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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자도 방송할 수 있습니다-29화 (29/233)

29화

전생의 그는 힘의 소모를 막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양이 원체 적다 보니 효율을 따지는 정도론 부족했다.

그는 그 자신을 쥐어짜 내야 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공격에 들이는 최소한의 힘마저 아까워졌다.

저게 정말 최선일까? 몸 밖으로 꺼낸 기는 흩어지는데, 저것을 정말 어찌할 방도가 없는 걸까?

그는 그가 유일하게 내세울 수 있는 기 지배력을 이용해 방법을 탐구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회수와 순환이었다.

─스킬도 없이 저걸 저렇게 구현한다고?

─강남님 돈날리신 듯

─잠깐, 저거 마나 너무 날린 거 아님?

─라이트닝 스피어 뎀지가 쎄긴 쎈데 저거 하나로 죽진 않을 텐데...

“라이트닝 스피어라. 그런 기술도 있나 보네요.”

기도 그렇지만, 이 게임도 스킬을 구현한 후 취소하면 마나 일부는 상실하고 나머지는 돌아온다. 캔슬했을 때 마나 전부가 돌아오지 않는 건 구현 당시 만든 겉껍데기에도 마나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뭐, 배울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만.”

은우는 그 점에서 이 기술을 착안했다. 만약 구현을 해 두되 발동도, 캔슬도 하지 않는다면? 아니, 애초에 그가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만들어 낸 것도 스킬 취급이 될까?

완성하고 연결을 끊으면 이것은 스킬이 되어 날아갈 것이다. 완성하지 않고 회수한다면 전부 돌아오거나 일부가 소실하고 끝이다.

그러나 완성했으되 연결을 끊지 않으면 그건 어떻게 되는가?

연결을 끊지 않기 위해 창을 구성하는 마나를 몸속의 것과 끊임없이 순환한다.

유실되는 힘? 없다. 마나가 소모되는 것은 그가 이것을 해제했을 때에만 가능했다.

전생이었다면 어림없는 소리지만, 이건 게임이었고 제작사는 이런 순간까지는 염두에 두지 않은 듯 순환 과정에 소모되는 양마저 없었다. 본의 아닌 버그 발견이었다.

그렇다 해도 마나는 왜 이리 그의 말을 잘 듣는가. 답은 간단했다.

범인들이 그것을 다루지 못하는 것은 생소한 감각으로 인해 거부감이 들어서이니. 하면 신체의 연장이라 생각하면 되었다. 손발처럼, 그저 그것이 길어진 것처럼. 기를 다뤘던 그때처럼.

그렇게 생각하고 다루면 어찌 시스템 따위가 저항할 수 있겠는가. 애초에 그러도록 정립된 존재인데.

은우의 손에 잡힌 창이 흰빛 속에서 노란 번갯불을 터트렸다. 시청자들은 저게 가능하다, 불가능하다 옥신각신 중이다. 핵이란 말도 심심찮게 보인다.

전부 우스울 뿐이다. 편법을 써서 세상을 편히 살 수 있다면 누군들 하지 않을까. 그들이 그러지 않는 것은 편법은 결국 편법에 그치기 때문이다.

편법으로는 전장을 헤쳐 나갈 수 없다.

“제가 핵을 왜 씁니까.”

은우의 몸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창에 반절 가까이 되는 힘을 투자했지만, 그에겐 나머지 반이 있다. 그 정도면 효율적으로 천뢰보를 운용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은우는 부족한 자원으로 움직이는 데 도가 튼 사람이었다.

“끄아앙!”

이안의 비명을 벗 삼아 은우의 걸음이 바람을 갈랐다. 절대 거스르지 않는, 마치 바람을 댄스 파트너 삼아 달려가는 형상이다.

크어어엉!

퓨리마가 포효하며 덤벼들었다.

은우의 다리가 허공을 밟았다. 파직. 번개가 순간 방출되며 발판이 되어 주었다. 고인물 중에서도 진정 고인 이들만 쓸 수 있는 기술의 등장이다.

─머임? 왜 스피어 아직도 안 날라감?

─캔슬인가? 아닌데?

─먼데 진짜!!

─핵 아님??

─해명해ㅡㅡ

그러나 그것을 신경 쓰기엔 은우의 손에 쥐어진 것의 존재감이 너무도 강렬했다. 채팅 창이 리액션 혹은 의문으로 빼곡히 들어찼다.

“캔슬도, 발동도 안 해서 그렇습니다.”

서걱!

