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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남편과의 이혼을 거부합니다 (66)화 (66/107)

제66화

“영애들은?”

“야외 테라스에 모여 계세요. 음식이 입에 맞으셨는지 다들 맛있었다고 칭찬 일색이에요.”

“자, 배는 든든히 불려 놨고. 디저트는?”

“말씀하신 대로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하고 부드러운 것 위주로 준비했어요. 얼마나 예쁘던지……! 레틴 님께서 신경을 엄청나게 쓰셨더라고요. 그런데 티파티를 하신다더니 왜 식사까지 준비하신 거예요?”

“원래 사람이 배가 불러야 기분이 좋거든. 별 시답잖은 것도 배를 불려 놓으면 좋아 보여.”

“역시 부인의 지략은 정말 대단하세요.”

샤샤가 존경의 엄지를 올렸다.

“아 됐어, 진짜. 빨리 가자. 기다리겠다.”

괜한 민망함에 짧게 대꾸한 나는 근엄한 표정으로 야외 테라스로 향했다. 양손에 든 달팽이 크림과 함께.

* * *

정돈된 테이블 위로 노릇하게 구운 마들렌과 붉은 홍차가 놓였다. 서늘해진 날씨 탓인지, 줄곧 잠잠했던 릴리스가 에취! 재채기를 흘렸다.

“저런, 날씨가 조금 쌀쌀해졌죠? 이걸 써요.”

나는 미리 준비한 손수건을 건네며 다정히 말했다. 잠시 주춤거리던 릴리스가 입술을 달싹이며 조심스레 입가를 닦았다.

“감사합니다, 랜돌프 부인. 두 분 모두 정말 친절하세요.”

“당연한 일인걸요. 아 참, 음식은 입에 맞았나요?”

“네! 그렇게 맛있는 스테이크는 정말 오랜만이었어요.”

“우리 레틴이 실력 좋은 편이거든요. 다음에 또 놀러 와요. 그때는 좀 특별한 음식을 부탁해 볼게요.”

“네. 꼭 그렇게 해 주세요. 기대할게요, 클로엔 님.”

이어진 내 말에 릴리스가 수줍게 뺨을 붉히며 배시시 웃었다. 줄곧 랜돌프 부인이라 부르며 거리를 벌리더니 호칭에도 변화가 일었다.

“아, 그리고 이거.”

힐끔, 주변을 살핀 나는 만들어둔 딸기 수제청을 꺼냈다.

옆에 있던 리하프가 “이건 뭐예요?”라고 물으며 관심을 보였다. 아나샤의 역시 굳이 티를 내지는 않았으나, 커다란 안경을 추켜세우며 집중했다.

“내가 요 며칠 연구하면서 만들어 봤는데, 재채기에 좋을 거예요. 지금처럼 쌀쌀할 때 마시면 더 좋고요.”

“클로엔 님…….”

기세를 보아 당장에라도 울음을 터뜨릴 기세였다.

“생강이 알레르기에 좋은데, 그러니까 여기 말로 재채기에 좋은데 그것만 먹으면 맵고 맛이 없으니까 꿀이랑 딸기를 섞었거든요. 잘 모르겠지만, 딸기가 또 기관지에 기가 막……!”

난감한 상황을 피하고자 나는 그간의 고충을 일일이 나열했다. 사담이 길어질수록 릴리스는 붉은 유리병을 꼭 껴안으며 훌쩍였다.

“으흑, 이렇게 따뜻한 분들인지도 모르고 오해해서 죄송해요. 저는 오늘에야말로 혼쭐을 내시려는 줄 알고…….”

울지 마. 울지 말라고. 팍시.

나는 머리에 든 상념을 지우며 입꼬리에 힘을 주었다. 그러곤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릴리스의 어깨를 토닥였다.

“릴리스, 너 왜 우러……. 으흑, 네가 울면…….”

눈물은 전염된다더니, 군소리 없이 마들렌을 먹어 치우던 리하프가 릴리스를 보며 울먹였다.

“으헝, 리하프……! 클로엔 님께서 으흐흑, 내 재채기를 기억하시고…….”

티파티 하자니까 눈물파티를 하고 있네.

나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한차례 찍어 누르곤 표정을 정리했다. 그사이 건네받은 손수건에 알뜰살뜰 코까지 푼 두 사람은 한동안 곡소리를 이어 갔다.

