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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대제. 마계에서 가장 강한 자들이 오를 수 있는 자리. 강자숭상의 율법에 따라 강자들을 추앙하는 문화의 대표적인 표본이라 할 수 있다.
과거 계속 강함을 추구하던 마계는, 대륙에서 가장 강한 자를 뽑아 육황이라는 자리를 만들었고, 마계 72개 대륙을 통틀어 가장 강한 자를 선발하여 칠대제라는 자리를 만들었다.
칠대제가 되기 위해서는 72개의 대륙을 전부 돌며 모든 육황들을 꺾어야 한다. 대륙에서 가장 강한 자들을 모두 꺾고, 마계에서 가장 강한 자가 된 그들을 위해, 모든 대륙들이 힘을 모아 천공섬 그라가레라는 곳을 만들어 냈다.
하늘을 떠다니는 섬인 그라가레는, 마계의 모든 마법 기술과 과학 기술을 집약해서 만든, 마계에서 가장 완벽한 장소로 꼽힌다.
대제행을 마치고 칠대제에 오르면, 그라가레에서 100년을 거주할 자격이 주어진다. 그곳에 거주하는 동안 수련을 통해 격을 높여 신격체가 된다면, 초차원 마신계로 들어갈 자격이 주어지고, 신격체가 되지 못한 이들은 다시 지상으로 내려오게 된다.
보통은 그라가레가 너무나 완벽한 낙원이기에, 그곳에 처박혀서 호의호식할 줄 알지만, 실상은 다르다.
완벽한 낙원, 천공섬 그라가레에 질린 칠대제들은 지상으로 내려와 여행을 하거나 일탈을 즐기는 이들도 꽤 있다.
지금 버마 대륙에 친우를 만나러 온 바라멜리아도 마찬가지다. 그는 그라가레에 처박혀 있는 것보다 대륙을 돌아다니는 것을 더 좋아하는 타입. 그래서 항상 여행을 즐기며 산다.
신시우의 시선이 바라멜리아에게 닿았다.
“네가 칠대제라고?”
“어. 그라가레에서 널 찾느라 마계 전체를 다 뒤지고 있다. 아마 칠대제의 자리에 다시 오르고 싶다면, 제대로 설명해야 할 거야. 네가 어딜 다녀왔는지. 어떻게 된 일인지.”
“그건 나중에 생각할 문제고. 지금 그라가레에서는 마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고 있나?”
“무슨 말이지?”
“오늘 네가 봤던 검은 군대. 그것들이 전 마계를 침공 중에 있다. 그리고 악신이 강림을 준비 중이지.”
바라멜리아는 문득 검은 구멍 너머의 존재가 떠올랐다.
“악신이라면… 혹시 오늘 하늘에 열렸던 검은 구멍 너머에 있는 존재인가?”
“맞아. 놈은 신격체다. 칠대제 모두가 덤벼도 이긴다는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격이 높은 존재야. 만일 그놈이 마계에 강림하게 된다면, 마신계를 열어야 돼.”
“흠…….”
바라멜리아도 그 존재가 어느 정도인지 느꼈기에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냥 대충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그라가레에 올라가 봐야겠군. 나는 지금 오랜 여행 중이라 마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잘 몰라. 올라가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이후 연락할 일이 있으면 아킬라 대륙으로 연락하면 돼. 그쪽으로 갈 거니까. ”
바라멜리아는 꼭 연락하겠노라고 말하고는 먼저 자리를 떴다.
[레이라크. 아킬라 대륙과 통신해야 돼. 안내해 줘.]
[알았다.]
[그리고… 남아 있는 검은 군대를 빨리 소탕하는 게 좋아. 그놈들은 죽음을 먹고 성장하기 때문에 내버려 두면 계속 그 덩치가 커질 거거든.]
[알았다. 얘기해 두도록 하지.]
신시우는 검은 것들의 특성에 대한 부분도 세세하게 전해 줬고, 레이라크는 무리의 다른 드래곤들을 불러 검은 군대 소탕 작전을 지시했다. 그러고는 폴리모프를 풀고 비행을 준비했다.
[가능하면 공간이동 마법으로 가자.]
비행의 답답함으로 속이 검게 탄 신시우의 가시돋인 말에 레이라크는 다시 폴리모프를 해야 했다.
