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김 비서에게서 폰을 넘겨받은 나는 대뜸 물었다.
“무슨 일이지?”
폰 너머에서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십니까. 길드 광해의 마스터 조방인이라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현재 데리고 계신 정수현 양에게 볼일이 있어서…….]
“무슨 볼일?”
[아… 혜화동에 각성자의 짓으로 추정되는 대형 화재가 발생했는데, 거기에 제 아들이 휘말렸습니다. 당시에 같이 있었던 친구들이 있다고 하는데, 현재 소재가 파악되는 사람이 정수현 양뿐입니다. 해서 그 아이와 만났으면 합니다.]
수현이가 여기 있다는 건 어떻게 안 거지? 게다가 그의 말에서 뭔가 위험한 냄새가 났다. 뭐랄까… 뭔가 꾹 누르고 있는 듯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아들이 화재에 휘말렸다고?”
[예.]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 들을수록 그가 분노를 누르고 있다는 확신이 섰다.
“지금 몇 시냐?”
“네 시 오십 분입니다.”
“여섯 시까지 집으로 오면 만나게 해 주마.”
[실례지만, 귀환자님께선 그 아이와 무슨 관계이신지.]
“스승과 제자 사이다.”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여섯 시까지 댁으로 가겠습니다.]
폰을 건네주자 긴장감으로 가득한 김 비서와 남 비서가 나를 쳐다봤다.
“화재 건으로 수현이와 만나고 싶다는군.”
“아… 혹시 식사 약속이신가요?”
“아니, 같이 밥을 먹을 만한 분위기는 아닐 거다.”
“네. 그러면 따로 준비하지 않겠습니다.”
“그것보다.”
내 말에 둘의 긴장한 눈빛이 내게로 향했다.
“수현이가 여기 있다는 건 어떻게 안 거지?”
“아… 그게. 제 생각으로는, 아까 제가 수현 양의 가족관계를 수정하러 갔는데, 그것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음…….”
화재 이후 수현이의 행방을 누군가 쫓았다면 실종 처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족관계 정보를 갱신했으니 그것을 쫓아왔을 수도 있겠군.
두 비서의 긴장감 넘치는 눈을 훑었다.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 썩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얼굴들이었다.
그때 2층 방에 있는 수현의 정신이 접촉해 왔다.
[광해 길드 마스터가 온다고요?]
[뭐야. 다 듣고 있었어?]
[네. 저랑 관련 있는 것 같아서…….]
[그쪽 아들이 네가 일으킨 화염에 휘말린 것 같다고 얘기하더라고.]
잠시 말이 없어졌다. 그사이 나는 아직도 긴장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두 비서들을 마무리했다.
“일단 그 녀석 올 때까지 각자 할 일들 하고 있어.”
두 비서는 그 말이 끝나자마자 흩어졌고, 나는 1층 발코니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 놓여 있는 나무로 만들어진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걔는, 절 죽이려 했어요.]
수현의 기억 조각들을 엿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놈이 수현이를 극한으로 몰아붙여 재능을 깨운 거라고. 그런 기억을 떠올리고 있음에도 생각보다 마나가 요동치지 않았다.
[그놈이 네 재능을 깨웠구나.]
[맞다가 기절하고 난 이후에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서 잘 몰라요.]
[아마 네 위기감에 반응한 마나가 그놈을 잿가루로 만들어 버렸을 거다.]
[주변에 있던 다른 애들도 다 죽었겠죠?]
[아마도 그랬겠지.]
또 한동안 말이 없어졌다.
[그 사람을 만나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제 감정을 주체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오랫동안 괴롭힘 받아 왔지? 수치스러운 일들도 많이 겪었고, 남한테 절대 말할 수 없는 일들도 겪었겠지.]
[에……?]
[아무도 안 도와줬지? 세상 모두가 너를 버리고, 외면하고. 차라리 죽어 버리라고 기도했을 거야.]
[뭐 하시는 거죠?]
대기의 마나가 부르르 떨려 왔다.
[아~ 테스트.]
[네?]
[그 정도면 그 녀석 앞에서 대화해도 문제없을 거야.]
가장 깊숙하고도 아픈 부분. 그것을 일부러 건드려 봤다. 그것도 무례하게 헤집었다. 그럼에도 그저 마나가 살짝 떨리는 걸로 끝이 났다는 것은, 통제가 아주 불능은 아니라는 얘기였다.
[선을 넘으면 내가 나설 테니까. 너는 그냥 아무 걱정하지 말고 있어.]
[…네.]
이젠 내가 질문을 할 차례였다.
[넌 이 나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어… 갑자기 그렇게 물어보면 잘 모르겠는데…….]
[여기서 살고 싶어?]