* * *

“와, 미친 감정선이야. 하나같이 따라갈 수가 없네.”

잠시 자리를 비운 난 달아오른 뺨을 두어 번 두드리며 각성했다. 고작 수제청 하나 만들어다 줬다고 어찌나 눈물을 쏟아 내는지,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달팽이 꺼내면 이거 다 자지러지겠는데.”

후, 낮게 신음한 나는 뒤에 있던 샤샤를 불렀다.

“샤샤, 저기 안경 낀 영애에 대해서 자세히 좀 말해 봐. 아나샤? 아타샤? 이름도 헷갈려. 아까 네가 없어서 얼마나 당황했는지 몰라. 내가 눈치가 있었으니 망정이지 곤란할 뻔……!”

이어진 셀프 칭찬에 샤샤가 말미를 자르고 훅 들어왔다.

“아나샤 마리포사. 잘나가는 후작 가문의 셋째 따님이세요. 저분이 오실지는 몰랐는데 좀 의외네요.”

“보아하니 자존감이 엄청 낮은 것 같더라. 근데 언니들이 대단하긴 한가 봐? 쟤는 이상하게 자기소개를 안 하고 자기 집안 소개를 먼저 하더라니까?”

“언니들뿐만이 아니라, 그 집안 모두가 대단하시죠. 오죽하면 헤슈턴 연회에도 안 오셨겠어요? 그 댁 내외께서는 황실의 부름이 아니면 아예 움직이지를 않으신대요.”

“오~ 콧대. 근데 왜 그 귀한 집 자식이 여기까지 왔을까?”

“글쎄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마리포사 가문과 연을 쌓아 둬서 나쁠 거는 없죠. 아나샤 영애님과 결혼을 앞둔 녹턴 블론디아 경께서는 무역 쪽으로 일가견이 있으시거든요.”

“호호, 잘만 구슬리면 수출도 가능하다는 말이네? 대어가 왔네, 대어가.”

나는 콧바람을 불어 가며 야외 테라스로 걸음을 돌렸다. 잠시지만 저 멀리 보이는 세 개의 실루엣이 커다란 금덩이로 보이는 환영에 시달리기도 했다.

“다시 정신 집중하고. 이게 다 영업 밑천이고 돈이다. 실수하지 말자, 클로엔 랜돌프.”

작게 읊조린 난 비장한 표정으로 착석했다. 왼편엔 토끼 눈이 된 리하프와 릴리스가 그리고 그 반대편엔 멍하니 찻물을 휘적거리는 아나샤가 있었다.

‘사실 여기가 진정한 노다지였던 거지. 가 보자고!’

조금 전 샤샤와의 대화를 떠올린 나는 오른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닿은 시선이 불안한 듯, 아나샤가 입술을 잘근거렸다.

“무, 무,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세요?”

“아니 그냥, 이렇게 귀한 걸음을 해 줘서 고마워서 그렇죠.”

“아…….”

작게 수긍한 아나샤가 시선을 내리깔며 안경테를 추켜 올렸다. 어색함을 지우려 시답잖은 질문을 건네 보았으나, 대체로 돌아온 건 “아…….”, “네.” 따위의 단답형이었다.

뚝뚝 끊기는 대화에 지쳐갈 때쯤, 아나샤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속마음을 털어냈다.

“사, 사실…… 랜돌프 부인과 꼭 만나보고 싶었어요. 마침 티파티를 여신다길래…… 리하프 영애에게 참석하고 싶다고 부탁했거든요.”

“그건 조금 의외네요. 혹시 날 만나고 싶었던 특별한 이유라도 있어요?”

“그, 그게……. 제가 곧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거든요. 가문끼리 엮인 정략혼이다 보니…… 녹턴 경께서는 저를 달가워하지 않으시지만…….”

아나샤가 작은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어렵사리 제 이야기를 이어 갔다. 나는 부러 숨을 죽이며 다음 말에 집중했다.

“두, 두 분께서도 저희와 같은 입장이셨는데, 사이가 정말 좋으시다고…… 어떻게 하면…….”

“어떻게 하면 사랑받는 아내가 될 수 있는지, 그게 궁금한 거군요?”

직접적인 내 물음에 아나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심한 성격에 얼마나 큰 용기를 냈을는지 괜히 딱한 마음이 들었다.

