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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날짜 2035년. 4월 24일. 지금으로부터 5년 후. 세상은 한 존재에 의해 멸망한다. 라는 사실을 레이나는 몸소 겪고 왔다.
손길 한 번에 천재지변이 일어나 모든 것을 파괴하고, 마법이라는 이름으로도 설명하기 힘든 힘을, 물 뿌리듯 이리저리 뿌리고 다니는 존재. 그 존재가 뿌린 낙뢰에 맞은 그녀는, 뜬금없이 5년 전으로 돌아와 버렸다.
‘ 대체 뭘까.. 어떻게 돌아올 수 있었던 걸까? ’
그녀는 복잡한 머리를 안고 출근 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 멍한 얼굴로 창밖을 바라봤다.
‘ 이렇게 출근 할 수 있는 것도 1년 남짓이지.. 곧, 이 나라도 전쟁에 휘말리게 되니까. ’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동쪽으로, 동쪽으로 피난에 피난을 가게 된다. 그녀 자신도 피난에 피난을 거듭하는 와중에 타지에서 낙뢰에 맞았으니까.
“ 하아.. ”
회사에 도착한 그녀는 복잡하고 무거운 머리를 가지고 자리에 앉았다.
‘ 죽어볼까? ’
레이나는 자신이 돌아올 수 있었던 경위에 대해 추측하던 중, 가장 신빙성 있는 가설로 ‘회귀능력’ 각성을 선택했다.
신이 도왔다고 하기엔 자신을 선택할 만한 이유가 없었고, 그렇다고 자연현상으로 치부하기엔, 회귀라는 것을 자연현상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결국 그녀가 생각해낸 것이 ‘회귀능력’의 각성.
그런데 이 회귀능력이라는 것은 어떻게 증명을 해볼 수가 없다. 왜냐하면, 증명을 하기 위해선 일단 죽어야 하는데, 죽어서 만약 아닐 경우, 돌이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그때, 팀장이 사무실 TV를 켰다.
“ 중국 발표한다. ”
‘ 중국..? 전쟁인가? ’
이맘때쯤 중국이 전 세계가 주목할 만 한 발표를 한 적이 있었나? 라고 생각하던 그녀는, 반사적으로 TV로 시선을 옮겼고, 그곳에서 나오는 충격적인 발표내용을 두세 번이나 머릿속으로 되뇌어야 했다.
중국의 항복 선언. 그것도, 곧 사라져 버릴 ‘한국’이라는 나라에게 항복을 했다고 했다. 레이나가 아는 미래에는 없는 내용에 충격을 받고 있는데, 팀원이 얘기했다.
“요즘에는 한국 귀환자가 뭔 사건을 일으키는지 궁금해서 뉴스를 일부러 틀어 본다니까요.”
한국 귀환자. 레이나가 아는 미래에는 없는 존재였다. 그녀는 계속해서 팀원들의 대화에 집중했는데, 계속 충격적인 얘기가 나왔다.
“일본이 발표할 때는 무슨 쇼 프로그램인 줄 알았다니까.”
일본도 항복했다고 했다. 그 한국 귀환자라는 자가 홀로 그 초거대 강국인 중국과 일본을 눌렀단다. 레이나는 그 사실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번뜩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그 공포스러운 존재로부터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저 한국의 귀환자가 아닐까. 생각했다.
“영국이랑 싸우면 어떻게 될까. 신시우가 이기는 거 아냐?”
“아유… 그놈의 징글징글한 영국. 누가 와서 좀 쓸어내 줬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도 피난 준비 해야 하는 거 아닌지 몰라요.”
“그때까진 열심히 일합시다들.”
‘신시우……!’
그녀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잠깐 다녀오겠다고 말하고는 그대로 회사를 뛰쳐나갔다.
“ 신시우…… ”
그녀는 드디어 자신이 과거로 돌아온 이유를 찾아냈다고 생각했다. 신이 힘을 썼든, 자신이 회귀능력을 각성했든 간에, 중요한 것은 자신이 미래의 파멸을 막을 열쇠를 쥐고 있다는 것이었다.
‘홀로 일본과 중국을 무너뜨릴 정도라면… 분명 승산이 있어!’
그녀는 바로 스마트폰으로 계좌 잔고를 확인했다.
‘공간이동 비용은 안 돼.’