은우와 퓨리마가 허공에서 교차하며 서로를 공격했다.

물론 은우는 피해 냈고 퓨리마는 옆구리에 긴 자상이 났다. 그을 때 창의 형태를 칼날처럼 납작하게 만든 탓이다.

이때만큼은 극소량이나마 닳았지만, 티는 나지 않았다. 은우의 회복량은 동 레벨 기준 최상이었으니까. 전체적으로 양이 꾸준히 줄어들지언정 몇 십 분은 버틸 수 있다.

“와아악! 와악!”

“조금 시끄럽네. 빨리 끝내죠.”

그리고 그 몇 십 분이면 퓨리마를 잡고도 남는다.

푸욱!

“미션 성공. 맞습니까?”

퓨리마의 심장에 기어코 창날이 박혔다.

▣ 029. 아마도 필연

“으허어엉.”

은우는 그의 시야를 가리다 못해 머리를 꽉 끌어안은 아이를 톡톡 두드렸다. 반응이 없다. 서럽게 우느라 주변 상황이 안 보이나 보다.

“음.”

이런 상황에 종종 처하곤 했던─그땐 맨 얼굴이었지만─ 은우는 한숨을 내쉬며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이안.”

“흐어어어어엉. 엄마아아아.”

“이안.”

“흐어어엉, 끄흐흡, 허어어어엉.”

“이안!”

“힉!”

귀요미보단 그냥 울보가 아닐까? 은우는 제발 목 좀 놔 달라는 의미로 목덜미를 잡아당겼다. 화들짝 놀라 팔에 힘을 풀었는지 뽁 하고 떨어져 나갔다.

“어, 어??”

“이제 내려.”

우는 애들은 질색이다. 위로해 주려 해도 덩치 때문에 울고 분위기 때문에 더 울었으니까. 다행히 게임 내 NPC들은 그의 체격에 반응할 만큼 인공지능이 높진 않지만… 공포에 질리면 우는 건 대체 왜 설정해 둔 건지.

“바, 방금 그 괴물은…….”

“없어.”

“네?”

“이젠 없어.”

은우는 드디어 떨어진 이안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사위는 균열 안이 아니라 균열 바깥, 현대 거리다. 주위 NPC들이 죄다 여길 보고 있다.

지능이 높게 측정된 건 이안 같은 메인 NPC뿐이니, 나머지는 그저 균열을 클리어한 사냥꾼을 보는 것일 터. 그런데도 애를 울린 파렴치한으로서 주목받는 기분이다. 저 사이에 경찰까지 껴 있으니 더 그랬다.

그는 뒷덜미를 쓸다가 그냥 마른세수를 했다. 핵이니 뭐니 떠들던 시청자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그를 놀렸다.

“분명 구했는데 왜 죄책감이 들까요.”

─이쯤되면 납치범ㅋㅋㅋ

─(금지된 채팅입니다)

─켄, 당신을 현행범으로 체포합니다

─내 무기의 원수...!

─이제 곧 킹갓그사람 온다

─솔직히 그 비주얼이면 뭐ㅋㅋㅋ

─온다!!!

─핵 해명해

“검정이 얼마나 좋은 색인데요. 피가 묻어도 티가 안 납니다.”

─그런 말 하니까 찐 범죄자 같잖어;;

─왜 농담으로 안 들리지

─검정 혐오를 멈춰주세요!

─핵 해명해! 절대 해명해!

─누나아ㅏㅏㅏㅏ

─킹직히 조폭들이나 체격 불리고 다니니까,,,오해 받을 만두

─핵 아니라고 하잖아 ㅅㅂ새퀴들아

─신고 들어갔을 건데도 아직까지 플레이가 된다? 핵 아니다

─혹시 모르지 숙제방송으로 시작한 거잖음??

─(금지된 채팅입니다)

은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채팅의 말이 맞다. 체격 큰 이들이 전부 조폭이진 않을 것이나, 실제 조폭들은 대체로 체격이 컸다. 운동선수와 달리 일반인은 기계를 통해 육체 강화가 가능한 덕이다.

은우를 본 이들이 유달리 겁을 집어먹는 가장 큰 이유기도 하다.

그보다 핵이 아니란 걸 증명하라니, 뭘 증명하란 건지 모르겠다. 게임 끄고 다시 포맷하란 얘긴가? 온다는 사람은 또 뭐고?

그는 그냥 무시하라는 시청자들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어차피 게임사에서 답변을 줄 텐데 구태여 심력을 소진하기 싫다.

