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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즉위식 날 균열을 만났다-39화 (39/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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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어느 폐교의 운동장에 두 무리의 기에테들이 만났다.

“이야~ 검은 마법사 오랜만이네.”

“오랜만이군. 빨간 고양이.”

27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프리메이슨의 최고 계층인 ‘계시자’였던 라마단과 요한은, 만나자마자 뼈 있는 말투로 서로를 긁었다.

“그래. 천황은 할 만하고?”

“개소리는 접어 두고, 본론만 하지. 네 계획은 어떻게 되지?”

요한의 말에 라마단은 팔짱을 꼈다.

“흠- 일단은, 백광마정과 추종자들을 줄여 나가면서 놈이 부활식을 갖추지 못하게 할 거다. 방법은 그것밖에 없어. 정면충돌은 신시우에게 부탁할 거고.”

요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또한 같은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가장 우려되는 ‘부활식’을 막는 것이 우선. 프리메이슨이 적당한 양의 영혼을 모으지 못하게 해야 한다.

“넌 일본에 있는 추종 세력의 뿌리를 뽑아.”

“추종 세력은 정리했다. 일본에 추종 세력은 없어. 백광마정은 찾는 중이고.”

“가장 중요한 걸 못 찾았군.”

라마단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혀를 찼다.

“프리메이슨 놈들은, 추종자들이 프리메이슨에 대한 걸 발설하지 못하게 하는 마법을 걸어 놨다. 저주에 가까워 풀 수가 없어.”

“신시우라면 가능할 거다.”

“흠…….”

그 부분은 요한도 동감하는 부분이었다. 자신보다 아득히 높은 곳에 있는 신시우라면 그 저주를 풀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와 같은 배를 탄 기에테들 중 단켄이라는 녀석이 있는데, 그 친구가 지금 추종자를 잡으러 갔어. 아마 조금 있으면 올 거다. 그놈을 신시우에게 데리고 가서 저주를 풀고, 실토하게 만들 거야.”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운동장 가장자리와 가까운 곳에 세 사람이 나타났고, 곧장 그들에게 걸어왔다.

“잡아 왔다. 그런데… 그쪽은 누구지?”

“일본 천황.”

요한 대신 라마단이 빠르게 대답했다.

“아~ 그럼 같이 가면 되겠군. 어차피 그쪽도 우리랑 같은 패지?”

단켄을 처음 보는 요한은, 그의 잘 벼려진 기세에 경계하는 마음이 피어올랐다. 라마단과는 다른, 잘 벼려진 한 자루의 검 같은 느낌. 잘못 만지다간 베일 수 있는 위험한 검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지.”

떨떠름하게 대답한 요한은, 라마단 일행과 단켄 일행과 함께 공간 이동 마법을 이용해 거창 차원 관문으로 이동했다.

* * *

“어……! 단켄 님! 아니, 다들 어쩐 일로…….”

갑작스러운 수많은 강자의 등장에 남 비서가 당황했다. 본래 그런 강자들이 혼자도 아니고 몰려오면 겁부터 집어먹을 법했으나, 그들 모두가 힘을 합쳐도 신시우를 감당할 수 없을 걸 남 비서는 알았기에 긴장되지 않았다.

“귀환자를 보러 왔네.”

통역 마법을 통해 전해진 라마단의 말에, 남 비서는 관문 앞에서 집중 중인 신시우를 쳐다봤다.

“보시다시피 지금은 집중하고 계셔서 만나실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음. 뭐, 좀 기다리지.”

“좀 오래 기다리실 수도 있습니다.”

그에 단켄이 손을 들어 휘휘 저었다.

“괜찮아. 괜찮아.”

그렇게 그들은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아 대기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짧은 이탈자들이 생겨났다. 근처에 가서 뭘 사 오기도 하고, 내기를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한참 후. 드디어 신시우가 마법을 거두고 움직였다.

“무슨 일이냐?”

뭔가 기분이 좋아진 듯한 신시우의 얼굴에 큰 수확이 있었음을 다들 알 수 있었다.

“이 친구 저주 좀 풀어 주라.”

단켄의 너무 편한 대화법에 요한과 라마단이 의아한 얼굴을 했다.

“뭔데?”

“프리메이슨 추종자 놈인데, 발설을 못하게 저주가 걸려 있거든. 말하려고 하면 죽어.”

“자살 방법도 되겠네.”

