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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권을 돌파하며 생긴 어마어마한 마찰열을 뿜어내는 운석은, 근처에 가기만 해도 모든 것을 증발시킬 것같이 뜨거웠다. 게다가 그 속도와 무게, 열기가 만들어 내는 풍압과 위압감은 발걸음을 떼기도 힘들게 만들었다.
허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경우. 내 경우는 달랐다. 일단 내게 종합적인 방어 마법을 걸어 주고 있는 이 반지 ‘힌스타인’ 덕에 열기와 풍압은 닿지 않았다. 그리고 현재 나는 고리 10개를 공명시키고 있는 상태였다.
내 의지에 따라 순식간에 만들어진 강력한 물리 실드가 운석의 속도를 잠시 붙잡았고, 그와 동시에 최상급 파동 마법. ‘격류’를 운석을 향해 쏘아 냈다. 일반적인 격류와는 격이 다른, 고리 열 개의 힘을 가득 실은 격류는 운석을 그대로 산산조각 냈다.
불타는 운석의 잔해들이 팔방으로 비산했고, 이어지는 놈의 공격이 감지됐다. 숨을 쉴 틈도 없이 몰아치겠다는 놈의 의지였다.
순식간에 십이방을 점하는 놈의 마법에, 공간이동으로 빠르게 그곳을 벗어나며 놈의 정신에 접촉했다.
[야, 용가리. 그렇게 숨 가쁘게 몰아치지 말고. 뭐, 하나만 물어보자.]
[무단으로 남의 땅에 침입한 주제에, 감히 내게 질문을 한다고?]
아, 이 용가리 새끼가 갑자기 열 오르게 하네.
뭔가 저 안에 잠들어 있는 분노를 긁는 느낌이 있었다.
[그래. 네 뜻은 잘 알았다. 그럼 좀 처맞고 나서 얘기하자.]
카드드득……!
수천 개의 얼음 창이 허공을 수놓았고, 마나 가속을 검과 동시에 놈에게 쏘아 냈다. 총알과 같은 속도로 쏘아진 얼음 창은 놈의 움직임을 따라 수도 없이 쏘아졌다. 꽤나 단단한 얼음임에도, 비늘과 피부를 강화한 것인지 녀석은 그대로 내 공격을 맞으며 돌진해 왔다.
그러고는 주둥이에 마법진을 그려 내더니, 그대로 브레스를 뿜었다. 놈의 아가리에서 나온 브레스가 마법진을 통과하며 증폭되더니, 온 시야를 가려 버렸다. 그러나…….
내 주변에는 이미 강력한 마나 기류가 흐르고 있었고, 그 기류는 급속도로 그 세를 불리더니 브레스를 휘감아 흩어 버렸다.
이어서 놀라는 놈의 얼굴이 보였고, 강화된 나의 주먹이 놈의 오른쪽 뺨을 갈겼다. 주먹에 휘감긴 마나가 폭발하며 강력한 충격이 놈의 머리통을 흔들었고, 내게 날아오던 놈은 그대로 옆으로 방향을 틀어 날았다.
“이야… 간만에 용가리 손맛이 좋네.”
콰아아아-!
수백 갈래의 마나 기류가 회오리치며, 수많은 마나 구체가 동시에 만들어졌다. 그리고 압축되어 하얀 빛을 뿜어냈다. 하나하나가 강력한 에너지를 머금은 그 구체들은 쏜살같이 놈에게 쏘아지기 시작했다.
* * *
거룡성의 주인 위룽광은 놀라고 있었다. 마법사 주제에 기력을 사용하는 격투 타입의 일본 귀환자를 꺾었다기에 무영창 마법에 능숙한 존재라고만 생각했다.
그가 보아온 마법사들 중에서 강자들이라고 해 봤자 무영창 마법사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아무리 강력한 마법을 빠르게 쏘아 낸다 한들, 그의 비늘 갑옷과 그가 만들어 낸 실드를 뚫을 순 없었다.
그랬기에 그는 그 정도의 마법사 혹은 그것보다 더 빠르고 더 강한 마법을 구사하는 마법사를 생각했다. 그러나 눈앞에 나타난 신시우라는 남자는 그것을 아득히 뛰어넘는 존재였다.
셀 수 없이 많은 공격 마법을 동시에 캐스팅해 내는 것도 놀라운데, 하나하나에 담긴 힘이 그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얼음 창들은 그의 비늘을 뚫을 순 없었지만, 충격이 그의 몸속으로 전해질 정도의 강도를 가지고 있었다.
회심의 일격이었던 운석 소환 마법과 연계 마법들을 파훼했을 때부터 심상치 않은 실력자라 느꼈지만, 조금 전 신시우의 주먹을 맞은 그는 혹시 더 놀랄 것이 있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그때 무언가 강력한 것이 그의 몸을 강타했다. 처음에는 꼬리에, 그다음에는 등, 그다음에는 목. 엄청난 속도로 마치 사람일 때 쇠몽둥이로 맞으면 그런 느낌이 날까? 싶을 정도의 충격이 그의 뇌로 전해졌다.