* * *
입구가 커다란 거대한 석조 건물. 인간의 것이라면 필요한 것들이 많았겠지만, 드래곤들의 건물이라 그저 거대하고 아름다울 뿐. 기능성은 없었다.
건물 안은 거대한 복도가 쭉 이어져 있었는데, 그 끝에 거대한 기계가 하나 버티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대륙 간 마법 통신 기기. 지구 출신인 내가 보면 정말 무슨 진공관 컴퓨터 애니악을 보는 것같이 답이 없어 보이지만, 마계에선 굉장히 중요한 물건이다.
전기 통신이 발달하지 않은 마계는 대륙과 대륙 간에 통신을 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과제다. 마법이라는 것이 만능인 것 같지만, 통신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저 기계는 혁명적인 물건이다.
통신기기 앞에 선 레이라크는 고개를 들어 기계를 훑어봤다.
[이건 꽤 방치되어 있던 기계다. 제대로 작동할지는 나도 몰라. 만일 안 되면, 서부로 가야 한다.]
[그래. 노력해 줘서 고맙다.]
그는 본격적으로 마법을 전개해 기계를 깨우기 시작했다. 마법에 반응한 기계가 빛을 뿜으며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레이라크가 여러 대륙 중 통신할 대륙을 찾으면서 대륙 간 통신이 시작됐다.
레이라크가 마법의 힘이 감긴 손을 휘둘러 나를 가리키자, 기계에서 나온 빛이 나를 내리쬐었고, 통신이 시작됐다.
마법 통신은 화상 통신으로, 잠시 기다리자 눈앞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남자는 회색 피부의 중상층 마족이었는데, 표정이 묘한 느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목소리는 다급함이 묻어 있었다.
“아킬라 대륙의 ‘불룹’입니다. 어디의 누구십니까?”
“아킬라 대륙의 전 육황. 신시우다. 아킬라 대륙은 괜찮은가?”
불룹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게… 정말이십니까?”
“그래. 그쪽 상황은 어때?”
“심각한 상황입니다. 인근 대륙에서 온 지원군들도 연패를 이어 가고 있고, 곳곳에 생긴 검은 회오리가 대륙을 잠식하고 있습니다.”
“잠식……?”
처음 들어보는 얘기였다. 칼란에서도 그렇고, 이곳에서도 보지 못했으니까.
“예. 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검은 회오리가 대륙을 잠식한다고 들었습니다.”
“대륙의 상태 보고를 지금 받을 수 있나?”
“정확하게 설명해 드릴 순 없을 것 같습니다만, 대충이라도 말씀드리자면 국이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여 멸망을 코앞에 두고 있다고 들었고, 남부 혈맹도 와해되기 직전이라 합니다. 아마 이곳도 며칠 내에 놈들의 손에 파괴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근처까지 왔다고 들었으니까요.”
상황이 너무나 심각했다. 아킬라 대륙을 지탱하는 3개의 세력이 동부의 제국, 남부의 ‘반타’ 혈맹, 서부의 ‘캉구르 연합’. 그중 두 개가 이미 끝났다는 얘기였다.
“지금 당장 가마. 그곳이 어디냐?”
심장이 벌렁거렸다. 내가 다스리던 대륙이기에, 내가 다시 태어났던 대륙이기에 고향이 멸망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게다가 그녀를 떠올리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겐디아 산맥의 서쪽 자락 협곡 안에 있습니다.”
“알았다. 최대한 숨어 있어라. 내 당장 구하러 갈 테니까.”
“와 주시면 감사하지만, 저보다 다른 곳을 더 신경 써 주십시오. 여긴 죽는다 해도 저밖에 없습니다.”
“힘까지 감출 수 있는 아티팩트가 있다면 쓰도록 해. 놈들은 힘의 냄새를 맡는다.”
“예. 알겠습니다.”
레이라크에게 통신을 그만하겠다는 신호를 주자 대륙 간 통신이 끝이 났다.
[대륙 간 이동소로 빨리 가야 해. 아킬라 대륙으로 가야 된다.]
[알았다. 데려다주지.]
[고맙다. 언젠가 반드시 이 사례를 하마.]
내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들을 위해 노력한 그를 생각하면 원하는 것은 뭐든 들어줄 수 있었다.
