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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자도 방송할 수 있습니다-24화 (24/233)

24화

시간은 아이가 베어 문 솜사탕과도 같았다. 은우를 부를 때 으레 붙곤 하던 신입이란 단어가 혀끝에서 사라졌으니 시간 또한 그곳에서 녹았을 것이다.

애매하게 방송계에 들어왔던 태도는 전업으로 거의 돌아선 채다. 광고까지 들어올 정도니─거절했지만─전업을 해도 무리가 없을 거란 판단이 섰다.

─부두 물고기!

─크다!

“봤습니다.”

G페스티벌 전날, 은우는 낚시를 하며 시청자들과 대화를 나눴다.

그가 현재 플레이하는 게임은 ‘모이세요, 정령의 숲’. 빨간 망토의 액션 제작사의 신작 게임을 플레이하느라 피폐해진 심신을 달래기 위해 택한 것이다.

“크네요. 대충 다랑어 아니면 청새치 같은데.”

─ㅇㅇ

─다랑어 딱대

─7천 원 딱대

─이분 진짜 크기 칼 같이 재는 듯...

사람들은 의외로 그가 이렇게 소소한 힐링 게임을 하는 것도 좋아해 주었다.

“잠깐, 거미 있다.”

─ㅋㅋㅋㅋㅋ

─아니 켄님 또 맨손으로 거미 잡아ㅠ

─잠자리채로 잡는 거라구요ㅠㅠ

─채로 잡아야 인정받는데....귀찮아서 맨손으로 잡고 잠자리채에 넣어버리기ㅋㅋㅋㅋ

─서순 진짜ㅋㅋㅋㅋ

물론 힐링 게임에서도 도드라지는 미친 피지컬과 기상천외한 사고방식 때문일 것이다. 1부, 2부로 나누어 액션 게임을 하는 구조 덕도 있을 것이고. 비록 시청자 수 차이는 제법 크지만, 그래도 1만대다. 은우는 명실공히 대기업 스트리머로 자리매김했다.

「‘근데켄님’ 님이 ‘10,000원’ 투척!

켄님도 G페스티벌 가세요??」

“후원 감사합니다. 네, 참가합니다.”

박기철의 장담대로 그는 심사를 통과했다. 그 사실을 알렸을 때 희수가 보내 온 돌아다닐 부스 목록이 몇 개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리라.

─헐 언제 가세요? 선물 드려도 되나?

─현실후원 ㄱㄴ?

─심사 함격함?

─나도 G페스티벌에 참가한다. 사인 받을 것이다.

─신청 합격함?

─아, 나 첫날인데ㅠㅠ 켄니뮤 안오시겠지ㅠㅠ

“심사 합격해서 방송 틀 수 있습니다. 현실 후원은… 선물은 너무 과한 것만 아니면 괜찮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그에게 다가오긴 할까? 은우는 그가 공공장소에 나갈 때마다 흠칫거리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동경은 과연 공포를 이길 수 있을지.

“뭐, 말 거시는 데 성공하시면 악수쯤이야.”

─얼굴 깐 채로 방송 안하고 돌아다닐 생각인가?

─ㄴㄴ 켄 키 197임 무조건 들킬걸?

─197이면....난 무서워서 말 못걸듯....

─ㅋㅋㅋㅋㅋ그거네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용자만 사인해준다ㅋㅋㅋ

─헐, 그럼 드디어 얼공임??

“오토바이 헬멧 쓰고 갈 겁니다. 못 알아보는 일은 없으시겠네요.”

─그럼 무조건 알아보지ㅋㅋㅋ

─그놈의 헬멧 진짴ㅋㅋㅋ

─왜이렇게 얼굴 드러내는 걸 싫어하세요?

─얼굴에 무슨 문제 있으신가?

“…그냥, 트라우마가 좀.”

마주쳤을 때 심약한 사람들이 울음 터트리는 정도면 트라우마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은우의 대답에 사람들은 알아서 납득했다. 대충 상처가 있다, 많이 못생겨서 그렇다, 정말 구울이었다 그런 의견들이다. 성숙한 배려심은 참 달가운 일이지만 세 번째 의견은 대체 뭔지 모르겠다.

