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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즉위식 날 균열을 만났다-77화 (7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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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도착한 셋이 합세하자 검은 군대는 금세 정리되었다. 물론 내가 거의 다 소멸시켰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불룹을 찾아갔다.

“어때. 통신이 돼?”

“안 됩니다.”

“이런 사태가 벌어졌으면 그라가레부터 찾아야지. 연락은 안 해 봤어?”

“아뇨. 저도 해 보긴 해 봤습니다만, 통신이 되질 않았습니다.”

“뭐하는 거야 이 새끼들은.”

천공섬 그라가레. 대체 그곳은 뭘 하는 곳일까? 강해서 그런 대접을 받고 있으면 이런 위기에 밥값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러게 말입니다.”

“일단 나는 서쪽으로 가 봐야겠어. 제국은 궤멸되었다고 했나?”

“궤멸 직전이라 들었습니다. 아마… 꽤 되었으니까 지금쯤 무너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늦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살릴 수 있는 놈들을 살릴 수밖에. 그리고… 대륙 중앙에서 서쪽까지 뻗은 산맥 ‘발라드’. 캉구르 연합 쪽에 가까운 그곳에 마를레나가 있다.

부디 무탈히 있었으면 좋겠지만, 예감이 좋지 않았다.

“앞으로도 쭉 이곳을 사수해 주길 바란다. 만약에 그라가레에서 연락이 와서 날 찾으면, 서쪽 캉구르 연합 쪽으로 갔다고 알려 줘.”

“예.”

우리는 다시 산맥을 빠져나가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빠르게 달리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데리고 공간이동 마법으로 이동했다.

워낙 넓은 대륙이라 남부에서 서부로 이동하는 데에 꽤 시간이 걸리기에 빠른 이동이 필요했다.

무리를 해서라도 빨리 가야 한다.

그렇게 이동하며 한번 검은 군대를 마주했고, 모두 소멸시킨 뒤 다시 움직였다. 해가 넘어가고 다시 아침이 될 무렵. 서부라는 것을 말해 주는 깃발이 널브러진 도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충격적인 것은 이곳에 오면서 단 하나의 멀쩡한 도시나 마을을 본 적이 없다는 것. 어금니가 절로 꽉 물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곳부터가 캉구르 연합이야.”

너덜거리는 캉구르 연합의 깃발이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다시 전속력으로 간다.”

제국도 무너지고, 남부도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은 상태. 그나마 남은 게 캉구르 연합이라 들었는데, 이렇게 박살 난 도시를 보니 마음이 더욱 급해졌다.

마를레나가 있는 산맥 발라드에도 당장 가고 싶은 욕구가 샘솟는 것을 겨우 억누르며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동하면 할수록 날씨가 안 좋아지더니, 이내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대한 흔적이 남은 전장에 도착하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엄청난 전투가 벌어진 것 같은데요……?”

커다란 평원에 온통 푹푹 파이고, 멀리 도시까지 일직선으로 쭉 파인 자국도 있었다.

대체 뭘 하면서 싸운 거야……?

보아하니 저 기다란 자국은 도시 쪽으로 들어가려는 검은 군대 쪽 같았다. 그리고 그 자국을 낸 것은 필시 우두머리. 십이사신일 걸로 짐작이 됐다.

“가자.”

도시 쪽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것을 보니, 이미 도시까지 밀린 모양이었다. 빗속을 뚫고 우리는 도시로 들어갔다. 곳곳에 오래되지 않은 시체들이 즐비했다. 그리고 우린 그곳에서 한 명의 생존자를 볼 수 있었다.

“또 그놈이다.”

기억 속에 그놈이 있었다. 또 공포를 전하라고 살려 놓은 것이었다.

전장에서 벌어진 전투의 규모로 볼 때 굉장히 큰 규모의 전투였던 것 같은데, 그러면 최후의 방어선이 무너진 것인가?

도시에 병사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시체들이 많았다. 그러나 살아남은 한 명의 생존자는 일반 시민이었다.

대피한 건가?

일단, 시체들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놈들은 멀리 가지 못했을 것이었다.

도시 너머에 보이는 산맥의 골짜기를 바라봤다. 금방 휘어져서 그 속 내부를 볼 수가 없었지만, 놈들이 그곳으로 들어갔다는 증거가 그곳에 있었다.

놈들이 지나간 자리는 휑했다.

“산맥 안쪽으로 들어가자.”

비바람이 거세지기 시작했고, 우리는 제정신이 아닌 생존자를 건물 안쪽에 넣어 둔 채 빠르게 산맥 안쪽으로 향했다.

제발. 놈들의 손에 전멸하지만 말아라.

