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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즉위식 날 균열을 만났다-58화 (58/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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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에서 멀지 않은 어느 넓은 공터. 온갖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신임 방위청장, 온갖 관료들과 기에테들이 싸그리 모였다. 오면 죽는다고 했는데도 죽음을 무릅쓰고 모두 모였다. 내가 마계로 가는 문을 열 거라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가신다니. 섭섭한 느낌입니다.”

고귀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뭘, 섭섭해. 할 거 다 해 주고 가는데.”

“그런 뜻이 아닙니다. 정말 신시우 님께 큰 빚을 졌습니다. 충분한 보답을 해 드리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한 마음입니다.”

확실히 녀석이 내게 신경을 계속 써 주긴 했다. 나 혼자 관문 앞에 처박혀 있는다고 건강 걱정, 입맛 걱정, 별의별 걱정을 다해서 귀찮게 했었다. 귀찮았지만 그의 마음은 충분히 받았다.

“됐고. 또 말할 사람 있으면 얼른 얘기해.”

그다음으로는 기에테들의 인사가 이어졌다. 이런저런 얘기들을 받아줬다. 겉으론 아닌 척했지만, 내 말에 따라 준 녀석들에게 고마운 감정은 있었다.

처음에는 위계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거칠게 나간 것도 있었지만, 그것은 질서를 잡기 위해 했던 이유 있는 행동이었다. 고마운 것은 고마운 것.

“다들 그동안 내 뜻에 따라 줘서 고마웠다.”

고맙다는 말이 안 어울린다느니, 웃기는 소리들이 오고갔다. 그리고 분위기를 바꿨다.

“다들 이제 물러나. 마법에 휘말리면 마법도 X 되고, 너네도 X 되니까.”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는 마력을 끌어올려 고리 13개를 모두 공명시켰다. 동시에 전신에서 금빛 광채가 뿜어져 나와 일대를 밝혔다.

아지랑이 같은 금빛 마력이 몸 밖으로 이글이글 뻗어 나왔다. 그리고 또다시 육체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고리 열세 개를 공명시켰을 때만 이렇게 변했다가 다시 돌아온다.

격이 높아지는 고양감을 느끼며 마법술식들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여름이 다 끝나 갈 때쯤 돼서야 해석을 마쳤고, 무려 3달이라는 시간 동안 수많은 실험을 거쳤다. 이후 20일 동안 차원 관문을 열 준비를 했다.

오랜 시간 공을 들인 마법. 이제 이 복잡한 마법 구성을 완벽하게 조작하여 연계시키기만 하면 됐다. 그러나 긴장감은 놓을 수가 없었다. 마법이라는 것은 아무리 완벽하다고 한들 예상치 못한 변수가 존재하는 법이니까.

셀 수 없이 많은 술식들이 원형을 그리며 수십 겹으로 허공을 수놓았다. 이윽고 늘어난 술식들이 그 모양을 입체적으로 바꾸며, 원통형의 모습을 갖췄다. 모든 술식들이 그 형을 갖추자, 셀 수 없이 많은 마법들이 연계되며 환한 빛이 일대를 뒤덮었다.

눈을 뜨기 힘들 만큼 강렬한 빛이 쏟아지다 순식간에 빛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이내 그 가운데의 공간이 일그러지며, 시커먼 구멍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 구멍은 순식간에 그 크기를 불려 마법진만큼 커다래졌고, 공간 충돌로 인해 생겨난 차원 폭풍이 일대를 휩쓸었다. 그러나 폭풍은 내가 다루는 마나에 의해 그 세를 넓히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을 집어삼키지 못했다.

그렇게 소용돌이치는 어둠을 얼마나 바라보고 있었을까? 관문의 ‘틀’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검은 불꽃 문양이 새겨진 돌들이 소환되며, 정십이각형 모양의 틀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해석한 마법이지만, 그것이 완성되는 걸 보고 있으니 신비로웠다. 수많은 마법을 다뤄 봤지만, 이렇게 심오하고, 광오한 마법은 처음이었다.

잠시 시간이 흘러 틀이 완성됐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불투명한, 반사율이 낮은 은색 물질이 허공에서 뿜어져 나와 얇게 펴지더니, 관문 너머 뻥 뚫려 있는 심연 같은 검은 구멍을 완벽하게 가렸다.

한차례 강력한 마나 파동을 뿜어내며 완성됐음을 온 세상에 알렸다.

“후…….”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긴장한 까닭이었다. 마계와 잘 연결이 된 건지 아닌지는 잘 모르지만, 완성되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굉장한 뿌듯함과 고양감이 온몸을 가득 채웠다. 짜릿한 것을 넘어선 이 느낌은, 느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멀리 떨어진 이들의 경이로움에 가득 찬 눈들이 들어왔다. 놀라움을 넘어서 감동적인 얼굴들도 보였다.

