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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즉위식 날 균열을 만났다-34화 (3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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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고의 오마(五魔) 중 하나인 리웅. 중국의 1급 각성자로, 마스터의 경지에 발을 들인 검사였다. 기에테나 귀환자를 제외하면 지구상에서는 굉장히 드문 경지로, 그의 자부심은 자만에 가까워 있었다.

물론, 그것은 다 기에테들에게 가르침을 받았기에 가능한 부분이지만 그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다. 그저 자신의 재능이 뛰어나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믿을 뿐.

그런 자만으로 똘똘 뭉친 그는 잔인하다는 오마중에서도 잔혹성으로 따지면 1위를 다투는 놈이었다. 그에 이번 청와대도 피의 축제를 열 생각에 들떠 10명의 부하들과 청와대 잔디 마당에 입성했다.

그런 그를 막아서는 각성자와 군대들을 가볍게 토막 낸 그는, 피 묻은 검을 뿌리며 청와대 본관을 향해 걸음을 옮겼는데,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음성에 걸음을 멈췄다.

[어딜 감히 들어오는 것이냐.]

메마르고 무감정한 음성. 마치 듣는 이가 하찮아지는 듯한 음성이었다. 그에 리웅은 눈을 부릅뜨고, 이빨을 꽉 깨물었다. 그러곤 앞을 주시한 채 감각을 주변으로 뻗쳐 음성의 주인을 찾았다.

“어딜 찾는 것이냐. 여기다.”

순간 그의 뒤에서 나타난 음성에, 리웅은 잽싸게 검을 뽑아 뒤로 휘둘렀고, 주변의 부하들은 순식간에 거리를 벌렸다.

그가 베어 낸 것은 검은 사제복 같이 생긴 옷을 입은 키 큰 남자였는데, 그는 마치 연기처럼 흩어졌다.

“무슨 배짱으로 이곳에 홀로 온 것이냐?”

다시금 다른 쪽에서 나는 목소리에 그가 뒤를 돌자, 사제복을 입은 남자가 청와대 잔디 곳곳에 서 있었다. 그리고 목소리도 이곳저곳에서 들려와 그와 부하들을 혼란 속에 몰아넣었다.

“뭐 하는 놈이냐!”

성난 리웅이 외쳐 봤지만, 상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돌아가면 목숨은 건질 수 있을 것이다.”

“흥.”

리웅은 콧김을 한번 뿜더니,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같잖은 수에 넘어가지 마라. 싹 다 쓸어버려!”

그렇게 그들은 환영들을 하나하나 베어 흩어 버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들은 모두 발밑에서 올라온 강철 같은 나무줄기에 발이 묶여 버렸다. 그리고 환영들이 한 곳으로 모여지며, 실체가 나타났다.

“일본 천황 요한이다.”

선명한 오러가 돋아난 칼날로 자신의 발을 묶은 식물들을 걷어 내던 리웅은, 천황이라는 얘기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그의 머릿속에 그가 들었던 ‘요한’이라는 기에테에 대한 이야기들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반고 밑에 있던 주시자들에게 들은 바로는, 사악한 마법들을 주로 다루는 ‘흑마법사’이자 마신의 사도. 정교한 독 마법과 환술, 저주술로 색다른 고통을 선사하는 고위 마법사. 그게 그가 들은 요한이라는 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하필……!’

내부적으로 혼란스러운 일본에서 이렇게 지원이 빠르게 온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오만하고, 분노조절이 잘 되지 않는 리웅이었지만, 주시자들도 혀를 내둘렀던 요한이라는 이름이 그의 분노를 눌러 줬다.

“왜 말이 없지?”

지척까지 다가온 요한. 무방비한 마법사가 지척까지 다가온 그 순간, 리웅의 머릿속에는 아주 위험하지만 해 볼 만한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그리고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그는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요한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자만이 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가속도가 붙은 검로. 허나 그 검로는, 그의 생각과는 다르게 요한의 손에 막히고 말았다.

“왜? 네 검을 손으로 잡은 것이 놀라운 건가?”

‘대체… 저건 무슨…….’

서슬 퍼런 오러가 돋아난 검을 맨손으로 막는다? 그것도 마법사가? 그런 것을 리웅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 말도 안 되는 것을 보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이 오래전 이미 그의 환술에 걸려 있었고, 지금은 그 환술의 연장선이라는 것을. 리웅의 표정을 읽은 요한의 입꼬리가 점잖게 올라갔다.