[음… 다른 나라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어요. 다른 나라 여행은 해 보고 싶은데, 살고 싶은 건 역시… 한국이죠?]
[그렇구나. 알았다. 있다가 그놈 오면 부르마.]
그렇게 대화는 끝이 났고, 남 비서를 불렀다.
“그놈 그거 광해 길드라고 했지?”
“네. 맞습니다.”
“그 길드에 대해서 아는 정보들을 읊어 봐.”
* * *
광해 길드의 마스터 조방인은, 부글부글 끓는 마음을 진정시키느라 애썼다. 귀환자만 없었다면 길드원들을 동원해서 그년을 잡아 와 모든 것을 실토하게 만들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귀환자 놈만 없었다면…….’
이빨이 으득 깨물려졌지만, 그는 가까스로 침착함을 유지해 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래야 할 것이었다. 귀환자의 앞에서 잘못 분노를 표출했다간, 그 자리에서 시체가 될 수 있으니까.
그도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귀환자의 무시무시한 무력을 확인했기에, 그의 마음속에 분노를 조절하는 고리를 가질 수 있었다.
“다 왔습니다. 마스터.”
다시 한번 속으로 분노를 가라앉히며 차에서 내렸다. 마음 같아서는 공간이동 마법으로 오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조심했다. 별것 아닌 것이 귀환자들의 뒤틀린 심사를 건드릴 수도 있으니까.
“가자.”
* * *
차갑다. 내가 놈을 본 첫인상이었다. 광해 길드의 마스터 조방인이라는 자는 아주 차가운 인상의 소유자였다. 그냥 악당의 차가운 느낌과는 좀 달랐다. 마치, 지옥에서 올라온 차가움이랄까?
살심 가득한 눈빛과 날카로운 눈매와 입술, 옆머리만 짧게 치고는 뒤로 넘긴, 은발에 가까운 올빽 머리. 깐깐함으로 가득한 얼굴이 영 맘에 들지 않았다.
힘은 대충 협회장이나 청장이랑 비슷한 수준이군.
“처음 뵙겠습니다. 광해 길드의 마스터 조방인입니다.”
공손히 머리를 숙이는 데에 1%의 거리낌도 없는 것을 볼 때 대가리를 많이 숙여 본 놈이었다.
“신시우다.”
“그쪽이… 정수현 양?”
“네.”
저 살심 가득한 눈깔. 감히 저런 눈깔로 내 제자를 쳐다보니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앉아서 얘기하지.”
내 제안에 우리 셋은 소파에 마주 앉았다. 그리고 녀석의 입이 열렸다.
“오늘 아침, 혜화동에 초대형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소방차에 헬기까지 동원했음에도 진화가 되지 않고, 계속 그 크기를 불려가자, 각성자들이 나섰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손쓸 수가 없었죠. 그렇다고 땅을 전부 갈아엎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어느 순간 그 불길이 잦아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비정상으로 솟구쳤던 화염이 사라졌고, 정상적인 불만이 남았죠. 그곳에 제 아들이 있었다는 보고를 받고 심장이 멎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주변 CCTV에 담긴 영상으로 추정컨대, 아들과 그 친구 녀석들은 그곳을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아마 과학수사대와 마법수사대가 동시 투입되었으니 지금쯤 흔적을 찾았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런데 이게 웬걸? 수현 양이 살아 있다는 보고를 받고는 아들에 대한 얘기를 들을 수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수현이를 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은 것을 보니. 확신을 가지고 온 것 같은데…….
“제가 기억나는 건 아저씨 아들에게 맞는 기억뿐이었어요. 아마, 제가 기억을 잃고 나서 화재가 발생한 것 같은데, 저는 모릅니다.”
수현이는 생각 외로 당당하고, 차분했다.
“그럴 리가… 성진이가 학생한테 손을 댔다고요?”
녀석은 굉장히 놀라는 얼굴을 해 보였다. 반면에 힐끗 살펴본 수현의 얼굴은 금이 가 있었다.
“더 물어보실 말이 없으면, 전 이만 올라가 보겠습니다.”
“아비로서 좀 당황스럽군요. 아들놈이 그럴 놈이 아닌데. 그리고 학생한테 한 가지 더 물어볼 게 있는데…….”
놈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입을 열었다.
“각성자예요?”
응접실에 묘한 긴장감이 돌았다. 그러나 그 긴장감이 무색하게 수현은 너무나 가볍게 대답했다.
“네.”
“이제 그만 올라가 봐.”
쓰잘데기 없는 수작질을 더 하기 전에 수현이를 올려 보냈다. 어차피 아무런 기억도 없는 수현이와 더 이상의 질의응답은 무의미할 것 같으니까.
가만히 생각에 잠긴 놈의 얼굴이 묘했다. 그 얼굴을 보며 나 또한 고민에 잠겼다. 이놈을 살려 보내도 될까?