퐁!

그건 그거고 낚시는 낚시다. 수면에 희끄무레하게 비치던 그림자가 미끼를 콱 물었다. 은우는 때를 놓치지 않고 낚싯대를 당겼다.

“낚시 말고 잠수도 할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요.”

─그러면 씨가 마르잖아요

─다

─맨손으로 벌레 잡는 사람이 바다에 잠수한다? 루삥뽕

─다하

─다랑어겠지?

─-다-

그들은 쓸데없는 잡담을 그만두고 앞으로 잡힐 물고기에 집중했다. 잡힌 건 청새치였다.

▣ 024. 유감은 없지만

기술 발전은 참 좋다. 은우는 자기부상열차를 타고 30분 만에 서울과 부산 사이를 주파했다. 이어 유어튜브에서 제공한 셔틀을 타면 벡스코까진 금방이다.

그는 셔틀에서 내린 후, 벡스코를 보며 자동 촬영용 드론을 띄웠다. 드론이 가동되는 동안 해야 할 건 차림을 점검하는 것이다.

머리에 뒤집어쓴 헬멧만 아니면 그럭저럭 괜찮다. 까다로운 희수와 그 애인의 눈을 통과했으니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그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애써 무시했다.

은우는 마지막으로 전자 노트를 작게 접어 팔목에 찬 고리에 걸었다. 이러면 좀 더 편하게 홀로그램 화면을 볼 수 있다. 헬멧도 선팅을 짙게 한 것만 빼면 시야를 크게 가리지 않으니 문제없다.

하나, 둘, 셋. 드론의 카메라가 켜지며 홀로그램에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채팅 창에 사람들이 한둘 모습을 보인다.

“구하. 안녕하세요, 여러분. 켄입니다. 제 목소리 잘 들리십니까?”

─켄하, 엄청 일찍 키셧네요

─? 야외인데?

─목소리 잘 들려용~

─헐? 첫날부터??

─개미쳤다, 저 지금 달려갑니다

─지금 뛰쳐나간다!!

헬멧 안에 설치한 마이크가 목소리를 잘 전달하나 보다.

“예, 저는 지금 벡스코에 있습니다. 공지가 올라갔겠지만, 오늘은 G페스티벌을 탐방할 예정이에요. 건물 밖 한 번 훑고 안으로 입장하겠습니다.”

─바로 열차 티켓부터 끊는다

─와....일케 보니까 켄 키 실감난다....

─악수 받으러 간드앗!!

채팅 창이 주르륵 올라갔다. 은우는 그것을 보며 건물 바깥을 조금 돌다가 사람들이 몰리기 전에 회장 안으로 입장했다.

197cm의 신장은 구두 굽의 지원을 받아 2m를 훌쩍 넘겼고, 사람들은 그런 거인의 존재에 본능적으로 길을 터 주었다. 첫날에는 사람이 적다고 했는데도 엄청난 인파다.

“G페스티벌 오는 건 처음인데… 엄청 화려하네요.”

하. 이제부터 여기를 돌아다녀야 한단 말이지. 은우는 수십 개의 부스를 보며 숨을 후 내뱉었다. 거대한 화면에 소개 영상을 비추는 것도 많고, 시연회를 여는 부스도 있다.

이거, 아무래도 희수가 부탁한 걸 해내려면 좀 걸리겠다 싶다. 재밌어 보이니 불만은 없지만.

“여기도 한 번 쭉 훑고 시작하겠습니다.”

기철의 말로는 인플루언서 전용 라운지가 있다고 하니, 조금 지친다 싶을 때 그곳으로 가면 되리라.

은우의 기다란 다리가 성큼성큼 회랑을 가로질렀다.

중간중간 그를 발견하고 달려오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말을 걸지는 않았다. 대략 3m의 거리를 남기고 끼긱 멈추는 게 겁이라도 먹은 것 같다.

─본인 아무리 봐도 켄인 사람 발견했는데 못 다가가겠음;;

─야너두? 야나두!

─언제적 드립이 판을 치냐

─아 근데 찐임;; 진짜 영상으로 볼 때랑 차원이 달라 키가...

