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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즉위식 날 균열을 만났다-23화 (23/100)

23

“…….”

청와대 회의실. 대통령 고귀재는 멍한 얼굴로 모니터 화면을 보고 있었다. 광해 길드 기자회견에서 사람이 산 채로 타 죽는 것에도 충격을 받았지만, 지금으로부터 2시간 전. 일본 정부에서 온 연락을 받고 더 큰 충격을 받았다.

대일본 제국이라 칭하며, 그 강력한 전력들을 앞세워 위세를 떨치던 그 일본 정부가, 뜬금없이 대한민국의 속국을 자처했다.

너무도 어이없는 상황에 그가 무슨 일인지 묻자, 오늘 새벽 일본의 천황과 대한민국의 귀환자 신시우가 맞붙었다고 했다. 그 결과 천황이 참패했고, 줄곧 일본을 수호해 왔던 ‘기에테’라는 존재들과 1급 각성자들마저 그의 무력에 승복하였으며, 결과적으로 신시우 한 명에게 일본 전부가 무릎을 꿇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어서 새로 천황의 자리에 오른 ‘요한’이라는 인물이, 앞으로 일본은 한국의 속국이자 동맹국이 되어 서로 간에 긴밀한 교류를 해야 할 것임을 일본 정부에 요구했다고 했다.

일본을 수호하는 존재들이 신시우 한 사람에게 무릎을 꿇음으로써 초강대국인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에 속국임을 자처하는 상황. 그야말로 꿈을 꾸는 듯 현실감이 떨어지는 얘기였다.

‘살다 살다 이런 일이 있을 줄은…….’

그리고 그는 도대체 신시우의 무력이 어느 정도길래 그 막강한 초강대국 일본을 눌러 버렸는지 너무나 궁금해졌다.

“정말…….”

각기 자리에 앉은 비서들과 각 부처장들도 어이가 없는 눈빛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게 정말 이렇게… 공식적으로 발표될 줄은…….”

“너무 현실감이 떨어져서 와닿질 않습니다.”

고귀재는 어제 회의에서 귀환자 신시우의 계획에 모두들 우려를 표했던 것을 떠올렸다.

‘얼마나 같잖았을까.’

이런 어마어마한 존재를 걱정한 자신이 우습게 느껴졌다. 그렇게 속으로 고개를 가로젓던 그는, 고개를 들어 자리에 앉은 이들의 표정을 살폈다. 노골적으로 이 사태가 마음에 들지 않는 얼굴을 하고 있는 이들도 있었고, 참패한 얼굴을 한 자들도 있었다.

‘여기도 솎아 내야겠지.’

그는 오늘 국회에서 있었던 일들을 들었다. 귀환자가 속칭 ‘솎아 내기’를 하고, 군기를 잡았다 들었었다. 광해 길드 기자회견에서도 배신자의 처참한 최후를 생방송하며, 배신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온 국민들의 머릿속에 강렬하게 각인시켰다.

고귀재는 귀환자 신시우가 기틀을 다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일본을 굴복시키고, 배신자를 잔인하게 처단하고, 상상 이상의 공포와 희망을 동시에 주면서, 자신이 강력한 구심점이 되어 분열된 나라를 한데 묶는다.

고귀재는 신시우의 행보에서, 마치 갓 즉위한 왕의 행보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다들 주목.”

고귀재의 단호한 목소리에 회의실 내 분위기가 싹 바뀌었다.

“다들 내 말을 단단히 귀담아듣길 바라네. 귀환자 신시우의 비호 아래 대한민국은 앞으로 독자 노선을 탈 것이야. 그동안은 나라가 힘이 없기에 고위공직자들의 해외 이탈을 두고 보았지만, 앞으로는 좌시하지 않겠네. 그…….”

그때 문체부 장관이 비장한 목소리로 대통령의 말을 끊었다.

