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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자도 방송할 수 있습니다-17화 (17/233)

17화

『미쳐 버린 망령, 《DieeeHHH》가 침입했습니다.』

보스만을 앞둔 그 순간, 익숙해진 알림 창이 떠올랐다. 은우는 그것을 보곤 눈 하나 깜짝 안 한 채 상대할 준비를 했다.

그의 생각이 조금 달라진 건 저 닉네임을 알아본 검크리트 때문이었다.

─저 닉 쓰레기새끼 꺼 아니냐

─? 머임? 스트리머임?

─유명한 사람이냐?

─ㄴㄴ 스트리머는 아님

─어 맞다 진짜 그새끼 닉인데?

검크리트 중에서도 저 이름을 알아본 이들은 소수였던지라 채팅 창이 분분해졌다. 완전히 유명한 사람이었다면 해명이 나오든 뭐가 나오든 했을 텐데, 그것도 아니어서다.

“대체 누구길래?”

─안 좋은 쪽으로 유명한 검은기사 썩은물임

─저새끼 때문에 검은기사 접은 뉴비 많아요ㅠㅠ개새끼ㅠㅠ

─외국에도 쟤한테 이가는 사람 많을걸?

─게임사에서 제지 안 해요?

─온라인 겜도 아니구 멀티 끊을 수도 있으니까;;

다행히 아는 이들만으로도 정보를 충분히 모을 수 있었다. 소수에 불과함에도 검크리트들이 지금껏 쌓인 울분을 토해 내는 것처럼 우다다 말을 이은 덕이다.

하여튼 그들의 말을 요약하자면 실력 좋은 비매너 유저였다.

협력 모드로 와 놓고서 트롤링을 하지 않나, 침입 모드에선 티배깅을 하지 않나. 보디랭귀지로 모욕을 주는 것도 심심찮고, 상대가 뉴비라는 판단이 들면 온갖 수법을 통해 괴롭힌단다.

막 게임 시작한 초심자들을 위해 침입은 1회차 캐릭터만이 할 수 있도록 설정돼 있으나, 문제는 인성과 반비례하는 실력. 오히려 이 짓만 하다가 썩어 버렸다는 게 사람들의 말이었다.

─알거나 겪어본 사람들 중에선 차단 1순위임ㅇㅇ

─걍 보스방 바로 들가죠? 그러면 강제로 내보내질 텐데

─상대하지 말고 갑시다

검크리트들은 그에게 똥 밟았다 위로하며 그냥 무시할 것을 종용했다. 그것에 휩쓸린 시청자들도 보스전이나 치르자는 것에 동의했다.

그러나 은우는 그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딱히 그가 정의의 사도인 것은 아니지만, 저런 놈을 두고 피해야 할 만큼 약한 것도 아니지 않나.

자기 강하다고 뻗대면서 사람 괴롭히는 녀석들을 싫어하기도 하고. 저깟 놈을 피하는 건 더더욱 싫다.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라는 말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은우의 말끝이 흐려지고 입술이 살금 올라갔다. 사람들이 잠시 동안 갈고리를 띄웠다.

“제가 저 사람을 피해야 할 만큼 약한 건 아닐 것 같은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킹존심 on

─은근 자존심 있어ㅋㅋㅋ

─아 근데 켄이면 쌉인정이지~~

─솔직히 켄은 안 피해도 된다 ㅇㅈ? ㅇㅇㅈ

─야, 다 비켜! 학살좌 나간다!

그의 발언에 지금껏 ‘피하자’로 의견을 통일하던 사람들이 바로 태세를 전환했다. 아무렴, 스트리머를 배려해서 후퇴를 권고했을 뿐 이 대결을 보기 싫어서 권한 것은 아니었으리라.

이때를 빌려 그들로선 단죄할 수 없는 악당이 당하는 꼴을 보고 싶기도 할 테고.

─정2구현 딱 대

─켄님 진짜 부탁드려요ㅠㅠ 차단하는 방법 몰라서 쟤한테 저 2번 털림ㅠㅠ

「‘정의구현시급’ 님이 ‘10,000원’ 투척!

