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아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합방을 자주 하는 편이 아니에요. 합방 제의의 경우 아는 사람이 아니면 먼저 건네는 일이 없다시피 하죠.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새로운 사람들 만나는 게 영 힘들거든.”
확실히 우유에탄산이 합방하는 건 본 적이 별로 없다. 연예인이나 유명한 운동선수가 게스트로 종종 오긴 했지만, 스트리머끼리의 합방은 굉장히 드물었지. 그마저도 매번 고정된 인물들이었고.
“충분히 젊으십니다.”
“그리 말해 주니 기분 좋네요.”
우유에탄산은 음료를 호록 삼켰다.
“그런 내가 켄 님에게 합방 제의를 건넨 건, 켄 님이 내가 찾고 있는 사람과 조건이 딱 맞아떨어져서 그랬어요.”
“…대회 관련입니까.”
“들었나 보네요?”
“메일에 적어 주셨었으니까요. 하지만 어째서 저를 고르셨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우유에탄산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대회 시스템이 스트리머끼리, 그것도 비위치에서 방송하는 이들끼리만 팀을 짜서 싸우는 거라는 건 알죠? 팀을 짜서 명단을 제출하면 비위치에서 심사를 통해 16팀을 선정하는 거요.”
“네.”
“제가 켄 님을 영입하려는 것도 그것 때문이에요. 팀을 구성할 순 있는데, 내 사람 중에서는 게임을 잘하는 사람이 적은 편이거든요. 없는 건 아니지만, 확실히 우승한다고 확신하긴 애매하달까.”
그는 가만히 떠올렸다. 우유에탄산의 인맥이 어떻게 되는지는 완전히 알 방도가 없으나, 합방에서 봤던 이들을 고려하면 감이 잡힌다.
대체로 실력보단 입담파들이긴 했다. 재능이 없는 건 아닌데 나이를 먹어서 피지컬이 줄어든 쪽에 가깝다.
“그런데 켄 님이 엄청난 실력을 선보이며 데뷔했네? 그래서 냉큼 침 바르려고 했죠. 켄 님을 잡으면 우승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은우는 손가락을 말아 쥐었다. 나쁜 사람이라는 느낌은 안 들지만, 구린내는 난다. 무언가 꿍꿍이를 숨기고 있는 이들의 냄새다.
“사정은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납득이 안 가네요.”
살 밖으로 튀어나오는 흰 부위─프리 엣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짧게 깎인 손톱이 톡, 톡 테이블을 두드렸다. 겨울을 형상화한 것 같은 얼굴은 웃음기 한 점 없이 상대를 응시한다.
“저의 무엇을 보고 제안하셨습니까? 도박에 걸 정도로 대회의 1등 여부가 가치 있을 것 같진 않은데요.”
한 번의 방송으로 실력을 감 잡은 거야 그럴 수 있다. 우유에탄산도 VR 게임을 많이 하니까.
하지만 단순히 실력만 보고 그랬을까? 그런 경솔한 사람이 업계 최정상을 고수하는 게 가능은 한가?
작금의 우유에탄산은 불확실을 감수할 만큼 1등을 중요시할 시절이 아니다. 이미 업계 정상인 주제에 뭐가 아쉬워서 그런단 말인가.
“역시 이것만으론 부족하죠?”
“네.”
분명 있을 거다. 영입해도 되겠노라 확신했을 근거가, 반드시 1등 해야 할 이유가.
“실력만 보고 고르는 분은 아니라고 생각하는지라.”
“아주 현명하네요. 한 가지만 보고 판단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죠. 이 바닥에 실력은 있어도 사람 안 된 녀석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녀석이랑 엮이면 훅 가는 건 일도 아니에요.”
우유에탄산은 기분 나빠 하지 않았다. 그녀는 외려 은우를 칭찬했다. 그리고 감탄했다. 자기가 사람 하난 잘 본다며.
“켄 님은 그 문제로 고생할 일이 적겠네요.”
