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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즉위식 날 균열을 만났다-66화 (6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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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련은 예상대로 로아이스의 승리로 끝이 났다. 스레인도 분명 강한 놈이지만, 로아이스는 레벨이 달랐다. 마치 황기옥을 떠올리게 하는 압도적인 실력이었다.

그 녀석은 계속 그 상태인가.

문득 황기옥과 함께 지구에서의 일들이 떠올라 마음이 안 좋아졌다. 마계에 와서도 종종 상기되는 지구에서의 인연들이었지만, 매번 마음이 좋지 않아, 될 수 있으면 떠올리지 않으려 노력한다.

“가자.”

애써 생각을 비우며 둘을 재촉했다. 그리고 노인까지 총 네 명이 된 일행을 이끌고 공간 이동 마법을 이용해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칼란의 패권을 쥐고 있는 제국 환렌의 수도 ‘델폰’은 정말 끝없이 펼쳐진 도시였다. 천 년이 넘는 세월동안 여러 국가들의 수도를 담당해 왔다고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건물들의 연식도 꽤 된 것들이 많았고, 규모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로아이스. 지나간 지 얼마나 됐다고 했지?”

“한두 시간쯤 되었을걸세.”

여전히 로아이스는 존대를 하지 않았다. 두 눈으로 보고 나서야 인정하겠다는 뜻이겠지. 그에 이젠 스레인도 아무런 토를 달지 않았다. 그가 육황급에 필적한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리라.

“방향은?”

“남동쪽.”

“도시 내에 있는 모든 검은 것들을 말살시킨 뒤에 빠르게 쫓는다.”

그렇게 넓은 도시에서의 소탕 작전이 시작됐다. 정말 처참한 것은, 그 넓은 도시에서 생존자가 하나도 없다는 것.

그렇게 모든 검은 것들을 소멸시킨 뒤 놈들이 이동한 남동쪽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 * *

제국 환렌의 남동쪽에 있는 대도시 ‘가르엔’. 그곳의 분위기는 아주 좋지 않았다. 왜냐하면 육황 제로니가 패했고, 제국의 수도가 함락되었단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나마의 희망이 있다면 현재 제국의 3차 방어선이 가르엔을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

육황이 있었던 곳이 1차 방어선. 수도 근처에서 2차 방어선이 있었고, 제국의 마지막이 될. 아니, 칼란 대륙의 마지막 방어선이 될 3차 방어선이 바로 가르엔 근방에 만들어지고 있는 방어선이다.

육황이 쓰러지고, 제국의 수도가 무너진 상황. 암담한 상황에 다른 대륙으로 가는 피난길에 오른 이들도 적지 않았지만, 마계의 그리고 칼란 대륙의 긍지를 가진 이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곳곳에서 모여들었다.

아직 적들의 침공을 받지 않은 지방에서, 대륙 곳곳에 퍼져 있는 왕국들에서 속속들이 병력이 모였다.

그 수는 무려 수십만 이상. 강을 끼고 있는 도시 가르엔의 주변으로 빽빽한 군 막사가 들어섰다. 그리고 밤이 되자 막사에서 나온 불빛에 도시 주위가 대낮처럼 밝아졌다.

“후우…….”

대륙의 서열 3위인 ‘막간 겔레그람’의 입에서 기나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곧 들이닥칠 겁니다.”

“병력들은 다 준비됐나?”

“예. 그렇지 않아도 조금 전, 모두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로드릭’은?”

“막사 안에 있는 듯합니다.”

“나오라고 해. 우리도 준비해야지.”

“예.”

‘로드릭 이븐’. 칼란 대륙의 서열 2위로, 막간과 함께 차기 육황의 후보에 오르는 인물이다. 대륙에서 가장 강한 육황이 쓰러지고, 그 밑에 있던 이들이 모두 모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찰 포인트에서 보고가 들어왔고, 전 병력이 다시 한번 작전을 머릿속에 새기며, 전투를 준비했다.

은빛 갑주를 입은 막간이 막사에서 걸어 나오며 얼굴을 완전 가리는 투구를 눌러썼다. 오늘따라 밝은 달빛을 받은 그의 갑주가, 은은한 빛을 뿜어냈다.

“로드릭 막사로 가자.”

그는 절그럭거리는 발걸음으로 로드릭 이븐의 막사로 향했다.

“겁나냐?”

붉은색의 갑주를 입은 로드릭을 보자마자 막간이 말을 던졌다.

“칼란의 전사에게 두려움이란 없다.”

“어우… 씨. 뭐, 국어책 읽는 것도 아니고. 아무튼 이번에 합 잘 맞춰야 한다. 작전은 잘 외우고 있지?”

“걱정하지 마라.”

“쯧.”

막간과 그의 부관들이 먼저 발걸음을 뗐고, 그 뒤에 로드릭과 그의 부관들이 움직였다.

