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아임휴먼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엔딩이 여러 종류로 갈리는, 명작 반열의 게임이다.
난이도로 인해 대부분의 사람은 PC나 콘솔 버전을 즐기지만, 가상현실 쪽도 인기가 많다. 워낙 잘 만들기도 했고, 난이도가 높다 해서 깰 방도가 전혀 없진 않기 때문이다.
게임의 스토리는 안드로이드 주인공이 정부에게 배신당하는 것부터 시작되니. 플레이어는 혁명군에 합류해 비리 정부와 싸우거나, 안드로이드들을 구출해 도망갈 수 있다.
자잘한 선택지로는 인간을 배척하느냐 인간을 용서하느냐 등도 있다.
그러나 어떤 엔딩이든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화합은 불가능하다는 게 유저들의 의견이었다.
결말에서 밝혀지지만 혁명군 루트는 정부 상층부를 갈아치워 또 다른 권력자가 되고 싶어 하는 놈들이었고, 도망 루트는 처음부터 인간과 화합 자체를 꿈꾸지 않는 탓이다.
플레이어들이 그런 결론을 내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 006. 아무리 봐도 히든 루트
은우는 혁명군 루트를 택했다. 혁명군에 합류하여 정부에게 복수하고 개혁을 꿈꾸는, 초보자들이 쉽게 선택하는 분기점이었다.
결말을 아는 사람들 입장에선 속이 터지는 루트이기도 했다.
─게임이 왜 이리 쉬워보이누
─지금까지 노데스라는게 젤 어이없음. 이 게임 이런 게임이 아닌데.
─자동전투 안 키고 하고 있다는게 너무 대단함;;
─당신의 실력은 인간의 것이 아닙니다
─이 미션 평균 소요시간이..ㅋㅋㅋ 3시간 반일 텐데....ㅋㅋ
─어림도 없지! 20분 컷!
─돌아가는 시간 감안해도 30분이면 쌉가능
─운동선수입니까?
─처음에 아니라고 훈수두던 새끼들 싹 사라짐ㅋㅋㅋㅋㅋㅋ
초보자들이 선택한다고 해서 해당 루트가 쉬운 건 절대 아니다.
게임 특성상 전면전보단 잠입이나 암살, 정보 수집 미션이 대부분인데, 이게 또 만만치 않다. 탐지 센서와 현실에 비해 좁은 인식 범위를 잘 이용하지 않으면 발각되기 일쑤인 탓이다.
발각될 경우 교전으로 이어지는데, 이러면 자동 전투 기능을 켜도 버티기가 힘들었다. 발견되지 않는 게 최선인 셈이다.
물론, 은우에겐 해당 사항이 없었다.
「‘켄따개’ 님이 ‘10,000원’ 투척!
도저히 후원을 안 할 수 없네요」
「‘켄따개’ 님이 12개월 구독했습니다!
구독도 할게요」
「‘켄따개’ 님이 ‘10,000원’ 투척!
앞으로도 방송해주실 거죠?」
“켄따개 님, 12개월 구독과 2만 원 후원 감사합니다. 예, 아마 할 것 같네요. 시간대라거나 방송 시간이라거나 조율은 해야겠지만.”
은우는 건조하게 말을 이으며 단검을 휘둘렀다. 그를 피해 도망치려던 장교의 목이 정확히 베였다.
그 상태에서 제자리 백 텀블링을 하며 단검을 던진다. 방문을 막 열고 총구를 겨누려던 경호원의 목덜미에 칼이 박혀 들어갔다. 이쯤 되면 경호원의 목이 칼을 빨아들인 건 아닌가 싶을 지경이다.
그러나 은우의 행위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으니. 단검을 던진 직후, 그의 손은 허리춤의 권총집을 풀었다. 여전히 백 텀블링 도중이었기에 권총은 아래로 추락을 시작했다.
막 바닥에 착지한 은우가 떨어진 총을 잡아채 방아쇠를 당겼다.
탕탕탕!
경호원 뒤로 나타난 안드로이드들이 머리 구멍을 선물로 받았다. 머리에 헬멧을 쓰지 않은 대가였다.
─키야, 예술적이다
─피지컬이 어떻게 되먹으신 건가요??
─이 와중에 몸 겁나 좋아ㅋㅋㅋ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오빠 가슴 크다~~ (덜렁덜렁)
「‘켄짱핥짝’ 님이 ‘1,000원’ 투척!
갓직히 특수부대원 아님 말이 안 됨」
“특수부대원은 아닙니다.”
