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5화
트인 시야에는 정복 차림의 에드먼드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기대 서 있었다
이렇게 심장을 후리네, 또.
“아니, 왜, 들어오지 않고. 노크를 하지 그랬어요.”
완벽한 자태에 나는 고장이 난 목각 인형처럼 뚝딱댔다. 그런 내 모습이 귀여운 듯, 에드먼드는 작게 코웃음 치며 다음 말을 이었다.
“그대가 먼저 찾질 않으니, 기다릴 수밖에.”
이건 습격이다.
더럽게 잘생겼어.
힐끔, 나는 내 옆에 선 커다란 실루엣을 살피고 또 살폈다. 바쁜 일과 탓에 식사를 거른다더니 날카로운 이목구비가 더욱 뚜렷했다.
“뭘 그리 도둑고양이처럼 쳐다보지?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
“잘생김이요.”
미모에 홀린 주둥이는 필터를 거치지 않고 내뱉었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굳이 정정하지는 않았다.
퍽 솔직한 답변에 에드먼드가 “흠흠” 마른 목을 긁었다. 꽤 민망한 듯, 그답지 않게 입술을 달싹이기도 했다.
“그러다 닳겠군.”
“그건 좀 곤란한데.”
“그럼 그쯤하고 앞을 보는 건 어때? 나 좀 그만 보고.”
“그건 더 곤란한데.”
나는 말하는 로봇이라도 된 것처럼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러곤 찰싹, 한결 강렬해진 남편의 팔뚝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힝, 여보 요즘 많이 힘들었어요? 수척해졌어. 속상하게.”
동시에 화르르. 에드먼드의 검은 피부가 조금씩 달아올랐다. 나는 틈을 놓치지 않고 날렵한 에드먼드의 턱선을 지분댔다.
“경합 준비에 매진하느라.”
손길을 거부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에드먼드는 잘 조련된 맹수처럼 자세를 유지했다.
“그래도 식사는 거르지 말아용. 샤샤가 말하기를 밥도 안 먹고 혹사 중이라면서요. 그러다 근 손실 오면 오또케.”
“근, 근 손실……?”
“여보가 1그램이라도 사라지는 건 싫단 말이에요.”
그리 말한 나는 잔뜩 성난 에드먼드의 가슴팍에 머리를 파묻으며 비비적거렸다.
“클로엔.”
그도 잠시, 에드먼드가 엄한 목소리와 함께 검지로 이마를 눌렀다. 실로 좋은 욕구 충족이었다고 생각하며 나는 순순히 뒤로 물러섰다.
‘목소리는 굳었는데 얼굴은 왜 웃고 있냐?’
살짝 미소 지은 그가 천천히 몸을 숙였다. 늘 올려다봤던 에드먼드의 동공이 시야에 맞춰졌다. 묘하게 달라진 온도 차에 나는 두 눈을 깜박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합방도 싫다, 내가 사라지는 것도 싫다. 당신이라는 사람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군. 내가 어느 장단에 맞춰 줘야 할까?”
네가 이렇게 얼굴을 갔다 대면 내가 짐승이 되고 싶잖아.
어딘지 말랑말랑해진 분위기에 나는 부러 허벅지를 꼬집어 가며 정신을 집중했다.
‘내 콘셉트는 조신 포켓걸이다. 콘셉트 유지해. 정신 차려. 여기서 덤비면 그냥 변태되는 거야.’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시킨 나는 부러 혀짧은 소리를 내가며 뚝딱거렸다.
“진짜 그것 때문에 삐졌었어요? 합방이야 뭐,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신경을……!”
“신경을 안 쓰려야 안 쓸 수가 없잖아.”
훅 들어온 에드먼드의 입술이 코앞에 멈췄다. 야성적인 남편의 도발에 커다란 두 눈이 빠르게 진동했다.
“아내가 잠자리를 거부하는데 좋아할 남편이 있을까?”
동시에 화르르, 클로엔의 두 뺨이 잘 익은 홍시처럼 발갛게 달아올랐다.
“잠, 잠자리는 무슨! 누가 들으면 오해해요!”
머릿속을 스친 빨갛고 불건전한 생각에 나는 버럭! 외치며 몸을 뒤로 뺐다.
하지만,
“이번에도 내빼는 건가?”
등 뒤로 닿은 에드먼드의 손바닥이 퇴로를 막아섰다. 예의 바른 포식자는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곤 허리를 바짝 당겼다.
“내, 내빼는 게 아니라 딸꾹. 합법한 절차와 과정을 밟고 차근히, 점진적으로 일을 키워 보자 이거죠. 아무리 급해도 대, 대낮은 좀 그렇다고요. 이제 곧 손님도 오고.”