차가운 강바람을 타고 우웅거리는 스산한 울림이 도시와 각 진영, 산속으로 스며들어갔다. 그에 일대에 묘한 긴장감이 돌았다. 마치 누군가 입을 열기라도 하면 폭발할 듯한 긴장감이.

두려움에 기인한 긴장감을 해소하기 위해 각 진영의 지휘관들이 목소리를 키워 병력들을 다독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서부터 뒤흔드는 묵직한 울음소리가 강을 타고 퍼져 나갔다. 그리고 옅은 구름에 가린 희미한 달빛 사이. 거대한 고래가 휘어진 강줄기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거대함. 마치 산이 움직이는 듯한 거대함에 강의 동서로 나뉜 두 진영 모두 숨을 죽였다. 그 거대한 고래가 등장함과 동시에 지상을 새카맣게 메우며, 그 검은 군대가 나타났다.

그 거대한 군대에 바닥이 들썩거리며 돌멩이들이 벌벌 떨었다.

“전원 전투 준비-!”

모두들 작전대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마법사들이 함정 마법을 발동시킬 준비를 했고, 산속에서도 강렬한 화력을 쏟아부을 준비를 마쳤다.

그렇게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무렵. 그들의 앞에 한 줄기 빛과 함께 네 명의 실루엣이 나타났다. 그러곤 서로 뭐라고 말을 주고받더니, 날개도, 뿔도 없는 흰 머리의 남자가 허공으로 솟구쳐 올라갔다.

백발의 남자는 강의 위, 높은 상공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신비한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 * *

“늦지 않게 왔군.”

“엄청나게 많군그래.”

“스레인, 딸 데리고 물러서라. 로아이스, 너도 뒤로 물러나 있어.”

마나를 조작해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다. 이어서 강의 위쪽으로 향했다. 강의 위쪽, 전면에 다가오는 고래보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간 나는, 고리 11개를 공명시켰다.

강렬한 마력에 반응한 넓은 지역의 마나들이 흰빛으로 반짝였다. 이내 그 마나들은 내 의지에 따라 셀 수 없이 많은 마나 구체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것들은 망설임 없이 지상으로 내리꽂혔다.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자욱한 먼지가 피어올랐다.

“자, 다음은…….”

머리를 들어 나를 보고 다가오는 검은 고래를 응시했다. 시야를 가릴 만큼 굉장히 거대했고, 아주 기분 나쁜 안개를 전신에서 뿜어내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았다.

쩌저저적……!

저 높은 상공. 구름 위에 여태 만들어 본 적 없이 거대한 얼음 칼날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것은 이내 낙하했다. 너무 거대해 그냥 중력에 맡겨도 고래 놈을 쉽게 관통할 듯했지만, 나는 굳이 가속시켰다.

본 적 없이 거대한 얼음 칼날이 빠르게 내려오자, 구름이 뻥 뚫리며 그 거대하고 길쭉한 칼날의 전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것은 빠르게 내려와 재수 없는 울음소리를 내는 고래의 머리통을 그대로 관통했다.

그러곤 그대로 커다란 강바닥에 내리꽂혔다. 칼날에서 나온 강력한 한기에 강이 순식간에 얼어붙기 시작했고, 음울한 울음소리를 내던 고래 또한 얼어붙어 갔다.

“네가 콩이라는 놈이냐?”

얼음 칼날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거대하긴 했지만, 분명 놈이 막으려면 막을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피했다는 것은 내 힘이 자신을 상회한다는 것을 몸소 느꼈기 때문이겠지.

“아, 말을 못 알아 처먹지 너희들은.”

내가 목에 걸고 있는 펜던트의 통역은 상대의 언어를 들어야만이 통역을 시작하게 되기에, 상대가 아무 말을 하지 않으면 선제 통역은 불가능하다.

[네가 콩이라는 놈인가?]

꽤나 긴장하고 있는 얼굴이었다. 뭐랄까? 풀 수 없는 불가능한 문제를 마주한 얼굴이랄까.

“그래. 북서쪽부터 내려오면서 내 부하들을 죽인 게 네놈이구나.”

놈의 말을 들은 펜던트가 통역을 시작했다.

“어. 아마 그럴 거야. 그런데 말이야. 넌 어째서 인간의 육신을 가지고 있지?”

“상징이다. 바르 님께 인정받은 상징.”

꽤나 자신만만해하는 것이 꽤 웃겨 보였다. 그러나 그다음에 나오는 말은 썩 좋지 못했다.

“바르 님께서 널 만나고 싶어 하신다.”

“그놈의 바르라는 놈은 왜 나를 그렇게 날 만나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군.”

바르라는 이름만 들어도 심장이 쿵쾅거렸지만,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듯 도발했다. 그러자 녀석이 시선을 떨구더니 잠시 정적이 찾아왔다.

뭔가 이상한 느낌에 나 또한 가만히 녀석이 일어나길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순간 놈이 고개를 쳐들었는데, 눈 코 입에서 피를 줄줄 흐르며 내게 말했다.