정황상 도시 사람들은 대부분 먼저 대피했고, 평원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이후 패배한 캉구르군은 후퇴하며 전투를 벌였고, 놈들은 그들을 뒤쫓았다.

신경 쓰이는 것은, 땅을 훑고 지나간 거대한 원형의 무언가였다. 그 자국은 이전의 버마 대륙에서 보았던 거대한 용이나 뱀이 지나간 흔적과는 달랐다. 무언가를 쏘아 냈을 때 날 수 있는 자국이었다.

너비가 성인 넷이 누워도 다 못 채울 만큼 큰데다가, 평원에서 도시까지 깔끔하게 일직선으로 파져 있었기 때문에, 엄청난 힘을 가진 놈일 것이라 생각됐다.

“……?”

산맥 안으로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 어디선가 느껴본 듯한 감각에 멈춰 섰다. 산맥 전체의 마나가 누군가의 의지대로 만들어진 어떤 흐름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마나에서 전해지는 외침이 내 가슴을 찔렀다. 나는 고개를 홱 돌려 알리를 쳐다봤다. 그 또한 마나를 다루는 자이기에, 분명히 느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역시나 그 절박함에 동요되어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빨리… 가야 할 것 같습니다……!”

고개를 끄덕였고, 정확하게 무슨 일인지 모르는 스레인과 로아이스는 우리를 따랐다.

* * *

쿠르르릉-!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번개가 일대를 훑고 지나가며 경계선을 만들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온도에 녹아 버린 검은 군대. 그들은 다시금 형상을 만들어 내며, 조금 더 작은 크기로 부활했다.

그리고 그들의 머리 위에 또다시 번개가 내리쳤다.

“하아… 하아…….”

마를레나는 마치 다른 어떤 것을 보고 있는 듯, 푸른빛을 흘리는 눈으로 앞을 쳐다보며, 두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곳을 한 번에 신경을 쓰다 보니 점점 한계에 부딪히고 있었다.

“이야… 대단한걸?”

전투를 벌이고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높은 나무 위. 로브의 후드를 깊게 눌러쓴 남자가 나무 꼭대기 위에 앉아 멀리서 벌어지는 광경에 감탄사를 내뱉었다.

“흠…….”

남자는, 동시에 수많은 곳을 정밀타격하며 아군을 살리고 적을 멸하는, 실로 놀라운 능력으로 자신의 군대와 싸우고 있는 여자를 그 먼 곳에서 지긋이 바라봤다.

산맥의 모든 마나가 그녀를 위해 움직이고 있었고, 그 방대한 마나를 컨트롤하는 것이 신기하기는 하나, 자신과 싸우기엔 많이 부족하다 생각했다.

하여 그는 지금 고민을 하고 있었다. 저 재밌는 놀잇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마를레나 님! 피해야 합니다! 놈들이 전혀 밀리지 않아요!”

마를레나는 그 와중에도 계속해서 각종 속성 마법으로 검은 것들을 쓰러뜨리고 있었다.

‘여길… 버리라고……? 말도 안 돼. 어림도 없지! 이곳은…….’

마를레나는 오랫동안 지내 온 거대한 산맥 줄기에서 만난 동물, 영물, 식물들을 기억하며 이를 악물었다.

“살아야 후일을 기약하지요!”

“아~ 조잘조잘 말이 많은 놈이 옆에 붙어 있네?”

어느새 마를레나의 머리 위 나뭇가지 위에 나타난 로브의 남자가 손가락을 까딱했다. 그러자 마를레나를 설득하던 남자가 두 손으로 목 부위를 잡더니 공중으로 끌어올려졌다.

“너구나……! 이 악취 나는 것!”

마를레나의 음성이 강력하게 마나를 타고 산맥 전체를 쩌렁쩌렁 울렸다. 그리고 마나 폭풍이 그가 앉아 있던 나무를 산산조각 내 버렸다.

“오호… 한 성깔 하는데?”

어느새 그녀의 앞에 나타난 남자는 고개를 양옆으로 까딱거렸는데, 그 와중에 다시 한번 불어친 마나 폭풍을 아무렇지 않게 흩어 버렸다. 아니, 저절로 움직인 검은 힘이 마나 폭풍을 흩어 버렸다고 하는 게 맞았다.

마를레나의 얼굴이 이전에 볼 수 없던 혐오감이 서리며, 그녀의 강한 의지에 마나들이 진동했다. 그리고 이내 수많은 마나들이 꽃잎의 형상을 만들어 냈고, 산맥에는 꽃비가 내리는 듯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한 곳을 향해 흐르기 시작했다.

샤아아아-

“너같이 추악하고 더러운 것에게는 과분한 것이지만, 이것으로 네놈을 정화시키겠다.”