솔직히 말해서 수현이를 괴롭혔던 쓰레기의 애비라는 이유만으로 이 자리에서 참살하고 싶지만, 일을 그르칠 수 있으니 몇 번 더 고민을 거쳐야 한다.
“더 물어볼 게 있나?”
“음… 귀환자님께선 왜 저 아이를 선택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런 게 왜 궁금하지?”
“왜냐하면… 저 아이가 혜화동 화재의 주범이자, 제 아들을 죽인 살인범이기 때문이지요.”
이제 아주 대놓고 말하는 꼬라지가 내 가슴에 불길을 지폈다. 거기다가 감히 수현이에게 살인범이라는 단어를 붙이다니.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놈은 그런 단어를 써선 안 됐다. 그리고 저 살심 가득한 눈빛.
역시, 놈은 반드시 이곳에서 처리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훗날 반드시 귀찮아지겠지.
“혜화동 화재와 내 선택이라… 둘 사이의 무슨 관계가 성립하지?”
“귀환자님께서 혜화동의 그 불길 속을 헤치고 들어가셔서 그 아이를 구해 온 이유. 그 아이가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 뭐, 그런 것이 궁금했습니다.”
그래, 어차피 가는 길이니 궁금증 정돈 해결해 주마.
“저 아이는 마나의 선택을 받은 존재다. 마나 자체가 아이의 감정과 의지에 반응하지. 즉, 일정한 법칙 없이 마법을 구현해 낼 수 있다는 소리다.”
“호오… 귀환자께서 탐내 하실 만한…….”
팟-!
놈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며, 뒤로 날았다. 아니, 뒤로 물러섰는데, 그게 너무 급하게 한 나머지 나는 것처럼 보였다.
이상한 마력의 흐름을 느끼고 움직인 것 같은데, 이미 늦었다. 놈의 두 눈이 경악으로 물들어 갔다. 그와 함께 놈의 전신에서 가공할 만한 열기가 나오며, 대기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뒤늦게 그의 입이 열렸다.
“이게… 이게 무슨 짓입니까!”
허공에서 뻗어 나온 푸른 화염 줄기가 놈의 두 손목을 꽉 묶어서 잡아당기고 있었다. 놈이 내 말에 한눈팔린 사이 테이블 밑에 있던 한 손으로 인을 맺어 만들어 낸 화염 계열 속박 마법이었다.
“마법사들을 상대할 때는 입과 손을 조심하라. 멍청하게 한눈팔려 있으면 훅 가는 거 안 배웠어?”
조방인이 이를 악물었다.
“이……!”
구구구구-!
지반이 통째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주변에 열기가 무시무시한 것을 보니 마그마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슥.
놈의 목이 마치 무중력 속에 있는 듯 허공에 붕 떴다. 머리와 몸이 분리되었지만, 피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잘린 단면 그대로 멈춰 있었다.
공간 절단.
공간 계열 마법 중 하나로, 놈의 머리통과 몸통을 공간 채 분리시켜 버린 것이다. 놈의 목이 떨어지자 지진도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한국을 쥐고 흔드는 세 무력 집단 중 하나의 수장이라기엔, 너무나 허무한 죽음. 녀석의 죽음을 끝내기 위해 다시 한번 두 손으로 인을 맺었다. 마법이 완성되자 머리와 몸통이 공간 채로 구겨지며 순식간에 소멸되어 버렸다.
“들어와.”
복도 쪽으로 난, 유리 없는 창 너머에 있는 남 비서와 조방인의 수행원을 불렀다. 둘은 심각한 얼굴을 한 채 무거운 걸음걸이로 들어왔다.
“광해 길드의 수장은 죽었다. 네가 이 자리의 증인이 되어 길드에 전해라. 오늘부로 광해 길드는 내가 먹는다고.”
녀석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씹듯이 내뱉었다.
“예…….”
녀석의 얼굴에선 두려움과 당황스러움이 공존했다. 대한민국 3대 길드의 장이라는 사람이 너무나 간단하게 제거되는 것은 역시나 충격이 크겠지.
그러나 그것이 바로 레벨의 차이. 한 손으로 인을 맺어 마법을 발동시킨다는 것은 현재 지구의 각성자들에겐 상식 밖의 일이기에, 눈 뜨고 당하는 것이 당연하다.
“내일 내가 길드로 찾아가겠다. 이놈이 왜 죽었는지,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내일 모두를 모아 그 앞에서 얘기하도록 하지.”
“그대로 전하겠습니다.”
“남 비서, 보내주고 와라.”
“예.”
수행원은 나가면서 조방인이 있던 자리를 흘끔거렸다. 거짓말같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자신의 주군을 믿지 못하는 눈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