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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남편과의 이혼을 거부합니다 (96)화 (96/107)

제96화

이튿날, 아침.

“인사는 점심때나 해야겠군.”

복도를 거니는 에드먼드의 표정이 유독 밝았다. 밤새 시달려서인지, 클로엔은 내내 미동이 없었다. 곤히 잠든 아내를 몇 번이고 돌아본 후에야 공작은 방을 나설 수 있었다.

시간은 어느덧 8시 반.

본래 8시였던 출근 시간이 평소보다 30분 더 지체됐다. 집무실에는 부지런한 멜빈이 저를 기다리고 있을 거다.

작게 심호흡한 그는 표정을 지우고 문고리를 돌렸다. 동시에 도르르, 대기 중이던 멜빈이 눈동자만 굴려 공작을 바라봤다.

“드디어 오셨군요.”

가느다란 시선 속엔 너는 왜 이제야 온 거냐는 1퍼센트의 원망과 99퍼센트의 의문 섞여 있었다.

“늦었군.”

“아뇨, 고작 30분인걸요. 비록 제 일정은 30분씩 모두 밀리게 됐지만 괜찮습니다. 인간적인 공작님의 모습, 보기 좋습니다.”

멜빈의 동공이 느리게 굴러 시계 초침을 향했다. 괜한 민망함에 흠흠, 에드먼드는 목을 가다듬으며 자리에 앉았다.

동시에 우수수, 수북한 결재 서류가 책상 위에 놓였다. 사이에는 초대장으로 보이는 서신들이 두어 장 끼어 있었다.

“영양가 있는 초대장들만 추려 봤습니다. 다소 애매했던 전과 다르게 저희 랜돌프에 도움될 법한 우수한 가문들이 더러 있더라고요. 확실히 어제 경합을 기점으로 사교계의 기류가 완전히 뒤바뀐 것 같습니다.”

“내용은?”

“대체로 오찬 자리가 많았고 랜돌프와 협업을 제안하는 가문들도 종종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두 분의 그…… 급작스러운 애정 행각이 되레 굳건하다는 신임을 준 모양입니다.”

쿨, 쿨럭!

순간 에드먼드의 귓바퀴가 제철 토마토처럼 달아올랐다. 건수를 잡은 멜빈이 조용히 얼굴을 디밀며 소곤댔다.

“그러고 보니 오늘 유독 낯빛이 좋으시네요. 늦잠을 주무셔서 그런가?”

“그냥 신경 썼던 것들이 끝나서 그런 것뿐이야.”

에드먼드가 반질반질한 턱을 매만지며 곧장 되받아쳤다.

“하긴 어제부로 헤슈턴과의 연은 완전히 끝난 거죠. 그렇게 사람 많은 곳에서 딱! 공작 부인, 진짜 멋지시다니까요.”

멜빈은 두 손을 모아 잡은 채 황홀경에 빠져 있었다. 얼빠진 표정을 보고 있자니,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끓어 올랐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부인께서는 정말 작은 거인 같으세요. 어제도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나는 내 남편을 구할 테니까.’ 하시면서 곧장 행동하시는데 그 가녀린 몸에서 어떻게 그런 힘이 나는지 진짜 대단……!”

그런 제 상관의 기분을 미처 헤아리지 못한 멜빈은 하고 싶은 말을 폭포처럼 이어 갔고 공기의 흐름은 점점 싸늘하게 변했다.

“왜 자네가 내 아내를 멋져하지?”

그때, 에드먼드가 말했다.

“그거야…… 실제로 멋지시니까요. 저뿐 아니라 아마 거기 있던 대다수가 그렇게 생각……!”

“반하기라도 했나?”

“예?”

“반하기라도 했냐고. 명석한 데다 귀엽고 예쁘기까지 한 내 아내한테 반하기라도 했냐, 이 말이야.”

얼토당토않은 주장에 멜빈은 잠시 말하기를 멈췄다.

“푸핫!”

그러곤 정말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 소리 내 웃으며 말했다.

“공작님,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십니까? 부인께서 멋지신 건 사실이지만 저랑은 결이 다릅니다. 제 이상형은 참하고, 착하고, 지켜 주고 싶고,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그런……!”

“아, 그럼 내 아내는 착하지도, 참하지도 않다?”

“……예?”

“클로엔에게 얻어먹은 간식과 차가 아직 배 속에 있을 텐데.”

순간 멜빈의 표정이 사색으로 물들었다. 여기서 부인을 추켜세운다면 ‘반했나?’ 따위의 괴상한 질문을 받을 테고, 아니라고 부정하기엔 ‘그래서 내 아내가 나쁘단 거냐’며 몰아붙일 거다.

멜빈은 정말이지 울고 싶었다. 가장 적합하고 현명한 대답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렸으나, 저를 향한 공작의 시선이 짙어질 뿐. 초조함에 이가 떨려 왔다.

“저는 두 분이 천생연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뭐?”

딱딱한 반응과 달리 내심 기분은 좋은 모양인지, 에드먼드의 입꼬리가 살살 풀렸다.

“다른 건 몰라도 어제 확실히 느꼈거든요. 부인께서 공작님을 얼마나 많이 생각하는지. 사실 조금 감동했습니다. 나보다 다른 사람을 위한다는 건…….”

멜빈은 부러 눈치를 쓱, 살피며 뜸을 들였다. 그러곤 엄지와 검지를 살포시 교차하며 잔망스럽게 말했다.

“결국, 사랑이니까요.”

동시에 공작의 입술이 꾹 다물렸다. 퍼지는 미소를 잡으려 부단히 힘쓰는 제 상관의 모습이 퍽 생소했다.

사랑은 사람을 변하게 한다더니, 멜빈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다음 말을 이었다.

“목록에는 제외됐습니다만, 오늘 온 서신들에 유독 불꽃놀이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이벤트라면 질색하시는 공작께서 그런 묘수를 두셨을지는…… 미처 몰랐습니다.”

“불꽃놀이?”

무슨 말이냐는 듯, 에드먼드가 재차 물었다.

“모르는 척하시기는, 경합 막바지에 맞춰서 펑펑! 터뜨리셨잖아요. 어찌나 속이 시원하던지. 비용을 제시하고 구매 루트를 알고 싶다는 가문도 있었고, 여분이 있다면 웃돈을 주고 사고 싶다는 가문도 있었습니다. 여러모로 저희에게는 좋은 조건이죠. 어떻게 할까요?”

“그건 비서관이 따로 준비한 거 아닌가? 알아서 처리해. 발생 된 수익은 자네가 갖고.”

“네? 제가요? 무슨 수로…….”

“그럼 누가 하지? 난 부하 직원의 성과를 가로챌 마음은 없어. 자네가 시작한 일이니까 마무리도 알아서 지어 봐.”

“아니, 그건 공작님께서 하신 일…….”

일순 두 남자 사이에 깊은 정적이 흘렀다. 바람에 너풀대는 지렁이 인형이 아니었다면 시간이 멈췄다고 착각했을 거다.

‘혹시…… 불꽃놀이 좋아해요?’

‘경합 전까지 만들고 싶은 게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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