이런 거대한 규모의 마법은 그저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흔들고, 긴장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나를 바라보는 이들에게 눈빛을 한 번씩 주고는 관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살짝 떠 있는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마나 조작으로 허공으로 떠올랐다.

“흠……!”

콧김을 한번 뿜은 나는 두근대는 가슴을 한차례 진정시키고, 허공에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이질적인 느낌의 은색 장막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 * *

“헉… 헉… 헉… 헉…….”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한 남자아이가 귀신이라도 들린 듯이 달리고 있다. 그리고 멀리 시커먼 것이 그 소년과의 거리를 바르게 좁히고 있었다.

‘제발… 제발 살려 주세요. ‘후마’ 님……!’

폐가 터질 것 같은 남자아이는, 죽을힘을 다해 달리면서 자신이 아는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그런 그의 기도를 들어준 것일까? 갑자기 그의 머리 위 10m쯤 되는 상공에 괴이한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일대에 번개 폭풍이 일어나더니, 공간이 일그러지며 검은 구멍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늘이 도운 건지, 머리 위에서 내려치는 번개들을 모두 피해 낸 소년은, 오줌을 지리며 길 옆 숲속으로 숨었다.

너무 놀란 소년은 오들오들 떨면서 허공에서 생겨나는 기이한 것과 달려오고 있는 검은 것을 번갈아 가면서 쳐다봤다. 검은 것은 달려오다가 뭔가 심상치 않은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감지한 것인지 멈춰서 가만히 쳐다봤다.

그렇게 모두가 쳐다보는 가운데 차원 관문의 개통이 시작되었다. 번개와 함께 나타난 시커먼 구멍 주변으로 석재 구조물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것은 십이각형의 어떤 출입구 같은 형태를 갖췄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이상한 물질이 흘러나왔고, 엷은 막이 되어 구멍을 막았다.

검은 괴생명체와 숲속의 소년이 그 놀라운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그곳에서 한 사람이 튀어나왔다.

* * *

발을 딛는 곳에 마나가 모여들어 발판을 만들었다. 그 발판을 딛고 서서 전경을 바라봤다. 나무가 빽빽한 산골짜기, 노을이 지는 와중 연기가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그래서 그런 걸까? 지구에서와는 다른 탁한 공기가 폐로 스몄다.

시선을 옮겨 앞쪽에서 나를 보고 으르렁대는 것을 쳐다봤다. 네발로 땅을 딛고 있는 놈은 전신이 검었는데, 전신에 난 털인지 뿔인지 모를 것들이 하나하나 신경이 살아 있는 듯한 움직임을 보여 주고 있었고, 벌린 주둥이에는 뾰족한 이빨들이 빽빽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희한한 생물이군.

넓디넓은 72개 대륙의 모든 생물들을 알 순 없었기에 그런 생물이 있는가 보다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마나를 통해 전해져 오는 이 흉악한 기운은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놈에게선 생명체의 느낌이 나질 않았다. 죽음의 진한 향만이 느껴질 뿐. 마을에서 피어오른 연기부터 불길한 느낌을 주더니, 뭔가 이상했다.

혹시 마계도 악마의 침공을 받고 있는 것일까?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그러면서 계속 으르렁대고만 있는 놈을 바라봤다. 마나를 타고 날아오는 놈의 감정이 느껴졌다. 녀석은 으르렁대곤 있었으나, 분명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허공에서 마나가 모여들어 칼의 형상을 빚어 냈고, 두 개의 칼은 그대로 놈의 몸통을 꿰뚫었다.

바닥에 내려선 나는, 옆쪽 숲속에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 소년에게로 향했다. 소년과 저 기괴한 생명체의 존재는 이곳에 발을 내디딘 순간부터 알고 있었다. 느껴지는 기척은 둘뿐인데다 소년에게서 느껴지는 마기를 읽었으니까.

“저 마을에서 왔니?”

소년은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어둑어둑해진 숲속이지만, 내게서 뿜어지는 금빛이 주위를 밝혀 소년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머리에 난 작은 뿔과 붉은 빛이 도는 꾀죄죄한 피부. 마족 중에서도 하급 마족이었다.

지구에도 인간이라는 종족이 세상을 지배하듯, 마계도 마족이라는 이들이 마계를 지배한다. 물론, 대륙마다 강세인 종족이 조금씩 다르지만, 다수의 대륙을 지배하는 것은 마족이었다.

그들은 두 가지 방법으로 계층을 나눈다. 첫 번째로 모든 대륙에서 통용되는 구별법으로 피부색이 있다. 가장 힘이 약하고, 낮은 계층이 붉은 피부, 그다음이 청색, 그다음이 회색, 그다음이 백색이다.