저 나쁜 놈 퇴치만 해주시면 십만 원 바치겠습니다」

─ㅗㅜㅑ....악명 진짜 높나보다

「‘켄님복수부탁드립니다’ 님이 ‘50,000원’ 투척!

묻고 복수대행금 20만 원 겁니다.」

「‘저새끼죽는거본다’ 님이 ‘20,000원’ 투척!

형...아니 동생....아니 형.....믿을게요...」

─미션 엄청 터지는데?

─검크리트들 다 일어섰나 봄ㅋㅋ

「‘켄아제발해내자’ 님이 ‘10,000원’ 투척!

쟤만 잡아주면 평생 구울단함 바로 1년치 구독할게」

「‘검기쉬운데?’ 님이 12개월 구독했습니다!

믿으니까 질렀다ㅇㅇ 성공하면 추가로 20명한테 구독권 뿌림」

의견이 반전되자 사람들의 텐션이 더 올라갔다. 특히 열성적으로 피하자 외쳤던 이들이 더한 반전미를 보였는데, 쏟아지는 후원과 구독이 그것을 증명했다.

─업보on

─저새끼 방플하고 있으면 레전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강남건물주’ 님이 ‘50,000원’ 투척!

미션겁니다. 제가 만족할 만큼 지금 침입한 플레이어 가지고 놀아주세요. 금액 한정 안 할게요.」

「‘赤竹’ 님이 ‘516,330원’ 투척!

나는 저것이 죽기를 바랍니다. 6천 위안 걸겠습니다.」

─와....백 단위 큰손님들까지 등판했다....

─먹튀 아님?

─강남 머님은 줄곧 몇 십만 씩 쐈잖음

외국인들까지 심심찮게 미션을 걸기 시작했다. 다국적으로 원한을 샀다는 말이 틀리진 않은 모양이다.

“딱히 미션 안 주셔도 잡았겠지만… 이렇게까지 해 주시니 더 열심히 상대해야겠네요.”

은우는 목덜미를 쓸다가 끼고 있던 장비 일부를 벗었다. 들고 다니는 것엔 무게 제한이 없어 처음 옷을 버리지 않은 게 제법 도움이 되었다. 금세 투구를 제외하면 안 입은 수준의 방어력이 되었다.

“대신 이런 쪽은 별로 자신이 없다는 것 하나만 알아 줬으면 하는데…….”

평소보다 낮아진 목소리가 살랑거리듯 시청자들의 귀를 간질였다. 웃음기가 살짝 섞인 저음은 숨소리와 어울려 퍽 매혹적이다.

─ㅗㅜㅑ.....

─지금 귀 녹았음.....

─저 목소리 가지고 동생이라니 이건 반칙이다

─근데 뭐가 자신이 없어요?

─저시끼 땜시 잡친 기분이 말 한마디 듣고 싹 나아짐;;

─질 자신이ㅋ?

은우는 뒷목을 쓸었다.

“죽이면 죽였지 약한 사람을 모욕해 본 적은 별로 없거든.”

아까보다 짙어진 웃음기가 그의 저음을 꼭 소년의 것처럼 들리게 만들었다. 처음으로 하는 반말과 맞물리자 그건 보통 때보다 더한 매력을 만들었으니.

상대가 악질 게이머란 것이 밝혀진 순간보다 더한 속도의 채팅 폭주가 이뤄졌다.

▣ 017. 사 두면 다 쓸모가 있다

[대신 이런 쪽은 별로 자신이 없다는 것 하나만 알아 줬으면 하는데…….]

방플 하고 있는 거 아니냐던 어떤 시청자의 우스갯소리는 놀랍게도 현실을 맞췄다.

비록 처음부터 방송을 보고 있던 것은 아니나, 침입할 때 떠오르는 상대의 아이디를 보고 다급히 방송을 켠 것이다.

멀티플레이의 핵심이 타인의 위치나 행위를 알지 못하는 긴장감에서 오는 걸 감안할 때, 방송을 봄으로써 상대의 전략을 파악하는 방플은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행위다.

