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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남편과의 이혼을 거부합니다 (36)화 (36/107)

제36화

예상치 못한 멜빈의 말에 부부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변했다.

“모쪼록 두 분께 좋은 소식이 있기를 바랍니다. 귀한 영물도 들이셨으니……!”

멜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이어 가던 그때였다.

“누가 들인다고 했지?”

공작이 퉁명스레 말하며 발밑의 작은 생물체를 바라봤다. 평온하다 못해 서늘하기까지 한 눈빛은 실로 적대적이었다.

“난 저 괴물을 내 저택에 들일 생각이 추호도 없는데.”

감정 따위 느껴지지 않는 건조한 목소리였다. 냉담한 반응에 줄곧 미소 짓던 클로엔의 얼굴이 시시각각으로 구겨졌다.

“내가 키울 생각인데요?”

둥글둥글한 평소와 달리 뾰족한 그녀의 목소리에 에드먼드의 미간 역시 빠르게 좁혀졌다.

“난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면? 영물? 출처도 불분명한 물건을 내 집에 들일 순 없어.”

협상 따위 애초에 기대조차 하지 말라는 듯, 단호한 그의 말에 슬슬 화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들이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건데.

내쫓아 죽이기라도 한단 말인가?

다른 것도 아닌 자식 운을! 어여쁜 2세를 가져다준다는 귀하디귀한 영물을 이리도 홀대할 수는 없었다.

제 미래를 아는 듯 조그마한 시선이 저를 향했다. 또랑또랑한 검은 눈망울은 마치 종이 위에 점을 찍어 놓은 것 같았다.

‘저렇게 귀여운데, 어떻게 그냥 두냐구.’

이대로 내쫓으면 저 귀여운 녀석은 며칠 안 가 목숨을 잃을 게 분명했다. 그도 아니라면 영물을 알아보는 누군가가 홀랑 집어 갈지도.

누구 좋아하라고 그런 일을 한단 말인가, 두고두고 곁에 끼고 있다가 기회가 되면 큰돈을 받고 팔아 버리면 되지!

“아니! 키울 거예요. 고슴도치.”

클로엔이 두 팔을 걷어붙이며 호기롭게 말했다. 신비롭던 보랏빛 눈동자가 고집스럽게 번뜩이는 걸 보니 이번에도 순순히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안 된다고 말했을 텐데, 분명.”

“난 키운다고 했을 텐데요, 분명.”

서로 다른 두 개의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 스파크를 내뿜었다. 맹수와 맹수의 싸움을 곁에서 본다면 이런 기분일 터.

“저, 저기…… 두 분 모두 진정을.”

멜빈의 만류에도 부부의 신경전은 계속됐다. 에드먼드가 오만한 손가락을 까딱이며 고슴도치를 가리켰다.

“멜빈, 이 물건 당장 치우도록 해.”

“하지만 공작님…….”

곧장 얼음장 같은 에드먼드의 눈동자가 멜빈을 향했다. 한마디만 더 덧붙인다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듯 섬뜩한 얼굴을 지은 채.

휴, 짙은 숨소리와 함께 조심스러운 손길이 고슴도치를 향했다. 멜빈의 손끝이 작은 생물체에 닿으려던 찰나였다.

“원래 그렇게 융통성이 없어요?!”

클로엔이 언성을 높이며 씩씩거렸다. 부릅뜬 두 눈이 위협적이었다. 순간 공작의 커다란 몸뚱이가 미세하게 움찔거렸다.

“뭐? 융통성? 지금 나한테 융통성을 논한 건가?”

말을 하는 와중에도 혹여 멱살이 잡힐세라 은근히 목덜미를 움켜쥐는 손길이 다급했다.

“그래, 너! 그래도 숨 붙들고 땅에 발붙이고 사는 생명한테 물건이라니? 이건 아니지! 안 그래요?”

높은 고성과 함께 클로엔의 시선이 멜빈을 향했다. 제 말에 부정한다면 당장에라도 갈아 먹어버릴 듯, 퍽 호기로운 기세였다.

“맞, 맞습니다, 맞고 말고요. 백번 천번 부인의 말씀이 옳지요. 아무리 그래도 생명인데 물건은 조금…….”

하하, 멜빈이 어색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장단을 맞췄다.

“너? 지금 또 너라고 했나?”

질세라, 에드먼드 역시 이를 부득 갈며 답했다. 고래 싸움에 낀 박복한 새우 신세만큼은 면하고 싶었거늘 기어코 등이 터지고 말 모양이다.

“그럼요! 이, 이것도 맞죠. 아무리 화가 나셔도 공작께 ‘너!’라는 호칭은 조금 그렇습니다, 부인.”

초조한 멜빈의 동공이 풍랑 속 종이배처럼 이리저리 흔들렸다.

“너라고 할 만하니까 하죠! 동정심이라고는 없는 인간, 어떻게 저 귀여운 녀석을 죽이자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요?”

“조금 전에도 말하지 않았나? 어떤 해를 가할지 모르는데 그 위험 부담을 내가 왜 감수해야 하지? 그럴 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나? 혹시 당신…….”

에드먼드가 뒷말을 흐리며 눈을 흘겼다. 독심술이라도 생긴 모양인지, 꺼내지도 않은 다음 말이 자연스럽게 연상됐다.

“지금 또 나를 의심하는 거예요? 허, 참! 난 전혀 모르는 일이라니까요?”