짙은 분노가 가득 담긴 언령에, 마나의 기류를 타고 흐르던 수없이 많은 꽃잎들이 일제히 로브의 남자를 향해 방향을 틀어 마구잡이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수없이 많은 꽃잎들이 그에게 빠른 속도로 날아갔고, 계속해서 그의 곁을 돌며 공격을 가했다. 그야말로 꽃잎 폭풍에 휩싸인 듯한 광경.

아름다워 보이지만 그것은 가장 잔인한 공격이었다. 꽃잎 하나하나가 강철도 쉽게 자를 만큼 강화된 마나였기에, 저 꽃잎에 휩싸인다는 것은 가루가 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세졌군.’

강한 의지가 투영된 공격은, 그의 안개 같은 검은빛의 실드를 매섭게 두드렸다. 그리고 점점 그 실드를 갉아먹어 들어가고 있었다.

“자…….”

남자가 손가락을 튕기자, 그에게서 뿜어진 검은 연기 같은 것이 순식간에 퍼지더니 일대를 잠식해 버렸다. 꽃잎은 어디로 갔는지 검은 연기 속에선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마를레나는 충격에 빠진 눈으로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내 싸움터…….”

말을 하던 그의 눈이 번뜩 뜨였고,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불청객이 또 등장하시네.’

산맥 줄기를 따라 빠른 속도로 접근해 오고 있는 존재가 느껴졌다. 그냥 느끼기에도 범상치 않은 힘이 느껴졌다. 게다가 멀리서도 느껴지는 강력한 분노와 살심에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꼈다.

“하… 내가 위협을 느껴?”

너무나 오랜만에 느끼는 위협감. 십이사신들 중에서도 서열 5위를 차지하고 있는 그는, 바르에게 총애를 받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그의 자존감은 하늘을 찌를 듯했는데, 그런 그에게 오랜만에 위기감을 안겨 준 존재에게 강한 흥미를 느낀 그는 놀잇감을 정리하려 손가락을 까딱했다.

그러나 그의 놀잇감은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강하게 뭉쳐진 마나가 그의 공격을 막아 내고 있었다.

“쉽지 않다 이거지?”

그는 직접 숨통을 끊기 위해 자리를 박찼다. 그리고 검은 힘이 휘감긴 오른손으로 그녀의 가슴을 뚫어 버리려 가던 그 순간. 그는 급히 몸을 돌리며 손을 회수했고, 그의 팔이 있던 자리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이런 시팔 새끼가. 어디서 더러운 손을 함부로 놀려.”

잔뜩 화가 난 백발의 남자가 그곳에 서 있었다.

* * *

순식간에 마나가 전신을 최대치로 가속시켰고, 최고 강도로 강화를 마쳤다. 그리고 땅을 박찼다.

공간 이동 마법이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달렸다. 마를레나의 절박한 외침. 분노와 슬픔에 가득 찬 그녀의 울림에 이성을 잃어버렸다. 그렇게 순식간에 달린 나는, 멀리 커다란 두 힘의 충돌을 느낄 수 있었다.

아주 불길하고 더러운 기운이 분명 십이사신이었고, 청량한 기운은 마를레나의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마를레다가 공격을 받았는지 산맥의 마나 전체가 진동했다.

가까이 다가갔을 무렵 십이사신 놈의 진한 살기가 느껴졌고, 블링크 마법으로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나는, 아슬아슬하게 마를레나에게 짓쳐 드는 놈의 손모가지 위로 공격을 내지를 수 있었다.

그걸 피해?

팔이 자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찰나의 순간이었고, 놈의 속도는 방향을 틀거나 팔을 회수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놈은 피했다. 물론, 반작용이 좀 있는 것 같았지만.

“시… 시우 씨?”

언제나 내게 존대를 했던 마를레나. 그녀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리자 심장이 쿵쾅거렸다.

“멀리 떨어져서 잠시 쉬고 있어. 이놈만 정리하고 얘기하자.”

“네.”

마를레나의 떨리는 목소리. 마나로 굳이 전해지지 않아도,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가 어떤 심정인지. 뭘 말하고 싶은지.

그나저나 이놈에게서 나는 악취가 어마어마하다. 검은 뿔이나 당연하지만 콩은 이놈이 부리는 부하 정도 될까? 싶을 정도 수준이었다.

대체 얼마나 강한 놈일까.

“이야… 어마어마한 놈이 나타났구나. 네가 이 대륙의 대빵인가? 어딜 갔다가 이제 온 거야? 마무리하려던 참인데 말이야.”

무리하게 방향을 튼 탓에 몸을 추스르던 놈은, 능청스럽게 일어서서 지껄였다.

“다 지껄였냐?”

범상치 않은 놈이기에 처음부터 전력으로 갈 생각으로, 마력을 끌어올려 고리 열세 개를 공명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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