─키도 키지만 먼가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

─찾고 있다. 안 보인다.

─그거 ㅇㅈ 분위기 ㅗㅜㅑ....

─사람이 아님...;;;

─키도 더럽게 큰데 비율 실화냐?

그는 화려한 홀로그램 영상들을 살피다 말고 채팅을 읽었다. 그 근처에 있는 시청자들이 많은 것 같다. 자동으로 은우의 고개가 주변을 훑었다.

“저 보러 오셨다, 손.”

─어, 손...?

─손

─발!

“실제 손.”

한 번 더 말하니 주변인 중 일부가 손을 슬그머니 들었다. 무언가에 압도되었달까. 아무도 안 다가오니까 휘말려서 못 다가오는 얼굴들이다. 일부는 겁먹기도 했고.

은우는 그런 이들을 향해 마찬가지로 손을 들어 주었다. 까만 가죽 장갑을 낀 손이 가볍게 흔들리자 사람들이 쑥덕거렸다.

“반갑습니다. 재밌게 구경하세요. 저도 계속 돌아다니겠습니다.”

팬 서비스를 해 준 그는 마저 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이 다가올 거라곤 생각하지도 않았다. 체격 차이라는 건 생각보다 큰 문제였다.

체구 차이가 클수록 사람은 위축되고 원초적인 공포를 느낀다. 심지어 그 대상이 수상한 오토바이 헬멧까지 쓰고 있음에야, 더욱 극단적일 거다.

이거야 원, 진짜 얼굴보다 헬멧 쓰고 있는 게 더 무서운지도. 은우는 쓰게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익숙해서 크게 기분 상하거나 하진 않았다.

“저기, 켄 님 맞으세요?”

그 순간,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찰나간 희수인가 착각했을 정도로 조그만 여성이었다. 명치께에 겨우 닿을까. 소동물 같은 몸집에 은우의 몸이 바짝 얼었다.

조금만 잘못해도 막 솜털처럼 날아갈 것 같다. 무섭다.

“네.”

그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가 쓰고 있는 헬멧의 기능 하나를 깨달았다.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밖에 소리가 안 새어 나가도록 방음 기능을 넣어 놨다.

은우는 얼굴로 치면 왼쪽 입가일 부분을 누른 채 다시 답했다.

“켄 맞습니다.”

드디어 소리가 들렸는지 앞에 있던 여성의 표정이 환해졌다.

“안녕하세요!”

이건 예상외인데. 바짝 얼었던 몸이 또다시 얼었다. 심지어 여성을 필두로 거리를 두던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건 그가 상정하지 못한 경우의 수였다.

“진짜 켄이다!”

“켄 님 실물을 영접했다! 엄마, 아빠! 제가 해냈습니다!”

“혀어엉! 저 구울단이에요!”

“키 진짜 크다…….”

“금발 태닝 양아치 아니었냐구.”

“악수 부탁드려도 될까요?”

얼굴이 사납고 덩치가 커서 일반인들이 먼저 다가온 적이 없던 현생이다. 전생에서도 살기에 찌들어서 그런지 전우들 외엔 잘 다가오지 않았다(물론 현생보단 나았다).

그로 인해 은우는 처음으로 평정심이 흔들릴 만큼 당황했다. 헬멧에 가려진 뺨이 화끈거리고 버릇처럼 목만 쓸게 됐다.

뭔데, 뭔데 사람들이 이렇게 겁이 없는 건데.

“어, 음, 네.”

일단 악수부터. 은우는 반쯤 홀린 채 모여든 사람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 주었다. 마치 어른이 아기 손을 잡은 모양새였지만, 그것을 무서워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오히려 사람들은 손 크기 차이를 신기해하며 사진 찍어도 되는지에 관해 물었다. 그는 얼떨떨하게 허락해 주었다. 인파가 점차 모여들었다.

이거 너무 모였는데.

한참을 시달리다 보니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저, 너무 모여들어서.”

은우는 혼자 기백의 괴수를 마주했을 때보다도 더한 부담감을 안은 채 소근거렸다.