한국 같은 먼 곳까지 공간이동을 하려면 굉장한 비용이 들어가기에, 비행기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부모님한테는 전화 한 통만 남긴 채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다행이야. 조금만 앞으로 왔다면, 이곳 루마니아까지 전쟁에 휘말려 비행기를 탈 수 없었을지도 몰라.’
레이나는 비행기 창문으로 밖을 보며, 정말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 * *
화장실을 다녀온 수현은, 내부 관조를 시도하기 전, 관문 앞에서 수많은 마법 술식으로 허공을 수놓고 있는 신시우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든든해.’
불지옥 속에서 구해질 때. 수현은 꿈결 속에서 누군가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를 들었다. 사방팔방이 울려서 그것이 실제로 말을 한 것인지 환청인지, 그것도 아니면 상대의 마음을 들은 것인지 구분할 순 없었지만, 그녀는 똑똑히 들었다.
자신을 깊이 이해하고 있고, 자신의 편이 되어 주겠다는, 자신을 지켜 주겠다는 소리를. 그것이 무엇이던 신시우의 목소리임을 수현은 알았다.
처음에 정신 차려서 신시우를 볼 땐 좀 부담스럽고, 무섭기도 했으나, 왜인지 마음에 편해졌고,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 뭘 해도 자신의 편이 되어 줄 것 같은 든든한 존재.
광해 길드의 마스터를 죽일 때도, 이후에 모든 행보에서 그에게 믿음과 든든한 부모나 오빠 같은, 가족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마나와 친해져서, 마나의 영향을 받아서 더욱 상대의 감정과 생각을 더 진하게 전달 받는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수현의 상처만 남은, 굳어 버린 마음을 풀어 주고, 치유해 줬다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만난 지 며칠 되지 않아 혹여나 그가 떠날까 두려운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수현은 믿었다. 그가 자신을 지켜 줄 것임을, 언제든지 자신의 편이 되어 줄 것임을. 그래서 수현은 다짐했다. 자신 또한 그의 편이 되어 줄 거라고. 언제 어디서든 그의 편이 될 것이라고.
수현은 미소를 한번 짓고는, 바닥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눈을 감고 내부에 집중했다. 남 비서는 그런 수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멀찍이 떨어져 있었고, 그 덕에 수현은 신경 쓰지 않고 조용한 가운데 집중할 수 있었다.
차원 관문에서 나오는 물결치는 듯한 소리와 신시우의 마력에 반응한 마나가 만드는 대기의 흐름. 여러 가지 잡다한 소리들이 점점 사라져 갔고, 고요함만이 남았을 때 수현은 비로소 내부에 집중을 할 수 있게 됐다.
‘느껴진다……!’
수현은 배꼽 부근에 있는 무언가를 느꼈다. 그리고 그것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대는 것을 느꼈다.
‘이게 단전…….’
신시우가 말했던, 인간이 ‘힘’을 사용하는 원천이 되는 곳. 모든 힘은 단전에서부터 시작되어 혈맥을 타고 흐르고, 마력은 마나를, 기력은 기를 움직인다.
수현은 신시우에게 들었던 이론 수업을 떠올리며, 내부 관조를 이해해 나갔다. 그리고 자신의 힘은 생각보다 미약하다는 것을 느꼈다. 마치 갓 태어난 새끼처럼 작고 약해 보였다.
단전을 느끼긴 했으나, 그것에 의지를 부여하여 움직이는 것은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어떤 목소리가 그녀의 집중을 흩뜨렸다.
“성공했네.”
수현은, 눈을 뜨자 신시우가 앞에 있어 화들짝 놀랐다.
“깜짝이야. 뭐예요? 어떻게 알았어요?”
“내가 주변에서 뭔 짓을 해도 모르더라고. 그 정도 집중력이면 내부 관조를 하고 있다는 증거지. 통달하고, 경지가 높아지게 되면 주변도 신경 쓸 수 있게 되지만, 처음에는 아무것도 안 들려.”
수현의 얼굴이 한껏 밝아졌다.
“오… 이제 마력 수련하는 것도 시간문제……!”
“마력을 컨트롤하는 건 쉽지 않을걸?”
“할 수 있거든요?”
자신감이 한껏 오른 수현은 상기된 얼굴로 신시우를 쳐다봤다.
“으흠. 뭐, 시간이… 남 비서. 아직 저녁 시간은 아니지?”
수현의 똘망똘망한 눈빛이 부담스러운 신시우는, 괜히 말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일찍 먹는다 치면 저녁이라고 할 수도 있는 시간입니다.”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
“아니, 할 수 있다니까 왜 말 돌려요?”
