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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즉위식 날 균열을 만났다-70화 (70/100)

70

버마 대륙의 중부를 크게 가로지르는 거대 산맥 ‘우로니아’. 우로니아 산맥의 서쪽 끝자락 ‘보헤미스’ 산에 자리를 잡은 드래곤 무리 레이피드.

그들은 대륙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무리들 중 하나인 ‘방고르’ 무리의 휘하에 있는 소규모 드래곤 무리다.

성질머리가 더럽기로 소문난 드래곤이라는 종족 중 온화한 편에 속하는 드래곤들로 이루어진 무리인 레이피드. 그러나 눈앞에 닥친 위험에는 발톱을 드러냈다.

[이 교활한 놈. 본 모습을 드러내라.]

천년이 넘는 세월을 견뎌 낸 장로 하나가 처진 눈꺼풀을 치켜올리며 노기를 발산했다. 그러자 그 드래곤은 더욱 흉측한 얼굴로 변하면서 서서히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대체… 어떻게 드래곤의 마력과 마나 친화력까지 흉내 낸 것이냐.’

노기를 뿜어낸 장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 상황에 너무나 이질적인 느낌을 받았다. 보통 외모와 목소리, 냄새까지도 흉내 낼 수 있다고 하지만, 그가 품은 마력과 그 흐름, 그 마력이 가진 마나 친화력은 흉내 낼 수가 없다.

그런데 그의 눈앞에 있는 기이한 존재는 그것마저 드래곤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흉내 내고 있었다. 그에 장로는 등 비늘을 타고 오르는 소름을 느꼈다.

문제의 그 드래곤은 점점 크기가 작아지더니, 덩치가 큰 마족만 한 크기가 되어서야 작아지는 걸 멈췄다. 그리고 변화한 그 모습은 드래곤들이 보기에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그것은 이족 보행 종족처럼 두 발로 서 있었으나 꼬리가 있었고, 전체적인 피부색은 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이마에는 마족과 같이 뿔이 돋아나 있었는데, 그 생김새와 느낌은 완전히 달랐다.

2번 휘어진 독특한 모양에 아무런 무늬가 없는 뿔은 시커먼 색이었는데, 뿔이 내뿜는 기운은 어찌나 불길한지, 드래곤들을 물러서게 만들었다.

얼굴은 보통의 종족들과 다름없는 이목구비를 가졌으나, 눈동자가 없고 그 자리를 붉은 발광체가 대체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전체적인 모습이 기괴하기 짝이 없는 모습.

[자, 이게 내 본모습이다. 어떠냐. 벌레들아.]

웃는 듯 입을 쩌억 벌리고 좌중을 둘러보는 모습에 드래곤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좌중을 둘러싼 드래곤들이 그 존재 하나에 압도되어 아무런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런 그들 사이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늙은 드래곤이 외쳤다.

[모든 드래곤들은 들어라! 지금 즉시 이곳을 벗어나 동쪽으로 이동해라……! 당장 이…….]

늙은 드래곤의 목소리가 끊겼고, 머리가 사라진 드래곤 하나가 쓰러졌다. 그에 어떤 드래곤은 혼비백산하여 물러났으며, 어떤 드래곤은 분노의 눈으로 검은 뿔을 가진 놈을 노려보며 마력을 돌렸다.

그렇게 순식간에 그곳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죽기 전 외쳤던 장로의 외침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마력을 끌어올렸던 드래곤 하나가 순식간에 온몸이 동강 나며 역류한 마력이 폭발을 일으켰다. 어떤 힘을 사용했는지 파악도 할 수 없을 만큼 단시간 내에 이루어진 공격. 그에 정신이 번쩍 든 드래곤들은 그 존재와 거리를 벌리며, 무리의 대피를 도왔다.

그렇게 도망갈 시간을 벌 줄 알았던 그들에게 절망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허. 내가 도망 못 간다고 하지 않았나?]

