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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즉위식 날 균열을 만났다-38화 (38/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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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구와 구조 작업이 한창인 부산의 해운대 마린시티. 그곳에 빛무리와 함께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갑작스러운 공간이동 마법에, 근처에서 복구 및 구조 작업을 하고 있던 각성자들이 달려갔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한국 각성자들의 물음에, 그 무리에 있던 마법사가 통역 마법을 시작했고, 사나워 보이는 눈매를 가진 여자가, 담배를 피워 물고 걸어 나왔다.

“신시우를 만나러 왔다.”

살짝 푸른빛이 도는 검은 단발머리, 푸른 눈을 가진 몽환적인 그녀의 모습에, 순간 정신이 없어진 각성자는 눈을 껌뻑이다가 대답했다.

“아, 예. 어디서 오셨…….”

“미국.”

“아… 혹시 기에테십니…….”

“맞아.”

각성자는 허둥지둥하며 얘기했다.

“아, 예.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십쇼.”

각성자는 멀찍이 떨어지더니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보고했고, 그사이 주변을 둘러보던 여자는 뭉게뭉게 연기를 뿜으며 얘기했다.

“많이도 부서졌네.”

“누님, 그런데 신시우가 거래를 승낙할까요?”

“안 하고는 못 배길걸? 우리가 가진 패는 로티플이야.”

자신만만했던 그녀였지만, 돌아온 각성자가 들고 온 소식은 좋지 못했다.

“죄송합니다만, 현재 귀환자님이 바쁘셔서 지금은 못 만난다고 하십니다.”

“못 만나? 어디 있는데? 내가 직접 찾아가지.”

“어… 그게, 알려 주지 말라는 당부가 있으셔서.”

여자의 기세가 무섭게 돌변하며 각성자를 압박했다.

“그래?”

“예…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부디 이해를 해 주십쇼…….”

각성자가 울먹이자, 그녀는 기세를 거두어들였다.

“어쩔 수 없지, 뭐. 좀 기다릴까.”

“그, 일단 한국에 입국하시려면, 신분증과…….”

여자는 허리춤에서 단검을 검집째로 풀러서 려성자에게 던졌다.

“내 신분은 이걸로 증명이 다 가능할 거야.”

“아니, 언니. 그건…….”

여자는 손을 들어 자신을 말리려는 여자의 입을 막았다.

“믿음, 신뢰. 그 단검은 그 증표다. 그걸 줬다는 건, 내 목숨을 맡기는 것과 같아. 이 정도면 내 신분과 신뢰가 보장이 되지 않겠어?”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걸 맡기면 어떻게 해요.”

“괜찮아. 어차피 한배를 타러 온 건데 이 정돈 맡겨 줘야지.”

각성자는 상황을 보며 눈만 깜빡이고 있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그러면 일단은 이거 받아 놓겠습니다.”

“그래. ‘헨가’. 연락처 받아 놔.”

“예.”

그렇게 연락처 교환이 끝나자, 그녀는 스무 명 정도 되는 무리를 이끌고 어딘가로 이동했다.

* * *

“또 찾아왔다고? 허허.”

동네 허름한 평상에 앉은 단군은, 또 하나의 기에테 조직이 부산에 상륙했다는 사막의 얘기에 그저 허허 웃으며 먼 산을 바라봤다.

“이 세상에 흩어진 기구한 인연들을 이렇게 한데 모으는 날이 올 줄이야. 신시우는 참 희한한 녀석일세.”

“맞습니다.”

“이렇게 옆에 와서 얘기해 줘서 고맙네.”

“당연한 건데요, 뭘.”

사막은 피곤한 듯한 얼굴로 웃어 보였다.

“마음 잘 추스르십쇼.”

단군은 그저 희미한 미소로 화답했다.

“또 재미난 소식 들고 오겠습니다.”

“고맙네.”

사막은 마치 빨려 올라가듯 공중으로 올라가더니, 그대로 사라졌다.

치익-

담배에 불을 붙인 단군은 연기를 뿜어내며 새카맣게 탄 속을 달랬다.

“후우-”

‘너희들 볼 낯이 없구나.’

* * *

“아오…….”

너무 오래 집중하고 있었더니 두통이 생기려 해 머리를 살짝 흔들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자 휑한 주차장이 나를 맞았다.

뭐야, 둘 다 어딜 간 거야?

뭔가 버려진 기분에 소외감을 느끼며 주변을 둘러보는데 옆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다 끝났어요?”

목소리가 들려온 곳은 옆쪽 골목길이었다.

“뭐야? 너네… 뭐하냐?”

뭔가를 구석에서 먹고 있는 것이 포착됐다.

“라면입니다!”

소리치는 남 비서의 목소리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이 쉐끼들이…….”

