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황색 빛을 내는 땅 속성 마법이 두 손을 휘감았다. 눈을 감고는 두 손으로 땅을 짚었다. 그러자 감각이 땅속으로 뻗어 나가며, 광활한 지각이 내 감각 안으로 들어왔다.
역시.
예상대로 마그마가 끌어올려졌던 부분이 휑하게 비어 있었다. 이대로 둔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지반이 내려앉을 것이 자명했다. 해서 텅 빈 부분을 메우는 작업을 해 나갔다.
“후-”
작업이 끝나고 일어나니 남 비서가 들어왔다.
“시우 님. 제가 감히 여쭤도 될지 모르겠으나..”
“모르겠으면 하지 마.”
장난기 섞인 나의 대답에 남 비서는 심각한 얼굴 그대로 다시 입을 열었다.
“저도 시우 님을 모시는 비서로서, 시우 님의 의중을 알고 싶습니다. 어째서 광해 길드장을 죽이셨는지…….”
“후환을 없애기 위해서다. 놈은 자기 자식을 죽인 수현에게 진한 살심을 품고 있었어. 그렇기에 놈은 그냥 보낸다면 분명히 훗날 큰 후환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후환을 남기는 스타일이 아냐. 큰 걸림돌이 될 것 같으면 일찌감치 재낀다. 작은 이유 하나 더 보태자면, 내 제자의 심신을 황폐화시켰던 버러지의 애비이기 때문이지.”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남 비서는 그제야 심각한 얼굴을 벗어던지고는, 결의에 찬 얼굴을 했다.
“그놈을 시작으로 이 나라에 있는 길드들을 통합할 참이다.”
“통합… 말씀이십니까?”
녀석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날 쳐다봤다.
“그래. 본래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오늘 생각이 바뀌었다. 대통령에게 했던 약속을 지키려면 일단 이 병신 같은 나라가 바로 서 있을 필요가 있어. 그 초석은 바로 무력의 구심점이다. 내가 구심점이 되어서 한국에 있는 각성자들을 통합할 거야.”
“아…….”
“이제 궁금증이 좀 해소가 됐나?”
“그… 조방인이라는 사람은 일본에 줄을 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마, 일본이 가만히 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피식 웃었다.
“만일 가만히 있지 않는다면, 나와 싸우면 어떻게 되는지 가장 먼저 본보기가 될 수 있으니까 좋지.”
“현재 일본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강한 각성자 전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녀석은 걱정이 태산인 얼굴을 했다. 아무래도 홀로 강국을 상대한다고 생각하니 녀석은 걱정이 되나 보다. 그러나 이곳 지구에서나 일본이 강국이지, 아마 마계에 일본을 갖다 놓는다면 분명 구석에 찌그러져 있을 것이 자명하다.
단신으로 제국을 멸망시킬 수 있는 것이 바로 육황이라는 존재들이다. 그 육황을 모두 꺾은 것이 바로 나다. 제국도 결국은 하나의 나라이니, 일본 역시 육황 선에서 정리가 될 거다.
그런 내게 고작 일본이 비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비상식적인 것이다.
변수가 있다면…….
귀환자도 아니고,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바로 지팡이를 짚고 있던 그 노인네였다. 그런 존재가 일본에도 여럿 있을 경우. 홀로 격파하는 데에 장애가 될 수 있겠지.
“그래서? 내가 질 것 같아?”
“죄송합니다. 걱정돼서 그만…….”
“걱정하지 마라. 네놈이 죽지 않게 해 줄 테니까.”
내 말에 녀석은 손사래를 쳤다.
“아, 아뇨! 그런 뜻이 아니라…….”
“어. 됐어. 더 궁금한 사항은?”
“어, 없습니다.”
“가 봐. 내일 광해길드로 갈 거니까. 마음의 준비 잘해 놓고 있어라. 너희가 두려워하는 그 광해 길드니까.”
“아, 넵…….”
그렇게 녀석이 나가고 나니, 사실 조금 걱정되는 게 있었다. 제자의 안위. 귀한 인연을 놓치게 될까 봐 조금 걱정이 앞섰다. 그 노인네의 무력도 걱정이었고.
똑, 똑, 똑.
“네.”