그의 검은 뿔에서 모여진 강력한 검은 힘이 하늘로 쏘아졌고, 이윽고 그곳에선 커다란 구멍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수많은 검은 촉수들이 뻗어 나왔고, 처음 보는 광경에 넋을 놓고 있던 드래곤들의 몸을 꿰뚫기 시작했다.

그 검은 촉수에 꿰뚫린 드래곤들은 그 힘과 영혼을 빨리며 죽어 갔고, 레이피드 무리는 순식간에 한 마리도 남지 않게 되었다.

“좋은 양분이었다.”

녀석의 말과 함께 촉수들이 다시 검은 구멍 안으로 들어갔고, 검은 구멍은 사라졌다.

* * *

대륙의 서쪽으로 향하는 와중. 왜 굳이 고고도 비행을 하는지 들을 수 있었다. 마치 우리가 타국 영공을 무단으로 침범할 수 없듯, 드래곤들도 다른 무리의 영역을 비행하려면 지나가면서 보고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고고도 비행으로 그들의 시선을 피해 비행하는 것이었다. 내 말이 사실이라면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이고, 대륙 전체가 위험에 빠진 것이 되니 최대한 빨리 확인해 보고 싶다고 했다.

나 또한 빨리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은 마찬가지. 그렇게 꼬박 하루를 날았다.

계속 비행을 하는 드래곤도 힘들긴 매한가지겠지만, 드래곤의 등에 타서 꼬박 하루를 날아가는 것도 쉽진 않았다. 하여 나는 심신을 안정시키고 컨디션을 끌어올리기 위해 계속 마나 수련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검은 드래곤 퓨리스의 목소리가 내 수련을 깨웠다.

[뭔가 보인다.]

눈을 뜨자 멀리 새까만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비행하는 고도보다 아래였다. 처음보다 많아진 구름이었지만, 그 사이사이로 볼 수는 있었다.

꽤나 먼 거리. 공중과 지상을 새까맣게 수놓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이 어느 정도 지점이지?]

[대륙의 중부. 양옆에 보이는 것이 대륙의 중부에서 갈라지는 산맥 줄기다.]

[그럼 놈들이 벌써 중부까지 진출했다는 얘기군.]

[저것들이 그것들이 맞나? 네가 봤던…….]

[어. 확실하다. 날아다니는 놈들은 처음 보지만, 확실히 저놈들이 맞다. 너도 느껴지지? 지상에서 올라오는 불길한 기운. 놈들은 전신에서 이 불길한 기운을 뿜어내. 숫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지.]

초반에 내가 검은 괴수들에 대한 얘기를 해 주었다. 그들의 특징과 그들이 쓰는 힘에 대해서. 내가 아는 것을 전부 얘기했다.

[하강한다.]

이번에는 내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 말과 함께 빠르게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어차피 내가 떨어지지 않을 거란 것을 알았는지, 엄청난 속도로 하강했다.

그리고 구름 밑으로 내려오자 더욱 확실하게 보였다. 멀리 하늘을 새까맣게 수놓은 것들. 지상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것들.

[저긴 어디지?]

[대륙 중부에서 산맥이 갈라지는 지점이라면… 아마 하프엘프라는 종족이 구축한 왕국일 거다.]

[호오…….]

하프엘프. 역시나 버마 대륙은 너무나 많은 종족들이 있어 내 호기심을 자극한다.

[놈들 틈바구니에 파고들지 말고, 근처에 착지해 일단 상황을 살핀다. 어떻게 싸우던 저것들은 오늘 이 라인을 넘지 못할 거니까. 생존자들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으면 그들을 구출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드래곤 열 마리와 내 뒤를 따라온 셋에게 모두 얘기했고, 우리는 더욱 속도를 높여 금세 근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도시 외곽에서 좀 떨어진 곳. 작은 마을이 형성된 곳이었는데, 그곳도 이미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도망쳐 나오는 하프엘프들이 수도 없이 많았고, 그를 쫓는 검은 것들이 보였다. 보자마자 드래곤들은 그것들을 찢어발기기 시작했고, 알리의 마법이 그것들을 정밀 타격하기 시작했다.