“대통령님. 일본은 그저 우연에 불과합니다. 강자들의 싸움은 본래 한 끝 차이로 결정이 나지요. 기습을 당한 일본의 귀환자가 그저 운이 없었을 뿐입니다. 이걸 들은 중국이 어떻게 움직일 것 같습니까? 중국은 각성자 전력이 백만 단위입니다. 그 각성자 전력이 한국에 상륙하는 상상을 해 보십시오. 귀환자는 살아남을지언정, 모두가 죽을 겁니다. 절대 중국과 맞서선 안 됩니다.”

문체부 장관은 심각하면서도 사나운 얼굴로 대통령에게 열변을 토했다. 그러나 그 열변에 돌아온 것은 해임이었다.

“자네 뜻을 잘 알았네. 지금 이 시간부로 문체부 장관을 해임시키도록 하지.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가게.”

대통령 고귀재는 인상 하나 달라지지 않고 문체부 장관을 그 자리에서 해임시켰다.

“이… 무슨…….”

분노에 가득 찬 문체부 장관이 눈을 부릅뜨며 뭐라고 말하려 했으나, 멀찍이 떨어져 있던 경호요원들이 다가와 그의 양팔을 붙들었다.

“나가 주셔야겠습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당신, 그러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아!”

고귀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렴 적국에 빌붙는 것보단 낫겠지.”

꼴사납게 끌려 나가는 문체부 장관을 본 나머지 기관장들과 비서들은 헛기침을 하며 냉수를 마셨다. 그러곤 빠르게 분위기를 파악해 나갔다.

“단시간 내에 세 갈래로 갈라진 파벌들을 규합하는 데에는 강제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지. 불만이 있는 사람은 당장 일어서서 나가도 좋네.”

아무도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은 없었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왕따를 당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 있나?”

아무도 손을 드는 사람이 없자, 대통령이 말을 이어 갔다.

“귀환자는 이 땅을 저주하고 있네. 왜 저주하는가 궁금해 그의 학생기록부와 그와 접촉했던 인물들을 좀 조사해 봤지. 그는 과거 심각한 왕따를 당했더군. 세상을 저주할 정도로 지독한 왕따를 말이야. 그런 그가 이 무너져 가는 나라를 구하겠다고 동분서주하고 있네.”

그렇게 대통령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주저앉은 이들과 눈먼 장님들에게 다시금 자신의 나라를 위해 싸울 동기를 부여하기 위한 연설이었다.

* * *

집에 오자마자 나는 수현과 마주해야 했다.

“꼭 그렇게 죽여야 했어요?”

수현이는 눈으로 내게 화를 내고 있었다.

“어.”

“어떻게 사람을 그런 식으로 죽…….”

“네 심정이 이해가 간다만, 네가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게 있어.”

거실 소파에 앉으며 얘기를 이어 갔다.

“그놈은 국가 기밀작전을 적국에 팔아먹은 놈이다. 너는 그놈의 고통을 동정하기 전에, 그놈이 한 행동이 얼마만큼 거대한 파도를 일으킬 수 있는지 알아야 돼.”

수현이는 가만히 서서 듣고 있었다.

“최소 수만에서 수십만, 더 나아가 싸움이 심화된다면 수백만의 무고한 사람들이 학살당할 수도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그놈의 그 가벼운 주둥이로 떠벌린 그 몇 마디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 있다는 얘기야. 물론, 거기에 너도 포함되고, 우리 비서들과 모든 각성자들, 대통령까지 다 포함되지. 그런데 심하다고? 저런 류의 배신은 더한 형벌에 처해져도 할 말이 없는 거야. 불타 죽는 건 그나마 선처한 거다.”

미간에 살짝 힘이 들어가 있던 수현이는 시선을 돌렸다. 내 말에 조금 생각할 여지가 생긴 모양이었다.

“내가 강하게 나가지 않으면, 제2의 방지산, 제3의 방지산이 나타난다. 만일 내가 우연히 발견하지 못했다면 얼마나 더 큰 화를 입게 될지 몰라.”