문을 열자, 수현은 창가에 서 있었다.
“놈은 죽었다.”
“네. 느꼈어요.”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내 기분까지 끌어내리는 것 같았다.
“내일 광해 길드로 갈 거다. 너도 동행해야 돼.”
“네. 그럴게요.”
너무 쉽게 대답을 들어서일까? 할 말은 끝났는데, 왠지 걸음을 돌리기가 아쉬웠다.
“앞으로 위험할 일들이 많을 거야. 당분간은 내게서 멀리 떨어지지 마.”
“네.”
또다시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나오는 대답에, 이만 돌아섰다.
“조금 있으면 저녁 시간이다. 좀 이따 보자.”
그 말에는 대답이 없었고, 나는 방에서 나왔다.
“후…….”
절로 한숨이 나왔다. 공기가 답답했다. 마음을 찹찹하게 만들었다. 아마 녀석의 기분이 좋지 않은 탓이리라.
* * *
“시우 님, 청장님 전화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방위청장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뭣 때문인지는 뻔했다.
“어.”
[밤새 잘 주무셨는지요?]
“뭔, 시답잖은 문안 인사야. 용건이나 말해 봐.”
[어제 광해 길드장이 귀환자님에게 살해당했다고 인터넷이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되신 겁니까?]
“어떻게 되긴. 내 제자를 위협하는 눈빛을 보내길래 그 자리에서 죽였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혹시, 귀환자님께서 생각하고 계신 계획을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오늘 10시까지 광해 길드로 와라. 그때 말할 거니까.”
[아…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통화는 끝났다.
역시 뒤집어졌구만. 그래도 밤새 눈 까뒤집고 쳐들어오는 미친놈들은 없어서 다행이었다. 아침 식사 후 어제 점찍은 직원이 출근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오늘부로 시우 님 비서로 온 주은서라고 합니다.”
보통 정도의 키였고, 길지 않은 머리에 핀을 꽂아 정리하고 왔다.
실물이 더 낫군.
성실하고, 사교성이 좋을 것 같은 인상으로 골랐는데, 실제로 보니 더 맘에 들었다.
그러나 지켜봐야겠지.
사람은 겉으로는 모르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으니. 일단은 내 옆에 두고 지켜보기로 했다. 남 비서나 김 비서는 조금 순진한 구석이 있는 녀석들이라 걱정이 덜했지만, 주 비서는 그런 면은 보이지 않았으니까.
“어. 그래. 마침 잘 왔다. 광해 길드로 가려던 참인데. 동행하도록 해.”
“예.”
처음 만남이라 그런지 역시 긴장한기색이 없지 않았다.
합정동에 있다는 광해 길드 건물까지는 거리가 꽤 있었다. 가는 동안, 간단하게 수현이와 마나와 마법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생각보다 수현이의 마나 장악력이 꽤 강력했다. 그리 큰 마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마나들이 그 아이의 의지에 강하게 반응했다. 간단한 속성 마법을 그냥 구현해 내는 것을 보니, 홀로 방 안에서 마나로 이것저것 해 본 것 같았다.
“저기가 광해 길드 사옥입니다.”
남 비서의 말에 창밖을 보자, 우뚝 솟은 고층 건물이 보였다. 한참을 가니 건물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그 규모가 상당히 방대했다.
이런 규모의 건물은 영향력 과시용인가.
실용성은 없어 보였다. 1층에는 수십의 각성자들이 도열해서 마중 나와 있었다. 다들 기세가 날카롭게 서 있는 것이, 나의 방문을 환영하지 않는 느낌이 강했다.
“들어가시지요.”
조방인의 수행원을 통해 길드를 내가 먹겠다는 의사를 전했음에도, 아직 인정을 못 하겠다는 듯 손님을 대하는 식이었다. 그것도 당연했다. 갑자기 우두머리를 죽이고 온 놈이니까.
엘리베이터를 타고 높이 올라가 도착한 곳은, 규모가 굉장한 대강당이었다. 그곳에는 빽빽하게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내 등장에 입구부터 많은 카메라들이 조심스럽게 돌아갔다.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찍으러 왔군.
“오셨습니까.”
청장도 와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 있다가 눈이 마주친 협회장도 고개를 숙였다.