여러 의미로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사람들은 한 마디 들었다고 그를 밀어내지 않았다. 외려 저들끼리 쑥덕쑥덕 떠들더니 질서를 적당히 챙겼다. 퍽 신기한 광경이었다.

“양해 감사합니다.”

원래 이런 사람들인가? 사실 서울인들만 체격 차이를 무서워하고 부산인은 아닌 건가? 근데 여기 있는 건 부산인만이 아닐 텐데?

그는 목덜미를 쓸었다가 일단 걸음부터 옮겼다. 일부는 따라오고 일부는 따라오지 않았다. 따라오는 쪽이 좀 더 많은 것 같다.

“어, 이런 적은 처음이라서 조금 당황스럽네요. 다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하고, 선물도 감사드립니다.”

─켄리둥절ㅋㅋㅋ

─켄 자기 인기 실감 너무 못하는 거 아님??

─으아아악!1 켄이랑 악수햇다!!

─아ㅠㅠㅠ개부럽다ㅠㅠㅠ

─늦었다.

채팅 창엔 상상도 해 본 적 없는 호의가 넘실거렸다. 아무도 그의 덩치를 흉보지 않았고, 오히려 다가오지 못한 것에 아쉬워했다.

그걸 본 은우는 목이 막혔다. 혹은 갈증이 났다. 그의 상식으론 정의할 수 없는 모호하고 애틋한 감정이었다.

딱히 갈구한 적 없던 타인─그것도 모르는─의 애정이 확 와닿았다. 그건 자신이 관종인가 싶었던 때보다도 더한 당혹감과 환희를 주었다.

은우는 눈가가 홧홧해짐을 느꼈다. 떨리는 목소리는 토로해 본 적 없는 속내 한 조각을 슬그머니 던져 본다.

“…덩치 때문에 다들 무서워해서 이렇게 둘러싸여 본 적이 없어요.”

─ㅋㅋㅋㅋㅋㅋㅋ그럴만 함ㅋㅋㅋ

─악수하는데 나 유치원생 된줄ㅋㅋㅋ

─진짜....키가 너무 차이 나니까....좀 압도적이긴 하드라..

─본인 180인데 머리 반개는 차이났음;;;;

─뒤에서 보는데 무슨 벽이ㅋㅋㅋㅋ

─그래도 멋있어요!

─진짜 만화캐릭터 같어ㅋㅋㅋㅋ

은우는 화끈거리는 뺨 대신 애써 목만 계속 쓸었다.

그의 양손에는 사람들이 은근슬쩍 떠민 선물들이 한가득하다. 어쩌다 보니 거절도 못 하고 받아 버렸다.

“…이렇게 되니까 좀 무섭네요.”

─?

─그 덩치로요?

─마! 우리 구울이들이 무섭나!

“잘못 건드렸다가 여러분들이 부러지거나 막 다칠 것 같아서…….”

─ㅋㅋㅋㅋㅋㅋㅋㅋ미친ㅋㅋㅋㅋ

─건드리면 부러지고 다친뎈ㅋㅋㅋㅋ

─비수들 유리몸 설

─안 다쳐욬ㅋㅋㅋㅋㅋ

“그렇게 말해도 별로 믿음 안 갑니다. 플란체도 못 하잖아요, 여러분들.”

─그게 머임

─아니ㅋㅋ그게 되면 사람임?;;;

─정보) 플란체는 맨몸 운동의 끝판왕이라고 불리는 동작이다

─플란체 미쳤누,,,,

─켄님 플란체 가능한 거냐구ㅋㅋㅋ

은우는 겨우 긴장을 풀고 시청자들과 아웅다웅했다. 한 달 가까이 해 온 방송은 낯설었던 환경을 순식간에 익숙함으로 물들였다. 여유가 도로 찾아왔다. 잔잔한 기쁨이 어우러진 여유다.

덕분에 고양이 털 세우듯 곤두섰던 감각들이 점차 누그러졌다. 드디어 주변 광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본래도 보고 있었지만, 이제 제대로 집중이 된다는 느낌이다.

“게임, 재밌어 보이는 게 많네요.”