“일단 꼭 해야 할 세 가지가 있는데. 들어 볼래요?”

“세, 세 가지요?”

곧장 답을 내놓자, 아나샤가 두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응. 세 가지. 그렇게 어렵지는 않아요. 약간의 노력과 시간이 들 뿐?”

“뭐, 뭐든 이야기해 주세요. 노력할게요. 보, 보상이 필요하시다면 적합한 돈을……!”

“돈은 아직 괜찮고, 효과 보면 그때, 그때 줘요.”

샐쭉 미소 지은 나는 부러 찻물을 삼키며 뜸을 들였다. 옆에 있던 리하프와 릴리스 역시 소리 없이 대화에 집중했다.

“첫 번째, 나 자신을 사랑할 것. 두 번째, 어디에서든 누구 앞에서든 주눅 들지 말 것.”

나는 가는 손가락을 하나둘 펴며 한음 한음 힘주어 말했다. 너무도 당연한 소리였으나, 나름 자극제가 된 모양인지 서로 다른 세 개의 시선이 나를 향해 반짝였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소리를 낮추자, 어리숙한 영애들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했다.

“자기 자신을 가꿀 것.”

나는 부러 손가락을 튕기며 테이블을 두드렸다. 그러곤 재빨리 미리 준비해 둔 달팽이 크림 두 개를 일렬로 전시했다.

“내가 마침 리하프 양에게 줄 게 있었는데, 아나샤 양도 써 보는 게 어때요?”

“이, 이게 뭔데요?”

“내가 만든 크림이에요. 리하프 양이 피부 때문에 고민하는 것 같길래 잔재주를 부려 봤거든요.”

“으흑, 클로엔 님. 제 것까지 준비해 주신 거예요? 정말 감동이에요. 저는 아무것도 준비 못 했는데 크흡.”

울먹이는 리하프와 달리 아나샤의 얼굴엔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잠시 고민한 나는 승부사를 던졌다.

“필요하지 않다면 다른 사람에게 주죠, 뭐. 딱 두 개뿐이었는데. 아쉽네요.”

“주, 주세요! 제가 쓸게요.”

역시나 한정판 전략은 여기나 저기나 옳았다.

* * *

“클로엔 님, 저희는 이만 돌아가 볼게요.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조심히들 가요. 나도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오늘을 절대 잊지 못할 거예요.”

리하프의 끝인사에 나는 부러 과장을 더해 가며 반응했다. 머릿속엔 어서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대다수였다.

“손수 선물도 챙겨 주시고, 두 분의 친절에 감동했어요. 흡, 어떻게 이렇게 좋은 분들을 매도할 수 있는 건지, 내심 소문이 정말 무서운 것 같아요.”

릴리스가 품에 든 유리병을 꼭 끌어안으며 훌쩍였다. 발발 떨리는 입술은 아무래도 패시브인 모양이다.

“오, 오늘 좋은 말씀 감사드려요. 다음에도 또 기회가 된다면 꼭 불러 주세요.”

마지막 아나샤의 인사말을 끝으로 길고 긴 대장정의 말미가 보였다. 나는 꺼진 입꼬리를 애써 말아 올리며 싱긋 웃었다.

“다들 즐거웠다니 다행이네요. 간간이 자리를 마련할게요. 조만간 열릴 헤슈턴과의 검술 대회에 초대하고 싶은데 어때요? 우리 단원들이 겉으로나 속으로나 참 훌륭한 이들이 많은데, 미혼도 많고…….”

“물론이죠, 클로엔 님! 반드시 참석할게요!”

이어진 내 말에 리하프와 릴리스가 두 눈을 반짝이며 입을 맞췄다.

걸려들었어.

나를 제외한 세 명의 영애는 꾸벅, 인사를 올리곤 준비된 마차로 향했다.

“아 참, 여러분! 꼭 당부해야 할 말이 있는데…….”

속으로 수를 헤아린 난, 조용히 이목을 집중시켰다. 궁금증 어린 시선들이 피부에 닿았다.

“오늘 내가 준 것들은 되도록 비밀에 부쳐야 해요. 구하기 어려운 것들이라 소문이 나기라도 하면 곤란하거든요.”

나는 부러 소리를 줄이며 비밀 유지를 당부했다. 짧은 답변을 끝으로, 각기 다른 세 대의 마차가 입구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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