“커허… 억!”
상상 이상의 것. 그가 여태까지 보아온 것들은 마치 아이들의 세계였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자신을 탄생시켰지만 자신을 막을 존재는 그 어디에도 없었던 약해빠진 대륙. 거기에 비하면 이곳 지구는 그야말로 신들의 세계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일전에 그의 비늘을 가볍게 뚫고, 깊은 상처를 남긴 검사. 그리고 지금 그에게 공격을 가하고 있는 신시우. 그의 마음은 무너져 버렸다. 더 이상 자신이 강하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이렇게 자신을 무력하게 만들고, 고통스럽게 만들 수 있는 존재들이 살아가는 세계에서 어떻게 자신이 강하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그에겐 강해지기 위한 시간이 없었다. 단련도, 수련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모종의 실험을 통해 운 좋게 얻은 강력한 힘을 그대로 남발하며, 짜증과 분노만 표출했을 뿐이었다. 그랬기에 그의 정신의 수준은 굉장히 낮았다.
‘빌어먹을…….’
용이 되고 나서 처음 느껴 보는 아득한 고통에, 그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 * *
“헉… 헉…….”
주시자급 기에테 ‘란델’이 눈을 부릅뜨고 한 남자를 응시했다.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은 남자 하나를 주시자급 기에테 일곱이 전력으로 부딪혔음에도, 그의 몸에 흠집 하나 내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주시자급 기에테들이 부상을 입었다. 한 여자는 어깨가 잘려 나가 봉합 치료 중에 있었다.
‘대체 어디서 저런 고수가…….’
주시자급 기에테 할라바스는, 그의 출신인 ‘로비에트’ 왕국 바로 옆에 있던 ‘발할라’ 왕국을 떠올리며, 대체 저런 고수가 있었는지 기억해 내려 노력했다. 그의 기억 속에 발할라라는 왕국은, 땅덩이는 많이 가지고 있었지만 부유하지 않은, 그저 어디 구석에 처박혀 있는 나라일 뿐이었다.
게다가 발할라 출신 기에테들에게서도 저런 경이로운 경지에 이른 검사에 대해선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랬기에 그가 놀라는 것이다.
“끝났나? 뭐, 더 없어?”
“당신 혹시… 신검합일의 ‘단켄’……?”
일곱 명의 주시자급 기에테 중 유일하게 그의 언어를 사용하는 자가 있었다. 같은 발할라 출신 기사. ‘도르모르’였다.
“오, 넌 어디 출신이냐. 날 알기가 쉽지 않을 텐데.”
“당신이 있던 기사단의 부속 기사단 출신입니다. 이름은 들어봤죠. 왕국의 비밀병기로 길러진 수많은 이들 중 결국 신검합일의 경지에 올라 버린 자. 대예언가 ‘핀셀’의 예언에 나오는 대전쟁시대가 도래하면 왕국을 지킬 수호신이 될 존재라고 들었습니다.”
해석 마법을 사용하여 그들의 대화를 듣던 이들은 모두 다 경악했다. 신검합일. 검이 자신이 되고, 자신이 검이 되는 경지.
무기에 선명한 오러를 빚어 낼 수 있는 단계인 ‘마스터’ 단계를 뛰어넘은 존재. ‘마이스터’들의 경지를 일컫는 말이 바로 신검합일이다.
그들은 오러를 무기에서 뿜어내는 것을 넘어서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오러를 다룰 수가 있다.
홀로 일국의 군과 싸울 수 있는 경지. 그것이 바로 마이스터였다.
“아, 그런 낯간지러운 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군. 난 수호신 같은 게 아냐. 결국 지키지 못했으니까 말이야. 실패작이라고 봐야지. 다 죽었는데, 뭐.”
그러면서 피식 웃는 단켄의 여유에 주시자급 기에테들은 등줄기에 소름을 느껴야 했다.
‘어떻게 하면…….’
란델은 생각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승산이 없다는 것은 아주 잘 알았지만, 이곳에서 모두 죽을 순 없었다. 공중에서 싸우는 반고의 싸움도 힘겨워 보였고, 그의 마음은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왜 신시우에게 붙어 있는 겁니까.”
“음… 뭐랄까……. 그 녀석이 이 불행한 세계를 구해 줄 것 같았거든.”
“불행……?”
“너희들도 프리메이슨 출신이니 잘 알 거 아냐. 그 미친놈들이 뭘 하려는지. …모르냐?”
주시자급들은 프리메이슨의 계시자들이 대체 무슨 생각들인지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저 표면적인 것을 보며 조직이 원하는 방향으로 행동할 뿐. 그들의 진짜 목적은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들은 역사를 다시 쓰고 싶어 하는 놈들이 아닙니까?”
단켄은 고개를 흔들었다.