─그럼 군인임?
─군인도 저건 못하지 않냐?
─요즘 누가 군대감ㅋㅋㅋㅋ
“군대도 안 갔습니다.”
애초에 모병제로 바뀐 지 오래다. 도전을 좋아하는 그가 군을 직업 삼을 일은 절대 없을 테고 말이다. 사선에 설 수 있다는 메리트가 있을지 몰라도, 자유롭지 않으면 갑갑하다.
은우는 총을 다시 권총집에 집어넣으며 빠르게 방을 뒤졌다. 미션 목표인 서류는 금고에서 발견됐다. 이제 남은 건 탈출뿐이다.
거기서 은우는 잠시 고민했다. 그가 있는 곳은 최상층 건물. 적지 한가운데라서 탈출하려면 시간이 꽤 걸린다. 지금처럼 헬멧을 쓰고 있는 수상한 차림이라면 더욱 그랬다.
─뭔 생각하심?
─또 뭐임ㅋㅋㅋㅋ
─말없이 3초 = 오지는 장면
“뛰어내리면 빨리 갈 수 있지 않을까요?”
그의 의문에 사람들이 물음표를 잔뜩 띄웠다.
─??
─?
─네?
─당신 갈고리 수집이 취미지?
은우는 그 이상 묻지 않았다. 애초에 도전하고 싶어지면 도전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현실이었다면 대안이라도 짜 놓고 움직일 테지만, 이건 게임 아닌가.
그는 방 안의 커튼을 전부 뜯었다. 두 장은 겹쳐서 몸에 묶고 나머지는 밧줄로 만든다. 그는 몸에 묶은 커튼이 흩날리지 않게 끌어안았다.
─설마?
─당신이 추락을 염두해 둘 거라고 믿고 싶지 않습니다.
─아, 에반데?
─에반데요?
─삼진에바로 아웃!
마지막으로 창문을 향해 총을 쏘았다. 방탄유리란 점은 조금도 문제 되지 않았다. 정확히 같은 지점을 총으로 쏘면 그 어떤 유리도 부서지곤 했다.
“아웃당했으니 나가겠습니다.”
결국 유리창이 와장창 부서져 나갔다.
그가 부서진 유리들을 밟고 창가에 서자 일인칭으로 방송을 시청하던 시청자들이 비명을 질렀다. 오직 캡슐에 접속해야만 시청 가능한 일인칭은 시야뿐 아니라 플레이하는 스트리머의 감각을 공유받는 탓이다.
「‘아니님아잠깐’ 님이 ‘1,000원’ 투척!
아니 그 아웃이 아니잖앜!」
태클이 걸렸지만, 은우는 외려 히죽 웃었다. 그의 몸이 한 발 앞, 공중으로 내디뎌졌다.
몸이 유선형의 벽면에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마찰력에 의해 옷에 불이 붙기 시작했지만, 미리 상정해 둔 바. 그는 벽면이 거의 수직에 다다랐을 즈음 벽을 박찼다.
하얀 외벽은 안에서 보면 창문이지만, 겉에서 보면 그저 흰 벽에 불과하다.
─이거 그냥 자살 아닌가요?
─어허, 어디서 켄님께 의문이냐! (켄님 근데 진짜 자살 아님?)
─ㅋㅋㅋㅋㅋ추락사 가즈아ㅏㅏㅏ!!
─1데스 각이다ㅏㅏㅏ!!!
발전된 미래 도시는 전깃줄이 없다. 대신 존재하는 건 열차들이 돌아다니는 공중 레일이었다.
그는 몸에 묶었던 커튼을 펼쳐 속도를 조금 늦춘 후, 밧줄 형태로 길게 만든 커튼을 꺼내 들었다.
기가 있었다면 이런 것들은 처음부터 필요 없겠지만, 이 캐릭터는 아니니. 끝에 총을 묶은 밧줄이 허공을 갈랐다.
몸에 묶여 있던 커튼은 속도를 늦춘 대가로 찢어져 날아가는 상태. 몸은 아직 레일보다 위쪽에 존재한다.
레일에 정확히 걸린 밧줄은 총 특유의 ‘ㄱ’자 몸 덕에 레일에 정확히 걸렸다. 그는 그 상태에서 밧줄을 확 당겼다. 밧줄이 더 단단하게 걸리고, 반동으로 그의 몸이 레일 쪽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이대로 추락했다간 밧줄이 그의 몸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찢어질 터. 은우는 이미 과부하가 걸리다시피 한 몸에서 더욱 힘을 짜냈다.