“사람에 대한 의심이 좀 많은 편이죠.”
“좋은 일이에요. 그런 문제 때문에 이 일을 그만두는 사람도 많으니까.”
우유에탄산은 한 번 더 음료를 마셨다.
“먼저 뭘 믿고 제의했느냐면, 당연히 실력만 보고 켄 님에게 요청한 게 아니에요.”
“한 번의 방송으로 성격까지 파악 가능한 분인지는 몰랐습니다만.”
“그런 능력이 있으면 이 일 안 했지. 그래도 있으면 편하긴 하겠네요.”
“그렇다면?”
“사실 가능하면 시간을 두고 보려고 했어요. 근데 켄 님은 시선을 끌어도 너무 끌었어. 대회에 대해 알고 있는 이들은 죄다 제안했을걸요? 아는 사람 자체가 적어서 그렇지.”
그렇다면 단순히 선점을 위해서? 가능성 없는 일은 아니다. 우유에탄산 같은 이만 알 정보라면 나머지도 비슷한 급일 것이니.
다른 사람이 먼저 채 가기 전에 선점할 생각이었다면 이해할 수 있다. 한 20% 정도.
“그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납득까진 아직 많이 남았다.
“당연히 아니죠. 아무리 급해도 인증되지 않은 사람을 쓸 수가 있나. 단지 켄 님 담당이 박 팀장이라는 점에 걸어 본 거예요. 박 팀장이 데려왔다면 적어도 중간은 하겠거니 하면서.”
박 팀장? 은우는 그 이름이 왜 여기서 나오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아니면 이것도 그를 띄우기 위한 기철의 계략인가? 단순히 은우의 거절로 무위에 돌아간 포석이었다든가.
“박 팀장은 무턱대고 사람을 고르지 않죠.”
그는 우유에탄산의 평가에 괴리감을 느꼈다.
스타성이 있다고 방송하자며 덤벼든 사람이 저런 평가라. 능력 보는 눈은 탁월해도 인성까지 보는 것 같진 않았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그분이 인성도 보셨습니까?”
“얼마나 꼼꼼한데요. 사람 고르는 거에도 깐깐해, 이후 관리도 철저해. 괜히 팀장급 인사면서 널널하게 구는 게 아니라니까?”
은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희수에게서만 이야기를 들었다고 판단하기엔 우유에탄산이 걸린다. 저 말에 따르면 박 팀장은 그 정도에 그칠 이가 아니다.
“걸린 게 있어서 그런가, 박 팀장은 이런 거에 누구보다 예민해요. 자기가 골라낸 원석이 사고라도 터트렸다간 노리는 게 간당간당해지는 처지거든. 그래서 그런지 사람을 정말 오랫동안 관찰하기도 하고…….”
앞에서 물어보지 않고 상대를 알 수 있는 방법. 뒷조사밖에 더 있을까? 은우는 우유에탄산이 말할 생각 없던─그보단 알아차리지 못할 거라 생각한 거겠지─이면의 뜻을 잡아챘다.
“그런 박 팀장이 켄 님을 영입했는데 믿을 만하지 않겠어요?”
그 순간 그는 안도감을 느꼈다. 배신감 따위는 들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뒷조사란 배신이 아니라 철저한 대비였다.
비지니스 파트너로선 이쪽이 훨씬 신뢰가 간다. 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사람이란 뜻이니까.
사적으로 본다면 글쎄. 믿음 쌓긴 좀 어렵겠지만, 은우는 한 사람 빼고 세상의 모든 이를 믿지 않으니 상관없지 않을까.
“설마 박 팀장님이 한 달 넘게 전담할 정도로 밀어주고 있는지는 몰랐지만. 나, 그거 알고 엄청 놀랐잖아. 동시에 내 감이 맞았구나 안도했고.”