“이제 눈치를 챈 건가? 마스터의 경지에 올라 있다고 들었는데, 그런 거치곤 감이 너무 늦군.”

“하아…….”

리웅은 포기했다. 그는 환술을 파훼하는 법을 알지 못했다. 거기다가 주시자들도 최고로 쳐 주는 요한의 환술이라면 답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고민했다. 그리고 떨리는 몸을 다 잡고, 그에게 말했다.

“지금 중국 본토에서는 반고가 흰머리와 싸우고 있다. 곧, 한국은 우리의 손에 넘어올 거야. 내 제안을 하나 하지. 우리와 손을 잡게 되면 너희가 두려워하는 프리메이슨이라는 조직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아니, 그들을 쓸어버릴 수도 있어.”

계시자, 관조자, 주시자. 계시록과 프리메이슨. 리웅도 그에 대해서는 주시자들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요한이 아홉 개의 고리를 가진 세력 최강의 마법사 중 하나 임과 동시에 계시자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제안했다.

그 또한 프리메이슨이라는 위험한 사상을 가진 이들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일본에 눌러앉았다는 것을 그는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그에게 요한에 대해 설명한 주시자들이 요한의 힘을 정확하게 알고 있지 못했던 점과 반고의 힘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었던 점이었다.

“착각을 하고 있군. 네가 흰머리라 부르는 신시우라는 남자는 너희의 용에게 패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한국은 너희의 손에 넘어갈 일이 없다. 또한 나는 프리메이슨이 두려워 일본에 간 것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너희는 이곳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이……!”

리웅이 이빨을 꽉 깨물었다. 나름 회심의 일격이라고 생각한 것이 씨알도 먹히지 않자 분노가 그의 가슴을 또다시 불태웠다. 그러나 그는 생각보다 생존에 대한 집착이 있는 자였다. 이렇게 허무하게 자신의 생의 막을 내리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만일, 정말 반고가 패배하게 된다면, 당신의 밑으로…….”

그러나 그의 가상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요한은 그의 말을 잘랐다.

“더럽게 목숨을 구걸할 생각인가? 군대를 이끌고 남의 나라에 쳐들어와 놓고는, 이제 와서 목숨을 구걸한다니. 어디서 나온 발상인지 알 수가 없구나. 게다가 책임감도, 자존심도 없어. 삶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한 나머지, 네 위치를 망각한 것인가? 제 부하들이 보고 있는 와중에도 추하게 목숨을 구걸하다니. 넌 정말이지 너무나 더러운 영혼을 가지고 있구나.”

요한의 눈매가 좁아졌고, 말투는 너무나도 차가워졌다. 그리고 환상이 깨어졌다. 이어서 강철같이 단단한 그의 실드가 리웅을 밀어 냈고, 급작스러운 충격에 뒤로 벌러덩 나뒹군 그는, 순식간에 땅속에서 솟아 나온 식물에 사지가 묶여 버렸다.

“읏……!”

리웅의 얼굴에는 사악하고, 흉포함은 온데간데없고, 공포와 두려움만이 남아 있었다.

“추한 만큼 고통스럽게 죽어라.”

요한은 그 말을 함과 동시에 식물 줄기들을 휘둘러 그의 부하 10명을 동시에 토막 내 버렸다. 그러곤 그 식물 줄기 4개를 리웅의 몸에 꽂아 무언가를 주입시켰고, 이내 녀석은 고통에 부들부들 경련을 일으키며 비명을 질러 댔다.

그리고 그 고통이 극한에 다다를 즈음, 그의 사지가 분리됐다. 그런 잔혹한 장면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던 그는, 마법으로 잔디를 깨끗하게 만들어 놓고는 뒤돌아서 청와대로 걸어 들어갔다.

꿀꺽.

청와대 본관 앞에서 소나무 사이로 싸움의 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고귀재는, 그의 잔혹함에 침을 꿀꺽 삼켰다.

‘인간의 탈을 쓴 악귀다.’

고귀재는, 요한이라는 인물의 잔혹함이 신시우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잔혹함이라 느꼈다. 신시우가 ‘정의’가 있는 잔혹함이라면, 요한이라는 남자는 그저 기분을 위한 잔혹함이랄까.

대략 15분 전쯤. 지하벙커로 대피하려는 고귀재의 앞에, 요한이 강해 보이는 각성자 한 무리를 이끌고 나타났다.

