주지 않았으니까.
“돌아가려고 한다고 들었네만. 그럼 거기에 전념해 주시게.”
“전념하고 말고는 내 맘이고. 당신네들이 오랫동안 세상을 관조하고 말고 그딴 건 난 관심이 없어. 다만, 나는 내가 하려는 것을 막아서는 이들을 싫어한다.”
“허허허허. 맹랑하구만.”
노인의 눈빛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내부도 여전히 캄캄한 어둠이었다. 그 무엇도 보이지 않는, 깊고 깊은 어둠.
“맹랑이고 나발이고, 나도 당신에게 충고 하나 하지. 내가 하려는 것을 가로막으면, 그 누구든지 돌이킬 수 없는 화를 입을 거야.”
쿠구궁-
마당이 갈라지며 들솟아 난장판이 되었고, 순간 그 노인에게서 육황에 버금가는 강렬한 힘이 느껴졌다 사라졌다.
아니, 그 정도는 아니려나?
순간적이라 긴가민가했지만 굉장한 힘임은 분명했다.
“새겨듣도록 하지. 허나, 자네도 내 말을 흘려듣지 않는 것이 신상에 좋을걸세.”
그 말을 끝으로 연기처럼 사라졌고, 결계엔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다.
“후우-”
순간 긴장해서 식은땀이 흘렀다. 이런 긴장감이 얼마 만인지 헛웃음까지 나왔다. 순간적으로 내 앞에 육황이 있는 듯 착각이 들 정도의 힘을 내보이다니.
앞으로 바짝 긴장하고 있어야겠는걸?
나도 모르는 새에 내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건 그렇고…….
뒤집어진 마당을 보니 짜증이 와락 치밀어 올랐다.
“이 새끼 아주 X같이 해 놓고 갔네.”
* * *
대체…….
전리품으로 챙겨온, 눈을 허옇게 까뒤집고 허공에서 허우적대는 몬스터 한 마리를 지긋이 바라봤다. 녀석의 크기는 내가 타고 다니는 차량보다 조금 작은 수준. 놈을 조사하던 나는, 녀석의 정신세계가 내가 여태 보아온 그 어느 것들보다도 공허하며, 상상을 초월할 만큼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거기다가 까마득한 긴 기간 동안의 기억이 모두 캄캄한 암흑이었다. 그러니까 기억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는 곳에 있었다는 얘기다.
아무런 소리도, 아무런 흐름도, 땅도 하늘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암흑. 대체 그런 세계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까? 아니, 그런 것을 세계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런 곳에서 그렇게 아득한 시간을 보내다니.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정신이 붕괴하진 않았다는 점이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수도 없이 정신과 마음이 붕괴할 위기에 처했으나, 실질적으로 붕괴하진 않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먹지도, 싸지도 않았다. 그저 암흑 속에서 표류하며, 다른 생물들과 부딪힌 것 같은 기억뿐이었다.
종합해 보자면, 이 녀석은 눈을 하얗게 까뒤집고 발광할 만큼의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았고, 차원 구멍 너머의 세계가 그저 암흑뿐인 기이한 곳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은, 생명체가 죽지 않는 곳이 분명하다. 마치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내가 마계에서 늙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지.
“…시우 님?”
“어?”
“시장하시지 않으세요?”
“벌써 저녁 시간인가?”
“네. 여덟 시가 넘었습니다.”
“준비해 놔. 금방 들어갈게.”
“넵.”
눈을 허옇게 까뒤집고 허공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몬스터에, 봉인 결계를 다시 씌워 마당 한쪽으로 치워 놓고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