“저, 정말 산 거야?”

그의 상념을 끊고 주저앉은 채로 이안이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이윽고 그 고개가 푹 수그러들었다.

“고, 고마워요…….”

떨리는 목소리는 겨우 멎었나 했던 울음기를 되살린 채다. 은우는 뒷목을 쓸다가 주저앉은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아무리 0과 1로 이뤄진 데이터 쪼가리라지만, 그래도 아이지 않나. 곤란할 뿐이지 싫어하는 건 아니었고, 이 정도 몰입은 시청자도 뭐라 하지 않을 거다. 적당한 과몰입이야말로 스트리머의 본분이기도 하고.

“고생했다.”

커다란 손이 아이의 머리카락을 흩트렸다. 채팅 창이 잠깐 멈칫거렸다가 주르륵 올라갔다.

「‘신유하’ 님이 ‘5,000원’ 투척!

한 번만 더해주세요」

─마, 우리 비수들도 지켜보느라 고생했다!

─우리한테도 고생했다고 말해줘야함 무조건 그래야함

─아;; 갑자기 이안이 부러워졌음

─ㅋ인제와서? 난 켄이 안아줬을 때부터 부러웟음ㅋ

“…여러분들은 또 왜.”

─켄 목소리 진짜 너무 오지는 듯;; 찐성인 거 생각해도 넘 오짐 반박 안 받음

─온다온다온다!

─그래봤자 핵충이잖어 이미 신고함 ㅅㄱ

─(금지된 채팅입니다)

─켄이 핵 쓰는 거 봤냐? 왜 벌써 단정짓고 ㅈㄹ임

─근데 핵이라고 해도 난 그거 다 피하고 반격 넣는 거 전부 오지던데

─됐고 포상줘!

─(금지된 채팅입니다)

─이제 누님 온다ㅏㅏㅏ

은우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가끔씩 이 사람들의 생각을 못 따라가겠다. 갑자기 웬 포상이지? 그는 스트리머로서의 소양이 아직도 부족한 모양이다.

“사냥꾼님, 던전 클리어를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진입 목록에 없던 것 같은데…….”

상황이 정리됐다 판단했는지 경찰이 슬금슬금 다가왔다. 쾅, 하고 대지에 포탄 떨어진 소리가 난 것도 그때였다. 은우의 손이 검에 얹어졌다.

“빌어먹을 예지자. 덕분에 늦었잖아.”

“뭐, 뭐냐!”

나타난 것은 집 앞 슈퍼 다녀오는 사람처럼 가벼운 차림새의 여성이었다. 휘날리는 하얀색 머리카락은 금방이라도 부스러질 것처럼 가늘었다.

“사, 사냥꾼이십니까? 방금 전 균열은 종료되었습─.”

“응, 알아.”

후드 집업에 반바지를 입은 여성이 슬리퍼로 부서진 콘크리트 위를 걸었다. 그 차림새에서 유일한, 아니 유이한 미스 매치는 손에 쥔 채 겨드랑이에 끼고 있는 흉악한 형태의 창과 얼굴을 가리는 가면이라.

은우는 검에서 손을 놓지 않았다. 여성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제법 흉엄했던 탓이다. 살기는 아니었지만, 주변인들을 제압하려는 의지는 확실하다.

“…뭐야, 너.”

여성이 드디어 은우를 직시했다. 퇴색된 검정색 눈동자는 한낮의 사막처럼 건조하고 밤의 사막처럼 서늘했다.

“이런 새끼가 있었던가……? 알 게 뭐람.”

그녀는 창을 고쳐 쥐곤 은우의 목에 겨눴다.

“뒈지기 싫음 애 내놔.”

“힉!”

갑자기 제가 언급되자 이안이 화들짝 놀랐다. 아이가 쪼르르 은우의 다리춤에 매달렸다. 와들와들 떠는 모습이 꼭 강아지를 보는 것 같다.

『1. 뜬금없이 등장해서 뭐라 하는 건지 모르겠군.

2. 애는 싫어하는 것 같은데?

3. 무슨 권리로?』

은우는 검을 천천히 뽑으며 조곤조곤 대답했다.

“애는 싫어하는 것 같은데.”

“그건 네 알 바 아니지.”

여성이 창을 제대로 쥐었다. 느껴지는 포스는 장난이 아니다.

강하네. 은우의 입술이 삐뚜름해졌다.

“잠깐, 잠깐! 그만두세요!”

대치가 10초간 이어졌을까.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마창! 이번에야말로 검거하겠다!”