그는 첫인상부터 그는 요한에게서 섬뜩한 인상을 받았다. 마치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듯한 이질감. 아마도 사상 문제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그 생각이 맞았다고 생각했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이라니. 저런 것은, 여흥이라고 하죠. 고생은 다른 분들이 하고 있을 겁니다.”

점잖고, 여유 있어 보이지만, 안이 텅 빈 것 같은 느낌. 그런 이질감을 느끼며 고귀재는 정신을 다잡았다. 그리고 얼른 신시우가 한국으로 귀환하길 바랐다.

“안으로 드시죠.”

* * *

끝났다.

반고와 일곱 주시자들을 무릎 꿇리며, 중국 또한 내 손아귀에 떨어졌다. 용가리 외에 딱히 살려 두고 싶은 놈들이 없었지만, 단켄이 호언장담을 하는 탓에 일곱 주시자들을 살려 뒀다.

그리고 일본 때처럼, 전 세계가 보는 앞에서 한국의 속국이 되었음을 공표하고, 현재 한국에 전개된 중국 각성자들을 속히 귀환시키라고 지시했다.

러시아는 유럽 덕분에 이쪽에 쓸 신경이 없다 했으니 신경 안 써도 될 것이고… 미국은 개털 되었으니, 이제 한국의 눈치를 봐야 할 처지가 되었을 것이다.

이제 중국까지 한국의 속국임이 되었음을 공식 발표하게 되면, 의심하는 놈들보다 수긍하고, 인정하는 놈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이제 한국의 위기는 일단락이 되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자잘한 것들은 자잘한 녀석들에게 맡기면 되고.

“후…….”

이제 정말 내 일을 할 시간이다.

“뭔 한숨을 그렇게 쉬어?”

“이제 이 징그러운 것들 정리가 끝났으니까.”

“이제 프리메이슨만…….”

“나중에.”

“어? 어… 그래. 바로 할 필요는 없지.”

프리메이슨인지 뭔지 그런 것보다도, 이제는 내 할 일에 집중하고 싶었다. 차원관문 해석도 해야 하고, 몬스터를 뱉어 내는 그 구멍도 조사해 보고 싶고, 균열이 생기는 원인이 무엇인지, 관문 너머에는 어떤 세계가 있는지 보고 싶기도 했다.

수현이도 데리고 다니며, 여러 경험도 시켜 줘야지.

고로 나는 이제 자유시간을 가질 생각이다.

“빨리 집에 가자.”

집으로 가는 것은 공간이동 마법을 이용했다. 공간이동 마법은 해당 장소에 가 보고 눈에 담아 놨다면, 그 기억을, 그 이미지를 떠올려 좌표로 사용할 수 있기에, 한 번 가 본 곳은 공간 이동 마법으로 이동이 가능하다.

* * *

“허…….”

집에 돌아오니, 동네가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마치 운석에 맞은 듯한 구덩이들이 이곳저곳에 있었고, 집들은 쓸려 나가 집터도 찾을 수 없는 집들이 많았다.

“반고는 어땠나?”

이 충돌의 주범 중 하나로 보이는 영감이 능청스럽게 물었다.

“귀여웠지 뭐.”

그에 영감을 비롯하여 그 자리에 모두가 웃었다.

“내 할 일은 이제 다 했으니, 이제부터는 수현이 데리고 다니면서 내 할 일을 할 거야. 귀찮게 구는 놈은 죽는다.”

나름 엄포랍시고 놓았는데, 뭔가 분위기가 장난으로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수고했다. 모두들.”

남 비서, 김 비서, 주 비서와 순서대로 눈을 맞췄다. 그리고 영감과 제라드, 단켄 모두에게 인사하고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하아…….”

단단하면서도 푹신한 소파가 날 받쳤다. 쌓인 피로가 소파에 녹아드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따라 들어온 남 비서에게 얘기했다.

“한숨 잔다. 깨우지 마라.”

전투야 어렵지 않은 전투였지만, 며칠 동안 받은 정신적 스트레스가 꽤나 많았다. 그래서 소파에서 내려와 바닥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그러곤 마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며 열두 개의 고리를 공명시켰다.

온 세상의 마나가 다 내 것이 된 듯한 고양감이 몸을 붕 띄웠고, 그 상태로 마나 수련을 시작했다. 마나를 마시고 내뱉는, 마나 호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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