혼자 중얼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내가 집중을 너무 한 탓에 그 찐한 라면 냄새도 못 맡았구나, 생각하며 걸어가는데, 바람이 반대 방향으로 치고 있는 것을 느꼈다.

아, 바람 때문인가?

시간을 보니 벌서 점심시간이 지나있었다.

“아니, 배고프면 식당 가서 먹지 왜 여기서 쭈그리고 앉아 있냐.”

“야외에서 먹는 라면이 무슨 맛인지 느껴 보고 싶어서요.”

“제가 맛있다고 했습니다.”

피식 웃었다.

“내 건?”

“자, 여기 있습니다.”

“오~ 고맙다.”

역시, 건강은 둘째치고, 라면 냄새는 정말이지 중독성이 있다.

“이건 뭔 라면이야?”

“아~ 이번에는 낌새라면이라는 건데요. 좀 매콤하죠?”

“어. 야~ 매콤하네.”

이렇게 셋이서 모여서 쭈그리고 앉아 손에 그릇을 들고 라면을 먹고 있으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 느낌이 들었다. 소소한 행복감이랄까. 남 비서가 그런 나의 감상을 깨고 들어왔다.

“참, 아까 부산 쪽에서 연락이 왔는데, 다른 기에테 집단이 들어왔나 봐요.”

“그래? 뭐 하는 놈들인데.”

남 비서는 냄비에 면을 추가로 넣으며 대답했다.

“어… 미국에서 왔다는데, 자세한 건 못 알아낸 것 같습니다. 신분증 제시하라 그랬더니, 보검 같아 보이는 단검 한 자루를 허리춤에서 던져 줬다고 하더라구요.”

“희한한 놈이네.”

“여자랍니다.”

“그래.”

아무런 관심이 없었기에, 여자든 남자든 그냥 대충 대답했다.

“그, 또 프리메이슨인가 하는 그 조직 때문에 온 걸까요?”

“뭐, 그렇지 않을까?”

혼자서 호로록 면발을 흡입하고 있던 수현이가 입을 열었다.

“사부는 프리메이슨이랑 싸울 거예요?”

“어, 약속은 했으니까.”

“오… 나도 같이…….”

“네가 왜.”

또 쓸데없는 얘기를 꺼내길래 말을 끊어 먹었다.

“음… 왠지 잘 싸울 수 있을 것 같아서……?”

“허… 참. 야, 네가 생각하는 그런 싸움이 아니야. 이건 전쟁이라고. 조금만 방심하면 그대로 변사체가 되는 거야. 넌 방심 안 해도 변사체가 될 거고.”

“아~! 왜 그렇게 변사체가 된다고 확정 지어요? 안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뭔가 아, 뒤에 ‘C’를 붙이려고 했던 것 같은데…….

“넌 확정이야. 아니면 누군가가 널 계속 지켜 줘야 되고, 누군가 널 위해 몸을 던져야 네가 살 수 있을 텐데 그런 민폐를 끼칠 거냐? 걍 안 가는 게 낫지.”

수현은 눈매를 좁히며 입을 꾸욱 다물었다.

“난, 무조건 갈 거예요. 지금 바로 싸우는 것도 아니니까. 충분히 강해질 수 있거든요?”

아니, 근데 넌 왜 그렇게 함께 싸우고 싶어 하냐? 라고 말을 하려다 멈칫했다. 왜냐하면 왜 저렇게 ‘함께’하려고 하는지 대충 감이 왔기 때문이다.

예전의 내 마음을 수현에게서 읽었다.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뭐랄까. 보호자가 된 보람을 느낀다고 할까?

“네가 그때까지 내부 관조를 끝낼 수 있을 것 같냐?”

“할 거예요.”

똘망똘망한 눈빛이 왜인지 정겹게 다가왔다.

“뭐, 왜요? 왜 그런 식으로 쳐다봐요.”

“어? 내 맘인데?”

“아~! 짜증 나.”

그냥 제풀에 짜증 내고는 홱 돌아앉았다.

“스승님한테 지금 짜증 냈냐?”

호로로록.

씹혔다. 그런데 뭐라 할 수가 없었다. 제자의 마음을 알 것 같았으니까.

“아 참. 그…….”

어색한 공백의 시간에 남 비서가 뭐라고 말하려던 찰나. 누군가 접근하는 것을 느낀 우리는 모두 고개를 돌려 그곳을 바라봤다.

“별미를 드시고 계시군요.”

다섯이나 대동하며 접근한 이는, 다름 아닌 요한이었다.

“오, 볼일은 다 봤냐?”

요한이 와서 도왔다는 것은 들었다. 그러나 이런저런 신경 쓰이는 일들 때문에 부른다는 것을 까먹고 있었는데, 마침 제 발로 찾아와 주니 고마웠다.

