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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남편과의 이혼을 거부합니다 (24)화 (24/107)

제24화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지?’

머릿속으로 오만 가지 생각들이 지나갔다. 여린 손목을 붙든 지금, 이 순간조차도 제 행동이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클로엔을 놓쳤다간, 완전히 사이가 틀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습관처럼 낀 검은 장갑이 어느새 땀에 젖었다.

‘이대로 사이가 틀어지면 그간 인내한 시간이 모두 물거품이 돼. 그것만큼은 절대 안 된다.’

그리 생각하며 에드먼드는 스스로 최면했다. 맞닿은 피부 면이 간질거리고 불안감에 숨이 턱턱 막혔으나, 그렇다 하여 놓을 수는 없었다.

“내가 오해했어! 이번에도 내가 당신을 오해한 것 같아.”

에드먼드가 고민 끝에 말문을 열었다. 회개하듯 꾹 감긴 두 눈은 진실성을 더했다.

“연무장 일도…… 사과하지.”

이어진 말에 클로엔은 나아가던 걸음을 멈췄다. 곧이어 작은 여체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뭐, 뭐라고요?”

예상치 못했는지, 클로엔은 다소 놀란 표정으로 커다란 눈을 끔벅였다.

에드먼드가 말했다.

“당신이 그렇게 나서 줘서 정말 고마워. 방해된다는 말은 실언이었어.”

“에드먼드…….”

“하지만 기사단의 문제라면 응당 내가 처리하는 게 맞아. 다른 기사단과 엮여 있는 문제라면 더더욱 그렇고. 그래서 그렇게 예민하게 굴었나 봐. 기사단 해체를 누구보다 바란 당신이었으니까…… 그 의도를 의심했어.”

반성문을 읊듯, 에드먼드는 묻지도 않은 일들을 술술 털어놨다. 일순간, 클로엔의 입가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애석하게도 순진한 늑대는 보지 못했지만 말이다.

“내 행동에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거 알아. 안 해도 될 말을 해 가며 본의 아니게 상처 준 것 같아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고.”

에드먼드가 구구절절 사연을 읊었다. 평소처럼 무덤덤한 목소리였으나 답지 않은 제 모습이 저조차 낯설었다.

후, 낮게 심호흡한 그가 클로엔과 시선을 맞췄다. 감동이라도 한 듯 커다란 라벤더색 눈망울이 이리저리 물결쳤다.

“마음은 알겠지만, 내게도 적응할 시간이란 걸 줬으면 해. 갑작스럽게 몸을 붙이거나, 몸을 만지는 건 여전히 부담스러워.”

에드먼드가 잡은 손목을 놓으며 장갑을 추켜세웠다. 어딘지 긴장한 듯, 입술을 축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조금씩 천천히 하는 건 어떨까?”

“아…….”

이어진 반응에 에드먼드는 힐끔, 클로엔의 눈치를 살폈다. 제 나름의 조율이었으나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다.

한동안 침묵이 계속됐다. 제법 시간이 흘렀음에도 클로엔은 여전히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에 따라 마음이 조급했다.

“당분간은 적응이 필요하겠지만, 이를테면 손을 잡는다거나 가벼운 포옹 정도는 괜찮……!”

잠시 고민하던 그가 쐐기를 박고자 말을 더하던 그 순간이었다. 가녀린 두 팔이 에드먼드의 허리를 폭, 하고 감싸 안았다. 이내 기다렸다는 듯 얼굴을 비비적대며 칭얼댔다.

“흐잉, 나는 당신이 진짜 날 싫어하는 줄 알았다고요. 그래도 우리가 부부 사이인데 손끝 하나도 못 닿게 하고, 맨날 구박만 해서 얼마나 서러웠는지 알아요?”

맞닿은 온기에 에드먼드의 동공이 팽창됐다. 당황한 두 팔이 허공에서 뻣뻣이 굳었다.

“이러다 당신한테 내쫓기는 건 아닌가, 너무 슬펐어요. 날씨도 덥고, 갈 곳도 없는데…….”

“그게 슬펐던 건가?”

에드먼드가 작게 코웃음 치며 말을 더했다. 이제야 본래로 돌아온 것 같아 안도감이 들었다.

“그럴 리가요! 당신을 못 보는 게 슬픈 거지.”

클로엔이 방방 뛰며 눈에 힘을 줬다. 발갛게 물든 눈시울을 보고 있자니, 에드먼드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앞으로는 잘 조절해 볼게요. 이전의 내가 당신한테 어떻게 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게 면책의 이유가 되지 않는단 거 이번 기회에 알았어요. 너무 빠르지 않게 천천히 다가갈게요.”

“나도 노력하지.”

이어진 포부가 듣기 좋았다. 에드먼드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동조하던 그때였다.

‘저게 뭐지?’