와중에 조금 의문이 들었다. 17살 때 그가 동아리에서 쳤던 사고는 조사 못 한 건가? 병원력이야 절대 비밀 엄수니 모른다 칠 수 있지만, 그쪽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을 뿐 밝혀졌을 때 좋은 일도 아닐 텐데.
이건 박 팀장에게 직접 물어보지 않는 한 알 수 없다. 나중에 질문해야겠다.
아, 그러고 보니 병원력 하니까 생각났는데, 병원 다시 다니는 걸 잊고 있었다. 다시 가야 하나? 그건 싫은데. 별 쓸모도 없고.
은우는 갑자기 쏟아지는 과제에 눈을 느리게 껌뻑였다. 미래의 그가 알아서 해 줄 것이다.
“저를 영입한다는 선택은 이해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도박을 하면서까지 1등을 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아, 이건 좀 복잡해지는데…….”
우유에탄산이 팔짱을 꼈다. 방어적 제스처라기보다는 버릇에 가까워 보인다. 은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럼 괜찮습니다.”
딱 감이 잡힌다. 이건 정치적 얘기든 사람 간의 갈등이든 그 비슷한 이야기다.
그리고 은우는 그런 것들에 질색했다. 예전부터 그랬다. 복잡할 것 없이 괴수만 베는 무기로서 사는 게 좋았고, 강함을 추구하는 게 편했다.
그래서 그는 그때…….
“욕망과 욕망 사이에 끼이는 건 질색인지라.”
은우는 깍지를 꼈다. 손가락이 손등을 하얗게 물들일 정도로 힘이 강하게 실렸다.
「우린 널 버리기로 결정했어.」
이해했으나 용서하지 못한 목소리가 귀에서 윙윙거렸다.
“꼭 알아야 할 사항은 아니니까요. 나야 편하죠.”
바뀐 분위기를 감지한 우유에탄산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돌렸다. 실수했네. 은우는 표정을 수습했다.
“그래서, 아직도 생각 없어요? 말 섞어 보니까 더 마음에 들어서 말이야.”
“…제안은 감사하지만 제가 팀전엔 익숙하지 않은지라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흠, 그럼 어쩔 수 없죠. 하지만 난 가능하면 켄 님이 팀에 들어왔으면 좋겠어요. 켄 님이 천군만마잖아.”
“과찬이십니다.”
“진심인데요? 일정 발표된 후에 생각 있으면 여기로 연락 줘요. 3, 4일 정도는 기다릴 수 있으니까.”
우유에탄산이 명함을 건넸다.
“생각 없어도 받아 둬요. 어떤 업계든 인맥은 중요하니까. 뭣하면 내가 켄 님 팬이라서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해도 돼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받긴 받았겠지만, 인기 스트리머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은우는 그 명함을 감사히 받았다. 우유에탄산의 말마따나 끈은 없는 것보단 있는 게 좋다. 설사 관리를 안 해 사용하기 전에 끊겨 버린다 해도.
“참고로 대회 일정은 곧 발표될 거예요. 이번 G페스티벌 마지막 날에 ‘Nebula War’ 발표가 있거든요. 대회 자체야 게임 발매에 맞춰서 해도, 홍보를 위해선 이번에 미리 밝혀 두겠죠.”
추가로 건네진 정보는 딱히 쓸모 있지도, 없지도 않은 것이었다.
“그렇군요.”
은우는 담담히 정보를 정리했다.
“근데…….”
이제 대화가 끝났나 싶은 찰나, 우유에탄산이 살짝 머뭇거렸다.
“방송에서 스무 살이라고 했던 거, 뻥이죠?”
“거짓말은 아닙니다만…….”
“진짜?”
“민증이라도 보여 드릴까요.”
그는 지갑에서 주민등록증을 꺼내 뒷자리를 가리고 보여 주었다. 330401. 우유에탄산이 입을 벌렸다.
“내 나이 반토막 해도 켄 님보다 많네…….”
우유에탄산은 머리를 짚으며 중얼거렸다.
“세월이 야속하다, 진짜.”