스레인은 검을 소환하여 괴수들을 소멸시키기 시작했고, 로아이스 또한 들고 온 검을 빼 들었다.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아 금방 소멸시켰고, 도망치는 하프엘프 중에 그래도 정신이 있는 자들이 드래곤들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고맙다는 얘기보다는 도망치라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도망은. 저것들은 오늘 이 도시에서 모두 소멸될 것이다. 걱정하지 말고 하프엘프들을 규합해서 스스로의 몸을 지키도록 해.”

내 말을 들은 하프엘프는 당황스러운 얼굴을 하더니, 드래곤을 쳐다봤다. 그의 눈에는 내가 드래곤보다 힘이 없어 보였을 것이다.

[가자. 쓸어버리러.]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했다.

[가는 길에 한 마리도 놓치지 말고 검은 것들을 모조리 소멸시켜. 나는 먼저 가서 1차적으로 정리해 놓을 테니까.]

그 말과 동시에 공간이동 마법으로 도시 쪽으로 이동했다. 도시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기에 한달음에 도시의 초입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예쁜 건축물이로군.

건물들의 건축 양식이 굉장히 예술성이 돋보였다. 하프엘프들의 손재주가 그만큼 뛰어나다는 것이겠지. 순간 내게 뛰어드는 검은 것들을 마나를 이용해 상승기류를 만들어 저 하늘 높이 날려 버렸다. 그리고는 마력을 끌어올리며 고리 열두 개를 공명시켰다.

규모로만 봐도 콩이 이끄는 것보다 많았고, 검은 괴수들 하나하나가 품은 힘으로 볼 때 질은 그놈이 부리는 것들보다 높아 보였다.

평가는 그만두고 공중으로 치솟았다. 꼬리는 길쭉하고, 날개 달린 기괴한 놈들이 허공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어떤 놈은 하프엘프를 발로 쥔 채 주둥이로 뜯고 있는 놈도 있었고, 어떤 놈은 날 보자마자 돌진해 왔다. 그러나 놈들은 내가 전개한 실드에 가로막혀 접근할 수 없었다.

일대 공중을 수놓은 수많은 괴수들. 그 사이사이에 마나 구체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셀 수 없는 마나 구체들이 만들어졌고, 이내 폭발을 일으켰다.

환한 빛과 함께 강렬한 폭발이 일대 상공을 뒤덮었다. 빛이 사라지자 놈들의 잔해들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고, 이내 그것들은 다시금 모여들어 재생을 시작하려 했다. 그러나 다시 만들어진 마나 구체들이 또다시 폭발을 일으켰고, 두 번 정도 반복하자 아예 소멸해 버렸다.

“이야. 너 좀 한다. 그 날개 달린 커다란 벌레들보단 나은데?”

어느새 내 뒤에서 놈이 나타났다. 그 목소리를 들은 순간. 촉이 왔다. 이놈이 우두머리라고. 놈에게서 흘러나오는 힘도 콩의 것보다 훨씬 질이 좋았다.

콩이 겉만 번지르르하다면, 이놈은 깊이가 있는 느낌이었다.

“넌 그놈보다 더 못생겼구나.”

인간의 얼굴을 하고는 있었으나 눈알 대신에 붉은 빛을 발하는 무언가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고, 머리에는 마족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기괴하게 뒤틀린 검은 뿔이 자리하고 있었다.

저게 힘의 원천인가?

뿔에서 놈들이 내뿜는 기운이 강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날개는 없고 팔다리는 제대로 붙어 있는데, 모양은 용의 것과 흡사했다. 그렇지만 비늘은 없었고, 피부는 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그놈이라니. 누굴 말하는 건지 모르겠군.”