“너희들은 흑백의 경전에 대해서 잘 모르는구나. 어때, 한번 들어볼래? 아니면 하던 거나 마저 할까.”
단켄의 말에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모두 죽느니, 이야기를 들으면서 살 방도를 찾는 것이 나았으니까.
“들어보겠습니다.”
단켄이 입이 열리려는 그 순간. 아득한 폭음과 강렬한 빛이 일대를 뒤덮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연쇄 폭발음. 그 충격파가 그들에게까지 전해져, 어느 정도로 강력한 힘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폭음과 빛이 끝나자 하늘에서 커다란 용이 추락하고 있었다.
* * *
“하…….”
내 앞에 무릎 꿇고 앉아 고개를 숙인 거구의 사내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말해서 용으로 변하는 인간이라길래 조금 기대를 하고 왔는데, 완전 실망했다.
처음의 자만과 흉포함은 온데간데없고, 마나 구체 좀 맞았다고 꼬리를 내리고 항복을 해 버렸다. 아무리 데미지가 많이 들어갔다 한들, 적어도 용의 심장을 가지고 있다면 그 종족의 투지와 성질은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어이가 없군. 이봐.”
“…네!”
“혹시 용의 심장을 이식한 건가?”
용으로 변하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듣자마자 바로 떠오른 것이 용의 심장을 이식받은 인간이었다. 마계에서는 종간 생체 실험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는데, 과거 성공한 사례를 들었을 때 심한 부작용이 있었지만, 용으로 변신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마, 맞습니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로 받은 건가?”
“아, 아닙니다.”
놈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놈은 이세계로 가자마자 실험체가 되어 용의 심장 이식 실험에 강제로 끌려갔다고 했다. 그러다 운 좋게 심장과 잘 맞아 살아남았고, 이렇게 넘어올 수 있었다고.
그러니까 정신은 나약한 인간인데, 힘만 얻어서 날뛰었다. 뭐, 그런 얘기로군.
그렇게 생각하니 좀 불쌍한 생각도 들었다. 타의에 의해 그런 비인간적인 실험에 실험체가 되다니. 절로 혀를 차게 되는 얘기였다.
“살고 싶냐?”
“예? 아…….”
살고 싶냐는 대답에 어떻게 대답해야 안 죽을까 머리를 굴리는 것이 눈에 보였다.
“내 밑에서 열심히 일한다면 살려 주마.”
“저, 정말입니까?”
정말이지. 나약하기 짝이 없는, 뭐랄까… 마치 아이가 ‘참룡검(斬龍劍)’을 들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그래. 대신에 모든 사고는 네가 용가리가 아닌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사고를 해라. 뭐, 사람을 산 채로 뜯어먹는다거나 이런 짐승 같은 짓은 안 하겠지? 가끔 용가리들이 그런 버릇이 있던데.”
녀석은 손사래까지 치며 말했다.
“아,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좋아. 대기.”
나는 반고를 두고 단켄에게 걸어갔다.
“뭔 재미난 얘기를 그렇게 오래하냐.”
“아, 프리메이슨이 전쟁을 일으키고, 사람들을 학살하게 만드는 그런 거대한 설계를 하는 진짜 이유를 모르길래, 좀 설명해 주고 있었지.”
“야… 너 너무 자비로운 거 아니냐? 질 안 좋은 놈들이면 그냥 싹 없애 버려 이참에.”
슥 시선을 돌려보자, 놈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사색이 됐다.
“원래 후환은 남겨 두면 안 되는 법이거든. 알아서 잘 처리해라.”
* * *
서울의 중앙 방위청 종합상황실에 사이렌과 함께 붉은 빛이 들어왔다.
“연쇄 마법 반응입니다!”
“뭐? 어딘데!”
“그게, 그… 수도권 전역… 입니다.”
“뭐……?”
“곳곳에 감지기에 감지된 바. 공간이동 마법인 것 같습니다!”
순간 할 말을 잃은 상황실장. 그러나 그는 실장답게 다시금 굳어 버리고 있는 머리를 굴렸다.
“일단… 전국 방위청에 비상령 선포해. 빨리! 그리고 청와대에 비상령 선포했다고 보고 올려.”
서울 중앙방위청 종합상황실. 사실상 전국의 방위청 상황실 중 가장 위에 있는 상황실로, 수도권이 침공 당했을 땐 선 조치 후 보고를 하며, 그 순간만은 상황실장이 원수급 권한이 필요한 최고 명령, 비상령을 선포할 수 있다.
비상령이란, 국가 비상사태 때 내리는 명령으로, 국가 소속 각성자는 물론, 전국의 길드에 비상소집이 내려진다. 국가의 전 병력이 무장을 하게 되고, 미리 짜둔 작전 계획에 따라 전쟁을 준비한다.
실장은 급하게 방위청장에게 보고를 올렸고, 얼마 뒤 정부에서 최상급 전투 준비 태세인 데프콘1을 발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