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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즉위식 날 균열을 만났다-36화 (3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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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오늘 요리 좋네.”

“감사합니다.”

김치치즈덮밥이라고 하는 요리였는데, 고소한 치즈의 맛과 김치의 맛이 한데 어우러져 궁합이 꽤 잘 맞았다. 주 비서의 얼굴이 발그레해지는 걸 보니, 주 비서 작품인 듯했다. 하여…….

“야~ 이것도 맛있다.”

김 비서가 서운해할까 봐 그녀가 한 것 같은 반찬도 칭찬해 줬다. 나는 인자한 군주니까.

아무튼 그렇게 공평하게 칭찬을 한 뒤에, 내일부터의 일정 얘기를 꺼냈다.

“내일부터는 차원 관문으로 갈 거야. 수현이 너도 따라와야 된다.”

“관문 너머로 가는 거예요?”

“일단은 이쪽에서 관문을 해석하고, 그다음에 넘어갈 거야.”

“오… 좋아요.”

“이제 국외 정세도 안정기에 접어들 테니까, 내가 신경 쓸 일은 없어. 너희들도 이제 긴장 좀 풀고, 편하게 있어도 돼.”

“네.”

다들 얼굴에 스트레스가 꽤 많이 쌓여 있는 듯한 얼굴이었다.

“남 비서. 밥 먹고 나서, 나한테 볼일 있는 기에테 조직 수장들 오라 해.”

오늘 밤에 만나서 모든 걸 마무리 짓고, 내일부터는 내 일에 집중할 생각이었다.

“옙.”

그로부터 1시간. 귀찮은 대통령의 감사 인사를 받고, 방위청장, 각성자 협회장의 인사도 받았다. 그리고 이틀 전 회의에 참석했던 광해 길드를 포함한 네 길드 마스터들도 연락이 왔다. 오지 말라고 하니까 통화로라도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한다며 어찌나 귀찮게 굴던지.

그중 좀 의외의 연락은, 내가 국회에 갔을 때 머리 박게 한 젊은 국회의원 놈이었다. 그놈은 완벽한 태세 전환을 해 가지고는, 앞장서서 국회를 개선하겠다며, 반국가적인 정신을 가진 임시정부를 해체하니 뭐니 나불대는 것을 들어줘야 했다.

그 뒤로도 더 이어졌다. 재계, 언론계 이곳저곳 할 것 없이 연락이 왔다. 전 세계에 흩어지고 있는 한국인들이 다시금 뭉칠 계기를 만들었다나 뭐라나. 그딴 개소리 들으려 한 것은 아니지만, 오늘은 잠자코 들어줬다.

뭐, 나보다는 전화 연결시켜 주는 남 비서가 고통받았지만…….

망해 버렸으면 좋겠던 이 나라는, 국가 붕괴 위기를 극복하고, 강력한 지원군들까지 얻으며 성장했다. 비록 현재는 파괴된 시가지를 재건하고, 죽은 이들을 추모하며 슬픔으로 도시가 우울한 감이 있었지만, 그것은 잠시이고, 한국은 세계의 패자가 될 것이다.

뭔가 키우는 맛은 있는 것 같은데… 기분이 나쁜 건 왜지?

보람을 느끼면서도 묘하게 기분이 나쁜, 그런 이상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데 남 비서가 거실로 들어왔다.

“시우 님, 한 분 먼저 도착했습니다.”

“들여보내.”

흉포한 기세가 거실로 밀려 들어왔다. 공간을 가득 채우는 사나운 기운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감히…….

이것은 예의의 문제였다. 보통의 무인들은 기운을 함부로 발산하지 않는다. 상대가 불쾌할 수가 있고, 높은 경지에 이를수록 기운 자체가 상대에게 공격이 될 수 있기에 그러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고의적으로 사나운 기운을 발출한다는 것은… 나에 대한 도전이라고 봐야 했다.

버릇을 고쳐 줘야겠군.