밧줄을 한 번 더 당기자 밧줄이 찌익, 찢어질 것 같은 소리를 냈고, 레일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인간의 육체였다면 이 레일을 잡아 살더라도, 이후엔 근육이 파열되어 재생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지금의 그는 기계. 혁명군에는 이 몸을 고칠 기술이 존재한다.
은우는 오늘만 사는 것처럼 악을 썼다. 기어코 레일에 상체가 걸쳐졌다. 왼팔은 어깨가 빠졌는지 잘 움직이지 않고, 오른팔은 전깃불을 튀긴다.
다만 이런 상황임에도 고통은 그다지 없었다. 게임 자체에서 통각을 줄여 준 덕이다. 아임휴먼뿐 아니라 가상현실 게임이라면 전부 적용되는 이야기였다.
그는 레일 위에 완전히 몸을 올렸다. 채팅 창이 익숙하게 레전드니 뭐니 떠들었다.
─근데 여기서 어떻게 내려가요?
하나의 채팅이 뼈를 찔렀다. 물론 은우는 생각해 둔 게 있었기에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걸로요.”
그의 시선 끝에는 레일 위를 달리는 열차가 있다. 시청자들이 또 갈고리를 무수히 띄웠다.
“약속 장소까지 금방 갈 수 있겠습니다.”
그는 팔과 달리 상대적으로 멀쩡한 다리를 이용해 레일 위를 달렸다.
열차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건만, 굳이 열차를 향해 달려가는 그의 모습에 사람들이 또 기함했다.
그리고 열차가 아슬아슬할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 은우는 점프하며 열차 앞면을 밟았다. KTX처럼 열차의 앞부분이 사선으로 기울어져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은우의 다리가 열차 전면을 밟고 지붕에 올랐다. 그와 동시에 그는 발을 딱 붙였다. 반동 때문에 지이익, 발이 끌렸다.
이대론 열차 끝까지 밀려서 떨어진다. 은우는 미끄러지듯 몸을 눕히곤 그대로 뒤집었다. 몸이 계속 밀려났지만, 그는 매끄러운 열차를 끌어안듯 붙잡았다.
찌이익.
열차가 달리는 속력으로 인해 몸이 계속 밀려난다. 온몸을 때리는 바람은 강력했다.
기어코 발이 열차의 지붕을 넘어 바깥을 향해 툭 튀어나왔다.
은우는 팔에 힘을 더 주었다. 그러자 밀리던 몸이 간신히 멈추었다. 간발의 차로 떨어지지 않고 매달리는 데 성공한 것이다.
빠진 왼팔이 뻐근하다. 그는 그것을 대충 끼워 맞췄다.
─와.....
─ㅗㅜㅑ....
─이제 숨 쉬셔도 됩니다
─켄 님 진짜 현실에서 뭐하시는 분이세요?
─갓직히 이쯤 되면 얼굴 필사적으로 가리는 이유가 있다!
─형, 솔직히 말해봐요 형 특수부대잖아요
─음모론 on!
채팅들이 뭐라 떠들었고, 은우는 그냥 웃었다. 헬멧 덕에 그가 웃는다는 걸 아는 사람은 일인칭 시청자들밖에 없다.
시청자 수는 차근차근 올라 8천 명 어림이었다. 후원과 구독 알림도 처음보단 줄었지만, 가끔 귀를 때리고 있다.
“켄은신인가 님, 만 원 후원 감사합니다. 다음 정류장에서 내린 다음 파트너랑 합류하면 되겠네요.”
─근데 아직 연락이 안 오지 않았음?
─그러네?? 이거 숙련자 모든데??
─뭔 연락?
─원래 여기서 기지 이동한다고 문자가 와야합니다.
─난 그런 거 못 봤는데
─숙련자 모드 한정임
─아직 문자가 오지 않았습니까?
─루머 퍼트리는 놈들 딱대
아임휴먼 내용을 아는 사람이 채팅에서 떠들었다. 스포라고 하기엔 좀 애매한, 정보에 가까운 말이라 간신히 밴은 피한 듯하다.
“전자 노트를 확인해도 딱히 온 게 없네요. 일단 파트너랑 합류하겠습니다.”
은우는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채팅을 넘겼다. 자고로 불확실한 정보에 매달려선 안 되는 법이다. 현실이든 게임이든 간에.
그는 플레이 시간을 확인하며 약속장소로 향했다. 그를 마중 나온 파트너의 차에 타면 이제 이번 미션은 완전히 클리어다.