검은기사의 경우 액션 게임인지라 상대적으로 불리함이 덜어지지만, 함정 설치가 가능한 점에서 절대 자유롭지 않았다.

시야 일부분이 가려지는 것쯤이야 감수할 수 있을 정도로.

[죽이면 죽였지 약한 사람을 모욕해 본 적은 별로 없거든.]

“아, 새끼… 입 잘 터네.”

신박한 방법으로 도구를 다루던 스트리머 이름을 외우길 잘했다. 악질 게이머는 우쭐거리며 켄을 비웃었다.

“그래 봤자지.”

자신은 검은기사가 발매된 이래 줄곧 이 게임을 해 온 사람이다. 피지컬 차이가 아무리 나도 경험치 차이가 이렇게 압도적이면 절대 질 리 없다. 그는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다.

여기 맵은 자리 선점 할 만한 곳이 있어.

악질 게이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자리부터 잡았다. 함정이 가득한 《저주받은 굴》에서 유일하다시피 함정이 없는 방이었다. 사다리로 올라갈 수 있는 위층이 있어 고지도 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본래 꽉 차 있는 몬스터도 켄이 다 잡아 놨고.

본래라면 플레이어가 이곳에 올 거란 보장이 없어 함정을 깔아도 소용이 없지만, 현 상대는 켄이다. 방송에서 선언한 이상 켄은 그를 잡으러 올 수밖에 없다.

“능욕을 해 주마!”

그는 방으로 들어오는 입구를 비롯한 곳곳에 덫을 뿌렸다. 그리곤 위층으로 올라가 저격을 준비했다. 원거리 무기가 아무리 다루기 힘들어도 아이템발과 덫이 겹쳐지면 얼마든지 쓸 수 있다.

이제 인고의 시간이다. 악질 게이머는 켄이 언제 올지 셈하며 발을 굴렀다. 생각보다 이르게 상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석궁을 고쳐 쥐었다. 켄의 발소리가 그의 귀를 두드리다가 함정을 발견이라도 했는지 멎었다.

“내가 하늘 위에 하늘을…….”

그가 비릿하게 웃음 지었을 즈음, 핑! 하는 소리와 함께 화살이 위층과 아래층을 구분하는 벽면에 꽂혔다. 화살의 끝엔 밧줄이 묶여 있다.

“……?”

너무 뜬금없는 사물의 등장에 사고가 정지했다. 팽팽했던 밧줄이 흔들릴 때는 이미 그 위를 무언가가 달리고 있었다.

“시발!”

오브젝트가 부서지진 않지만, 화살의 경우 일정 시간 동안 배경에 박혀 있다.

한데 그것을 이용해 밧줄을 함정 위로 걸어 두고 그 위를 걸어올 줄이야.

악질 게이머는 다급히 석궁을 집어넣고 메이스를 들었다. 계획과 조금 달라졌지만, 괜찮다. 그냥 함정 농락이 스킵됐을 뿐이다. 그는 초조함을 애써 감췄다.

이제 벽을 박차고 위로 뛰어오르겠지. 이 높이면 아슬아슬하게 난간에 손을 걸칠 수 있으니까. 그는 그것을 예상한 후, 켄이 뛰어오를 때에 맞춰 메이스를 휘둘렀다.

막 난간을 잡은 켄이 뒤로 점프했다.

“병신 새끼!”

이제 넌 함정 위로 추락하는 거야! 그가 저열한 쾌감을 느꼈을 때, 채찍이 허공을 가르고 난간을 휘감았다.

켄의 몸이 당겨지며 난간을 뛰어넘고 바닥을 굴렀다. 다급히 메이스를 휘둘렀지만, 이미 늦었다.

켄이 백스텝을 밟으며 거리를 더 벌렸다. 그 손에 들어 올려진 것은 신성한 결투의 부적이었다.

“자신 없으니까 회복부터 막으려고?”

그는 당황을 감추며 언성을 높였다. 의사소통이라곤 보디랭귀지밖에 안 되는 게임이지만,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그러나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켄이 부적을 사용했다. 자기 자신에게.