의도한 것이었지만, 우연이라 둘러쳤다.

“앞으로의 세상은 더 잔인하고, 무시무시한 세계가 될 거야. 너는 그동안 학교에 갇혀 있고, 지금은 이 집에서만 지내서 잘 모르겠지만, 무수히 많은 이들이 힘을 가진 자들에게 굴복하고, 목숨을 구걸하고 있는 것이 이 세계다. 지금은 힘을 가진 놈들의 시대야. 일본이 머리를 조아리게 된 이유도 마찬가지지. 내가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그런 세상이다.”

현실을 자각할 수 있게 말로 계속 몰아쳤다.

“넌 사회에 내던져지기 전에 좀 알 필요가 있어. 네가 강하게 나가지 않으면 네가 강하게 치인다. 마음을 강하게 먹지 않으면 너와 네 주변 사람들이 화를 입게 돼.”

“알았어요.”

승복하는 것이 분한 듯 보였다.

“일본을 굴복시킨 건. 잘하셨어요.”

그 말을 끝으로 수현이는 돌아서서 제 방으로 올라갔다.

“후우-”

절로 한숨이 나왔다. 마치…….

자식과 싸우는 느낌이군.

자식을 낳아 본 적은 없지만 말이다.

아… 수업은 물 건너갔나?

* * *

결국 수현이는 오늘 수업을 쉰다고 했고, 나는 점심 식사 후 주 비서를 데리고 마력 능력자들의 도움을 받아 거창 차원 관문으로 향했다.

그곳은 이미 일본 놈들이 철수하고 한국 각성자들이 지키고 있었다.

“어서 오십쇼.”

거창 차원 관문은 군청 건물과 겹쳐서 생겨나, 뭐 어디로 들어갈 필요가 없이 그냥 보였다.

다르게 생긴 문이군.

역시나 오래된 냄새가 나는 관문이었으나, 타원이었던 수락산 차원관문과는 다르게 이것은 길쭉한 16각형이었다. 거기다가 관문의 테두리가 석재와 금속이 섞여 있고, 문양과 색도 달랐다.

모든 문들이 다 각기 다른 모양과 재질, 색을 가지는 건가.

한참을 그 앞에서 감상을 하다가 접근했다.

“요 계단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거의 바닥에 가깝게 있어서 저번처럼 투박한 승강기에 오르지 않아도 됐다.

“음…….”

그 앞에선 나는, 관문의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술식 해석을 시작했다. 역시나 마법 술식은 도저히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정교했다. 과연 이것을 마법 술식이라고 불러도 될까 싶을 정도로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마치… 전기회로와 마법 술식을 섞어 놓은 것 같은 느낌이야.

허나, 그 복잡하고 정교한 술식들도 순서가 있다. 위아래가 있고, 좌우가 있다.

흡사하다.

첫눈에 알아봤지만, 수락산 차원관문과 비슷한 구조를 가졌다. 쉽게 말하자면 같은 라면인데 스프의 재료만 조금 다른 느낌이랄까.

아, 라면.

문득, 라면이 떠오르면서 그 자극적인 맛이 떠올라 침이 나왔다.

“주 비서.”

“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그녀는 내 말에 살짝 놀라며 대답했다.

“저녁은 라면이다.”

“아…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저녁 시간까지 한참을 씨름했다. 수락산 때 건졌던 마법 술식들과 비교하며 진행한 술식 해석은 꽤나 수확이 있었다. 조금만 더 시간을 들인다면 대충 윤곽은 볼 수 있을 듯했다.

“라면 먹으러 가자.”

* * *

“어우. 시원한데-”

이번에는 해물라면이었다. 갑오징어와 꽃게를 넣은, 수현이와 비서들이 ‘프리미엄’이라 부르는 라면. 며칠 전 먹었던 그냥 라면도 중독성 있는 맛이었지만, 이번 라면은 정말이지 최고의 시원함을 선사했다.

