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자도 방송할 수 있습니다-33화 (33/233)

33화

망한 줄 알았던 레이드는 성공으로 돌아갔다. 은우는 마나 포션을 너무 먹은 나머지 중독 상태 이상이 뜬 걸 확인하며 목덜미나 슬슬 쓸었다.

“켄 님.”

“네.”

은우는 버릇처럼 검날을 턴 후 레리와 시선을 마주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희어서 그런가, 하얀 포메라니안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높은 확률로 그보다 나이가 많을 테지만, 그래도 너무 작다.

“감사합니다.”

“아뇨, 저야말로…….”

“켄 님이 아니었으면 실패했을 겁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공대장까지 와서 정중히 감사를 건넸다. 은우는 멋쩍어졌다.

저들이 아니었다면 그는 정말 오래 걸려서 저 고룡을 잡았을 터. 그렇게 감사할 일은… 맞긴 하지만, 그래도 과하다.

“한데 켄 님… 정말 레벨 70 맞으세요?”

“네.”

“와… 저흰 만렙(80)인데도 힘든데…….”

“별거 아닙니다.”

“헐, 별거 아니래.”

레드바가 야단을 떨었다. 은우는 그 경망스러움에 잠시 침묵했다. 레리가 자애로운 얼굴로 레드바의 허리를 붙잡고 그대로 메다꽂았다.

“…사이가 좋으시네요.”

“사이가 좋긴요. 웬수죠.”

“폭력배! 폭력 수녀!”

레리는 더 말하지 않았다. 흰색에 가까운 청은색 눈동자로 레드바를 지그시 응시했을 뿐. 레드바가 바로 꼬리를 내렸다. 괜히 레 남매라 불리는 게 아니었다.

─현실남매 진짜ㅋㅋㅋㅋ

─성하랑 합방할 때마다 레드바 ㅈㄴ 내 남동생 같아짐ㅋㅋㅋㅋ

은우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남매, 누나와 남동생. 그중 누나가 형으로 바뀌었을 뿐인데 그는 도저히 저런 장면을 연출한 자신이 없었다. 전생을 자각한 날 당신들을 포기해 버린 탓인지도 모른다.

많은 걸 잊어버린 순간에도 매몰찬 관계만큼은 생생해서.

“…하실 말이 없으시면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박탈감은 들지 않았지만, 조금 안타까운 건 사실이라. 은우는 자연스럽게 자리를 빠져나가려 했다. 그걸 잡은 건 레드바였다.

“아아아, 켄 님, 켄 님.”

“네.”

“괜찮으시다면 형님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붉은 머리카락 아래 빨간 눈동자가 초롱초롱 빛났다. 괜히 부담스러워지는 그런 눈빛이었다.

체구 차이가 여실히 느껴질 텐데 겁도 없네. 스트리머들은 다 이런가? 아닌데. 세모도 님은 겁냈는데.

“한 발 더 나아가 좀 더 괜찮으시다면 합방도 요청하고 싶은데!”

“이 자식아, 실례라고.”

레리가 그녀의 동생을 말렸지만, 레드바는 은우의 손을 붙잡고 놔주질 않았다. 은우의 목울대가 상하 운동을 했다.

─합방요정 레드바 어디 안 갔누

─크, 드디어 켄도 합방하나??

─스트리머계의 마당발 레드바가 불가침의 영역, 켄까지 장악하고 마는 것인가.....

─근데 레드바가 켄보다 어린가?

─어리지 않음??

─아 벌써부터 기대된다ㅋㅋㅋㅋㅋ

─켄 본인 입으로 자기 스무살이라며 레드바는 스물세 살임

─어, 그러네??

시참을 한 시점에서 언젠간 하게 될 거라 생각은 했지만…….

은우는 기대하는 사람들을 보며 숨을 느리게 뱉었다. 협력에 대한 거북함은 많이 가셨지만, 이렇게 갑자기 제의가 들어와서야. 조금 더 느긋이 하고 싶었던 계획이 송두리째 무너진다.

“죄송합니다. 제 동생이 합방을 너무 좋아해서요. 곤란하시다면 편하게 거절해 주세요.”