악질 게이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 * *

─ㅋㅋㅋㅋㅋㅋㅋ와ㅋㅋㅋ

─이걸 여기서ㅋㅋㅋㅋㅋㅋ

─어그로 진짜 잘끈다ㅋㅋㅋㅋ

─ㅋㅋ엌ㅋㅋㅋㅋㅋㅋ

은우는 회복 룬의 빛이 꺼진 것을 확인했다. 이제 10분 동안 그는 회복 룬을 이용한 치료가 불가능하다.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채찍마저 집어넣은 채 맨손을 까닥였다. 투구 사이로 보이는 상대의 눈매가 어그러졌다.

“@#@%%$^!”

상대는 괴성을 지르며 덤벼 왔다. 듣기론 실력이 뛰어난 편이라는데, 아무리 봐도 그렇게 뛰어나 보이진 않는다.

은우는 매끄럽게 적을 흘린 후 그대로 메쳤다. 자신의 힘에 자신이 날아간 게 부끄러운 듯 상대는 제법 느긋하게 일어났다.

“실력이 좋다 들은 것 같은데.”

은우는 도저히 납득이 안 가서 진심으로 물었다. 사람들은 도발로 받아들인 모양이지만, 그는 진심이었다.

─벌써부터 수준차이 보이고요ㅋㅋ

─아, 너무 시원해ㅠ

「‘그렇게만가자’ 님이 ‘1,000원’ 투척!

능욕가즈아!」

─정의구현 딱 대!!

“후원 감사합니다.”

빨리 죽이길 원했다면 방금 그 순간에 처리하면 되었을 터. 그러나 사람들이 바라는 건 저치를 욕보이는 것이다.

타인을 업신여기는 데엔 별로 취미가 없지만, 단순히 돈만 걸린 문제가 아니니까.

은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걸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몸을 움찔거렸다.

발끈하기라도 했나 보지? 은우는 다시 손가락을 까닥였다.

다시 덤벼드나 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상대는 거리를 유지했다. 슬금슬금 옆으로 걸으며 간을 보는 게 본격적인 싸움의 자세다.

“정신 차렸나 보네요.”

밟는 자세를 보아하니 사람들이 헛말을 한 건 아닌 모양이다. 지금까지 이겨 낸 사람이 없을 만하다.

“평가를 다시 하겠습니다. 나쁘지 않네요.”

현시대의 무술은 폭력이란 형태보단 스포츠의 틀만 남아 있으니. 은우는 상대가 그런 무술에 얽매이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간단한 논리였다. 스텝을 밟는 모습에서 정석보단 본능이 보였다.

─올ㅋㅋㅋ

「‘시켜줘명예구울단’ 님이 ‘10,000원’ 투척!

아, 넘 시원하구여....」

─뭘 보고 다시 하는 거임 대체ㅋㅋㅋ

─아, 이것이 천상계인가....

“처음엔 그냥 덤벼들길래 멍청이인가 했는데, 정신 차리고 움직이는 걸 보니 제법 괜찮아서요. 싸울 줄 아네요.”

다듬어지지 않았으나 완전히 야만적이지도 않다. 배운 것을 그 자신의 것으로 소화했거나, 눈대중으로 따라 한 것에 가깝다. 흔히 볼 만한 재능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어딜 봐서 아는 거임ㅋㅋㅋㅋ

─방금 그냥 걸은 것밖에 없었는데 대체 무엇이 평가를 바꿨나...

“걸었잖아요. 보폭에 흔들림이 없이 거리가 일정하게, 호흡과 박자가 어긋나지 않도록.”

─ㅋㅋㅋ...ㅋㅋㅋㅋㅋ..

─켄 진짜 무술가인 거 분명함

─중국인인 거 아냐?

─ㅈㄹㄴ 분명 척씨일 거임

─ㅋㅋㅋㅋㅋㅋㅋㅋ척춘경ㅋㅋㅋㅋ

기철이 그를 설득할 때 말했던가. 가상현실은 몸을 움직일 줄 알아야 한다고.