나는 인상을 팍 구기며 재빨리 부정했다.

“당신과 관련된 게 아니라면 저 물건에 왜 이렇게 집착하는 거지?”

“집착이 아니라, 동정이고 책임이에요. 그래 봤자 고슴도치잖아요! 저 쪼그만 게 해 봤자 뭘 한다고 그래요?”

“순 말이 안 통하는군!”

에드먼드가 정돈된 검은 머리칼을 헝클어트리며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자식이 생긴다잖아! 우리의 찬란한 미래가 보장된다잖아!’

고집스러운 반응에 짜증이 솟구치기 시작하더니, 슬슬 오기가 생겼다. 원작의 내용을 완벽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고슴도치가 나오지도 않았을뿐더러 위험하다는 문구는 더더욱 존재하지 않았다.

되레 행운을 가져다준다는데! 에드먼드는 왜 이렇게까지 과민반응을 하느냐고? 답은 늘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멜리사 카타린, 저 혼자 살겠다고 불필요한 마법까지 부려 가며 상황을 난감하게 만든 빌어먹을 계집.

문제의 원흉은 속 편히 집에 있을 텐데, 왜 피해는 엄한 내가 보는지 모르겠다.

‘내 눈에 띄기만 해 봐, 아주.’

혹시나 멜리사를 다시 만난다면 치렁치렁했던 머리털을 모조리 뽑아 주고 싶었다. 이왕이라면 상황을 여기까지 치닫게 한 마법서들도 함께 말이다.

어쩜 하나부터 열까지 쉽게 가는 경우가 없었다. 피하고 싶었던 원작의 굴레에 자꾸 말려드는 기분.

‘이러다 진짜 이혼당하는 거 아냐?’

불현듯 머릿속을 스치는 아찔한 생각에 나는 말없이 에드먼드를 힐끗거렸다.

갑자기 사라져 버린 ‘멜리사 카타린’ 때문에 의심병이 돋은 게 분명했다.

이러다가는 2세는커녕 첫날밤도 어렵다고!

그래, 차라리 저 고슴도치를 집에 들여 아무 일도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면? 애써 좁혀 놨던 남편과의 거리가 다시 벌어지느니 뭐라도 해 보는 게 나았다.

하지만 어떻게?

고심했지만 답은 쉬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보좌관 멜빈이 힐끗 눈치를 살피며 고슴도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쀼쀼!”

제 미래를 아는 모양인지, 미약한 울음소리가 내부를 울렸다.

‘걱정 마, 언니가 구해 줄게.’

그 모습을 본 나는 생각 끝내고, 고슴도치와 함께 멜빈의 앞을 막아섰다.

“할 말이 더 남아 있나?”

싸늘하게 식은 보랏빛 눈동자가 멜빈을 지나 에드먼드에게로 향했다.

“같이 버려요.”

“그러도록 하지. 이제라도 생각이 바뀌었으니 다행이군.”

“아니? 나도 같이 버리라고요. 그 고슴도치! 버릴 거면, 나도! 같이 버리라고!”

말과 동시에 희미했던 에드먼드의 미소가 산산이 조각났다.

순순히 따라오는가 싶더니 이렇게 뒤통수를 때리다니. 일순 머릿속이 복잡했다.

“버려?”

고저 없는 목소리가 마지막 말을 되짚었다. 서늘한 눈동자가 느릿하게 굴러가며 클로엔과 시선을 맞췄다.

무섭게 번뜩이는 에드먼드의 눈빛에 흠칫 놀라는가 싶더니 금세 낯빛을 바꿨다.

붉은 동공이 저를 향해 무어라 말하는 듯했지만, 흔들리지 않으리!

“나는 절대로 이 친구를 못 보내요! 당신이 지금 무슨 오해를 하고 있는지는 알겠는데, 전혀 그런 일은 없거든요.”

나는 결연한 얼굴로 답했다.

“그래서 결론이 뭐야?”

“당신이 계속 나를 못 믿고 이런 식으로 삐딱하게 나온다면, 나도 생각이라는 게 있어요. 나라고 맨날 헤헤거리며 좋은 줄 알아요? 천만에, 노력하는 거라고요.”

‘그래 노력하지, 2세를 위해.’

나는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가다듬으며 태연히 말했다.

“하고 싶은 말이 도대체 뭐지?”

“이런 식이면 안 살아요, 나도! 아니 못 살아요! 백날 믿어 달라 외쳐도 의심만 하고, 이러면 어떻게 같이 살아요?”

“아, 그러니까 지금 이혼을 하자는 건가? 정말이지 생각지도 못한 이유로군.”

“그러니까 결정해요. 쟤를 내쫓고 나랑도 도장을 찍을 건지, 아니면 다 같이 공생할 것인지.”

물꼬를 튼 주둥이는 제멋대로 나불대기 시작했고, 엎지른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먼저 이혼을 논하다니, 미쳐도 단단히 미친 게 분명했다.

‘말이 헛나온 거라고 이제라도 무를까? 저깟 게 뭐라고 존잘남이랑 도장을 찍냐고!’

타는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발밑에 있던 고슴도치가 까만 눈동자가 깜박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드레스 뒤로 감춘 손끝이 달달 떨려 왔다. 얼마나 지났을까, 허공 위로 짙은 한숨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가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멜빈, 저 밤송이와 관련된 자료들 모두 가져와. 내 방으로.”

명백한 승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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