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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즉위식 날 균열을 만났다-51화 (5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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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하!’

황기옥은 속으로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도저히 밀어붙일 수 없을 만큼 강력한 힘. 이것은 물아일체의 경지에 오른 후 여태 적수가 없었던 자신의 완전한 패배였다.

그렇기에 그는 웃었다. 그것도 미친놈처럼 웃어 댔다. 비록 입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웃음이었지만 말이다.

황기옥은 세상의 정점에 섰을 때보다 자신을 막는 벽이 있을 때 희열을 느끼는 타입이었다. 과거 이계에서 자신의 적수가 없어졌을 때 그는 굉장한 상실감과 무료함, 공허함을 느꼈었다. 그래서 맞수를 찾아다녔지만, 그와 1합을 버텨 내는 자를 찾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공허함과 무료함에 시달리던 그는, 오랫동안 씻지도, 옷을 갈아입지도 않는 이상한 버릇들이 생겼고, 그 와중에 귀환하게 되었다.

강자와의 만남에 목말라 피폐해져 가던 그는 지구에 돌아와서도 강자들을 찾아다녔는데, 지구에서도 마찬가지로 그의 검을 받아 낼 수 있는 자는 거의 없었다. 그나마 몇 합 나눴던 자는 프리메이슨이라는 조직의 검사 하나뿐.

그러다 나타난 것이 신시우였다. 그의 행보는 파격적이었고, 강력했다. 성격 또한 포악하기 이를 데 없어, 기옥의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찾아온 신시우의 무력은 정말 그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인지를 벗어난 움직임에도 반응했으며, 반격까지 하여 그를 놀라게 했다. 거기에 더해 힘 싸움에서는 그를 뛰어넘었다.

그리고 결국 이렇게 패하게 되어 버렸다. 그를 짓누르는 이 거대한 힘은, 마치 신의 것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하고 견고했다.

그런 생각들을 하는 와중. 순간 그를 짓누르던 무지막지한 압박감이 사라지고, 다른 강력한 힘이 그의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어서 그는 낮게 허공으로 떠올랐고, 그의 주변에 반투명한 푸른빛을 띠는 직사각 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속박류 마법인가.’

지금 그를 빙 둘러친 푸른 마법판들이, 그가 여태 보아온 속박 계열의 술법이나 마법 중에서는 가장 강력하다는 것을 그는 몸으로 직접 느끼고 있었다. 손, 발은 물론 눈동자조차도 움직일 수가 없었고, 기력 또한 움직임이 아주 더뎌졌다.

두 팔을 옆구리에 붙이고, 꽁꽁 묶인 듯한 자세로 굳어 있는데, 신시우가 그의 앞으로 왔다.

“네 정체에 대해서 간략하게 읊어 봐.”

섬뜩.

기옥의 등줄기로 소름이 지나갔다. 물아일체의 경지인 그의 감각을 꿰뚫은 것은 분명한 살기. 마법을 사용하는 이들을 여럿 봐왔지만, 이런 살기를 느껴 보긴 처음이라 당황했다. 그리고 자신의 등줄기에 소름이 돋을 수 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하하하하하!”

‘놀라움이 가시지 않는구나.’

그에게 신시우의 능력은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싫다.”

“그래? 어쩔 수 없군.”

쩌저저적. 기옥의 머리 위 상공에 대기가 얼어붙으며, 날카로운 얼음 창들이 만들어졌다. 언제든지 신시우의 명령만을 기다리는 사형집행자 같은 그 창들에서 뿜어지는 한기가 그에게까지 전해졌다.

그리고 창들이 빠르게 쏘아지는 그 순간. 공간이 한차례 진동했다. 그와 동시에 기옥의 몸에서 피어오른 진한 푸른빛의 오러가 강력한 속박 마법의 술식들을 파괴하며, 쏘아지던 얼음 창마저 분쇄했다.

신시우는 그걸 별로 놀라는 기색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든지 넌 죽일 수 있다는 듯이. 기옥 또한 신시우가 죽일 마음이 있었다면 진즉 자신을 죽일 수 있었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조금 전, 거대한 힘으로 자신을 짓눌렀을 때가 그 기회였다. 허나 그는 그 기회를 잡지 않았다.

‘그건 그의 의도가 죽이는 것보다는 다른 쪽에 있다고 봐야겠지.’