은우는 그것에 하나를 더하고 싶었다. 단순히 움직일 줄 아는 것과 싸울 줄 아는 것은 또 다르다. 요컨대 달리기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은밀하게 걷는 건 일부만 할 수 있는 것처럼.

“다만… 뭐, 딱 나쁘지 않은 걸로 그칩니다.”

그렇지만 지금 서 있는 건 은우였다. 저치의 재능은 그가 가진 재능을 이기지 못했으며, 경험은 골을 메울 수 없을 만큼 차이가 났다.

일반인들에겐 범접할 수 없는 실력자일지라도, 일평생을 전장에 바치다 못해 신마저 죽였던 이 앞에서는 아장아장 걷는 아기에 불과하다.

“그냥 주먹질 좀 할 줄 아는 깡패였네요.”

은우는 그의 기준에서 상대를 판단했다. 그것은 조금의 사감도 없는 평가였다. 비록 듣는 이들 모두에게 박탈감을 선사했다 해도.

그는 오지 않는 상대를 대신해 먼저 짓쳐 들어갔다. 상대가 메이스를 휘둘렀지만, 가볍게 회피하면 그만이다.

어차피 그들의 육체 스펙은 동등하고, 상대는 갑주까지 두르고 있으니. 갑주와 무기를 들면 기동이 느려진다. 은우는 놀리듯 반 박자 늦게 피했다. 그럼에도 메이스는 약속이라도 한 듯 은우를 피해 갔다.

─능-욕

─와ㅋㅋㅋ진짜 맥을 못 추네ㅋㅋㅋ

─저새끼 인성은 터져도 실력 하난 그래도 봐줄만 했는데...ㅋ

─이것이 클라스다 이 말이야~

방금 묘하게 공격로가 흔들린 것 같은데. 은우는 종잇장 차이로 피하려던 메이스가 훨씬 여유롭게 지나간 걸 확인했다.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니 새삼 그의 말에 흔들릴 이유가 없는데…….

“제 말 못 들으실 테니까 말합니다만.”

퍼억!

은우의 권격이 상대의 명치를 때렸다. 아직 추가 타의 기회가 있으나, 은우는 망설이지 않고 빠졌다. 어차피 저 머저리는 그의 영역에서 허우적거리는 것밖에 못 한다.

“그따위 실력으로 잘도 업보를 쌓으셨습니다. 저 같으면 부끄러워서라도 조신하게 굴었을 텐데. 아니면, 그래.”

까닥까닥. 손가락이 다시금 흔들렸다.

“운이 좋은가 봅니다. 당신보다 강한 사람을 이제껏 못 만나 봤다니.”

말을 채 잇기도 전에 상대가 호흡을 잘라먹고 들어왔다. 나름 페이크까지 섞은 게 나쁜 판단은 아니지만, 조급함이 엿보인다.

이 새끼, 무슨 수를 썼는진 몰라도 내 말이 들리는구나. 심지어 인성질을 하는 주제에 본인이 당하는 건 못 버티고. 은우의 입술이 삐뚜름해졌다.

별로 안 해 봐서 자신이 없다 할 뿐이지, 못한다곤 안 했다.

“왼쪽으로 칠 것 같지만, 저건 페이크네요. 진짜는 올려 베기입니다.”

은우는 아예 해설을 시작했다. 시청자들을 배려하는 것도 있지만, 상대를 자극하려는 의도가 더 컸다.

그는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상대의 공격을 피했다. 일부러 화려한 모습을 보이고자 팔딱거리던 보스전과는 달랐다.

그때도 효율을 추구하긴 했으나, 지금 선보이는 건 그 이상이었다. 함정으로 인해 정신을 바짝 차린 것이 한몫할 것이다.

─와....약간 춤추는 거 같다

─켄 무슨 종이인형임? 공격이 다가오면 피하네

─종이인형ㅋㅋㅋ

─이와중에 말하는 것마다 딱딱 들어맞는 것 보소;;

은우는 피하면서 한 대씩 톡톡 건드렸다. 체력 바가 깎이긴 하는 건지 싶을 정도로 미미한 차이였으나, 그게 오랫동안 반복되자 티가 확 났다.

