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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즉위식 날 균열을 만났다-97화 (9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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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게 펼쳐진 물의 영역을 한 점으로 축소한다고 생각하고, 마력을 끌어올렸다. 내 힘과 의지를 받은 물의 영역이 그 크기를 빠르게 줄여 나갔고, 그 가운데에 있는 동그랗고 검은 구체는, 또다시 검은 연기인지 가루인지 모를 것들을 뿜어 내며 그 크기가 더욱 줄어들었다.

물의 영역이 손바닥만 해졌을 때 그것은 그대로 소멸해 버렸고, 십이사신 서열 1위 발렉은, 허무하게 그 존재가 사라졌다.

“후…….”

그럼에도 한숨이 나오는 이유는 발밑에 보이는 도시가 완전히 파괴되기 전에 달려올 수 있었다는 안도감이었다.

마지막 남은 친구인 하마디아와 그 식솔들. 마를레나와 칼란의 전사들. 그리고 제국의 영토에서 살아남은 마지막 사람들까지. 그 모두를 잃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다시 돌아가야 할 곳이 있기에 신격화를 풀지 않은 채 지상으로 내려갔다.

“괜찮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로아이스였다.

“쿨럭. 늙은이의 허약한 몸으로 괜찮겠는가?”

씨익 웃었다.

“말하는 걸 보니 괜찮은 모양이군. 스레인은?”

“나도 멀리 처박혔다가 와서 어떻게 됐는지 모르네.”

“음…….”

둘러보니 알리가 제일 멀쩡했고, 이제 지상을 밟는 마를레나도 무사해 보였다.

“알리. 날아간 스레인 찾아서 데려와.”

“아… 예……!”

“무사해서 다행이야 마를레나.”

마를레나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번졌다. 그러곤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시우 씨도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앞으로 위협은 없을 거야. 저 얼어붙은 검은 것들만 처리하면 돼. 살아 있는 사람들부터 구하자.”

“네. 그럴게요.”

마를레나는 바로 행동을 시작했고, 나는 하마디아가 있는 본채로 향했다. 그는 엉거주춤하게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온갖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었다. 옆에 나베니아 또한 감격에 찬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우… 냐?”

“어.”

“모습이 왜 그래? 성스러워 보이게.”

진지했지만 장난기가 섞인 말이었다.

“이게 신격화라는 거다.”

“시, 신격?”

“자세한 건 말하기가 길고… 일단 캉구르 연합에 연락을 하든, 인원 총동원해서 인명구조 해야 될 것 같다. 피해가 심각할 거야.”

“제가 얘기할게요. 이야기 좀 더 나누세요.”

나베니아가 먼저 움직여 준 탓에, 하마디아와 몇 마디 더 나눌 수 있었다.

“살아서 다행이다.”

“선물 하나만 더 주지 그랬어.”

“저런 무지막지한 놈을 막는 아티팩트는 나도 없어.”

“그런 것치곤 너무 간단하게 처치하던데?”

“내가 네게 선물해 줄 때는 이런 격에 도달하지 못했었거든. 물론, 그때의 나라도 이겼겠지만 말이야.”

녀석이 피식 웃었다.

“나는 가 봐야 할 것 같다.”

그때 지반을 울리는 진동이 전해져 왔다.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네.”

“지금 마신계에서 신들이 내려와서 악신 바르와 싸우고 있어.”

“아…….”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사람들 도와주고.”

“어. 그래. 너나 걱정하지 말고 조심해. 무사히 돌아와라.”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그대로 공중으로 떠올라 왔던 길로 다시 날아갔다. 사실 내가 가서 도움이 될 만한 무언가를 할 순 없다. 그럼에도 가는 이유는 두 가지.

첫째. 신들의 전투를 보고 싶기 때문. 둘째로는 만약의 경우에 마계의 신들이 패배했을 경우 악신 바르는 나를 쫓을 것이기에 최대한 이곳에서 멀리 놈을 유인하려는 생각에서였다.

가는 동안 강력한 힘의 파동이 수도 없이 느껴졌다. 그리고 아주 멀리, 커다란 산 너머,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거대한 불바람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엄청나다.