레리가 부드럽게 웃으며─그녀의 팔은 레드바에게 헤드록을 걸고 있었다─덧붙였다. 그다지 효과는 없었다.

이미 그는 ‘방송 중’에 ‘제안’을 받았다. 시청자들은 기대를 할 거고 이게 어떤 식으로든 무산되면 그 이야기로 꽃을 피울 거다. 진실을 담고 있는 꽃이든 거짓을 담고 있는 꽃이든.

“그, 그럼 합방은 안 해 주셔도 되니까 형님이라고 불러도 될까으아가각!”

“부캐로 접속해 올 테니까 대련 좀 할까, 동생아?”

“타임! 타임! 저에겐 여우 같은 저와 토끼 같은 옐로우바들이 있습니다!”

은우는 목덜미를 톡톡 두드리다가 일단 해야 할 말부터 하기로 했다.

“호칭은… 저는 별로 상관없습니다.”

“아싸! 그럼 형님!”

관계의 형성은 거리고, 거리는 호칭만으로도 제법 달라진다. 은우는 반쯤 충동적으로 허락을 내리면서도 살짝 후회했다.

시청자 참가를 위한 공지를 올릴 때와 비슷한 심정이었다. 이게 정말 옳은 선택일까. 그렇지만 안주하는 것도 슬슬 그만둬야 할 때가 온 건 맞잖아. 겁쟁이가 되고 싶진 않다.

“…근데 제가 더 어린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그거야 당연히… 넹?”

팔딱팔딱 뛰어다니려던 레드바의 동공이 지진을 일으켰다. 레리 역시 조금 충격받은 표정이었다.

“그… 스무 살이시라는 게…….”

“믿으셔도 되고 안 믿으셔도 됩니다만, 일단 스무 살은 맞습니다.”

두 사람이 얼어붙었다. 그중 먼저 입을 연 건 레드바였다.

“…나이가 무슨 상관입니까! 실력 앞에선 전부 형님이고 누님이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행님!”

“뭐… 네. 잘 부탁드립니다.”

─레드바ㅋㅋㅋㅋㅋㅋㅋ

─아, 친목질 쌉고수ㅋㅋㅋㅋㅋ

─입 터는 것 보소ㅋㅋㅋㅋㅋ

─행님이라 불러라 이제ㅋㅋㅋ

참 특이한 사람이었다. 은우는 목덜미를 쓸다가 합방 제의는 메일로 보내 달라는 말로 대화를 마쳤다. 레드바가 다시 총명하게 눈을 빛내며 사방팔방 뛰어다닌 건 당연한 일이었다.

▣ 033. 다 썰어 버린다

반반마니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걸로 스트리머들 사이에 은근한 소문이 퍼졌을 거다.

사람을 욕하고 폭력까지 휘두른 스트리머, 켄.

G페스티벌 때 악수를 한 것이 오히려 기회가 됐다. 멍이 든 분장을 하고 사진 찍어 보내니 그를 믿는 사람들이 더 늘었다.

물론 이런 같잖은 수작에 모두가 넘어가진 않을 것이다. 그래서 대놓고 시청자들에게 보이지 않은 거고.

중요한 건 그런 루머가 있다 ‘카더라’ 하는 것이었다. 그의 입김이 닿은 이들은 이 사실을 믿을 테고, 그들은 자신들에게 지인에게 이 이야기를 건너 건너 전할 테니.

대놓고 알리진 않을지언정 뭉근하게 퍼지는 소문은 켄의 이미지를 깎아 먹을 거다. 그것에 진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 업계는 거짓이 진실을 먹어 치우는 이미지 장사판이었다.

하물며 스트리머 생활을 몇 년이나 해도 평균 시청자가 기백 넘어가기 힘든 상황에, 켄은 데뷔와 동시에 인기를 끌었다.

그런 켄을 시기하는 이가 얼마나 많을까?

자기만으로 충분하다는 듯 합방 따위 하지 않고 고고하게 나아가는 그 스트리머를 깎아내리고 싶어 하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반반마니는 비열하게 웃었다. 켄이 합방을 안 해서 다행이다. 인맥 따위 없는 그는 이제 스트리머들 사이의 적이 될 거다.