─ㅇㅇ시연회도 있으니까 함 참가해보세요

─초대장 스트리머는 뭐든 참가 가능일 텐데 방송허가는 어떠려나

─대기줄만 길지 않으면 갠찮지 않나?

“저… 사진 촬영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아, 예.”

그는 중간중간 사진 찍어 달라 부탁하는 사람이 나올 때마다 허리를 엉거주춤 낮췄다. 성인 기준 남성 평균 키가 179, 여성 평균 키가 166이라는 현실이 불러온 처참함이었다.

시청자들이 깔깔대며 웃었다.

“나도 부탁한다.”

“아, 설마 사직서님?”

“오늘을 위해서 한국으로 날아왔다.”

─ㅋㅋㅋㅋㅋㅋ개멋있다 진짴ㅋㅋ

─ㅇㅈㅋㅋㅋㅋㅋ

그나마 다행인 건 네임드 시청자들, 그러니까 후원이나 미션 등으로 존재감을 가져 버린 사람들과도 마주쳤다는 것? 평상시 그들로 인해 버는 돈이 돈인지라 은우는 흔쾌히 요청에 응해 주었다.

“격투 겜도 있네요. 뮤턴트 컴뱃? 넘버링이 무려 19네요. 엄청 유서가 깊네.”

─격투겜의 꼰대다 이 말이야아

─도전하싈?

─연승 가즈아아아

─이거 잼씀

본래 목적인 구경도 잊지 않았다.

카드, 전략·전술, 농사짓는 힐링 게임만 나오다가 그나마 마음에 드는 장르가 나왔다. 앞선 장르들도 싫은 건 아니지만, 역시 치고받는 게임이 좋다.

마침 참가도 가능한 모양이었다. 3연승, 5연승 등등을 할 시 선물도 주었고.

문제는 구미가 애매하게 당긴다는 것이었다.

“참가를 해야 하나…….”

은우는 참가 신청을 할지 말지 고민했다. 방송 허가를 받은 스트리머인 만큼 허락받을 가능성은 크지만, 과연 참가할 만큼 재미가 있을까? 이 세상 사람들은 잘 싸우지도 못하는데. 뭣보다 희수가 부탁한 목록도 아니다.

─한 판 가즈아

─재밌는데 왜 고민하셔유

“아니, 재미없을 것 같아서요. 격투 게임이면 상대에 따라 재미가 결정되잖아요.”

─ㅋㅋㅋㅋㅋㅋㅋ레전드ㅋㅋㅋㅋ

─붙어보기도 전에 상대방 1패 적립

─근데 켄이면 뭐ㅋㅋㅋㅋㅋㅋ

─??: 상대에 따라 재미가 결정되니 재미없을 것 같아서요.

그가 고민할 무렵, 한 시청자가 새 소식을 물고 왔다.

─방송 안 해서 확신은 못하겠는데 지금 연승하고 있는 상대방 반반마니인듯?

─타 스트리머 언급 ㄴㄴ

─상대방 스트리머란 거 알려주는 것도 밴임?

─어......글쎄..?

“…상대방이 스트리머라고요?”

─아마요

─방송은 안하는데?

─그놈 악질이라 허락 못 받음

─허락 받음 큰일나지;;

─코스어 품평 ㅈㄴ 해댈 새끼임

스트리머? 반반마니? 은우는 어디선가 들어 본 듯한 이름에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반반마니… 반반마니…….

“아.”

희수가 박살 내 달라고 했던 그놈이다.

─??

─왜 그러심?

“별거 아닙니다. 혹시 맞을 경우 문제 되는 건 없겠죠?”

─확실한 것두 아니고 진짜여도 우연인데여 머

─ㄱㅊㄱㅊ

─인성반반쉑 맞으면 제대로 ㅈ발렸음 조켔다

─캡슐에 들어갈 수는 있음?

나 참. 약한 사람을 가지고 노는 건 취향이 아닌데. 확실하지 않은 것도 문제고.

그렇지만 그자일 수 있다는 가능성 하나가 그의 고민을 끝냈다. 은우는 바로 참가 신청을 했다. 앞선 신청자가 은우를 알아보고 순서를 양보해 준 덕에 금세 차례가 돌아왔다.