“내 출신은 북한. 탈북 직후, 뭘 해 보기도 전에, ‘마라’라는 제국이 있는 세상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190여 년을 유영하다 귀환했지. 귀환한 곳이 후진 곳이라 그런지, 귀환했는데 아무도 없더군. 뒤늦게 각성자라는 놈들이 왔지만, 이미 내가 몸을 숨기고 난 뒤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 맞수를 찾기 위해 강자들을 찾아다녔다.”

“호오.”

신시우는 별 감흥 없는 얼굴로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내 검을 1합도 받아내지 못하는 이들이 9할이 넘었다. 그러다 네가 나타났고, 이렇게 나보다 강하다는 걸 알게 되어 무지 기쁘다.”

“기쁘다고?”

“정점은 공허하고, 외롭고 슬프다. 적수도 없고, 올라갈 원동력이 생기지 않지.”

“그래서 이제 날 보고 더 위로 올라가겠다?”

기옥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그럴 기회나 있을 것 같고?”

기옥은 피식 웃었다.

“아까 날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넌 그러지 않았어. 넌 날 죽일 생각이 없다는 뜻이지. 나 또한 마찬가지고.”

신시우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했다.

“네가 하는 꼴 봐서 결정하려고 살려 둔 것뿐이야.”

“넌 프리메이슨을 칠 생각인가?”

“그런 건 왜 묻지?”

“네가 하는 걸 쭉 보니 걔네들과 부딪힐 것 같더군.”

“나를 아주 유심히도 주시하고 있었구나.”

“당연하지. 오랜만에 나타난 귀환자가 깽판을 치는 걸 그냥 보고 지나칠 수가 있나.”

신시우가 가만히 지켜보자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네가 하는 일을 돕겠다. 네가 알아서 잘하겠지만, 도와준다면 너로선 나쁠 게 없지 않은가?”

“목적은?”

신시우의 눈이 그를 꿰뚫고 있었다.

“내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 보답이랄까.”

* * *

녀석의 눈빛은 너무나 진지했다. 마나를 통해 흘러들어오는 느낌들도 그의 말이 진실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놈의 말이 진실이라는 얘기인데…….

자신보다 강한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에 활력이 불어넣어진다니, 사람마다 성향이 다 다르다곤 하지만, 이런 놈은 난생처음 봤다. 하여, 뭐라 할 말이 없어 가만히 있었다.

내 실력은 이미 마계에서 정점에 가까웠지만, 언제나 더 높은 자리를 향했기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 언제나 단련했고, 수련했고, 수행했다. 수도 없이 많은 마법들을 경험하고, 다루고, 분석했으며, 수많은 생명체들과 교감하고, 그들을 연구했다.

그래서 녀석이 말하는 것에 공감할 수 없었다. 정점에 올라선 자의 외로움과 공허함은 느껴 본 적이 없으니까.

그렇게 공감은 할 수 없었지만, 마나를 통해 전해지는 놈의 진심은 느낄 수 있었다. 처음 마주했을 때에는 녀석에게서 전해지는 것들이 도통 종잡을 수 없는 것들이었으나 지금은 달랐다. 안정되고 진정성이 있었다.

“좋아. 그럼 넌 여기 남아서 각성자들을 가르쳐라.”

내 말에 녀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프리메이슨과 싸움에 네가 낄 자리는 없어. 다른 방식으로도 날 도울 방법은 많다. 내가 국가 단위로 진행시킨 일이 하나 있는데, 한국의 각성자들 훈련시키는 프로그램이야. 거기 도와주면 돼.”

“흠… 그래. 좋다. 그게 널 돕는 거라면, 흔쾌히 하도록 하지.”

즐거워 보였다. 거지꼴을 하고 있어도 아까와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도저히 나로 선 이해할 수 없는 녀석이었지만, 아무튼 그랬다.

아공간 마법을 해제하고 나자 걱정 한가득인 수현과 두 비서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 뒤에 있던 세 기에테들도 나름 걱정스러운 얼굴들이었다.

“사부! 괜찮아요?”

두 손을 들어 보였다.

“물론.”

“누구예요?”

황기옥을 바라보는 수현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약간의 살의도 엿보였다.

“아, 선생님.”

“네?”