* * *

『Main Quest. 뜻밖의

이안이 내게 선물한 무기는 내게 꼭 맞았다. 한층 더 강해진 기분이 든다.

하지만 여기서 안주할 수는 없다. 무언가 직감이 든다. 좀 더 강해져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후회할 일이 생길 거라고.

노력하자. 마침 우이동에 진입형 균열이 하나 생겼다고 한다. 그곳으로 가자.』

『Main Quest. 뜻밖의2

인간이 균열 안에 있다니. 이안이랑 같은 케이스일까?

일단 보호하면서 균열을 클리어하도록 하자.』

『Main Quest. 뜻밖의3

설마 사람이 균열주일 줄이야.

애초에 사람이긴 했던 걸까? 모르겠다. 알 수가 없다. 이안에게 이 이야길 해 보자.

권이금이라면 이에 대해 무엇을 알지도 모른다.』

『Main Quest. 숨겨진 비밀

이계의 침략자라니……. 권이금은 대체 어떻게 이 사실을 아는 걸까?

알 수 없다. 다만 좀 더 강해져야 할 이유가 생겼다.

좀 더 강해지도록 하자.』

『Main Quest. 영웅이 되다

징조도 없이 균열이 나타날 줄이야. 이대로라면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갈 것이다.

다행히 몬스터는 한 마리. 다른 사냥꾼들이 올 때까지 내가 막을 수 있을까?

아니, 반드시 막아야 한다. 저들은 스스로를 구할 수 없지만, 나는 저들을 구할 힘이 있으니까.

몬스터를 처치하자.』

『Main Quest. 영웅이 되다2

이한성이 이끄는 광휘 길드와 권이금이 시간에 맞춰 도착해 준 덕에 피해를 줄였다. 다만 광휘 길드라면 몰라도 권이금이 올 줄은 몰랐는데…….

그녀는 왜 나를 죽이려 한 걸까. 이한성은 또 왜 나를 보며 충격 어린 얼굴을 한 것일까?

일단 이한성을 따라가자.』

『Main Quest. 의문

이한성이 사실 환생자였다니……. 놀라운 이야기다.

그렇다면 나는 대체 뭐지? 나 또한 이계의 기술을 사용한다는데, 난 환생자도, 무엇도 아니다.

기억이라도 나면 좋으련만.

혹시 권이금은 알까? 권이금에게 가 보자. 나를 죽이려 했던 사람이지만, 포기한 걸 보니 적은 아닐 것이다.』

『Main Quest. 의문2

내 원래 이름은 …이었구나.

나는 10년 전에 실종당했구나.

내가 실종된 동안 나의 부모님은 이미 돌아가셨구나.

나는…….

이 세상에서 태어난 존재가 맞았구나.

그렇다면 어째서 나는 이계의 기술을…….』

『Main Quest. 의문3

나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

권이금은 내게 암시장에 가면 정보를 알 수 있을 거라 말해 주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순순히 말해 줬는지는 모르겠지만…….

암시장으로 가 보자.』

『Main Quest. 암시장

영입을 거절한 것에 앙심을 품은 이들이 존재할 수 있다고는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빠르게 접근할 줄이야. 내 실책이다.

빨리 이들을 처리하자.』

『Main Quest. 암시장2

권이금이 알려 준 대로 암시장에 왔다.

하지만 대체 어디서 정보를 얻어야 하는 거지?

암시장을 돌아다녀 보자.』

『Main Quest. 암시장3

이상 균열 당시 구해 줬던 아이가 설마 암시장의 마스터, ‘만금’의 자식이었을 줄이야.

덕분에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됐다.

아이를 따라가 보자.』

『Main Quest. 암시장4

습격자의 뒷배가 오성이었을 줄이야. 각오는 했지만 만만치 않은 세력이다.

이대론 나 자신에 대해 알아보기도 전에 죽을 지도 모른다.

그것은 원하지 않는다.

빠르게 강해지도록 하자.』

『Main Quest. 신이 남긴 것

만금이 내게 의뢰를 건네 왔다.