딸꾹! 놀란 난 겁먹은 거북이처럼 목을 뒤로 늘이며 말했다. 어쩐지 에드먼드가 작정하고 들이댈 때면 심장이 쪼그라들고 코끝이 간질간질했다.
“적당히 애태우면 좋겠군.”
짧게 말한 그가 피식, 낮게 조소하며 거리를 벌렸다. 닿을 듯 닿을 수 없는 조각상의 유혹에 나는 오늘도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 * *
“안녕하세요. 랜돌프 부인, 그리고 공작님. 리하프라고 합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해요.”
“릴, 릴리스 제니온입니다. 두 분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제집처럼 편해 보이는 리하프와 달리 릴리스는 낯을 가리는 모양이었다. 나는 부러 옆에 선 에드먼드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턱짓했다.
“어서 와요. 랜돌프에 온 걸 환영합니다.”
마지못한 에드먼드가 작위적인 미소와 함께 손님을 맞이했다.
“공작께서도 함께하실지는 몰랐는데…… 두 분이 정말 사이가 좋으신가 봐요!”
“보시다시피.”
당찬 리하프의 물음에 에드먼드는 옅게 미소 지으며 옆에 선 클로엔의 어깨를 바짝 끌어당겼다. 다정한 부부의 모습에 어린 영애들은 두 뺨을 붉혔다.
“아! 그리고 오늘 아나샤 아가씨도 함께 왔어요. 부인께서 다른 분들도 동행해도 된다 하시길래…… 괜찮으시죠?”
호갱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물론이죠. 랜돌프의 인심이 그렇게 박하지는 않거든요.”
나는 검은 속내를 숨기며 리하프에게 말했다. 소문난 파티광이라더니, 영업력이 가히 대단했다. 나는 곧장 에드먼드의 팔을 푸르고 걸음을 옮겼다.
“아나샤라고 했던가요? 반가워요, 이곳의 안주인인 클로엔 랜돌프라고 해요.”
샐쭉 미소 지으며 말을 건네자, 밀가루 반죽 같은 희멀건 얼굴이 빼꼼 고개를 들었다.
“아, 아, 아나샤…… 아나샤 마리포사라고 합니다.”
도수 높은 안경, 하나로 질끈 묶은 머리 스타일,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와 달달 떨리는 손끝.
‘전형적인 아싸구만.’
3초 스캔을 마친 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가씨라고 말을 올린 걸 보면 리하프보다 신분이 더 높은 것 같은데. 그렇다고 황족은 아닐 테고……’
샤샤의 부재로 인해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이 없는 지금, 나는 골똘히 머리를 굴렸다. 그러곤 회심을 일격을 던졌다.
“혹시 후, 후작 가문의……?”
“아…… 네……. 맞아요. 마리포사 후작가의 셋째예요. 제 위로 판사인 셀리온 언니와 변호사인 프레아 언니가 있어요…….”
애가 기가 바짝 죽었네.
의기소침한 아나샤를 보며 나는 괜스레 마음이 찡해졌다. 제 소개를 물은 것뿐인데, 줄줄이 사탕처럼 나오는 언니들의 이력을 보아 적잖이 치인 모양이다.
“그래요. 나머지 이야기는 들어가서 마저 해요. 애써 준비한 음식이 식기라도 하면 우리 레틴이 슬퍼할 거예요. 호호.”
나는 부러 인자하게 말하며, 여느 댁 귀부인처럼 굴었다. 왁자지껄한 영애들은 곧장 집사의 안내를 따랐다.
“나는 두고 갈 참인가?”
뒤이어 걸음을 돌리던 나는 옆구리에 훅 끼친 온기에 몸을 삐죽 세웠다. 고장 난 심장이 사춘기 소녀처럼 쿵쾅댔다.
* * *
‘이 새끼 작정했네, 작정했어.’
약 두 시간 남짓한 식사 시간 동안 내가 내린 결론은 단 하나였다.
사람을 후리기로 작정을 한 모양인지 잇따른 남편의 친절과 도발은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
‘이것 좀 먹어 보지. 굽기도 적당한 게 당신이 좋아하겠어.’
‘뭘 이렇게 흘리면서 먹지? 하여간 눈을 뗄 수가 없군.’
‘오늘따라 유독 빛나는군. 내가 사다 준 드레스 때문인가?’
‘피곤하면 잠시 가서 쉴까? 초대한 영애들은 잠시 사용인들에게 맡겨 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