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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으으윽……!”
어깨를 강타하는 격통에 셸라이는 얼굴을 찌푸렸다. 신시우는 강하고, 빨랐으며, 압도적이었다. 수많은 차원을 호령했던 천자족. 그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강자인 셸라이가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괜한 도발이었군.’
그는 도발한 것을 후회했다. 실력 차가 비등하거나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도발의 효과를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렇게 속도를 쫓을 수 없을 정도의 실력 차이라면 도발하는 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온다.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하나하나의 일격에 짙은 살의가 묻는다.
‘저렇게 작고 약한 종족이… 어떻게 저런 격까지…….’
셸라이는 자신의 모습에 분하기도 하고, 이런 처참한 상황이 슬프기도 했다.
[감히 어딜 손을 대느냐.]
머릿속을 울리는 음성. 일정 영역 안에 불특정 다수에게 보내는 정신접촉이었다.
“헬라……!”
새하얀 날개를 가진 여성 천자가 순식간에 땅으로 내려왔다. 이어서 둘이 더 나타났다.
[버러지 같은 것이…….]
셸라이의 처참한 모습에 분노한 여신관 헬라가 낮게 으르렁대는데, 갑자기 신시우가 웃기 시작했다. 마치 미친 사람처럼.
“크크큭… 좋아. 좋아.”
웃음 뒤에 드러난 신시우의 눈빛에 광기가 번뜩였다.
[그렇지 않아도, 이놈 하나로는 성에 안 찼는데, 잘됐다. 아, 너희가 부활시키려는 그것도 부활시켜서 같이 죽여 줄까? 어때?]
신시우의 도발에 넘어간 헬라가 전신에 금빛 광채를 두르더니 빛살같이 짓쳐 들었다.
[하찮은 종이 감히 고귀한 분의 이름을 입에 담아!]
* * *
몸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르다. 시간이 갈수록 그걸 더 절실하게 느꼈다. 마력 고리가 13개로 분열된 이후 마력의 질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전에는 밀도 높은 묵직한 바닷물 같은 느낌의 마력이었다면, 지금은 강철같이 강하고 단단한 느낌의 마력이었다. 그렇게 단단하고 강하지만, 혈맥을 타고 흐르는 느낌은 전에 없이 부드럽고 빠르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신체의 격이 한 단계 상승했다고 해야 할까? 그냥 고리가 하나 늘어나고, 마력의 효율이 커지거나 하는 그런 게 아닌 내 신체의 격이 상승하여 몸이 그에 맞게 바뀌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아까부터 피부가 벗겨지며 그 피부가 있던 자리를 금빛이 어른거리는 이상한 느낌의 물질이 대신 채워지고 있는 부분이 그렇다.
영체화되는 것도 아니고, 약간 투명도가 있는 것 같아 보이는 피부로 바뀌고 있다. 몸속부터 외부까지 모든 것이 변하고 있었다.
지금 내 도발에 넘어가 죽자고 덤비는 저 거인의 공격도 이전 같았으면 뜨끔했었을 공격이었지만, 아무렇지 않게 느껴졌다.
강렬한 살의를 싣고 뻗어 오는 거대한 손날. 마나와 함께 알 수 없는 힘을 함께 품고 있는 그 손날을 그대로 잡아 멈춰 세웠다. 순간 놀람과 황당함이 어린 얼굴이 되어 버린 그 금빛 거인의 손목을 그대로 분질렀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마치 갓난아기가 어른의 손목을 잡아 분지르는 것 같은 장면. 그러나 지금의 내겐 너무도 당연했다. 내가 느끼기엔 정반대였으니까.
비명을 지르는 그 여자 거인의 얼굴에 돌덩이 같은 금빛 마나 덩이가 그대로 직격했고, 비명은 끊겼다.
그녀의 뒤에 있는 두 거인을 슥 쳐다보자 둘 다 움찔하더니 그대로 경직됐다.
[너희들에게 물어볼 것이 있다.]
팔이 잘린 거인 놈은, 어느새 지혈을 마치고는 여전히 금빛으로 전신을 뒤덮은 채 내 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너희들이 부활시키려는 놈은 어떤 녀석이지?]