조금 현타가 온 모양이다.
한데 시간이… 아직 30분 안 지났다. 은우는 우유에탄산의 눈치를 살폈다. 일어나도 되는지 모르겠다.
“아! 그렇지, 참. 얘기가 너무 길어졌네요. 내가 너무 시간 뺏은 건 아닌가 몰라.”
“괜찮습니다.”
“슬슬 일어날까요?”
여기서 들은 것 중 가장 달가운 제안이었다. 은우는 헬멧을 들었다.
“그건 계속 쓸 생각이에요?”
“네.”
“안 써도 괜찮을 것 같은데…….”
헬멧을 쓰려던 손이 멈칫거렸다. 박 팀장도 그렇고 우유에탄산도 그렇고. 업계의 실력자들이 죄다 저렇게 말하니 조금 무시하기 애매하다.
“불편하지는 않고?”
“안 쓴 것보단 불편하죠.”
은우의 손가락이 헬멧을 더듬었다. 그렇지만 그는 여전히 무섭다. 사람들이 지금 좋아해 주는 것도 얼굴을 공개하는 순간 돌아설까 하여.
그럴 가능성이 적다는 건 알지만, 그는 그냥 여지 자체를 주고 싶지 않았다.
“제가 보기엔 켄 님은 벗어도 충분히 먹힐 페이스예요. 수술한 것도 아닌데 그 정도면 무조건 먹히죠. 아, 혹시 했나요?”
“아뇨. 얼굴에 칼 대는 거 별로 안 좋아해서.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하긴, 인조적인 건 나도 좀 싫더라. 근데 켄 님은 본판 자체가 그 정도라니, 장난 아니네요.”
대화가 이어지는 사이 우유에탄산이 문을 열었다. 문 열었을 때 사람이 없을 거란 계산 끝에 한 일일 것이다. 룸은 라운지와 분리된 복도에 있으니까.
은우는 그런 그녀의 판단을 탓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말리지도 않았다. 반쯤은 동조였다.
열린 문이 그녀의 몸을 반쯤 가리고, 대각선으로 서 있던 은우가 밖에 훤히 드러났다.
“어…….”
그리고 앞에 있던 이와 눈이 마주쳤다. 하필이면 복도를 막 지나고 있던 모양이다.
“아, 안녕하세요.”
상대방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더니 덜덜 떨며 묵례하곤 그대로 걸음을 빨리했다.
“…….”
“…….”
이럴 줄 알았지. 은우는 쓰게 웃으며 헬멧을 썼다. 기척을 미리 느끼긴 했지만, 혹시나 해서 기대 좀 해 보았다. 기철도, 우유에탄산도, 희수도 괜찮을 거라 말했으니까.
“…그, 룸 조명이 어두워서 놀란 걸 거예요.”
“…익숙해서 괜찮습니다.”
하지만 아니었던 것 같다.
은우는 혹했던 마음을 버렸다. 절대 얼굴 공개 안 한다.
▣ 026. 거리를 두고 마주할 수 있는
“아우, 봤어? 반반마니 엄청 깨지는 거?”
“당근 봤슴다.”
룸 복도를 떠나 라운지로 들어서니 왁자지껄한 스트리머들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아까보다 수가 더 늘었는데, 빈 테이블들은 늘었다. 소수가 나눠진 게 아니라 다수가 포함된 무리 하나가 있는 탓이다.
“그거 보고 오늘부터 켄 님 팬 하기로 했잖아.”
“근데 언니는 예전부터 그분 팬 아니었슴까?”
“팬까진 아니었어! 날 이긴 사람이니까 대단하다고 생각한 거지!”
“아, 넵.”
옆에서 걷던 우유에탄산이 옆구리를─키 차이로 인해 거의 골반이었다─툭툭 쳤다.
“완전 인기 스타네요.”