놈이 걸어 들어오기까지 가만히 앉아 기다렸다. 그때까지도 흉포한 기세를 내뿜으며 계속 내 신경을 자극하던 놈은, 능청스러운 말을 시부렁거리며 걸어왔다.

“이야… 이거 사람이 왔는데 내다보지도 않고, 그래도 이 나라 전쟁을 도왔…….”

“남 비서.”

심상치 않은 내 목소리에 놈의 발걸음이 멈췄다.

“네.”

“비서들 다 데리고 2층으로 올라가 있어.”

과격한 교육 현장에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다들 2층으로 올려보냈다. 그리고 대해(大海)와 같은 마력을 움직였다.

* * *

오러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무(武)의 장인 마이스터. 라마단은 그중에서도 상급에 속하는 숙련된 마이스터다.

5천 년 전, 당시 서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를 주름잡았던 ‘오스만’ 제국 최고의 무인이었던 라마단은, 당시 지구상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의 강자였고, 제국을 지탱하는 거대한 기둥이었다. 그랬기에 그의 자존감은 그 누구와 비교할 수가 없었다.

당연하게도 그는 자신이 패배할 수 있다는 생각 따위는 해 본 적이 없었다. 원래 성격 자체도 그런 면이 있었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칭송이 그의 그런 자만심을 더욱 굳게 만들었다.

그런 그는, 누군가 강하다는 얘기를 항상 폄하해서 들었다. 이번 신시우의 행보 또한 그에게 있어서는 마찬가지였다.

그가 신시우에게 접근한 것은 신시우가 자신보다 강해서 그에게 붙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과 비슷한 경지에 오른 존재라고 생각했기에, 자신의 계획에 동참시킬 생각으로 온 것이었다.

하여, 그는 오자마자 상대의 호승심을 일깨워 실력을 보기 위해, 일부러 기력을 끌어올려 살기를 실은 기세를 발출했다.

그의 의도는 그저 호승심을 이끌어 내려던 것이었으나, 결과는 처참했다. 언제나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던 그에게, 신시우는 새로운 세상을 보여 줬다.

라마단은 마스터의 경지를 딛고 난 이후 처음으로 꼼짝달싹도 할 수 없을 만한 강력한 힘을 겪었다.

신시우가 한국어로 뭐라고 하고 난 직후, 그의 빠른 감각에 뭔가 걸리기도 전에 순식간에 공기가 답답해지면서 강력한 힘이 그의 상반신을 짓눌렀다.

그것은 그가 대전쟁에서도 겪어 보지 못한 강력한 힘으로, 굳이 비교를 하자면, 인류가 ‘힘’을 잃어버린 그날 보았던 ‘전도자’들과 비슷한 힘이었다.

이후는 응접실 창문이 모조리 깨지고, 폭풍 같은 기류가 자신에게 몰려드는 것을 느꼈고, 마치 거인의 손에 잡혀 끌려 나가듯, 강력한 힘이 그를 잡아 앞마당으로 끌고 나갔고, 그대로 바닥에 처박았다.

마당이 내려앉았고, 그는 입에 흙이 들어갈 정도로 땅에 처박혀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처지에 이르렀다. 기력을 운용하여 압박을 버텨 내는 것 또한 의미가 없어졌고, 결국 그는 호흡을 멎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 이런… 미친…….’

믿을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힘. 마이스터 중에서도 숙련된 자신이 이렇게나 무력하게, 그저 ‘힘’에 눌려 질질 끌려 바닥에 처박혀서는 숨도 못 쉬는 꼴이라니. 라마단의 자존감이 처절하게 무너져 내렸다.

압력을 버텨 내려 몸에 두른 오러를 유지하는 것도, 기력을 이용해 산소가 끊긴 신체를 보호하는 것에도 한계에 다다랄 즈음. 그는 드디어 죽음을 직감했다.

‘설마… 진정 날 죽일 생각인가?’