창고에 균열이 생겼는데, 하필 그 창고가 장물을 담아 둔 창고라니. 왜 나를 불렀는지 알 것 같다.

탐탁지는 않지만, 이 기회에 만금에게 빚을 지워 두자.』

『Main Quest. 신이 남긴 것2

이 균열, 무언가 이상하다. 몬스터는 하나도 없고 유적만 있다. 조심히 탐색해 보자.』

『Main Quest. 신이 남긴 것3

신이 남긴 것을 이어받았다는 게 대체 무슨 소리일까? 알 수 없다. 또한 제멋대로 클리어되는 균열이라니.

갈수록 균열이 이상해지고 있다. 어떤 일이 벌어지려는 걸까.

조금이라도 대비할 수 있도록 힘을 기르자.』

『Main Quest. 스산한 밤

스산한 살기. 암살자들이다.

오성이 또 보내 온 걸까?

상관없다. 나는 전보다 강해졌다.

그들을 전부 무찌르자.』

.

.

.

“곧 강릉 주문진 해변에서 균열이 터질 거다.”

『Main Quest. 영웅은 죽었다

권이금이 말을 시작했다.

무슨 이야긴지 들어 보자.』

“S급 균열이고 거기서 백두산이 뒈질 예정이야.”

권이금의 말에 은우는 눈을 껌뻑였다. 백두산이라면 백두산 길드의 길드장이다. 백두산 길드는 제법 세력이 강성한 길드였고.

『1. 당신은 안 갈 건가?

2. 막아야겠네.

3. 좀 더 이야기해 줘.』

“좀 더 말해 줄 수는 없습니까?”

“없어. 꺼져.”

권이금은 벌렁 누웠다. 지금까지 겪어 본 바, 저건 더 이상 개입할 생각 없다는 표시였다.

은우는 목덜미를 쓱 쓸다가 뭐라도 건지기 위해 키워드를 뱉었다.

“할 말 없으니까 꺼져.”

“없다고 했을 텐데?”

“뒈지기 전에 꺼져라.”

“3.”

“2.”

“1.”

은우의 목이 권이금의 손에 붙잡히고, 방에 처박혔다. 이안이 안쪽에서 작업하고 있는 게 다행이다. 그 애가 이걸 본다면 분명 울음을 터트릴 것이다.

“나대지 마라. 네가 살아 있는 건 회귀 전엔 없었던 특이점이라는 사실도, 기억을 잃은 새끼라는 사실도 아니니까. 이안이 아니었다면 넌 뒈졌어.”

“도움.”

“빌어 처먹을 새끼가, 귓구멍은 장식용으로 뚫었나!”

“정보.”

권이금의 손이 그를 들어 올렸다가 다시 벽에 처박았다. HP가 쭈욱 줄어들었다. 한 번 말할 때마다 그게 반복되었다.

“정보.”

그리고 그의 HP가 일의 자리까지 떨어졌을 때, 권이금이 그를 놓아주었다.

“젠장!”

그녀는 은우를 죽이지 않았다.

“난 세상 따위 구하지 않아! 꺼져!”

─워.....진짜 개무섭다

─이거 밝혀낸 새끼 진짜 누구냐ㅋㅋㅋ

─이 와중에 일인칭 켄 표정 변화가 없어서 소름끼침

─강심장 오졌다

─저거 하나 듣자고 이 지랄한 거임??

─여기서 더 물어보면 안돼용

─그럼 진짜 죽음

은우는 붙잡혔던 목을 쓰다듬다가 한 마디 더 내뱉었다.

“왜?”

시청자들이 기함하기도 전에 권이금의 몸이 확 틀어지며 주먹을 내질렀다.

까앙, 쾅!

주먹과 검이 부딪친 것임에도 그 소리는 마치 금속과 금속이 맞부딪친 것 같다. 은우의 검날을 타고 흐른 권이금의 주먹이 벽에 박혔다. 벽에서 사는 거미가 두 개의 중심점을 가지고 둥지를 틀었다.

“왜?”