[네게 말해 줄 의무는 없다.]
팔이 잘린 놈이었다.
“어. 그래.”
빛과 같은 속도로 놈의 앞으로 이동한 나는 녀석의 얼굴을 걷어찼다.
“그럼 그냥 뒤지게 처맞고 나서 머릿속을 들여다보면 되겠네.”
이후로는 정신없이 놈을 공격했다. 주먹 하나하나에, 발길질 하나하나에 금빛 마나가 농도 높게 맺혔다. 순간순간 놈의 방어기제인 금빛 장막이 막아섰으나, 내 주먹질과 발길질을 0.1초도 막아서지 못했다.
순식간에 넝마가 된 놈이 바닥에 누웠다. 뒤로 돌아보지 않았지만, 뒤의 놈들이 얼마나 얼어붙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쓸모없는 것들은 이제 죽어라.”
셀 수 없는 소형 마나 구체가 순식간에 일대 공중을 뒤덮었다. 전구처럼 빛나던 그것은 금세 총알처럼 땅을 향해 쏘아졌고, 일대를 빛과 폭음이 뒤덮었다.
이전보다 위력이 훨씬 높아진 마나를 압축한 구체. 아무리 놈들의 맷집이 좋다 한들 살아남을 수 없는 위력이다.
그 순간에 어디로 내뺐다면 모르겠지만.
마나는 아마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일대에 마나는 대게 귀속되다시피 하고 있으니까.
넝마가 된 외팔 거인 놈을 잠시 보고 있자니, 아직도 내 속이 풀리지 않아 답답한 감이 있었다.
일단 네 머릿속부터 들여다보자.
놈의 머리 쪽으로 걸어가 놈의 머리에 손을 대고, 기억을 읽기 시작했다. 놈들이 왜 이곳에 오천 년이라는 시간 동안 머물렀는지. 오천 년 전에 대체 뭘 한 건지. 놈들이 부활시키려는 것은 대체 무엇인지. 수많은 기억을 읽어 내려갔다.
한참을 읽었다. 몇 시간이 지났는지 몰랐다. 그리고 드디어 나의 궁금증들이 해소되었다. 마계에 관한 것들, 이놈들이 뭐가 두려워 이곳에 눌러앉아 그 긴 시간을 버텼는지. 그리고 이놈들이 부활시키려 하는 존재와 그 이유에 대해 알게 됐다.
이놈들은 천자라고 불리는 종족인데, 종족 특성상 타 종족에 비해 초월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어, 일찌감치 다차원을 지배하며, 패자로 군림할 수 있었다.
천자들은, 마계에서 그 두려워하는 재능인 마나의 축복을 받은 자들과 거의 흡사한 재능을 보유하고 있었다. 당연히 사기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차원을 넘어 다니며 수많은 차원을 그들의 발아래에 두며, 눈부신 성장을 하던 와중 몇몇 차원에서 그들에 필적하는 위험한 힘들을 가진 종족들이 등장했고, 결국 그들을 꺾은 천자들은, 상대의 차원을 통째로 봉인해 버리는 대마법을 걸게 된다.
그중에 마계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놈은 마계에 대한 것은 그리 세밀하게 알고 있지 못해 더 이상의 정보는 얻어낼 수 없었다. 그저, 마계가 굉장히 위험한 차원이라는 것뿐.
그런 놈들은 어느 날 갑자기 이곳저곳에 나타난 괴물들과 마주하게 되는데, 마치 암세포처럼 조용하게 이곳저곳을 좀먹던 ‘그것’은, 어느 날 급속도로 불어나며 세상 곳곳을 덮쳤다.
천자들은 그것들을 ‘악마’라 칭했고, 악마들은 죽음을 먹고 세를 불리고 힘을 키워 나갔다. 그러니까 자들이 죽으면 죽을수록 악마들의 힘은 세지고, 숫자는 불어난다는 얘기다.
처음에 안일한 대처로 인해 상대의 힘과 세를 불리게 만들었던 천자들은, 그들의 침공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그리고 마침내 악신 ‘바르’라는 것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그 높은 격의 힘으로 결정적인 싸움에서 천자들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줬다.