온갖 좋지 않은 생각들이 그의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자신이 봐 왔던 영상 속 신시우의 모습들이 떠올랐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상대를 파괴하는 그의 성정이 그 자신을 죽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렇게 그가 두려움을 느끼며 의식이 흐릿해져 갈 때쯤, 전신을 짓누르던 힘이 순식간에 걷어졌다. 그리고 그는 반사적으로 숨을 들이켜며, 마치 새우처럼 펄떡여 살기 위해 몸부림 쳤다.

생존을 위한 꼴사나운 몸부림을 한참 치고 나서야 그는 안정을 되찾은 그는, 기력을 운용하며 겨우 두 발로 일어설 수 있었다. 그러곤 살았다는 생각과 함께, 신시우에 대한 두려움이 그의 마음속에 심어져 이전처럼 그를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

자신감이 없어진 그는 조심스럽게 시선을 올려, 단차가 생긴 마당의 위쪽을 바라봤다. 그러자 싸늘한 시선으로, 사나운 기세를 뿜어내고 있는 흰머리의 남자가 보였다.

‘정녕 저게 마법사의 기세인가…….’

그는 등줄기에 돋는 소름을 느끼며, 시선을 내렸다. 그리고 한국어를 모르는 그는, 영어를 사용해 그에게 자신의 뜻을 전했다.

* * *

이제 좀 고분고분해졌군.

눈빛이 벌써 달라졌다. 패배자의 눈빛. 건방을 떠는 놈들은 반드시 이런 과정을 거쳐 깨달음을 줘야 된다.

“큰 실례를 저질렀소.”

자동 전개된 통역 마법이, 영어로 하는 붉은 머리의 사과를 전해 줬다. 반말하면 한 번 더 처박아 버리려고 했는데, 그래도 하오체 정도를 하기에 봐줬다.

그런 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러곤 그의 사과는 깔끔하게 무시한 채 내 말을 전했다.

“들어가 있어.”

마당을 원상태로 돌려 놔야 하기에 녀석을 먼저 들여보냈다. 사과를 무시당했음에도 녀석은 고분고분 내 말을 따랐고, 나는 마당을 금세 복구해 냈다.

“그래서. 네가 나를 보자고 한 목적은 뭐지?”

집 안으로 들어와 응접실의 창을 복구해 내며 녀석에게 물었다.

“단켄의 목적과 같소. 프리메이슨의 종말. 그로 인해 전도자들이 바라는 대로 되지 않게 하는 것이 목적이오.”

“이름은.”

“라마단이라고 불러주시오.”

고개를 끄덕이며 집안 곳곳을 다시금 원상 복구해 놨다.

“그래. 어디서 왔지?”

“호주에서 왔소.”

“계시자인가?”

“맞소.”

고개를 끄덕였다.

“세력이 얼마나 있지?”

“꽤 많소. 아마 지구상에 나보다 더 큰 규모의 기에테 조직을 가진 자는 없을 것이오. ‘오스만’이라는 연합인데, 크고 작은 아홉 개 조직으로 이루어져 있고, 총 인원은 500명 가까이 되오.”

“그래?”

생각보다 규모가 꽤 크다. 프리메이슨이 현재 40명이 좀 넘는다고 들었는데 5백이라니. 숨어 있던 놈들이 이렇게 많았다는 얘기인가? 의문이 들었지만 이내 생각을 접었다. 그것보다 이놈이 내게 득이 될 것인가 실이 될 것인가 그것이 제일 중요했으니까.

라마단은 건방지긴 하지만, 악인으로 보이진 않았다. 그저 버릇만 고쳐 주면 괜찮을 인물.

능구렁이 같은 영감탱이랑은 다르지.

“일단 앉아 있어라. 한 명 더 올 사람 있으니까. 자세한 얘기는 그때 가서 하지.”

잠시 스마트 폰을 들고 만지작거리고 있자, 그가 물어왔다.