『숨겨진 도전 과제를 달성함! -너무 빠른 거 아니야?』
파트너 차에 탑승하자 과제를 달성했다는 창이 떠올랐다. 은우는 그걸 바로 지워 버렸다.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다.
“기지 이동에 대해 알아?”
“혁명군들은 정말 대단해. 어떻게 이런 기지를 만들어 냈을까. 너와 함께 혁명군에 입단한 것이 정말 자랑스러워.”
지정된 대사 외의 상호작용은 키워드로 이뤄진다. 방송 전 해 본 게임들로 안 사항이다.
지금 파트너가 반응한 키워드는 ‘기지’. 아무래도 기지 이동은 루머인 모양이다. 일부 시청자들이 이럴 리 없다며 머리를 싸맸지만, 대세는 확실했다.
“정말이라면 나중에 밝혀지겠지요. 일단 지켜봅시다. 싸우지 마세요.”
─현명한 판단!
─싸운 놈들 벤당하기 전에 어서 ㄹㅇㅋㅋ만 쳐!
─ㄹㅇㅋㅋ
─ㄹㅇㅋㅋㅋ
하여튼 잘들 논다. 은우는 피식 웃으며 차에 실어 둔 수리 키트를 꺼내 몸을 수리했다. 제대로 된 처방은 아닐지언정 미리 해 두면 본부에서 수리 시간이 줄어든다.
그리고 곧 기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몸을 거의 고쳤을 즈음이었다.
파트너의 차에서 내린 은우가 눈을 가늘게 좁혔다.
평소와 달리 조용하게 소란스러운 기지는 전체적으로 이사를 시작하는 풍경이다. 곳곳에 박스들이 쌓여 있고, 사람들이 짐을 나르고 있다.
“…기지 이동이 완전한 루머는 아닌가 봅니다.”
─거봐!! 진짜 이사한다니까??
─이사하기 전에 기지로 올 수 있습니까?
─적어도 유어튜브에선 한 번도 못봄
─스트리머 사이에서도 못봄
─우리나라에도 이런 플레이는 없었습니다
─어....???
시청자들의 머릿속에 최초란 단어가 떠오르는 그 순간, 은우는 혁명군 메인 NPC, 클레어와 조우했다.
“벌써 돌아왔어요?”
본래도 어딘가 찜찜한 구석이 있던 캐릭터다. 그런 클레어가 당황스러운 얼굴을 하니 없던 의심도 생겨났다.
은우의 직감이 경종을 울렸다. 시청자들도 상상하지 못한 광경에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결정타는 어떤 시청자가 올린 한 마디였다.
─이거, 아무리 봐도 히든루트각인데?
댓글 창이 또 한 번 뒤집어졌다. 발매된 지 2년이 지나도록 발견되지 못한 히든 피스가 생방송에서 발견됐는데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헐, 헐 미친. 진짜 히든 루트라고??
─예전에 이 문자가 분기점 아닐까 한창 추측글 떠돌았는데 진짜였다고??
─이게?? 여기서??
─일찍 온 게 유효한 모양인데. 와, 미쳤다.
─그럼 이 루트 뚫으려면 아까 그 ㅈㄹ해야함??
─에반데ㅋㅋㅋㅋ
화합 엔딩이 없는 탓에 수작으로 평가가 그친 아임휴먼. 그런데 거기서 새로운 루트가 발견된 것도 모자라 혁명군의 치부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 상황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따르던 혁명군 루트를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사람들이 흥분으로 가득 찼다. 아임휴먼을 플레이한 이들은 벌써 채팅 창을 자신들의 추론으로 점령하는 중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은우는.
“2시간 됐네요. 여기서 종료하겠습니다.”
매몰차게 방송 종료를 외쳤다.
* * *
은우는 캡슐을 나왔다. 후원음이 아니더라도 채팅 창의 존재 자체만으로 시끄러웠던 게임 속과 달리, 캡슐 밖은 참 조용했다.
『희수> 첫 방송치고 잘하던데? 오늘 음청 벌었드만』
『희수> 저녁 쏴라ㅋ』
그는 희수의 문자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 외의 문자는 기철에게서 온 것밖에 없다.
그는 기철의 문자는 나중에 확인하기로 하며, 반쯤 닫혀 있던 방문을 열었다. 거실 불은 켜져 있었다. 이 시간대면 부모님이 들어올 시간이므로 새삼 놀랄 만한 사항은 아니다.