“맞아. 그래서 보통 정신을 잃게 만들어서 운반하는데, 이놈은 자살을 할 만한 놈이 아니라.”

“저주를 푼다라…….”

신시우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너희들, 저주를 푼다는 게 어떤 건지 알고는 있냐?”

그에 요한이 입을 열었다.

“저주란, 사악한 힘인 사력(邪力)과 대상에 대한 강력한 살(殺)이 담긴 의지로 만들어지는 술법입니다. 여러 갈래의 마법 회로를 조합해 만들어지는 마법 술식과는 완전히 다른 술법이라 푸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술법이죠.”

“잘 아네. 그런데 왜 가져왔지?”

“너라면 풀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번엔 단켄이었다.

“음…….”

신시우는 잠시 고민하는 듯 침음을 흘렸다.

* * *

저주술법. 대상에 대한 강력한 살심을 품은 자가, 제물과 피의 술식으로 사악한 기운을 불러와 거는 술법. 술법의 기반이 강력한 살심이기 때문에, 기반이 마력이 되는 마법과는 결이 다른 술법이다.

저주술을 푸는 법은 존재하긴 한다. 다만, 그 방법이 너무나 난해하기에 저주라고 하면 모두들 고개를 가로젓는 것이다.

저주술을 푸는 방법은 두 가지.

첫째. 술사가 품은 살의를 꺾을 만큼 강한 의지를 가지고, 술사가 불러온 사악한 기운을 물리칠 만한 양의 생명의 기운을 이용하는 방법.

둘째. 성력(聖力)으로 정화하여 저주를 물리치는 방법.

두 번째 방법은 보통의 성력을 가지고 있어서는 웬만한 저주술법을 풀지 못한다. 꽤 높은 경지의 성법사를 필요로 하는데, 성법사 자체가 흔하지 않은 만큼, 높은 경지의 성법사를 구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그럼 남는 것이 첫 번째 방법인데, 이 또한 너무나 난해한 방법이다. 일단 첫 번째로 술사의 강력한 살의를 넘어서는 강한 의지를 가지는 것이 힘들다. 저주술사들의 살심은 남들과 다르게 타고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겨우 그 첫 번째 조건을 달성했다 한들, 사악한 기운을 물리칠 만한 양의 생명의 기운을 모으는 것 또한 난해한 과제다.

사악한 기운은 여러 가지 속성의 기운들 중에서도 굉장히 강력한 기운이다. 대표적으로 사악한 기운을 사용하는 흑마법사들의 마법이 지독한 이유가 그 힘 자체가 강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주술사가 쓰는 사악한 기운은 흑마법사들이 사용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짙은 기운이기에, 그것을 물리칠 만한 생명의 기운을 모으려면 그 양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이 필요하다.

어떤 이들은 생명 에너지인 ‘기력’을 이용하면 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강력한 기력을 운용하는 이들이 드물뿐더러, 그들조차 첫 번째 ‘의지’에서 막히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대부분 포기하고, 괜히 역풍 맞을까 저주에는 손을 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나는 두 번째 방법이 가능하다.

“이리 데려와 봐.”

놈의 옆구리 뒤쪽에 불길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촛불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문신을 바라보자 마치 건드리면 잡아먹어 버린다고 소리치는 듯했다.

나는 마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12개의 고리를 모두 공명시켰다. 그와 함께 주변의 마나들이 금빛으로 반짝이기 시작했고, 이내 일대가 마치 금빛 물결이 치는 듯한 그림이 연출됐다.

한껏 고양된 나는, 손을 뻗어 마나를 모았다. 익숙한 감각과 함께 내 손바닥으로 마나의 흐름이 만들어졌고, 순식간에 모여들어 커다란 구체를 형상화하며 회오리쳤다.

그 마나를 모조리 성력(聖力)으로 바꿨다. 강한 믿음을 가진 자들만이 쓸 수 있다는 그 힘, 성력. 보통의 마법사들은 이것을 다룰 수가 없다. 왜냐하면, 성력은 마력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힘이니까.

그러나 고리가 열두 개가 넘어서고부터 내 것이 아닌 영역에도 손을 댈 수가 있게 됐다.

성력은 진솔한 믿음으로부터 나오는 힘이다. 생명 에너지인 기력과 호기심, 지식욕을 바탕으로 하는 마력과는 다른, 기적을 일으키는 힘 성력. 그것은 사력(邪力)과 반대되는 힘으로, 강력한 성력은 사력을 효과적으로 파훼할 수가 있다.