“그대는 대체 어떤 경지에 올라 있는 것인지 물어도 되겠소?”

“음… 네가 상상할 수 없는 경지……?”

옆쪽 4인 소파에 앉은 그를 슬쩍 보자, 아주 진지한 얼굴의 녀석이 나를 쳐다봤다.

“난 신검합일의 경지를 넘어선 검사요. 소위 신검합일의 경지를 말하는 마이스터의 경지에서도 최상위에 올라섰다고 자부해 왔소. 어검술까지 가능한 경지니까. 그런 내가 상대의 힘에 제압되어 흙바닥에 처박혔소. 내 생에 이렇게 처참하게 패배하긴 처음이요.”

“내 심장에는 마력 고리가 열두 개가 있다.”

녀석의 눈매가 살짝 움직였다.

“가늠이 되나?”

“과거 대전쟁 시절 세력 최고의 마법사들은 아홉 개에서 열 개의 고리를 가지고 있었소. 아홉 개 고리만 해도, 작은 왕국쯤은 하루아침에 먼지로 만들어 버릴 만큼 강력한 마법을 구사할 수 있는 경지라고 알고 있소. 그런데 아홉 고리와 고리 열 개의 차이는 또 하늘과 땅차이라고 하더이다. 열두 개라니… 당연히 가늠이 안 되오.”

“그래. 알려고 하지 마라. 헛수고다.”

“허나, 비슷한 경지는 느껴 본 적이 있는 것 같소.”

녀석의 말에 눈썹을 들썩거렸다.

“전도자들이라 불리는 이들. 단군이나 단켄에게 들어봤을 거요. 그 존재는 10개 고리의 마법사도 압도적으로 제압했소.”

고개를 끄덕였다. 압도적인 힘으로 전쟁을 끝냈다는 것은 알고 있으니까.

“아마 당신과 비슷한 힘이 아닐까 생각되오.”

“들을 때마다 한번 만나 보고 싶군.”

“최대한 마주치지 않는 것이 좋은 놈들이오.”

그렇게 대화하고 있는데 남 비서가 다가왔다.

“시우 님 한 분 더 도착했습니다.”

“들여보내.”

김 비서를 따라 들어온 남자는 꽤 거구였다. 뚱뚱하고, 키도 좀 있었다. 라마단이라는 놈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그 또한 방위청장 정도는 가볍게 제압할 만한 힘은 품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자연계열 능력인가.

“아이고~ 바쁘실 텐데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첨 뵙겠습니다. ‘조지’라고 합니다.”

조지라는 녀석은, 건방 떠는 것 없이, 오랜만에 맘에 드는 정신상태를 가진 자였다.

행색이 초라한 것을 보니, 단켄과 비슷한 컨셉인가 보군.

“그래. 한국을 도와줬다지? 고맙다. 이쪽에 앉아.”

라마단이 앉은 소파의 반대편 4인 소파에 그를 앉히는데, 라마단이 눈에 쌍심지를 켰다.

“뭐?”

“아니오.”

내 물음에 녀석은 헛기침을 하더니 시선을 돌렸다.

“너도 프리메이슨의 멸망을 위해 내게 손을 내밀러 온 건가?”

조지라는 남자는 라마단을 힐끗 보더니 말했다.

“맞습니다.”

“너도 계시자인가?”

“음. 해석자라고 봐야지요.”

“오… 그래. 처음에 도망쳐서 숨은 녀석이구만?”

“하하하하! 정답입니다. 눈치가 좋으시군요.”

조지는 굉장히 호쾌한 남자였다.

“그런 소리 많이 들어.”

또 라마단이 묘한 눈빛으로 쳐다보자, 눈을 부릅뜨고 쳐다봤다.

“이제 다 모였으니, 본격적으로 얘기를 시작하자. 너희들의 목적과 계획, 내게 바라는 것과 너희가 줄 수 있는 것이 뭔지 얘기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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