그는 거실로 나갔다. TV를 보고 있던 아버지가 그를 힐끗 보더니 다시 TV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주방 탁자에서 TV를 보는 어머니는 그가 나오든 말든 아무래도 좋다는 표정이다.
은우는 주방으로 들어가 물을 꺼내 마셨다. 침묵이 사위를 감싸 안았다.
띠릭.
현관문 잠금장치가 열리며 발소리가 들렸다.
“다녀왔습니다!”
“어머, 왔니?”
형을 반기는 어머니를 뒤로하고 은우는 방으로 들어왔다.
“은우도 안녕!”
다만 형의 쾌활한 인사에는 발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고생했어.”
그는 한 마디만 남기고 돌아섰다.
“하여튼 쟤는 형이 일하고 들어왔는데도 삐딱하게.”
“에이, 그러지 마세요. 은우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잖아요.”
찰칵.
방문이 닫혔다. 그와 동시에 소음이 차단되었다.
그는 뒷목을 쓸었다.
팀장님의 문자나 볼까. 기계적으로 침대에 널브러진 몸은 전자 노트를 펼쳤다.
『박 팀장님> 오늘 방송 정말 최고였습니다. 어둠전은 말할 것도 없고, 아임휴먼은 정말이지……. 은우 씨를 발굴해 낸 건 팀장 생활 최고의 업적일 겁니다.』
『박 팀장님> 히든 루트를 발견해 내고 바로 끄신 건 잘하신 겁니다. 첫 방송이 너무 긴 것도 안 좋거든요. 은우 씨가 찾아낸 히든 루트야…….』
박기철의 문자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문자 전문이 그에게 건네는 칭찬 내지 조언이었기에 불쾌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은우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서렸다.
“감사합니다, 팀장님.”
그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대신 지금 가장 전하고 싶은 말을 건넸다. 박기철의 답장이 뚝 끊겼다.
그사이 은우는 희수에게도 답장을 보냈다.
“몇 시에 볼까.”
답은 금방 왔다.
『희수> 8시?』
“뭐 먹고 싶은데.”
『희수> 소갈비』
“알았어.”
그는 박 팀장이 계산해 준 일일 후원금을 떠올리며 눈을 감았다. 희수에게 드디어 한턱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그러나 더 즐거운 것은 이번 경험 자체였다.
돈이 엄청나게 벌렸다는 건 둘째 치고서라도, 방송이라는 건 정말 색다른 재미가 있었다.
전생, 현생 합쳐서 그 자신이 관심종자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건만. 이번 방송에서 겪은 사람들의 반응은 원초적인 감각을 자극하고 중독시켰다.
어쩌면 전생을 깨달은 이후에, 아니 그 이전부터 이 세상에 스며들지 못했던 것이 이런 현상을 불러일으켰는지도 모른다. 방송을 켜고, 시청자들과 대화를 할 때면 그도 정상적인 사회의 일원처럼 느껴졌으니까.
물론 그가 비정상이진 않을 것이다. 다만 외모로 차별받는 것도 모자라 방황하는 바람에 깊어진 골은 그를 고립시켰다. 가족에게서도, 그나마 가지고 있던 지인들에게서도.
그런 상황에서 타인과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는 공간을 갈구하게 되는 건 필연이라.
『박 팀장님> 저도 감사합니다. 오늘 수고하셨고, 앞으로도 알찬 방송 부탁드립니다! ^ω^)/』
박기철이 문자를 보내 왔다. 첨부된 이미지는 기프티콘이었다.
결국 은우는 푸하하 웃고 말았다. 기분이 좋아졌다.
* * *
은우가 저녁 약속을 이행하고 있을 때, 커뮤니티는 그에 대한 글로 가득 찼다.
<켄 방송 봤는데 첫방부터 레전드 오짐>
하꼬시절? 어림도 없지!
첫방인데 시작부터 몇백 찍더니 어둠전 할때는 7천인가ㅋㅋㅋㅋ 아임휴먼으로 넘어갔을 땐 기어코 1만 넘기더라ㅋㅋㅋ
첫방이라서 긴장이라도 했는지 말수는 적었는데, 대답은 또 꼬박꼬박하고 채팅도 엄청 잘 보고ㅇㅇ
피지컬은 진짜 오지긴 개오지던데;; 별의 기사에선 어둠전은 영상으로 봐서 그러려니 했는데 오히려 어둠 나오는데까지 가는 과정이 킹졌음,,,,,
2부로 한 아임휴먼은....