“하하하하! 아주 당돌한 놈이구나……! 네놈과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 말을 끝으로 녀석은 다시 고개를 수그렸다.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다시 쳐들었다.

“하하하하! 바르 님이 널 정말 만나고 싶어 하시는구나.”

눈이 터져 버린 놈은 검은 것이 눈의 자리를 채웠고, 붉은 점 같은 것이 동공으로 있었다.

“큼큼……!”

놈은 핏물들을 뱉어 내더니, 이전과 완전 달라진 기세로 나를 쳐다봤다. 뭔가 광기에 젖은 듯한 얼굴.

“바르 님의 격은 잠시 버티는 것도 이렇게 힘들다. 네놈이 바르 님과 마주했을 때가 기대되는구나. 애송아.”

누가 누굴 보고 애송이라고 하는 거지.

뭔가 이상했다. 광기에 젖은 상판도 그렇고, 말도 그렇고. 저놈. 바르의 생각과 감정에 너무 심취한 듯 보였다. 뭐랄까. 그 사념이 남아서 섞여 버린 것 같다고 할까.

“나도 기대가 된다.”

마나를 이용해 전신 강화, 가속을 마치고, 놈을 때려눕힐 준비를 마쳤다.

이놈이 칼란의 현 육황을 쓰러뜨렸다, 이거지.

불끈.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느껴지는 힘은 육황급을 쓰러트릴 만큼 강해 보이지 않았는데, 육황이 이놈 손에 쓰러졌다니. 아무래도 육황이 이놈들의 특성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해 방심했거나 자만으로 방심했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했다.

“들어와.”

나는 놈을 향해 손짓했다.

* * *

숨 막힐 듯한 긴장감이 감도는 전장. 그 한가운데 나타난 의문의 인물들. 하나는 누가 봐도 알 만한 상위 마족. 그리고 그 자녀. 하나는 누가 봐도 퇴물이 되어 버린 상위 마족. 그리고 종족 불명의 백발 남자 하나.

“저것들은 또 뭐냐?”

막간이 물었다.

“확인해 보고 오겠습니다.”

그렇게 병사들이 알아온 답은 황당했다. 왜냐하면 뜬금없이 칠대제가 왔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신시우… 라고?”

막간. 그는 신시우라는 이름을 잊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참관인의 자격으로 신시우의 대제행을 참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똑똑히 보았다. 그가 베라크리토를 없애 버린 사술을 부리는 것을.

막간이 아는 베라크리토라는 인물은, 절대 도망칠 존재가 아니었다. 그랬기에 그는 신시우의 사술을 주장했지만 조사 결과 그가 부린 사술은 없었고, 그저 미스테리한 사건으로 남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결국 승자는 신시우가 되어 버렸다.

막간은 물론이고, 그곳에 있던 칼란 대륙의 참관인들은 분개했다. 그러나 천공섬 그라가레에서 내려온 참관인들과 조사관들이 있는 이상 더 항의를 할 수는 없었다.

너무나 허무하게 지나가 버린 대제행 결투였다. 그런 그 결투의 당사자가 이 대륙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었다.

‘듣자 하니 즉위식 날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즉위식이 취소되었다고 하던데…….’

공식적으로 발표할 만한 것이 아니었는지. 대외적으로는 즉위식이 진행되었다고 발표했고, 정보를 구할 수 있는 이들만이 진실의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분명 놈이 쓴 사술이 드러나 취소되었겠지.’

막간은 그렇게 생각했다. 설령 그것이 아니라도 상관없었다. 그는 이참에 확인해 볼 생각이었으니까. 정말 그가 자격이 있는지. 베라크리토는 어떻게 되어 버린 건지. 그리고 칠대제 즉위식은 왜 망쳐진 것인지.

‘일단은 저 검은 것들부터 정리하는 게 먼저다.’

막간은, 신시우가 지원 왔다는 것에 든든하게 느껴 버린 자신을 꾸짖으며 그가 하려는 것을 잠자코 지켜봤다.

신시우는 허공으로 솟아오르더니 베라크리토와의 결투에서 사용했던 기술을 선보였다. 마나들이 하얗게 반짝거리는 기술을. 그러나 이번에는 너무나 광범위한 마나를 다루기에, 그는 방대함에 조금 압도되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정말 압도된 것은, 신시우가 강동, 서 지역 모두를 초토화시켜 버렸을 때였다. 하늘에서 만들어진 무언가가 지상을 때렸고, 강력한 충격이 대지를 뒤흔들었다.

‘강하다. 확실히 대제행에 충분할 만큼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어.’

막간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것이 사실 그대로 말해 주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어서 하늘이 열리며, 그곳에서 내려오는 거대한 얼음 칼날은 신성함마저 느끼게 해 주었다.

그 모든 장면을 전 병력이 숨을 죽이고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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