저 멀리, 검은 복도 끝에서 반짝이는 수십 개의 눈망울을 본 건 착각일 거다. 에드먼드가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한번 확인했다.

반짝이던 무언가가 삽시간 자취를 감췄다. 묘한 기시감에 에드먼드의 얼굴이 빠르게 굳어 갔다. 랜돌프 공작의 붉은 동공이 낮게 이글댔다. 그러곤 품에 안긴 클로엔을 향했다.

“아하하, 조금 춥네요. 정말 들어가 봐야겠어요.”

시선을 느낀 듯, 클로엔이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닿은 몸을 떨어트렸다. 동시에 에드먼드의 눈살이 눈에 띄게 좁아졌다.

“조금 전까지 덥다고 하지 않았나?”

“으음…… 밤바람은 아직 차네요. 아무튼 오늘 즐거웠어요. 당신 진심도 잘 들었고…… 피, 피곤할 텐데 어서 쉬어요.”

클로엔이 활짝 웃으며 뒷걸음질 쳤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듯했으나, 에드먼드는 보고 말았다. 불안한 동공과 미세하게 흔들리는 입꼬리를.

* * *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무더운 아침이었으나, 저택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던 공작 부부가 함께 외출했다는 소문이 퍼질 대로 퍼진 것이다.

“세상에 너 어제 봤어? 두 분이 같이 나란히 서 계시는데 진짜 후광이 비치더라니까.”

“어제 두 분이 외출만 한 게 아니야. 입구에 있는 복도에서, 공작님께서 부인의 허리를 딱……! 손을 딱!”

“어머, 그게 무슨 말이야? 자세히 좀 말해 봐. 빨리!”

“말 그대로지 뭐. 복도에서 찐~하게 애정 행각을 하셨다고. 숨어서 보고 있는데 내가 다 설레더라.”

잠시 회상하던 티모가 얼굴을 붉히며 어깨를 흔들었다.

“공작께서 그러셨다고? 사람들이 다 보고 있는데?!”

이어진 물음에 샤샤가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 부인께서는 승부사신 거지. 안 그래도 전략을 바꾸신다고 하셨거든. 이대로는 안 되겠다며 공작님과 꼭 화해해야 한다고.”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는 뭐 그래서야. 속으로 진짜 걱정했지. 이번에는 부인께서 또 무슨 일을 벌이시려나, 바짝 긴장했는데 세상에~ 몰래 엿보는데 내 마음이 다 불타더라니까. 공작께서 그렇게 박력 있으신지 미처 몰랐지 뭐야.”

“진짜? 조금 더 자세히 말해 봐. 그럼 그동안은 부끄러워서 그러신 거야? 어머, 진짜 웬일이야~”

동료 시녀의 부추김에 신이 난 샤샤가 친히 성대모사까지 해 가며 상황을 재연했다. 깔깔대는 웃음소리와 함께 대화가 무르익었다.

하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다. 닫힌 창문 너머로 벌써 수분째, 미동 하나 없이 자리 지킨 공작의 모습을.

“자네도 어제 거기 있었나?”

에드먼드가 눈을 가늘게 뜬 채 멜빈에게 물었다. 커다란 등 뒤로 푸릇한 오러가 넘실거리며 타올랐다.

“아…… 네.”

대답과 동시에 에드먼드의 잇새에 한숨이 흘러나왔다. 커다란 손이 지끈대는 이마를 받쳤다.

“그래도 두 분이 참 사이가 좋아 보이시던데요.”

멜빈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그걸 위로라고.”

낮게 일갈한 그가 이를 아득 갈았다. 이대로라면 반나절도 되지 않아 온 저택에 소문이 날 게 뻔했다. 그 생각을 하고 있자니 온몸에 피가 솟구쳤다.

“그러길래 애정 행각은 두 분이 있으실 때만 하지 그러셨어요. 저는 당연히 공작님도 아실 줄 알았는데.”

복잡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멜빈이 얼굴을 긁적이며 말했다. 영문 모를 말에 에드먼드의 미간이 보기 싫게 구겨졌다.

“알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설마……? 불현듯 도망치듯 벗어난 클로엔의 모습이 떠올랐다. 불안하던 라벤더색 동공이 무언가 시사하는 게 분명했다.

“그야…… 부인께서는 저희가 거기에 있는 걸 아셨으니까요? 조용히 하라고 손짓까지 하셨는걸요. 설마 정말로 모르셨던 겁니까?”

“그럴 리가. 사용인들이 우리 사이를 의심하면 곤란하니 일부러 그런 거지. 날 뭐로 보고.”

에드먼드가 당황한 얼굴을 감추며 빠르게 항변했다. 불끈 쥔 두 주먹이 미세하게 떨려 왔다.

그저 들판 위 황소처럼 밀어붙이는 줄만 알았거늘, 잔꾀를 부렸을 줄이야.

‘안 그래도 전략을 바꾸신다고 하셨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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