은우의 목소리가 단조롭게 울려 퍼지고, 찰나간 벌어진 상황을 따라잡지 못했던 채팅이 천천히, 그러나 점차 빠르게. 마치 크레셴도 대목을 연주하는 것처럼 흘러갔다.

─저거, 원래 죽어야....?

─???

─죽는 공격인데...?

─어?

─어ㅓㅓ...???

플레이어가 반응할 수 없는 속도로 쏘아져 백이면 백 모두가 죽었다. 만렙이고 자시고 소용없었다. 이건 순수하게 실력의 문제였으니까. 그렇지만 권이금의 공격은 동체 시력으로 목격할 수 있는 수준의 빠르기도 아니었고, 목격한다 해도 신체 스펙상 피하는 건 불가능했다.

지금까지 그렇게 알려져 있었다.

“…빌어먹을.”

은우는 또 한 번 사람들의 예상을 깨부쉈다.

“왜 지랄인데, 너는?”

그리고 제작사에서 아주 나중을 기약하며 넣어 둔 이스터 에그가 드러났다. 만렙 상한치가 올라가고, 할 것 없는 고인물들이 콘텐츠 부족하다며 아우성을 칠 때쯤 찾아보라 이르려던 이스터 에그가.

“내가 피똥 싸 가며 세상을 구해야 할 정도의 가치가 이 세상에 남아 있냐? 세상이 멸망해 가는 와중에도 저들끼리 다투느라 제 살 깎아 먹는 또라이 새끼들을 내가 구해야 하냐? 어차피 뒈질 미래라면 발버둥 칠 이유 따위 없잖아.”

가면에 가려져 권이금의 얼굴은 볼 수 없다. 그러나 은우는 어쩐지 그 뒤 얼굴이 예상되었다.

“꺼져라. 다음에는 안 봐준다.”

저건 그도 언젠가 고민했던 문제였으니까.

“더 물어봤다간 진짜 죽을 것 같네요. 그럼 메인 퀘 깨러 갑시다.”

사람들이 한계라 선 그어 둔 것을 태연하게 엎어 버린 은우는 묘해지려는 기분 또한 엎었다. 저것에 동요하기엔 너무 먼 과거였다. 이겨 낸 고민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은우가 예상하지 못한 건 그가 아닌 타인이 받아들일 심정이었다.

─아니, 네??

「‘킹갓제너럴켄’ 님이 ‘10,000원’ 투척!

그 말이.....지금 태연하게 나와....?」

─나 저 대사 처음 보는데...?

「‘반밀반구’ 님이 ‘30,000원’ 투척!

미친거 아녀;;;」

「‘заявление об отставке’ 님이 ‘16,480원’ 투척!

뭔진 모르겠지만 켄이 또 켄했나?」

─ㅇㅇ 켄이 또 켄함 ㅅㅂ

─아.....또 균크리트 저거 실컷 도전하겠구나....

인간을 탈주한 자의 괴행에 시청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별것 없으니.

은우만 모르는 이유로 후원과 구독이 쏟아졌다.

* * *

『Main Quest. 영웅은 죽었다2

권이금의 말대로 강릉 주문진 해변에서 균열이 열리고 있다.

관측되는 규모는 최소 S급. 이게 정말이라면 한국에서 두 번째로 열린 S급 균열이 될 것이다.

그리고 권이금의 말에 따른다면… 이곳에서 얼마 없는 S급 헌터, 백두산이 죽는다.

그 일을 막아 내자.』

“사냥꾼이십니까?!”

“네.”

“후. 이래서 내가 장비를 몸에서 절대 못 뗀다니까.”

“첫 휴가가…….”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잠시 컷신이 펼쳐졌다. 코앞이라서 그런가, 사냥꾼들이 갑옷을 챙겨 입고 도열하는 모습밖에 없다. 조금 더 추가하자면 속속들이 합류하는 주변인 정도?

사냥꾼이란 사냥꾼은 전부 소집 명령을 받은 듯 모래사장은 금세 복작복작해졌다. 그들 모두가 무기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직업이 사냥꾼임은 쉽게 알 수 있다.