그때부터 천자들이 일방적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천자들 중 신격을 가진 이들이 나와 맞서 봤지만, 죽음을 먹은 악마들의 힘은 이미 초월적이었고, 악신 바르 또한 압도적이었다. 결국 신들은 일부는 봉인되고 일부는 소멸되는 참사를 겪었고, 천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악신 바르라…….
‘흰 날개가 달린 악마’ 외에, 마계에서도 악마라고 칭하는 것들이 존재했다. 아마 이놈들이 마주한 것들과 같은 것을 칭하는 것 같다. 죽음을 먹는다는 점에서 같으니까.
악마들은 도망가는 천자들을 맹추격을 했는데, 그들이 차원 관문을 넘어가면 놈들도 넘었고, 이 외팔 거인 또한 그들의 추격을 피해 도망 다닌 것 같다. 그리고 봉인된 신 호란인가 하는 녀석을 부활시키려 했고…….
레이나가 말한 그 영국에서부터 모든 것들을 궤멸시키기 시작한 존재가 바로 이 호란이라는 존재인가 보군.
이 외팔 거인 놈의 생각을 읽어 보자면 그놈들을 대적할 존재는 신격을 가진 존재뿐이고, 처음에는 악신 바르의 힘을 알지 못해 패했으나 호란을 부활시켜 함께 전략을 짜서 싸운다면 물리칠지도 모른다는 것이 녀석의 생각이었다.
근데 왜 모든 것을 파괴하고 다녔을까? 이곳의 모든 생명체를 죽여 놈들과 싸울 전장으로 만들 셈이었나?
여러 의문점이 남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 차원 바깥에 돌아다니고 있을 악마라는 것들이었다.
무려 오천 년이라는 어마어마한 세월이 흘렀는데, 그것들이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는지, 죽음을 먹지 못해 지들끼리 자멸했는지, 다른 차원들은 놈들에게 다 먹힌 것인지. 궁금한 것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마계. 악마들이 그곳을 침공했다면 어떻게 될지. 그 강자들이 득실득실한 마계니까 큰 걱정은 없는데, 그들을 패배시켰던 천자들이 그렇게 쫄딱 망했으니,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마계로 관문을 여는 것을 서둘러야겠어.
마계를 향한 차원 관문을 여는 것. 마법 술식의 구조는 파악이 끝났고, 마계로 목적지를 설정하는 원리 또한 대충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남은 것은 이제 나머지 해석하지 못한 부분을 해석 완료하는 것.
일어나 뒤돌아 걸었다. 그리고 마나를 이용하여 놈을 공중으로 들어 올린 뒤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어떻게 죽인들 이 답답한 속이 풀리진 않았다.
* * *
영국에서 내 손에 전도자 넷과 프리메이슨의 수장이 사망한 뒤 기에테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프리메이슨 세력을 완전히 뿌리 뽑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대대적인 소탕이 시작됐다.
전도자들은 어디로 숨었는지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았으며, 프리메이슨이 무너지자 희한하게도 유럽의 전쟁은 막을 내렸다.
자연스럽게 프리메이슨이라는 조직과 연관된 각국 인사들은 축출됐고, 한국은 단번에 세계에서 가장 입김이 있는 국가로 자리매김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이전처럼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나설 이유도 잃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단군 밑에 있던 세 기에테들에게 단군의 소식을 전해 줬다. 그들은 굉장히 분노했고, 단군을 죽인 바레모도가 어떻게 됐는지 얘기해 주자 좀 가라앉는 분위기였다.
옛집에 있던 나의 전리품을 완성된 나의 새로운 집에다가 옮겨 놓고는 다시금 거창으로 내려가 마계로의 문을 여는 데에 집중했다.
이따금 단군이 생각나기도 했고, 수현이와의 추억들에 마음이 어지럽혀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성북동의 피자집을 찾았고, 순두부집을 찾았다.
그렇게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하아…….”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벌써 8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지나 12월 말이 되었다. 그리고… 마법 관문을 열 모든 준비가 끝났다.
마계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