“앞으로 이 나라 기력 각성자들을 책임지고 훈련시켜 줄 선생님이야. 이름은 황기옥이다.”

내 말에 여섯 명 모두 얼빠진 얼굴로 눈만 껌뻑였다. 그러자 내 뒤에 있던 녀석이 앞으로 나서서 손을 들어 보였다.

“하하하하. 이거, 오해를 좀 산 모양인데, 이 친구를 죽이러 칼을 뽑아 든 건 아니었어. 앞으로 종종 보게 될 텐데, 오해는 좀 풀고 가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수현은 이상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고, 나머지들도 비슷했다.

“나한테 좀 맞더니 내가 좋아졌대. 그냥 그렇게 이해해라.”

“어허이. 누가 보면 맞는 걸 좋아하는 사람으로 오해하겠군.”

심상치 않은 추임새를 넣으며 헛기침을 하는 녀석을 뒤로하고, 남 비서를 불렀다.

“남 비서. 바로 일본으로 갈 준비해. 라마단이 있는 곳으로 간다.”

“예.”

그리고 나는 방위청장에게로 연락했다.

“어, 저번에 멀든 일행들하고 얘기는 잘했냐? 어. 그래. 추가로 굉장히 뛰어난 교관을 하나 섭외했는데, 같이 함 얘기해 봐. 어. 그래.”

스마트폰을 기옥에게 건넸다.

“번호 불러줘. 연락 줄 거야.”

“없는데.”

“뭐?”

“핸드폰 같은 건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뭔가 머리에서 종소리가 나는 기분이었다.

“그럼 넌 여태 뭘로 연락하고 살았냐?”

“딱히 연락할 사람도 없고, 필요하지도 않았어.”

주변을 둘러보자 모두들 얼빠진 얼굴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황당하겠지. 나도 황당한데, 여태 한국에 쭉 살아온, 스마트 폰의 중요성을 아는 이들은 더하겠지. 나는 뻗었던 손을 다시 회수했다.

“네가 데리러 와야겠다. 이 교관님이 스마트폰이 없으시댄다. 폰도 좀 마련해 주고. 현대 생활 어떻게 하는 건지 좀 알려드려. 어. 그래.”

통화가 끝나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좀 씻고.”

“당연하지.”

“앞으로 그 당연한 것 자주 좀 하고.”

“그럼.”

“옷이나 뭐, 여러 가지 것들은 다 챙겨 줄 거니까. 그대로 하면 돼.”

“그렇게 애 취급 안 해도 돼. 몰라서 안 한 건 아니니까.”

“아무튼, 말썽 일으키지 말고, 한국의 각성자 꼬마들에게 혹독한 훈련을 시켜 주도록 해.”

“그래. 너도 잘 다녀오고, 다녀오고 나면 다시 붙자.”

그냥 아까 죽일 걸 그랬나?

귀찮은 요구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봐서.”

한참 기다리니 방위청에서 사람이 나왔고, 저 노숙인 같은 꼬질꼬질한 녀석을 보내고 나서야 나는 움직였다.

“잘 부탁한다.”

“영감이랑 함께 무사히 돌아오십쇼.”

“어.”

영감의 소식을 알리지 않아 세 기에테들에게 미안해졌지만, 티 내지 않고 떠났다.

[사부. 조심히 다녀와요.]

[그래.]

* * *

히로시마현의 어느 산자락. 라마단을 포함하여, 여러 기에테들이 모여 있는 곳에 신시우가 모습을 드러냈다.

“단군 쪽에 대한 정보는? 더 들어온 거 없어?”

“아직은.”

“듣자 하니 중국 산시성 쪽에 불기둥이 솟구치기 시작했다던데, 단군의 싸움과 연관이 있는 건 아닌가?”

“아직 밝혀진 게 없어서 확답을 내릴 순 없지만, 산시성에 단군이 간 것은 분명하오.”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거의 확실하겠군.

“다른 녀석들은 잘되고 있나?”

“연락 두절된 곳이 네 곳 늘었고, 요한은 프리메이슨의 관조자와 붙었소. 그리고 나머지는 마정석을 잘 회수했다는 보고요.”

“좋아. 나는 중국 산시성으로 간다. 단군의 흔적을 쫓을 테니까. 넌 나머지 네 곳을 조사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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