두 번째로는 그 안에서도 혈통으로 계층을 세분화하는데, 수많은 혈통들이 자신들만의 비전을 가지고 그 혈통의 힘을 증명한다. 마계와 같이 강자숭상의 율법이 지배하는 곳에선 혈통만이 가지는 비기가 굉장히 중요하다.

결국 흐름은 강자존의 세상. 그런 곳에서 이런 아이들은 하찮은 벌레와 같은 취급을 당한다. 가장 하층민의 피부를 가지고, 그에 맞는 약한 힘을 지닌 자.

[이렇게 대화하자꾸나. 넌 네 언어로 얘기하면 돼. 넌 저 마을 출신이니?]

소년은 오들오들 떨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지?]

소년의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

“시, 시커먼 그림자 괴물들이…….”

아이의 입이 열리고 말이 흘러나오자, 내 눈이 부릅떠졌다.

“칼란이냐?”

아이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방언이 섞인 것 같지만, 분명한 칼란어였다. 내가 구사하는 몇 개 언어 중 하나니까 잘 알았다.

내 물음에 눈이 휘둥그레진 아이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네?”

“여기가 칼란 대륙이냐고.”

“아… 네.”

베라크리토와 그 추종자들이 떠올라 순간 기분이 언짢아졌지만, 금 새 털어냈다. 그리고 현 상황에 집중했다.

“계속 얘기해 봐.”

“그… 검은 괴물이 마을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고, 마을을 파괴했어요.”

“검은 괴물이라면, 저기 저놈을 말하는 거냐?”

소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놈들은 어디서 왔지?”

“모르겠어요.”

“저것들에 대해서 들은 건 없어?”

내 물음에 녀석이 눈치를 힐끗힐끗 보자 다독여 줬다.

“천천히 생각해 봐. 기억나는 게 있으면 다 말해 줘야 돼. 그래야 저것들을 제거할 수 있어.”

잠시 골똘히 생각을 하던 소년은 뭔가 생각난 듯 고개를 쳐들었다.

“아……! 그… 제국……! 제국군이 악마 군대와 싸운다고 했어요! 그게 4일 전에 들은 이야기예요.”

“악마라… 넌 저게 악마 같니?”

“네……! 아주 사악한…….”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넌 나와 함께 가자.”

아이의 대답을 듣지도 않은 채 고리 13개의 공명을 해제했다. 그리고 마을을 향해 걸었다. 그런 내 뒤를 아이가 졸졸 따랐다.

어느새 해가 넘어갔고, 땅거미가 드리우고 있었다.

“지금이 몇 년도지?”

“3192년이요.”

“뭐라고……?”

“봉인력 3192년이에요.”

내가 사라지고 벌써 25년이나 흘렀다. 지구에서의 시간은 고작 몇 개월에 불과했는데 말이다. 그토록 빨리 오려 노력했던 것이 무색해져 허탈해졌다.

놀라서 멈췄던 걸음을 다시 옮기기 시작했다.

“너 혹시 칠대제가 뭔지 알고 있니?”

“네.”

“칠대제의 마지막 자리에 대해서도?”

이런 아이가 알고 있을 리 없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두근거렸다.

“아뇨.”

역시 알 리가 없지.

그렇게 허탈한 마음으로 일단 마을을 향해 내려갔다. 한참을 걸어서야 마을 어귀에 도달할 수 있었는데, 그냥 척 봐도 생존자는커녕 시체도 구경하기 힘들어 보였다.

크르르르…….

마을에는 조금 전 내가 죽였던 네발 괴수들이 득실대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저놈은 좀 크군.

네발 달린 놈들의 10배는 족히 넘는 크기의, 두 발로 땅을 딛고 있는 형태의 검은 괴수가 불타는 듯한 붉은 눈동자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극도의 공포를 느낀 아이가 내 바짓가랑이를 잡았다. 그 아이가 내 바짓가랑이를 잡자마자 나는 손을 휘둘렀다.

머릿속으로 그려진 마법 술식에 고리 여섯 개의 힘이 더해져 대지 속성 공격 마법이 발동됐다.

땅에서 순식간에 솟아난 가시들이 네발 괴물들을 모조리 꿰어 냈다. 그에 분노에 가득 찬 포효로 일대를 쩌렁쩌렁 울린 두 발 그림자 괴물이, 한 손에 든 시커먼 몽둥이로 솟아난 가시들을 부수며 내게 달려왔다.

그러나 놈도 네발 괴수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손짓 한 번에 일어난 바람 마법에 온몸이 갈기갈기 찢기며 바닥에 흩어졌다.

이것들은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니고…….

마나를 통해 느낀 놈들의 느낌과 전도자들에게서 빼낸 정보들이 합쳐져 근심으로 변했다. 이곳도 악신 바르라는 놈에게 침공당한 것인지, 마계는 그놈들을 물리칠 힘이 있는지. 이미 당한 것인지. 걱정이 점점 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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