─아, 근데 난 메인 미션들 별로 안 좋아함 너무 현실성이 넘쳐서ㅠ

─ㅇㅈㅜㅜ

─균사 이 새끼들은 이런 미션에만 꼭 공을 들이더라

─메인 퀘들 하다보면 정말 주인공처럼 모두를 구하려고 하게 됨;;

─아, 나 이 퀘 ㅈㄴ 싫어ㅠㅠㅠㅠ

“그렇습니까?”

은우는 시청자들의 투덜거림을 들으며 미션 장소에 섰다. 노란 모래들이 길게 늘어진 해변은 사냥꾼 외엔 겨울철의 해변처럼 한산했다. 날이 제법 따듯한데도 불구하고.

“대장, 우리 살아남을 수 있겠지?”

“우린 고작 A급인데…….”

“괜찮을 거야. 대장이 있잖아.”

“대장뿐이냐? 백두산 길드의 길드장이 합류했어. 시간이 지나면 다른 길드들도 원조를 보낼 거고.”

주변에 있던 NPC들이 대화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아냐....믿으면 안 돼....

─켄은 믿어도 되는데......()

─(금지된 채팅입니다)

─어떤 새끼가 스포했냐

─진짜임 저거??

─스포 인간적으로 하지 말자ㅡㅡ

잠깐 채팅을 보지 않은 사이 누군가가 스포한 모양이다.

“스포는 안 됩니다.”

은우는 시청자들을 다시 한번 다독였다. 그때 백두산 길드의 길드장, 백두산이 단상 위에 올라가 연설을 시작했다.

“모두가 두렵다는 것 안다. 그러나 우리는 두려움을 이겨 낼 수 있지만, 이 뒤에 있는 사람들은 그럴 수 없다. 무기를 쥐어라. 그들이 두려움을 피해 도망칠 수 있도록. 두려움을 이겨 낼 힘을 가진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크....대사 간지....

─백두산 행니뮤ㅠㅠㅠ

─안 죽었음 좋겠다ㅠ

“모두, 살리기 위해 살아라.”

『당신은 지금 유혹 페로몬을 바른 상태입니다. 30분 동안 몬스터들이 당신을 쫓습니다.』

─이 미션은 이부분이 제일 ㅈ같음...

─절대 도망 못 가쥬

“애초에 도망갈 생각도 없는데…….”

쓸데없는 짓을 하네. 그는 앞으로 나아갔다.

“어이! 어디 가!”

“이탈하는 건 안 좋은데.”

“냅둬. 덕분에 고기 방패 하나 생기는 거지.”

가장 앞 열에 섰을 땐 바다 위의 징조가 완전히 짙어진 상태였다.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기어코 허공 일부가 찢어지고 몬스터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튀어나온 건 머맨, 머메이드 같은 해수 타입이었다.

“어이, 뭐 하는 거야! 전열을 이탈하지 마라!”

은우는 바다에 발목을 적셨다. 찝찌름한 소금물이 신발 안에 들어찼지만, 이 정도쯤이야 별것 아니다. 은우의 발에 전기가 파직 일었다.

“그러니까, 피카피카?”

전기가 바다를 타고 쫘악 퍼져 나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피카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켄 갈수록 멘트 웃겨지고 있음ㅋㅋㅋㅋㅋ

「‘заявление об отставке’ 님이 ‘16,480원’ 투척!

전기쥐가 최강이다.」

─ㅋㅋㅋㅋㅋㅋㅋ아, 형ㅋㅋㅋㅋㅋㅋㅋ

“소금물이 얼마나 전기가 잘 전도되는데. 이 기회를 놓치긴 아깝잖습니까.”

뭣보다 그는 바다에 아까운 마나를 흘리는 대신 바닷속 생명체만 요격해 낼 수 있는 기술이 있다. 그에게 보이는 적들의 체력 바는 대부분 반토막 난 채다.

은우는 순식간에 바닥을 친 마나통을 의식했다. 물론 절대 물러나진 않았다.

키아악!

여성의 상체에 물고기의 하체를 가진 머메이드가 손톱을 세우며 덤벼들었다. 은우의 검날이 그것들을 베어 넘겼다.

