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 남편과의 이혼을 거부합니다 (23)화 (23/107)

제23화

바야흐로 공존과 대립의 시간이었다. 한사코 집에 가겠단 나와 달리, 에드먼드는 기어코 서점에 발을 들였다.

“수준에 맞는 거로 골라 보지.”

시야에는 [우리 아기 첫 글자], [쉬운 낱말 배우기], [처음 시작하는 라비스텔어 1단계] 등등. 꼬마들이 볼 법한 아기자기한 글자 책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정말이지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흠, 이 책은 처음치곤 조금 어렵겠군.”

머뭇거리는 나와 달리 에드먼드는 제법 적극적으로 서책을 살폈다. 그사이 종업원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어머, 랜돌프 공작 부부 아니세요? 혹시 찾으시는 거라도.”

“아…… 그냥 좀 이것저것 보고 있어요.”

괜한 민망함에 나는 대답을 얼버무렸다. 그런 나와 달리 에드먼드는 의욕이 넘쳤다. 뭐가 저리 진심인 건지, 들려온 목소리에 에드먼드는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책에 집중했다.

“사용인 중에 어린아이가 있는 모양이네요. 아이들이 볼 법한 책을 보고 계시는 걸 보니. 혹, 누가 글을 배우나요?”

물음과 동시에 화르르, 얼굴이 타올랐다. 온 천하에 치부를 들킨 것 같아 더 그랬다.

“하하, 네…… 뭐.”

어색하게 웃으며 대화를 단절하려던 그때, 남편의 목소리가 울렸다.

“먼 타지에 사는 친족에게 보내려는데, 마땅한 책이 있나? 여기 있는 건 좀 어려운 것 같은데.”

“그러신가요? 혹시 아이 나이가 어떻게 될까요?”

직원의 물음에 에드먼드의 붉은 동공이 올곧이 나를 향했다. 집요한 시선에 이건 아니다, 절대 곧이곧대로 이야기해선 안 된다, 소리 없이 말했다.

“글쎄.”

말과 동시에 에드먼드의 한쪽 입꼬리가 비열하게 올라갔다. 행여 그 ‘누구’가 나라고 말하는 건 아닐지, 심장이 쿵쾅댔다.

“얼추, 다섯 살?”

이어진 대답에 힘이 쭉 빠졌다. 그러곤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건 모르겠으나, 글자 하나도 모르는 바보 취급은 당하고 싶지가 않았다.

비록 국립 지방대였으나, 나름의 우수한 코스를 밟은 나였다. 그런 내 비상한 머리가! 그런 내 엄청난 능력이! 고작 언어 하나에 좌절되는 꼴을 절대, 네버, 볼 수가 없다고!

“으음. 한참 글 배우기 좋은 나이네요. 이쪽은 조금 난도가 있고, 오른쪽 책들이 조금 더 쉽고 정확하답니다.”

우려와 달리 직원은 몇 가지 책을 추천해 주곤 자리를 떠났다. 곧바로 날카롭게 휜 내 시선이 에드먼드에게 닿았다.

“그러길래 몰래 사다 달라니까요.”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이 책들이 당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치, 그래도 신경 쓰인다고요. 이왕 온 김에 다른 곳도 좀 둘러볼……!”

“같이 가지.”

“엄마야!”

불현듯, 손에 닿은 온기에 클로엔이 화들짝 놀라며 몸을 돌렸다.

불편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에드먼드는 괜한 심통이 났다.

‘피해? 나를?’

선을 긋는 듯한 태도에 차가웠던 가슴에 뜨거운 불길이 솟구쳤다.

바야흐로 여름이었다.

* * *

돌아오는 마차 안은 말 그대로 암흑이나 다름없었다. 저택을 향하는 동안에도, 마주 앉은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휴, 낮게 신음한 에드먼드의 시선이 맞은편을 보았다. 힐끔 살핀 클로엔은 두 눈을 접어 가며 독서에 열중했다.

타는 제 속과 달리 콧노래를 부르기까지 했다. 조금 전 사 온 [식물대도감]이 퍽 재미있는 모양이다. 그림이 대다수라 쉽게 볼 수 있다더니, 활용도가 아주 100퍼센트였다.

‘글자도 모르면서.’

에드먼드는 보지 않는 척, 클로엔의 움직임을 뒤따랐다. 자그마한 흰 손이 책장을 쉬지 않고 넘기던 그때.

불현듯 스친 기억에 에드먼드는 얼굴을 구겼다. 붉은 동공이 천천히 제 손을 바라봤다.

‘같이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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