“들어가지.”
비서 셋과 수현을 달고 대강당 맨 앞쪽으로 향했다. 길드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쪽으로…….”
앞쪽으로 이동한 나는, 관계자의 안내를 받아 홀로 단상 위에 올라섰다. 강당을 빽빽하게 채운 이들을 보자 첫 황제의 자리에 올랐을 때가 떠올랐다.
그땐 좀 긴장했었지.
“아아.”
마이크 테스트 겸 목소리를 내자 웅성거리던 강당이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그리고 카메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 소개는 하지 않아도 다 알리라 생각한다. 내가 오늘 이 자리에 내가 선 이유는, 조방인의 죽음에 대한 얘기와 이 길드를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전하기 위함이다.”
조금 장내가 소란스러워졌으나 다시 내 목소리가 울리자 금방 가라앉았다.
“어제, 광해 길드장 조방인이 내게 만나길 요청했고, 나는 승낙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한 나는, 혜화동 화재가 왜 일어났는지. 수현과 조방인의 아들 사이에서 대체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얘기했다. 그리고 조방인이 무슨 목적으로 집에 왔는지 그리고 내가 왜 그를 죽였는지까지 이야기를 이어 갔다.
“너희 우두머리는 내 손에 죽었다. 하여 나는 이 길드를 내 휘하에 두려 한다. 거기에 대해 이의가 있는 자는 앞으로 나와서 자신의 주장을 피력해라.”
* * *
대강당에 모인 이들 중 그 누구도 귀환자의 앞에 나서지 못했다. 그들 모두 어젯밤 조방인의 수행원에게 조방인이 얼마나 어이없이 당했는지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것이 아니라도 귀환자의 무력은 이미 다들 알고 있는 상태였으니 당연히 귀환자의 심기를 거스를 녀석은 없었다.
그러나 단순히 무서워서 나서지 않은 게 아닌 진심으로 이번 사태를 잘됐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바로 두 부마스터 중 하나인 ‘김도환’. 그는 꽤나 담담한 얼굴로 귀환자의 연설을 들었다.
그는 훗날 차기 마스터가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귀환자가 길드를 꿀꺽하겠다는 얘기에 별로 동요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욕심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눈에 가시였던 조방인을 없애 줬기 때문이다.
그는 조방인 라인이 아니었다. 언제나 그의 의견에 맞섰고, 일본에 줄을 대고 있는 조방인과 다르게, 반일감정을 쌓아 왔다. 그렇기에 그는 지금의 상황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금니를 깨물고 있는 또 하나의 부마스터 ‘방지산’과 다르게 말이다.
‘이… 쓰레기 같은 귀환자 새끼가…….’
방지산은 전날 조방인이 당했다는 것을 듣자마자 일본 측에 연락은 해 놓은 상태였다. 일본이 한국으로 진출할 길을 열어 줄 무력 집단이 다른 놈의 손에 넘어가게 생겼으니. 일본도 가만히 있을 순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철저한 조방인 라인으로, 실질적으로 일본과 직접적인 교류는 크게 많지 않았지만, 마음만은 이미 일본의 식민지민이었다.
‘제발, 천황께서 저놈을 제거해 주소서…….’
“없으면 이제 나의 운영 방침을 얘기하도록 하겠다. 광해 길드는 일본 라인을 타고 있다고 들었다. 허나 앞으로 친일적인 행보는 없을 것이다. 나는 자긍심을 중요시 여긴다. 버러지같이 남의 나라에 빌붙어서 살 바에는 죽는 게 낫지. 앞으로 친일적인 행보를 보이는 이들은 즉시 길드에서 추방될 것이며, 만일 유사시에는 우리의 적이 될 것이다.”
‘저런 미친놈…….’
방지산은 여태껏 길드가 쌓아 온 것들을 모두 무산시키는 귀환자의 발언에 이가 갈렸으나, 자신의 소신을 얘기할 만한 배짱은 없어 입을 열지 못했다.
“자세한 것은 따로 공지하도록 할 것이다. 이상. 방위청장, 협회장. 부마스터만 남고 나머지 해산.”
잘 부탁한다. 잘 지내 보자. 따위의 인사는 없이, 사실상 길드 마스터 취임사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