“예. 일전에 한국으로 들어오라고 하신 것도 있고 해서, 인사 드릴 겸 들렀습니다.”

이놈도 좀 청장 같은 스타일일 것 같은데…….

비슷하게 정중하고 깍듯하지만, 느낌이 달랐다. 요한에게서 받는 느낌은 좀 더 위험하고, 좋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래. 잘 왔다. 너, 앞으로 한국에 있어.”

“예?”

녀석은 당황한 기색을 내비치며 물었다.

“앞으로 한국에 있으라고. 굳이 일본이 네 고향도 아니고, 거기 있을 필욘 없잖아?”

“아… 그건 그렇습니다만. 이유가…….”

“너 같은 인재를 옆에 둬야 안심이 되지.”

‘위험한 놈’을 ‘인재’로 둔갑시켜 말했다.

“음… 한번 생각을 좀…….”

“아니, 한국 어디라도 좋으니 들어와 있어. 한국에는 네가 필요하다. 마침 여기 기에테들이 전 세계에서 모여들고 있는 참이거든. 프리메이슨을 조지려면 네 힘도 필요할 테니까 말이야. 네가 아는 정보도 공유 좀 하고.”

프리메이슨을 들먹이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잠시 당황하더니, 생각보다 금방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일단 기에테들을 만나 보도록 하지요. 그리고 다시 찾아봬도 되겠습니까.”

“일본에 뭐 정리할 게 있으면 하고 오든지. 정리하고 들어와 있어.”

“예, 알겠습니다.”

“3일.”

“예?”

“마무리 지을 게 있으면 3일 안에 다 마무리하고 오라고. 한국에는 네가 필요하니까 넌 필히 들어와 있어야 돼. 그리고 천황은 여기서 계속해도 돼. 어차피 하는 것도 없잖아.”

천황이 하는 게 있는지 없는지는 몰랐지만, 그냥 아무렇게나 던졌다. 내 말에 할 말이 없어진 건지 녀석은 입을 열었다 닫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그래. 가 봐.”

그는 괜히 왔다는 후회의 기운을 뿜어내며 돌아갔고, 남 비서와 수현은 웃음을 머금고 식사를 마무리했다.

“따라오고 싶으면 열심히 해.”

“예에~”

수현에겐 내부 관조를 하라고 시켜 놓고, 다시금 차원 관문의 마법 술식 해석에 몰두했다.

* * *

“바알 길드 마스터를 만나러 왔소.”

부하들에게 바알 길드라는 곳이 프리메이슨의 추종 세력 같다는 제보를 받은 단켄은, 직접 바알 길드 건물을 찾아갔다.

“누구십니까?”

“기에테. 발할라 기사단이라고 해 두죠.”

“아, 예. 그런데 현재 마스터께서 외부인을 만날…….”

“안에 있긴 있소?”

“아, 예. 그렇…….”

너무 당당하게 치고 들어오는 대화법에 당황한 로비 안내원은, 말하고 나서야 그 말을 해선 안 됐다고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단켄은 사라져 버렸고, 장소에는 그가 데려온 통역 마법사와 동행인 한 명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잠깐 얘기만 하고 올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마법사는 안내원을 달랬지만, 안내원은 보안이 뚫린 것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아,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쾅.

마스터실 문을 터프하게 부수고 들어간 단켄은, 자신만의 공간을 침입당해 화가 난 바알 길드장과 마주할 수 있었다.

“아. 네가 바알 마스터 지국이냐?”

“그렇다면? 넌 누구지?”

“요전에 신시우와 함께 중국 원정 다녀온 기에테다.”

그 말에 지국은 안색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아니, 당신이 왜…….”

“아, 뭐 확인 좀 하려고.”

구름을 밟듯 가벼운 보법으로 순식간에 그의 옆에 다가온 단켄은, 나직한 목소리와 진한 살기로 그의 움직임을 봉쇄했다.

“움직이면 팔 날아간다.”

단켄은 그의 팔을 움켜쥐고는 그의 상의를 통째로 뜯어 버렸다. 그러자 그의 옆구리 뒤쪽에 촛불 모양의 문신이 그려져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명백한 프리메이슨 추종자의 증표였다.

“자, 우리 프리메이슨 회원 친구. 네게는 분명 발설을 할 수 없는 마법이 걸려 있을 거야. 그래서 나는 널 유능한 마법사 친구에게 데려갈 거야. 널 죽이려는 게 아니니까 쫄지 말고. 시키는 대로만 하면 네가 우려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 가자고.”

일방적으로 얘기를 하던 단켄은, 그를 들쳐 멘 채 창문을 부수고 나갔고, 단켄에게 압도당한 지국은 그대로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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