한 번도 연습해 본 적 없는 강력한 성력이 손에 들어오자, 묘한 기분에 도취됐다. 정말 내가 성법사가 된 것 같은 느낌.

나는 그 힘을 휘감은 오른손을 그대로 놈의 옆구리에 갖다 댔다. 한껏 움츠러든 녀석이 느껴졌고, 이내 불길한 기운이 놈의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모든 과정이 끝나고 보니, 요한의 눈이 휘둥그레져 있었다.

“어떻게 그런 수준 높은 성력을……! 성직자이셨습니까?”

뭔가 흥분한 듯한 요한의 모습에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아니, 너도 내 경지에 올라와 보면 이게 뭔 일인지 알 수 있을 거다.”

놀라기는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 그들 또한 강렬한 성력의 힘을 느꼈을 것이다. 의아하겠지만,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했다. 그리고 놈에게 물었다.

“이제 말해도 된다. 얘기해 봐. 저주술로 네 입을 막아 놨던 이유.”

놈의 입에서는 어제 들었던 백광마정에 대한 것이 흘러나왔다. 그것을 어떻게 운반하여, 어떻게 작동시키며, 어느 정도에 회수해 가는지 얼추 알 수 있게끔 토해 냈다.

백광마정의 크기는 5m 정도의 높이에 아래위가 뾰족하고 가운데가 불룩한 유선형의 커다란 마정석인데, 영국에서부터 커다란 컨테이너에 넣어져서 선박을 통해 한국으로 들어왔고, 그것을 바알 길드에서 받아, 설치 장소인 철원의 적근산 자락으로 옮겼다고 했다.

“잘 처리해라.”

내 역할은 여기까지. 그들을 보냈다. 목적을 달성한 녀석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자 수현이 물어왔다.

“사부는 안 가요?”

“내가 왜?”

“음… 그냥… 한배를 탔으니까?”

“이제부터는 지들 할 일이지. 난 바쁘니까.”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끄덕이는 수현을 뒤로하고 다시 관문으로 향했다.

“관조 잘하고 있어. 빨리 터득 안 하면 쌈에 안 끼워 줄 거야.”

“예~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밝은 목소리를 뒤로하고 관문 앞에 선 나는 다시금 차원 관문의 마법 해독을 시작했다. 조금만 더 알아내면, 밑그림 정도는 완성할 수 있지 싶었다.

허공에 수도 없는 마법 술식과 진법을 그려 내며, 관문의 마법을 그대로 베껴 갔다.

* * *

“헉……!”

터질 듯한 심장을 안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레이나’는 부릅뜬 눈으로 정면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러다가 천천히 주변을 돌아봤다.

그런 그녀의 방문이 왈칵 열렸다.

“아직도 처자고 있……!”

방문을 열고 한 소리 하려던 어머니는 경악스러운 딸의 얼굴을 보고는 말을 멈췄다.

“뭐, 악몽 꿨니? 얼굴이 왜 그래?”

“어? 어…….”

레이나는 알 수 없는 이 상황이 너무나 당혹스러운 나머지, 휘둥그레진 눈알을 굴리며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어머니는, 걱정되는 얼굴로 침대 끄트머리에 앉아 심각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왜 그래. 얘기해 봐. 무슨 일이야.”

레이나는 그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스마트 폰을 켜서 날짜를 확인했다.

‘말도 안 돼…….’

레이나가 이렇게 놀라고 경악하는 이유는, 조금 전 강력한 낙뢰를 맞고 정신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단순히 정신을 잃었다고 하기보단, 죽었다는 것이 더 맞을 수도 있었다. 그런 강력한 낙뢰에 맞으면 죽는 것이 보통이니까.

“왜. 왜 그러는데. 너 출근 안 할 거니?”

출근이라는 말에 정신이 번뜩 든 레이나는 아, 하며 고개를 들었다.

“엄마 미안. 악몽을 꿨더니 현실이랑 분간이 안 돼서……. 금방 준비할게! 엄마 먼저 내려가 있어요.”

레이나는 어머니의 한숨 소리를 뒤로하고 부리나케 화장실로 뛰어갔다. 그리고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낙뢰를 맞고 눈을 뜨니 5년 전으로 돌아왔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그녀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천천히 씻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이 어처구니없는 현상에 대해 추측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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