“잘했어.”

라면을 끓인 김 비서와 주 비서에게 엄지를 들어 보였다. 그에 주 비서는 수줍어했고, 김 비서는 고개를 숙이며 고마움을 표했다.

내 칭찬을 따라 수현이와 남 비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만족스러운 저녁 식사 시간이 지나고 마당에서 흡연의 시간을 가지고 있는데, 2층에서 수현이가 정신을 접촉해 왔다.

[이해했어요.]

[뭘?]

[사부가 했던 말이요.]

[이해했으면 다행이고.]

수현이는 아직 세상을 제대로 겪어 보지 못한 녀석이라, 아마 받아들이기가 힘들 거라 생각했기에 이해를 바라지도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어차피 이해할 일이니까.

[그래도 너무 잔인했어요.]

[세상은 원래 잔인해.]

[아…….]

피식 웃었다.

[내일부터는 좀 자유롭게 수업을 진행할까 한다.]

[어떻게요?]

[내일 알려 줄게.]

[…….]

또 피식 웃었다.

[이제 사부 바쁘니까 대화는 나중에 하자.]

[알았어요.]

회의가 시작되기 전까지 오늘 얻어온 정보들을 가지고 차원 마법에 대한 밑그림을 그렸다. 마법 처리 된 종이도 수십 장이 공중에 펼쳐졌고, 내 마력의 흐름을 따라 마나들이 기이한 형상을 갖추며, 여러 마법들이 전개되어 갔다.

내 눈이 허공에 펼쳐진 빛나는 마법 수식들을 훑었다. 십수 개의 마법진이 빛을 발하며 허공을 수놓았고, 언제든지 실현 가능한 마법들이 각자의 형상을 갖추며 빛을 발해 마당이 대낮처럼 밝아졌다.

이것은 차원 관문을 구성하는 마법 술식들 중 0.01%도 되지 않는, 아주 작은 부분. 띄엄띄엄 그 위치를 잡아 대강의 그림을 머릿속으로 그려 볼 뿐이었다.

너무 방대하고 심오하다.

마법 술식을 작게 쪼개면 최소 수만 개에서 최대 수십만 개. 각각 연계가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 있어 그 흐름을 알아내는데 꽤나 시간이 소요될 것 같았다.

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차원을 넘나든다는 것은 너무나 광활한 개념이구나.

호기심은 충만했으나, 그 호기심을 누를 정도로 술식의 구성이 심오했다. 허나, 이것을 이해해야지만 차원 마법에 다가갈 수 있다.

과연 이것을 만든 이들은 누굴까? 신일까? 이 광대한 마법 술식 구성을 보고 떠올릴 때마다 드는 의문이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김 비서가 내게 왔다.

“시우 님, 각성자 협회장이 도착했습니다.”

“그래? 지금 몇 신데?”

“회의 시작 30분 전입니다.”

“오… 일찍도 왔네. 기다리고 있으라고 해.”

“예.”

나는 조금 더 차원 마법에 대해 공부를 하다가 일어섰다.

“몇 명이나 모였지?”

“협회장, 방위청장, 천록 길드장, ‘윤슬’ 길드장 이렇게 넷이 와 있습니다.”

“노인네는 아직 안 왔나?”

“예. 아직…….”

고개를 끄덕였다.

“또 몰래 기어 들어오기만 해 봐라.”

혼자 중얼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그때 남 비서와 네 사람이 저택 진입로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 그렇게 와야지.”

단군 영감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은발의 여자와 검은 머리 동양 남자, 하나는 안경을 낀 푸른빛의 머리칼을 지닌 백인이 있었는데, 셋 다 꽤나 강해 보이는 자들이었다. 단군 영감은 손을 들어 인사했고, 나머지는 고개를 까딱이고는 남 비서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가자.”

나도 김 비서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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