온몸이 전율할 만큼의 강력한 힘이 뻗쳐 오는 것이 느껴졌다. 온 세상으로 뻗쳐 나가는, 발산하는 강력한 힘. 새삼스레 신의 힘에 감명을 받은 나는, 속에서부터 뭔가 울컥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속도를 더욱 높여 날아갔다.

* * *

거대하고도 강력한 화마가 드넓은 들판을 모조리 잿더미로 바꾸었고, 열기에 대지가 녹으며 용암지대로 바뀌어 갔다.

마치 지옥을 방불케 하는 풍경 속에, 여덟 개 다리를 가진 악신 바르가 우뚝 서 있었다. 그 강렬한 화마 속에서도 그 괴물의 주변만은 화마의 영향을 받고 있지 않았다.

괴물의 주변은 검은 운무가 마치 방패처럼 화마를 밀어내고 있었고, 대지도 녹아내리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게 악신 바르는, 보통의 화마와는 차원이 다른 화마와 힘 싸움을 하며 추가적으로 들어오는 공격을 방어하고 있었다.

한 방 한 방이 지형을 뒤바꿀 만큼 강한 공격. 수도 없는 주먹의 형상을 한 빛이 그에게 쏟아졌고, 주변을 녹이고 있는 거대한 화마보다 무서운 위력을 품은 보랏빛 화염이 뱀처럼 허공을 타고 그에게 짓쳐 들었다.

강력한 힘으로 뭉쳐진 바람의 탄환이 수도 없이 쏟아졌고, 금빛 낙뢰가 쇄도했다.

수없이 많은 공격을 받으며 바르는 과거 천자족과의 싸움이 떠올랐다. 그때도 이렇게 초월적인 힘을 가진 공격들이 수도 없이 들어왔고, 그는 그것을 모두 받아 내며 천자족의 신들을 모두 쓰러트렸었다.

그런데 지금은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쇠약해진 탓이었다. 2백 년 전쯤. 그가 자신의 검은 군대를 이끌고 어떤 차원을 침공했을 때. 거의 그와 대등한 격을 가진 존재와 마주쳤다.

자신을 ‘인간’이라는 종족이라고 밝힌 그 존재에게 그는 이전에 없던 끔찍한 타격을 입고, 200년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힘을 비축하며 회복기에 들어가야 했다.

그러나 수많은 죽음의 기운을 모았음에도 그는 제대로 회복할 수가 없었고,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강했다. 신격체 하나를 소멸시키는 것 정도는 손쉽게 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이곳을 침공하며, 어린 신격체가 자신의 군대를 몰살시키는 것을 보았고, 그 존재를 죽여 흡수하기 위해 내려왔다. 그러나 그가 이곳 차원에 대해서 간과한 것이 있었다.

다른 높은 신격체들이 많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그는 망각한 것이었다. 그 결과 지금의 이 상황에 이르렀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 게다가 우스운 것은, 그와 대적하고 있는 신들은 힘 조절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허무하구나.’

그는 문득 지나온 과거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감을 느꼈다. 어떻게 태어났는지도 모를 그는, 공허한 공간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배가 고플 땐 가끔 공간 밖으로 나아가 죽은 생명체들에게서 죽음을 마셨고, 그를 본 다른 생명체들의 공격에 다시 공허한 공간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렇게 수없는 세월이 흘러 그는 강대한 힘을 비축했고, 자신을 혐오하는 다른 생명체들을 죽이고 죽음의 힘을 모으게 되었다.

외로웠던 그는 죽음의 힘으로 친구를 만들어 냈고, 그것들은 밖에 나갈 때마다 자신을 지키다가 죽어 나갔다. 그에 분노한 그는 모든 것을 죽이고 그들에게서 죽음의 힘을 흡수했고, 그것을 반복하며 세월이 또 흘렀다.

그렇게 수만 년. 그의 힘은 이미 신격체를 넘어 높고 높은 곳에 도달해 있었고, 그는 신을 죽일 수 있는 힘을 지니게 되었다.

그렇게 이곳저곳 차원들을 넘어 다니며 모든 생명체들을 죽이고, 죽음의 힘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든 곳이 쉬운 곳은 아니었고, 그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는 존재들도 있었다. 그중 하나가 천자족. 그리고 인간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의 그 기나긴 세월에 종지부를 찍어 줄 만한 존재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허무하구나…….]