“…그 정돈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은우는 작게 부정했다. 아직 그들을 발견 못 한 스트리머 무리는 여전히 뚜렷한 소음을 발휘하고 있다. 사실 엄청 시끄럽게 떠드는 건 아니나, 말하는 이들이 그들밖에 없어 그렇게 느껴졌다.
“그 새끼, 진짜 요즘 빌리랑 어울린다고 아주 살판이 난 것 같은데 아유, 꼬시다 꼬셔.”
“빌리 그 사람도 참… 왜 그 문제덩이를 안고 가는 건지 모르겠어.”
“근데 세모도 오빠, 얼굴이 안 좋슴다.”
“응? 아, 아아냐. 그냥… 좀.”
그중엔 아까 눈이 마주쳤던 사람도 있었다. 은우는 그쪽을 힐끗 보았다. 그 여럿 중에서 아는 얼굴이라곤 희수가 좋아하는 스트리머, 검은양밖에 없다.
그러나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습니다, 습니까를 묘하게 빨리 발음해 슴다, 슴까처럼 들리는 이다.
그쪽은 헬멧을 보고 있겠지만 어쨌든.
“어?”
“이쪽을 봤네.”
탄산 이 사람, 즐기고 있군. 은우는 목덜미를 쓱 쓸었다.
“켄 님?!”
발음 묘한 스트리머가 벌떡 일어났다가 입을 막았다.
“앗, 소리치면 안 되는데!”
방금 한 일은 아무래도 무의식 단계에서 일어났나 보다.
“헐, 진짜다.”
“거인……?”
“옆에 계신 사람은… 어, 탄산 님인데?”
하필이면 은우의 옆에 있는 건 스트리머들의 우상, 우유에탄산이었다. 시선이 더 몰렸다.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응? 벌써요?”
“제의는 감사했습니다.”
은우는 주목이 더 끌리기 전에 라운지를 벗어났다. 라운지의 규칙에 따라 섣불리 다가오는 이들이 없어서 다행이다.
뒤편에서 ‘나… 아까 켄 님 맨 얼굴 본 것 같은데……. 그, 사과드려야 되나.’ 따위의 소리가 들린 것 같지만, 설마 퍼트리진 않을 거란 믿음이 있다. 아마도. 그러니까… 사진을 찍진 못했을 거니까?
“사과? 웬 사과?”
“그게…….”
그는 다시 턴했다. 불안해서 안 되겠다.
“아까 마주쳤을 때─.”
“안녕하세요.”
거구의 등장에 다들 숨을 삼켰다. 은우가 그중 노리는 건 당연히 아까 마주친 사람이다.
“갑자기 끼어들어서 죄송합니다만…….”
은우는 우유에탄산마저 저를 바라보는 걸 느끼며 말을 이었다. 상대의 얼굴은 제법 파리하다.
“비밀로 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절대로 위협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의 체격과 스산하게 낮아진 목소리가 협박처럼 보이고 들릴 건 상대방의 문제다. 은우는 입술을 삐뚜름하게 늘렸다.
197cm 체격은 이럴 때 도움이 된다. 처음부터 없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네, 네!”
“감사합니다.”
은우는 시선을 마주치기 위해 뒷짐 쥐고 굽혔던 허리를 도로 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낮아졌다. 꿀꺽. 누군가 침을 삼킨 듯도 하다.
“즐거운 하루 되시길.”
이걸로 볼일은 끝이다. 그는 다시 라운지를 빠져나갔다. 계단을 턱턱 내려가며 드론을 작동시키면 딱 약속했던 시각이다.
“다시 탐방 시작하겠습니다.”
─3분 전부터 기다렸누
─시간 약속은 참 칼 같이 지키심ㅋㅋㅋㅋ
시청자들이 와글와글 몰려들었다. 그 광경에 은우는 왠지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 되었다.
역시 이렇게 한 겹 거리를 두고 마주할 수 있는 방송이 편하다.
그건 비단 그의 외모나 사회 경험 부족 때문만은 아닐 것이니. 은우는 헬멧 속에서 흐리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