[됐다. 버마 대륙을 위해 힘써 줬으니, 나도 보답을 하는 것뿐이야.]
[고맙다.]
이런 난국에 어딜 가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겠는가? 고맙다는 말은 몇 번이나 해도 모자랐다.
“아킬라 대륙으로 간다.”
셋은 이동에 모두 동의했고, 레이라크의 공간 마법으로 대륙 간 이동소로 향했다.
* * *
아킬라 대륙의 서부. 캉구르 연합에 속한 열두 왕국 중 하나인 ‘세르넬’.
캉구르 연합 중 가장 동쪽에 위치하여, 중앙에서부터 몰려온 악마의 군대를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곳이다. 하여 연합은 이곳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방어선 구축 이틀째. 을씨년스러운 바람만이 평원을 가로지르던 때. 마법 수정구가 빛을 내기 시작했다. 척후병이 보내온 신호였다.
“전군 전투 준비 시켜.”
동쪽의 제국과 남부의 혈맹이 괴멸적인 타격을 입었다는 것을 들은 그들은 엄청난 중압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한 방 먹여 보자고…….”
연합에서 가장 명망 있는 마법사인 헬로지아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긴장감을 털어 냈다. 마흔이 채 되지 않은 나이에 대마법사의 반열에 올라선 천재 중의 천재. 그가 최전선에 섰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굉장한 인재들이 최전선에 나섰다. 어차피 밀리고 밀리면 끝나 버릴 연합의 영토. 최전선에서 막아 내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대지가 떨려오기 시작했다. 평원의 저 끝에서 그것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늘과 땅 모두를 새까맣게 물들이며 몰려오는 무량대수의 대군. 거기에 우뚝 솟은 거인들은 평원 전체의 분위기를 굳게 만들어 버렸다.
“살려고 하지 마라! 오늘 우리는 모두 이곳에서 죽는다! 뒤에 있을 가족들을 생각해라! 우린 오늘 그들을 구하고, 적들과 함께 지옥으로 뛰어들 것이다! 연합 최강의 군대여, 두려움을 떨쳐 내라! 오늘 우리는 승리한다!”
사령관의 외침에 두려움에 떨던 병력들이 점차 두려움을 떨쳐 내고 눈빛을 빛내고, 무기를 더욱 꽉 쥐었다.
“발리스타 사격 개시!”
뒤에 준비된 거대한 공병기가 화염을 뿜으며 거대한 화살을 쏘아 냈다. 화염 마법이 걸린 거대한 화살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끝없이 날아가 적군의 선봉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마법 준비!”
발리스타가 사격을 개시하고, 마법사들이 지원을 시작했다. 무수한 마법진이 방어선의 상공을 수놓았고, 각종 공격 마법들이 하늘을 날았다.
그와 동시에 전장의 지형을 바꿔 버리기 시작했고, 여러 가지 강화, 보조 마법들이 전 병력을 강화했다.
가까이 다가오니 거대한 괴수들이 굉장히 많았다. 그에 한껏 긴장감이 높아졌고, 긴장감이 최고치에 다다랐을 때 두 군대는 충돌했다.
기사들의 검이 현란하게 춤을 추며 검은 괴수들을 베어 넘겼고, 마찬가지로 갑주를 입은 듯한 생김새의 인간형 검은 괴수들이 검은 잔상을 허공에 남기며 연합군 병력을 도륙했다.
어느 순간 일대를 거대한 지진이 강타했고,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것이 땅을 뚫고 튀어나왔다. 새카맣고 거대한 뱀들이 연합군의 전장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다니기 시작했고, 그렇지 않아도 수적으로 열세였던 연합군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헉… 헉…….”
연합군의 사령관이 검을 늘어트리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끝도 없이 죽였건만 아직도 남아 있는 검은 괴수들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이러다간 우리가 필패한다.’
공성 병기까지 동원해 피해를 입히고 들어갔는데 밀리고 있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연합군 사령관으로선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었다.
‘우두머리 놈을 찾아야 한다.’
연합군 사령관은 눈에 불을 켜고 상대의 우두머리를 찾으려 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봐도 우두머리로 보이는 존재는 없었다.
‘대체… 어디에 있는 거냐……!’
그렇게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그들의 머리 위로 마법이 펼쳐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