─근데 기분 탓인가, 갈수록 쟤 뭔가 허술하지 않냐

─야너두? 야나두!

시청자들도 슬슬 변화를 눈치챘다. 이쯤 되면 저쪽 멘탈은 아주 탈탈 털렸을 거다.

여기서 마지막 한 방을 넣어 줘야겠지. 은우는 상대의 체력 바를 확인한 후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회복 방울이다.

“체력이 부족하셔서 그런가, 힘이 빠지셨습니다.”

팍.

은우가 던진 회복 방울이 적의 머리에 명중했다. 연두색 빛무리가 흩어지며 그의 체력을 꽉 채워 주었다.

자기가 지금 뭘 당했냐는 듯 멈춰 서서 멀뚱멀뚱하는 상대의 모습까지 완벽했다.

“역시 사 두면 다 쓸모가 있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돌은 새끼얔ㅋㅋㅋㅋㅋㅋ

─와ㅋㅋㅋ진짜 능욕 오진다ㅋㅋㅋ

─미래를 본 쇼핑이었누ㅋㅋㅋ

시청자들이 뒤집어지고, 은우는 뒷목을 쓸었다.

아, 그러고 보니 도전해 보고 싶은 게 있었던가. 이것까지 성공하면 사람들이 ‘이 수준이면 완벽한 능욕이다.’ 인정해 줄 것 같다.

뭣보다 지금 제일 성공 가능성이 크기도 하고.

은우는 고민하다가 냅다 질렀다.

“줄곧 생각해 온 게 하나 있습니다만, 맨손도 패링이 가능합니까?”

─?

─??

─그게 되겟음?

─안되지 않을까요??

“맨손도 무기 취급을 받는다면 이론적으로 패링이 불가능하진 않을 텐데.”

─그치만 맨손으로 막으면 뎀지 입잖음

─어....데미지를 입기전에 튕겨낸다?

─그게 되나?

─무기에 닿는다=뎀지 입는다 이거잖음 불가능하지

시청자들도 혼란에 빠졌을 즈음, 한 사람이 명쾌한 결론을 내었다.

─어둠은 잡힐 거라고 생각해서 잡았고, 뛰어내려서 가는 건 가능할 줄 확신해서 해봤냐? 도전해보지 않곤 모르는 거지

“옳은 말씀입니다.”

은우의 자세가 달라졌다. 지금까지 타이밍에 맞춰 상대를 때리기만 하던 손이 사마귀의 칼날처럼, 부엉이의 날개깃처럼 펼쳐졌다.

“@[email protected]!%^#$!”

할 수 있다. 마침 상대는 멘탈이 흔들린 덕에 공격로도 훤히 보이지 않나. 이거면 이따위 신체로도 가능하다.

은우는 숨을 삼키고 멈추었다. 그의 인지가 시스템을 넘어 세상의 속도를 늦추었다. 몸은 빨라지지 않으나, 사고가 빨라지면 많은 것을 바꿀 수 있으니.

세상의 프레임이 바뀐다. 100프레임이었던 것이 50으로, 50프레임에서 25로, 25프레임에서 10으로. 아주 느릿하게 사진 한 장, 한 장을 넘기는 것처럼.

하면 공격이 날아오는 각도, 메이스의 뒤틀림, 대미지를 입지 않고 쳐 낼 수 있는 방향, 힘 따위를 알 수 있다. 직감과 이성의 절묘한 줄다리기 속에서 정답이 보이는 것이다.

그의 손이 상대의 메이스와 천천히 교차하기 시작했다.

메이스의 가시를 피하고, 뭉툭한 부분에 손등을 가져다 대며 미끄러트린다. 그리고 손등이 무게중심을 무너트릴 수 있는 지점에 다다랐을 때, 힘을 주어 쳐 낸다.

티잉!

특유의 흰 불똥 이펙트가 뜨며 메이스가 튕겨 나갔다.

검은기사 최초의 맨손 패링이 등장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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