비록 마나가 다 떨어져 공격력을 상승시키진 못했으나, 그것들을 튕겨 내는 건 어렵지 않다.

“다 죽여!”

은우에게 달려든 놈들을 필두로 바닷물 속에서 생명체들이 튀어나왔다. 사냥꾼들이 공격을 날렸다.

서걱!

마나가 그새 회복되었다. 은우는 검에 힘을 실으며 머메이드와 머맨들을 죄다 썰었다.

상체가 인간형일지언정 푸른 피부인 데다가 얼굴도 흉측해서 별다른 죄책감은 들지 않았다. 사실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이었어도 그랬을 거다. 시청자들은 싫어하겠지만.

라, 라라라라-

뜬금없이 노랫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일부 사냥꾼들의 눈이 몽롱해지며 무기를 늘어트렸다. 그들은 바다로 뜬금없이 다가오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머맨과 머매이드의 손톱에 찢겼다.

“세이렌의 현혹을 조심해라, 머저리들아!”

이번 퀘스트의 목표, 백두산이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그는 현혹당한 녀석들을 한심하게 보며 멱살을 잡아 뒤로 던지는 식으로 만류했다.

『저항력이 낮아 현혹에 당합니다.』

한편, 은우는 이런 메시지 창을 받았다.

“…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여기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돌은 거 아냨ㅋㅋㅋㅋㅋㅋㅋ

─ㅋㅎㅋㅎㅎㅎㅎㅋㅋㅋㅎㅋㅎㅋㅎㅋㅋ

─저항력 여기서도 통하는 거였냐고ㅋㅋㅋㅋ

시청자들이 옳다구나 웃어 재꼈다. 아무렴 이런 기회는 흔치 않았다.

인간인가 싶을 정도의 천재가 당황하며 평범한 사람처럼 구는 것. 자주 그런다면 재미가 없겠지만, 은우는 지금까지 이렇게 당한 적이 거의 없었다. 웃을 수밖에 없다.

“아니, 아니, 무슨.”

은우는 무기를 늘어트리고 걷다가 한 대 맞았다. 피가 쭈욱 깎였다. 공격력에 모든 걸 투자한 대가였다.

퍼억!

심지어 그는 얼굴도 두 대 얻어맞았다. 헬멧 내구도가 깎여 나가며 금방 너덜너덜해졌다. 이건 고치지도 못한다. 하필 뺨 맞듯이 타격이 들어와서 기분이 나빴다.

“…내 헬멧.”

─ㅋㅋㅋㅋㅋㅋㅋ치욕ㅋㅋㅋ

「‘균열사냥꾼서열’ 님이 ‘7,000원’ 투척!

세이렌&머맨>켄>>>>>고룡 루삥뽕삥뽕」

─다시 만들어드릴게요!!

─ㅋㅋㅋㅋㅋㅋㅋ진짜 개웃곀ㅋㅋㅋ

─가짜광기(세이렌과 머맨)vs진짜광기(켄의 헬멧집착)

─ㅋㅋㅋㅎㅋㅎㅋㅎㅋㅋㅋㅋㅋㅋㅋ

은우에게 불행은 딱 일곱 대 맞고 체력 바가 10% 이하로 내려갔다는 것이고, 행운인 것은 죽기 직전에 현혹이 풀렸다는 것이다.

또한 은우를 공격한 머맨의 행운은 은우를 일곱 대나 때릴 수 있었단 것이고, 불행은 그 일곱 대로 은우를 죽이지 못했단 것이다.

서걱!

기어코 헬멧이 부서지며 금발처럼 보이는 갈색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흩날렸다. 커피색 피부 위에 드리워진 것은 머맨의 파란 체액이었다.

“후…….”

은우는 현실과 달리 덥수룩한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그 순간에도 그의 오른팔은 적을 쳐부쉈다.

처진 눈꼬리 속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짜증으로 물들었다. 유순한 인상임에도 그 순간만큼은 북풍의 한설 같은 차가움이 맴돌았다.

“세이렌, 다 썰어 버린다.”

헬멧의 원한이 불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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