여성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시끄러운 새끼들이 왔잖아.”

검거 소리가 나오는 걸 보니까 아무래도 정식 사냥꾼은 아닌 것 같다.

“빌어먹을, 계획이 틀어졌어.”

그녀는 짓씹듯 중얼거리더니 은우 쪽으로 고개를 확 돌렸다.

“죽기 싫음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거야.”

그건 부탁이나 권고가 아니라 통보였다. 여인의 몸이 짓쳐들어오더니 은우를 오른쪽 어깨에 들쳐 멨다. 이안은 왼쪽 옆구리에 끼워졌다.

“……?!”

반응하려 했으나 시스템이 강제하기라도 했는지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덕분에 여성의 어깨에 들려진 은우는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170cm 어림쯤 되는 여성에게 잡혀 버린 2m 남성의 모습에 시청자들이 깔깔대었다.

시야가 잠시 저물고 주변이 바뀌었다.

“귀찮은 떨거지 새끼들.”

여성은 대체 어딘지 모를 공터에 도착하고 나서야 그를 내려 주었다.

물론 곱게 바닥으로 착지시켜 주진 않았다. 그녀는 정말 망설임 없이 은우를 패대기쳤다. 몸이 자유를 되찾자마자 낙법을 펼치지 않았다면 형편없는 모습을 보였을 거다.

“흐어어엉.”

이안은 여전히 여인의 옆구리에 들린 채다.

『Main Quest. 이상한 여자

도저히 항거할 수 없는 강함이다. 이 정도의 기운을 풍기려면 대체 얼마나 강해져야 할까.

항간의 S급 사냥꾼? 혹은 SS급?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지금의 내 무력으론 저항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단 조용히 상황을 파악하자.』

은우는 목덜미를 쓸었다. 저항할 수 없다는 문구가 굉장히 눈에 박혔다. 기분 나쁘다.

“이거, 못 싸우죠?”

─아니 님은 왤케 싸우려 들어요ㅋㅋㅋㅋ

─때리려고 덤벼도 막 때문에 튕겨납니다ㅋㅋㅋ

─우리 누님 때리지 마세요

─머래 권이금이 더 위험하지ㅋㅋㅋ

“아쉽네요.”

기분 나쁜데. 은우의 입술이 비뚜름해졌다.

『1. 대체 넌 누구지?

2. 무슨 생각이냐!

3. 아이를 내려놔.』

“무슨 생각입니까.”

은우는 검을 내려놓고 물었다. 여인이 콧방귀를 뀌었다.

이안이 드디어 바닥으로 살포시 내려졌다. 은우에 비하면 일단 살포시였다.

“빌어 처먹을 예지자. 다시 만나면 그 대가리를 목과 분리해 주지.”

그녀는 별로 듣고 있는 눈치가 아니다. 은우는 공터에 마련된 소파에 앉는 그녀를 보다가 몸을 웅크리고 있는 이안을 보았다.

“이안.”

“힉!”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던 이안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휙휙 주변을 둘러본 아이는 후다닥 은우에게 다가와 옷깃을 그러잡았다.

“그 앤 훌륭한 대장장이지.”

“…대장장이?”

“그래.”

은우는 아이를 다시 내려다보았다. 바들바들 떨던 이안이 조그맣게 대답했다.

“저 말이 맞아요…….”

어떻게 아는지는 아직 모르겠으나 정말 대장장이인가 보다.

“계획이 틀어지긴 했지만… 이봐, 꼬맹이.”

“히끅!”

여인의 대답에 제 입을 꼭 틀어막은 이안이 불안한 눈을 했다. 혹시라도 제 울음소리가 심기를 거스를까 입을 막은 것 같다.

시청자들도 같이 입을 틀어막았다. 이유는 당연히 다르다.

“이곳은 네가 사는 세상이 아니다. 만약 협회 인간들이 널 찾아내면 아마 해부하고 분석하려 들 거야. 넌 이곳에 서식하는 종족도 아니고 생명체도 아니니까.”

은우의 시선이 자동으로 이안의 귀를 향했다.

“수인. 뭐, 그런 건가요?”

─넹

─강아지 수인이에요

─졸귀탱유ㅠㅠㅠㅠ

─커여어

“몸 성히 집에 돌아가고 싶냐?”

은우가 시청자와 대화하든 말든 여인은 태연히 말을 이었다. 이안이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네가 거래에 응한다면 책임지고 널 보호해 주지. 협회고 뭐고 널 건드리는 인간 따윈 없을 거다. 또한 집에도 돌아가게 해 줄 거야.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만.”