긴말할 거 없고, 히든루트 딱대
─켄? 처음 듣는데 1만?
└놀랍게도 실화임ㅋㅋㅋ
└첫방 아니었음 그 이상 찍었다
└이거 ㄹㅇㅋㅋㅋㅋㅋ
─뷰봇 아님?
└언제적 뷰봇얘기냐 멍청아
└뷰봇 사라진지 언젠데ㅉㅉ
─아임휴먼에서 히든루트 나왔다고??
└ㅇㅇ 리얼임. 다시보기ㄱㄱ
└아임휴먼은 처음부터 끝까지 레전드임ㅋㅋㅋ
└난 튜토리얼에서 정찰병 잡는 부분부터 지렸음ㅋㅋㅋ
└이건 킹정이지ㅋㅋㅋㅋ
인터넷 방송이 활성화된 이래, 한 스트리머당 평균 시청자 수는 형편없이 줄었다.
인기가 있는, 소위 대기업 스트리머들은 백, 천, 만 단위도 쉽게 끌어 오지만, 대기업이 아닌 이들은 십 자릿수를 넘기는 것도 어려웠다. 스트리머들이 너무 많은 탓이다.
그러나 첫방부터 몇 백을 넘어 7천을 끌어모으고 끝내 1만마저 넘긴 신성이 출현했다. 그것도 방송 2시간 만에.
설사 지분의 절반이 외국인일지언정 화제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신성이 지금껏 누구도 선보이지 못한 퍼포먼스를 내보인 상태니 더욱 그렇다.
<아임휴먼 히든루트 나온 거 봄??>
숙련자 모드 한정으로 3번째 암살 미션 그거 원래 깨고나면 기지 이동했다고 문자 오잔슴
근데 암살 미션 ㅈㄴ 빨리 깨면 문자가 안 오고 원래 기지로 갈 수 있는 듯
빼박 히든루트각
근데 켄 이 새끼가 거기서 방종함ㅅㅂ
─라떼는 말이야,,,,첫방이면,,,,,끝까지,,,,했다고~~!!
─플레이도 예술인대 방종타이밍도 예술이다 시빰!
─신입주제에 자신감 너무 오지는 거 아님? 여기서 자르면 다음 방송 볼 것 같아?? 어????
└봐야지ㅋ
└시발......(구독 누름)
└ㅋㅋㅋㅋㅋㅋㅋ이거 흑우아녀ㅋㅋㅋ
─다른 스트리머 중에서 뚫는 사람 안나올까?
└그럴 수 있었음 진작에 나왓겠지ㅋㅋㅋ
└쌉ㅇㅈㅋㅋㅋㅋ
사람들은 히든 루트를 앞두고 종료된 방송에 발만 동동 굴렀다.
어지간한 히든 루트라면 다른 사람들이 따라 하는 걸 보기라도 하련만, 은우가 찾아낸 히든 루트는 따라 하기도 어려운 수준이었다.
<아임휴먼 히든루트 추측>
일단 숙련자 모드 3번째 암살미션을 일정시간 내에 깨는 게 조건인 것 같음
그리고 그 조건은 아마 문자가 오는 시간 같음
기지이동 문자가 날아오는게 미션 시작하고 1시간 훈데, 그 안에 깨야지만 원래 기지로 갈 수 있단 것임
근데 숙련자 모드 암살미션 평균 클리어 시간이 3시간 반이죠? 제일 빠른 기록이 1시간 10분이죠? 이이상 단축못한다고 선언했죠? 못깨죠? 켄밖에 없죠?
ㅅㅂ 이걸 어케 하라고 넣은 거냐 제작사
─ㅋㅋㅋㅋㅋㅋㅋ평균 클리어 시간 따라잡는 것도 불가능한데 거기서 2시간 반을 단축해야하는ㅋㅋㅋㅋ
─켄은 대체 어떻게 깬 거임ㅋㅋㅋㅋㅋ
└심지어 30분도 안 되서 컷함ㅋㅋㅋㅋ
└인간이 아님ㅋㅋㅋㅋ
─결국 히든루트를 보기 위해선 켄 방송 기다려야한단 거 아님. 아, 켄 마렵네;;
─아임휴먼 히든 엔딩 나옴??
└켄이라고 신입 스트리머가 생방에서 찾아냄 킹시보기ㄱㄱ
추측 글이나 생방 일부를 클립으로 따 올린 글들이 우후죽순 올라오며, 사람들은 은우의 다음 방송을 기다렸다.
은우는 아직 알지 못하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