수없이 쏟아지는 공격들 속. 그는 마지막 울림을 남겼다. 그를 감싸고 있던 검은 운무가 뚫리며, 신들의 공격들이 쏟아져 들어왔고, 그는 무너져 내렸다.

‘이 정도 존재가 천자족을 멸망시켰다고?’

첫 공격을 하면서도 소극적인 대응에 실망하던 아덴은 계속해서 이상함을 느꼈다. 그의 예상보다 너무 약했기 때문이었다.

마계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보여 줬던 천자족. 아덴은 그들을 직접 보진 않았지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라 알고 있었다. 그들이 얼마나 강한 자들인지 그리고 얼마나 마계에 굴욕을 주었는지.

그리고 천자족들은 수많은 차원을 지배하고 있던 종족으로, 마계보다 더 오래되고, 강한 종족이라 들었다. 그런 그들을 멸망시켰다는 악신을 앞에 두고 있으니, 위화감이 들었던 것이다.

‘물어봐야겠군.’

아덴은, 천자족의 머릿속을 들여다봤다던 신시우라는 칠대제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소멸했군.]

[이런 것 때문에 이렇게 우르르 내려오다니. 쯧.]

[그러게 말이야. 나 혼자서도 충분했을 텐데. 아덴은 뭘 보고 그렇게 설레발을 친 거지?]

신들의 불만이 이곳저곳에서 나왔다.

[그것은 저기에 있는 친구에게 물어보면 될 것 같다.]

아덴은 정신 접촉으로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신시우를 불렀다. 그리고 신들 앞에 선 신시우는 자신이 본 것을 그대로 고했다.

천자족의 기억 속에 있는 악신 바르는 그 크기가 산보다 더 거대했고, 그들이 만난 바르는 그 크기와 힘이 상당히 약해져 있는 것이라고.

[흥.]

신시우는 진실을 말했고, 그 말이 진실인 것이 그들의 능력을 통해 입증이 되었음에도 콧방귀를 뀌는 신들이 있었다.

그들은 심사가 뒤틀려 있어, 뭐라도 티끌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일부 신들의 만류로 심술을 부리는 데에 실패한 그들은, 먼저 마신계로 돌아가 버렸고, 남은 것은 아덴과 빛의 신 곤데아였다.

그래도 자신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는 두 신에게, 신시우가 질문했다.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무엇이든.]

빛의 신 곤데아가 대답했다.

[악신 바르와 싸울 때 왜 더 큰 힘으로 끝내지 않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신격의 힘을 말하는 것이로구나.]

[예.]

신시우가 대답하자마자 아덴이 버럭 화를 냈다.

[네놈은 아킬라 대륙이 두 쪽 나는 것을 보고 싶은 것이냐?]

[저자의 말이 맞다. 함부로 힘을 썼다가는 이 대륙이 분해될 것이다. 신이 가진 초월력이란 그런 것이다. 저 녀석이 다혈질이라 버럭하는 것은 이해하거라.]

곤데아는 굉장히 인자하면서도 부드러운 어투로 얘기했다.

[예. 전 괜찮습니다.]

[뭐, 그래도 마계를 살리기 위해 이리저리 분주하게 쏘다니느라 고생했다.]

자신이 버럭 화낸 것이 미안했는지 아덴은 칭찬을 했고.

[이김에 너도 마신계로 넘어오거라. 자격은 충분한 것 같으니.]

곤데아는 그에게 마신계로 같이 갈 것을 권유했다.

[아직 제겐 과분합니다. 이곳에서 할 일도 있고, 당분간은 이곳에 머물러야 할 것 같습니다.]

거절당한 곤데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때가 되면 ‘판시’에게 얘기해서 마신계로 향하는 문을 열라 하거라. 그러면 올 수 있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가지.]

곤데아가 아덴을 쳐다봤다.

[그래. 이제 돌아가야지. 신시우. 이름을 기억하고 있으마.]

[영광입니다.]

[신들이 마계를 복구하는 데에 있어서 큰 힘이 되어 줄 것이다. 신관들은 신전을 통한 소통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야.]

[예.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그래. 다음에 보자꾸나.]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돌아섰고, 곤데아와 함께 마신계의 문을 열고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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