키득거리는 놈의 면전에 물었다.

“넌 무슨 권능을 사용하는지 볼까?”

히죽거리던 놈의 얼굴이 조금 굳었다.

“호… 너. 십이사신을 만난 거냐?”

“십이사신?”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그래. 바르 님께 권능을 받은 자들.”

“아, 맞아. 그 권능인지 뭔지 거슬리는 기술을 쓰는 놈을 만났지.”

놈은 나를 아래위로 훑으며 말했다.

“네가 멀쩡한 것을 보니… 놈이 골로 갔나 보군?”

“콩이라고 하는 놈인데…….”

놈은 또 키득거렸다.

“그럴 줄 알았다. 그놈은 그럴 만하지. 빈자리를 그저 채우는 용으로 있었던 놈이니까 말이야.”

“빈자리? 누가 죽었나 보지?”

“그럼~ 그때 얼마나 많이 죽어 나갔는데.”

“그때?”

녀석은 신나게 얘기하다 멈췄다.

“뭘 그렇게 캐묻고 싶은 거지?”

또 히죽거리는 상판이 영 재수가 없었다.

“니들이 어디서 뭘 하고 돌아다녔는지 궁금해서 말이야. 너희들같이 약해빠진 것들이 온갖…….”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놈이 뻗은 주먹이 실드에 막혔다. 주먹이 막힌 놈은 애써 태연한 척 웃었다.

“호… 폼은 아닌 모양이군?”

“사람이 말을 하면 끝까지 듣는 거란다. 그리고…….”

주먹을 뒤로 당기자 일대의 마나가 폭풍처럼 빨려 들어왔다. 엄청난 압력이 놈의 움직임을 잠시 봉했고, 그 틈을 타고 내 빛과 같은 주먹이 놈의 명치를 강타했다.

“주먹은 이렇게 쓰는 거야. 애송아.”

놈은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서는 도시 바깥 멀리 추락했다.

“…죽은 건 아니겠지?”

좀 세게 때리긴 했는데, 그렇다고 저렇게 날아가다니. 나는 막을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생각보다 약한 놈인가?

분명 놈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굉장히 강력했다. 콩의 것처럼 허접한 힘이 아니었다. 꽤나 단련되어 단단해진 힘이었다.

그런 내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멀리 놈이 솟아오르더니, 검은 흔적을 남기며 순식간에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이전과는 다른 악의와 살의가 담긴 공격이 들어왔다.

“너… 정말 꽤 하는구나……!”

녀석의 얼굴은 이전의 콩의 그것과 같이 광기에 사로잡혀 있었고, 놈이 뻗은 손톱에는 진한 검은 기운이 맺혀 있었다. 역시나 예상처럼 놈의 손톱은 내 실드를 뚫고 들어왔고, 타이밍 맞춰 뻗은 내 손에 손목을 잡혔다.

“어. 내가 좀 해.”

놈의 얼굴이 굳었다. 그 순간 다시 내 주먹이 놈의 명치를 때렸다. 강력한 폭발과 함께 또다시 멀리 날아갔고, 이번에는 나도 놈을 쫓았다.

날아가는 놈의 위로 이동한 내가 다시 한 방을 때리려는 순간. 놈의 뿔이 강력한 광선을 쏘아 냈고, 그것을 피하느라 공격할 타이밍을 놓쳤다.

다시 한 방 먹이기 위해 주먹을 뒤로 뺐고, 주먹에 마나가 회오리치며 모여들었지만 뻗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등 뒤에서 느껴지는 소름 돋는 느낌 때문이었다.

심지어 그것은 느껴 본 적이 있는 것이었다. 바로…….

바르……!

등 뒤로 돌자 커다란 구멍이 보였고, 그 안에서 바르 녀석의 소름 돋는 느낌이 전해져 왔다.

“하하하! 받아라, 바르 님의 은총을……!”

검은 구멍 안에서 수많은 촉수가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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