“거, 거래요?”

이안은 은우를 힐끔힐끔 보았다. 미지의 존재가 걸어오는 협상이 두려운 듯하다. 물론 은우가 해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이렇게 이어지는 대화는 그가 무슨 말을 해도 끼어들 수 없게 설정돼 있으니까.

“별건 아니다. 내가 재료를 가져오면 네 능력으로 무기를 만들면 되니까. 이 세계 인간들은 실력이 형편없어서.”

은우는 오히려 이 대화를 정보의 바다로 생각했다.

갑자기 균열 안에서 나타난 아이, 균열을 깨고 나니 나타난 여인.

여인의 말을 미루어 볼 때 그녀는 이 균열의 특이함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늦었다, 계획 따위의 단어를 운운할 리 없다.

무엇보다 저 여인은 이안이 누군지 알고 있으며 집착을 보였다. 심지어 이안이 대장장이이고 다른 세상 출신─놀랍게도─이라는 것도 안다. 이게 흔한 일일 리는 없다.

혹시 예지자? 아니다. 예지자에게 유감을 표했다. 예지자는 따로 있는 거겠지. 그렇다면 그거 외에 미래를 알 방도는 무엇이 있을까. 예지자를 따라 움직인다든가?

또한 이안은 대체 어떻게 이계로 온 걸까. 이 게임의 설정은 대체?

“그리고, 너.”

은우는 능숙하게 사고를 전환했다. 여인이 그를 불타오르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그를 죽일 수 있다는 여유가 전해져 왔다. 실제 실력으로 붙는다면 글쎄, 그렇지 않겠지만, 시스템상으론 현재의 그는 저 여자를 이길 수 없다.

은우는 불만을 억누르며 사고했다.

“널 어떻게 해야 할까.”

이세계 인간의 존재를 미리 알고 협회가 알기 전에 가로채 온 사람. 그런 사람이 원하는 거야 뻔하다.

“입 다물면 되나.”

『1. 죽이기라도 하게?

2. 입 다물어 주지.』

알림 창과 은우의 목소리가 거의 동시에 떠올랐다. 여인의 눈이 가늘어졌다.

“눈치 빠른 놈은 싫지 않아. 하지만 믿을 수는 없지.”

여인은 두루마리를 던졌다. 뭔가 싶어 펼쳐보니 ‘영혼 맹세서’라는 큼지막한 글씨가 보인다.

“영혼에 대고 맹세해라. 어떤 순간에도 비밀 엄수 할 것을. 그러면 고이 보내 주지.”

─설정상으론 맹세를 어길 시 몸이 불타올라 죽는 아이템이에여

─지금 사람 납치해와서 멋대로 계약하자는 거임?? 저캐 머야 진자

─권이금이 원래 좀 포악함

─스토리 후반부 보면 찬양하게 될걸?

─그거 ㅇㅈㅋㅋㅋㅋㅋㅋ

은우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지.”

알림 창의 선택지는 대사만 다를 뿐 같은 내용을 내포하고 있었으니. 은우는 긍정했다. 여인이 펜을 던져 주며 적어야 할 것을 말했다.

“자, 잠깐만요!”

꼼지락거리던 이안이 손을 들어 올렸다.

“뭔데.”

“저, 저분에게도 무기를 만들어 드리고 싶어요……. 그러니까, 재료를 가져오시면요.”

일방적으로 당하는 계약만 하는 게 스토리인가 했더니, 이걸 위한 이야기였나 보다. 여인이 혀를 차더니 계약 조항을 바꾸었다.

“운이 좋네, 너.”

다 적은 영혼 맹세서를 본 그녀가 한 말이었다. 아마 그녀가 위험을 무릅쓰고 얻으려 노력한 대장장이의 제품을 얻게 된 것에 대한 행운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내 이름은 권이금이다. 기억해 두되 입에 담지 말도록.”

『Main Quest. 이상한 여자2

놀랍게도 이안은 이세계에서 건너온 대장장이였다.

권이금은 그런 이안을 협회에 들키지 않기 위해 직접 보호하겠다는데… 이게 과연 좋은 일일까?

권이금의 정체는 대체 뭐지? 비밀 엄수를 조건으로 죽음의 위기를 피했지만, 이게 올바른 선택이었을지는 모르겠다.

일단 집으로 돌아가자.』

그 알림 창을 끝으로 퀘스트가 종료되었다. 게임사의 핵 신고 답변은 아직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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