“오늘 내부 관조 성공했으니까, 먹고 싶은 거 사 줄게.”
“오…….”
따지고 들어서 신시우를 괴롭히려던 수현은 먹고 싶은 걸 사 준다는 말에 그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 * *
철원의 적근산 깊은 동굴 속. 온화한 백색 빛을 내뿜는 거대한 수정이 마법 장치들에 의해 허공에 고정되어 있다.
“호오…….”
“빛은 온화해 보이는데, 피부에는 한기가 닿는군.”
“영혼이 차가운 성질이라 그렇습니다.”
요한의 감상에 바알 길드 마스터 지국이 설명했다.
“이걸 부수면 어떻게 되지?”
라마단이 물었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갖고 나가자.”
단켄의 말에 요한이 지국을 바라봤다.
“해체해.”
“그게… 저는 방법을 모르고, 해체하는 사람이 와야 됩니다.”
“뭐?”
라마단의 눈에 노기가 서렸다.
“아니…! 그, 원래 그렇게 하기로 되어 있어서… 저희는 그저 운반조고, 기술자는 따로 있습니다. 주시자분들이 와서 설치를 하고 가셔서, 그분들이 알고 있습니다.”
“하아… 검은 마법사. 넌 할 줄 모르냐?”
“한번 봐야지.”
백광마정 앞으로 걸어간 요한은, 입을 달싹거리며, 마법 술식을 뜯어 볼 수 있는 술식 해석 마법을 시전했다.
그렇게 한참을 만지작거리던 그는, 몇 개 마법을 사용하여 마법 장치를 수정에서부터 떼어 냈다. 그리고 허공에 둥둥 뜬 백광마정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가지.”
동굴에서 나온 요한은, 혹시 모를 참사에 대비하여 높은 상공으로 백광마정을 올렸다. 이어서 만들어 낸 화염 구체로 백광마정을 타격했다. 그러나 모두가 우려했던 강력한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폭발은 안 하네?”
뿌연 연기가 바람에 걷어지고 나자, 멀쩡한 백광마정이 드러났다.
“뭐야… 타격이 없는데?”
“내가 해 보지.”
라마단이 높은 상공에서 하얀빛을 뿜어내고 있는 백광마정을 잠시 응시하더니, 엄청난 속도의 발검으로 오러블레이드를 날렸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쏘아져 나간 오러블레이드는 백광마정과 충돌했고, 커다란 폭음이 산을 뒤흔들었다. 그러나 그것 또한 백광마정을 부수지는 못했다.
“이봐.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라마단이 화가 난 목소리로 지국에게 물었지만, 그 또한 황당한 얼굴이었다.
“그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운반책일 뿐이라…….”
“미치겠네. 뭘로 처만든…….”
그때 뭔가 빠르게 접근하는 것을 감지한 이들이 모두 고개를 돌렸고, 라마단이 가장 먼저 땅을 박차고 솟았다. 허공을 딛고, 눈으로 좇을 수 없는 속도로 올라간 그는 순식간에 백광마정의 앞에 섰고, 그곳에 접근하던 마법사와 맞닥뜨렸다.
“쥐새끼 같은 놈이…….”
순식간에 라마단의 손에 마법사의 모가지가 움켜쥐어졌고, 그는 그를 데리고 빠르게 지상으로 내려갔다.
“마이콜……?”
요한이 그를 알아봤다. 그리고 마이콜이라 불린 남자는 다수에게 도발을 걸었다.
“배신자 놈들이 모여서 뭘 하고 있나 했더니, 우리 뒤꽁무니만 따라다니고 있었구나.”
“어. 맞아.”
뭔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이빨 몇 개가 그의 입에서 튀어 나갔다.
“왜. ‘브릴란스’가 저걸 가져오라디?”
마이콜은 입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순식간에 부어오른 얼굴을 들어 라마단을 쳐다봤다. 그러고는 제대로 되지 않은 발음으로 말했다.
“병신들…….”
한 방 더 때리려는 라마단을 단켄이 말렸다.
“그만해. 포로는 소중히 다뤄야지. 아직 정보를 물고 있잖아.”
“후… 답지 않게 흥분했군.”
그를 놓고 돌아선 라마단은, 담배를 하나 꺼내 물고 불을 붙이며 분노를 삭였다. 그리고 마이콜의 심문을 시작하려던 찰나, 그들은 동시에 뭔가를 깨달았다.
“참. 이놈도 저주가 걸려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