그는 직원에게 드론과 전자 노트를 맡겼다. 아마 게임 내용이 방송에 비치도록 잘 연결해 줄 것이다.

“저, 얼굴 보이기 싫어서…….”

“아, 그럼 무대 뒤쪽 캡슐을 열어 드리겠습니다. 작은 칸막이 안에 따로 마련돼 있으니까요. 추가로 접근 못 하도록 막아 두겠습니다.”

은우는 안도했다. 사람들이 그의 체격에도 위축되지 않고 다가와 준 것은 예상 외의 일이나, 그래도 얼굴을 깔 자신은 없었다. 어쩔 수 없는 트라우마─라기엔 조금 애매한─였다.

은우는 작은 칸막이 안으로 들어간 후, 입구를 꼭꼭 닫은 후에야 헬멧을 벗었다.

뺨에 시원한 공기가 와 닿았음에도 정신은 조금 멍하다. 사람들이 그를 향해 몰려들었던 게 어지간히 비현실적이었나 보다. 혼자가 되니 새삼스럽게 현실감이 들었다.

게임해야지. 그는 뺨을 짝짝 친 후 캡슐에 접속했다.

바로 게임에 동기화되도록 한 모양인지 극사실적인 감각이 바로 그의 몸을 장악했다.

“꽤 마음에 드네.”

조작법을 알려 주는 튜토리얼이 짤막하게 진행되었다. 펀치, 잡기, 블로킹, 백스텝, 스킬, 궁극기, 콤보 등등.

그다음으론 캐릭터 선택 창이었다. 시연회용이라서 그런지 선택 가능한 캐릭터는 고작 세 개뿐이다.

각각 힘, 속도, 아니면 둘이 조화된 성능을 자랑한다고 설명이 떠올랐다.

다만 옷만 바꿔 주는 보통 게임과 다르게 뮤턴트 컴뱃은 신체 자체를 해당 캐릭터로 다 바꿔 버렸다.

이럴 경우 바뀐 신체에 대한 위화감 때문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은데, 과감한 시도였다.

은우는 변한 모습을 대충 확인해 보았다. 뮤턴트 컴뱃이라는 이름에 맞게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이 아니다.

연하늘색 피부는 번질거리고, 옷은 특수부대원 같은 복장. 체격은 능력치에 맞게 근육 돼지거나 호리호리하거나 적당히 탄탄하게 바뀌었다.

처음 하는 자들은 적응하기 제법 어려울 성싶다.

하지만 알 바는 아니지. 은우는 그중 두 번째를 택했다. 키가 30cm 정도 줄고 몸이 호리호리해졌지만, 움직이는 데는 문제 없다.

전생의 몸이 대충 이 정도였으니까.

그는 몸을 몇 번 움직여 보고 바로 시작 버튼을 눌렀다. 시야가 뒤바뀌며 연구소 비슷한 맵이 펼쳐졌다. 연승 중이라는 상대방은 이미 대기하고 있었다. 근육형이다.

“아, 드디어 왔네.”

표정은 딱히 보이지 않지만 팔짱을 끼고 삐딱하게 선 게, 참 자신만만해 보인다. 하기야 앞선 싸움들로 캐릭터들에 대한 이해도를 쌓아 뒀을 테니 자만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좆밥아, 어서 덤벼라. 나 이거만 하면 6연승이거든?”

무리만 아니다.

“어차피 너는 나한테 뒈져요. 그러니까 어서 덤비고 끝내자.”

은우의 귀에 사회자의 몇 마디가 흘러들고, 상대가 적당히 인사 자세를 취했다. 걸걸한 입담과는 참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게임 속 소리는 방영하지 못한다는 게 저치의 모순을 이끌어 낸 것 같다.

“우쭈쭈, 형이 한 단계 위의 차원을 보여 준다.”

반반마니라고 했던가. 아니라도 이쯤되면 상관없지 않을까 싶다.

3! 2! 1!

은우는 시야에 보이는 숫자를 보며 손을 탈탈 털었다.

Fight!

여전히 유감은 없지만, 쳐 죽여 주긴 해야겠다.

은우의 몸이 폭발적으로 도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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